174화. 카시오페아 신전 (6)
‘이 거친 놈들을 하루 만에 길들였다고?’
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걸어가 오크들에게 굴복한 늑대를 쓰다듬었다.
늑대는 몬스터는 물론이고 헌터들에게 마저 들이댈 만큼 공격성이 높은 동물이었다.
‘형님, 웬일이세요? 늑대를 다 잡으시고?’
‘에휴! 우리가 잡고 싶어서 잡았겠니. 미친개처럼 달려드니 어쩔 수 없이 잡은 거지. 이놈들 때문에 정작 오크는 몇 마리 잡지도 못했다. 쩝.’
늑대들을 보고 있자니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장지원 마스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코어가 없는 늑대는 잡아 봤자 돈이 되지 않으니 가급적 싸우고 싶지 않아 했는데 일단 조우하면 헌터들마저 싸움을 피할 수 없을 정도로 늑대들은 빠르고 또 끈질기기까지 했다.
[저희가 뭘 잘못한 겁니까. 성주님?]
“네?”
[……표정이 너무 안 좋아서요.]
내가 아무런 말 없이 늑대들을 쳐다보고 있자 오키도키가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솔직히 두려웠다.
맹약까지 하며 우리와 함께하기로 한 오크들의 전력이 올라가는 건 좋은 일이었지만 오크들이 강해져도 너무 강해질 것 같았다.
늑대들을 타고 전투를 할 오크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절로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오키도키는 단순히 탈 것이 필요해 늑대들을 길들였나 본데 늑대들로 인해 오크들의 전투력은 적어도 세 배에서 네 배 이상 상승할 테니까. 아니 지금 우린 단순히 몬스터 몇 마리 잡으려고 떠나는 게 아니라 전쟁하러 가는 것이기에 오크들과 늑대들의 시너지는 전략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열 배 이상의 전투력마저 끌어낼 수 있을 듯했다.
“아니에요. 너무 놀라서 잠시 당황한 것뿐이에요. 저는 물론이고 수뇌부들 사람들 모두 늑대들을 길들여 보겠다고 한 사람은 없는데 오크들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해 주셨네요.”
[다 성주님 덕분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늑대들을 보자마자 사냥해서 잡아먹기 바빴을 텐데, 스카이 캐슬에서 안정적으로 식량을 제공해 줘서 여유가 생기니 조금 더 넓고 멀리 생각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내가 얼굴을 미소를 머금자 그때야 오키도키도 잔뜩 긴장했던 얼굴을 풀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늑대들을 길들이고 있는 오크들을 쳐다봤다.
자신들도 우리에게 식량을 제공 받아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늑대들을 처음 길들일 때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계속 고기를 먹여야 해서 그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꾸룩! 꾸룩!”
“컹! 컹!”
“꾸룩! 꾸룩!”
“크르릉.”
내가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미소를 머금자 오크들이 다시 포위하고 있던 늑대들에게 다가가 주먹질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꾸륵! 꾸륵!”
“깨에엥.”
오물오물.
냠냠.
이빨을 드러내며 반항했던 늑대 한 마리가 꼬리를 말며 오크들이 던져 준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정말 대단하네요. 늑대들을 저런 식으로 길들일 수 있을지는 진짜 상상도 못 했어요.”
지윤미 마스터가 놀람과 씁쓸함이 교차한 얼굴로 오크들을 쳐다봤다.
“때론 무식한 게 답이 될 때도 있다고 하잖아요.”
“네?”
“자책할 필요 없다고요. 오크들이야 가죽이 두껍고 질겨서 늑대의 이빨과 발톱이 크게 위협적이지 않지만, 일반인들은 살짝 스치기만 해도 큰 상처를 입을 수 있잖아요.”
“흠…….”
“게다가 저런 식으로 동물을 길들이는 건 그동안 우리가 살아오며 배웠던 지식과 경험 때문에 반감을 갖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고요.”
“……네.”
내 설명을 들은 지윤미 마스터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뇌부가 머리 나빠서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너무 생각이 많고 감안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 못한 것이었으니까.
“전부 다 저런 식으로 길들여지는 건 아닌가 보네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저 늑대는 곧 죽을 것 같네요.”
지윤미 마스터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늑대를 쳐다봤다.
포위되었던 늑대들 대부분이 오크들에게 굴복해 꼬리를 말고 먹이를 먹기 시작했는데 유독 한 마리만 계속 반항을 하고 있었다.
“크르르릉.”
오크들의 주먹에 맞아 얼굴 여기저기에 상처가 가득했고 양쪽 앞발이 다 골절됐는지 제대로 서지도 못하면서 계속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짐작건대 저대로 두면 곧 죽을 것 같았다.
“꾸륵! 꾸륵!”
[죽여!]
“꾸륵!”
오크들도 저 늑대는 길들이기를 포기했는지 허리에 차고 있던 도끼를 꺼내 들었다.
“멈추세요!”
[네?]
“저 늑대는 제게 주세요.”
난 손을 들어 오크들을 제지했다.
[저 늑대를 가지시겠다고요?]
“네. 죽이지 말고 제게 양보해 주세요.”
[저 늑대는 길들일 수 없습니다. 어제, 오늘 늑대를 길들이다 보니 꼭 한두 마리씩 저렇게 끝까지 반항하는 놈들이 있더라고요. 저놈들은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굴복하지 않습니다.]
오키도키가 짜증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궁금해서 그래요.”
[네?]
“다른 늑대들처럼 굴복하면 편한데 왜 저렇게까지 반항을 하는지.”
[흠…….]
오키도키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가만히 쳐다봤다.
이미 굴복을 시켜 입마개와 안장을 채워 놓은 늑대들을 놔두고 반항심 가득한 늑대에게 관심을 보이니 내 행동을 이해하기 힘든 모양이었다.
“제가 어려운 부탁을 하는 건가요?”
[아, 아닙니다. 저희는 물론이고 이곳의 있는 모든 것은 성주님의 것입니다. 저희한테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으십니다.]
“고마워요. 그럼 오크들을 데리고 자리를 피해 주세요. 아니 복귀해 주세요. 저 늑대는 제가 길들여 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오키도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오크들을 데리고 오크성으로 걸어갔다.
내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으나 내가 원하니 군말 없이 따라주었다.
“성주님, 왜 그러세요?”
“다 암컷이었어요.”
“네?”
“저 늑대는 물론이고 방금 오크들에게 포위당해 잡힌 늑대 모두 암컷이에요.”
“그게 왜?”
“제가 알기론 늑대들은 보통 수컷들이 사냥하고 암컷들은 새끼를 돌보거든요. 그리고 정 먹을 것이 없이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암컷들도 사냥을 나가는 거로 알고 있어요.”
난 지윤미 마스터에게 설명해 주며 바닥에 누워 있는 늑대를 쳐다봤다.
예전 동물의 왕국에서 본 적이 있었다.
보통 늑대들의 무리는 대장이 2마리였다.
수컷 늑대들을 이끄는 대장과 암컷 무리를 이끄는 대장.
짐작건대 앞에 쓰러져 있는 늑대는 암컷들을 이끌었던 대장일 듯싶었다.
“근데 그게 왜?”
“지능이 낮은 동물이 먹을 것까지 거부하고 목숨까지 도외시하면서 반항을 하는 경우는 드물죠.”
“흠…….”
“제 짐작이 맞다면 새끼들 때문에 굴복하지 않은 것 같네요. 수컷들은 물론이고 암컷들까지 저리 다 오크들이 잡아가면 새끼들은 다 굶어 죽게 될 테니까요.”
“아…….”
지윤미 마스터가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날 지그시 쳐다봤다.
“저놈을 따라가면 오크들이 길들인 것보다 더 많은 늑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네요.”
난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오크들을 쳐다보며 그들이 더 멀어지길 기다렸다.
오크들의 한계였다.
오크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 단순히 고집이 세고 자존심이 강해 굴복하지 않는다고 여겨 그냥 다 죽였나 본데 조금 더 깊게 생각하니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유추할 수 있었다.
‘운디네.’
-응. 알았어.
따스하고 포근한.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파란색 빛을 머금은 물방울을 늑대에게 날려 보냈다.
“끼이잉.”
골절된 앞다리가 치료되자 늑대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오크들이 확실히 자리를 떠났는지 확인하는 듯했다.
찌릿.
“우리도 떨어지죠.”
“네.”
늑대와 눈을 마주친 난 뒤로 몸을 날리며 거리를 벌렸다.
‘실프!’
-응. 알았어.
살랑살랑.
실프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노란색 빛을 머금은 바람을 일으켜 우리의 체취가 늑대에게 가지 않게 방향을 바꿔 주었다.
늑대 굴.
내 짐작이 맞았다면 저 늑대는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갈 테고 정령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내 의도대로 될 수 있게 상황을 만들어주었다.
십 분, 이십 분…… 두 시간.
“우리가 따라오는 걸 눈치챈 걸까요?”
“잘 모르겠네요.”
은밀히 늑대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데 한참을 쫓아도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우리가 따라오는 걸 눈치챘었을 수도 있고 그도 아니면 원체 의심이 많아 일부러 바로 가지 않고 뱅뱅 돌 가능성이 있었다.
전자든, 후자든 정말 대단한 놈이었다.
고작 늑대 주제에 S급과 SS급의 헌터의 추적을 눈치채는 것도 대단했고.
오크들에게 그 모진 매질을 당했으면서도 혹시 모를 위협을 위해 바로 굴에 돌아가지 않는 경계심도 칭찬받을 만한 일이었다.
“성주님, 지금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요?”
“네?”
“성주님 말처럼 정말 새끼들이 따로 머무는 곳이 있다면 새끼들한테 위협이 생길까 봐 저런다는 건데 기분이 좀 그러네요.”
늑대를 쫓다 생각이 많아졌는지 지윤미 마스터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저 늑대가 무사히 굴에 돌아간다 해도 어차피 새끼들은 대부분 죽을 겁니다.”
“…….”
“다른 포식 동물들은 물론이고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이곳에서 무리를 잃은 어미 늑대 몇 마리 있어 봤자 먹을 것을 구하기는 힘들 테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좋게 생각하세요. 어차피 죽을 늑대를 우리가 거두어서 키우면 늑대들도 좋고 우리도 좋은 거니까.”
“……네.”
지윤미 마스터가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알고 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아주 이기적이라는 것을.
오크들이 성체 늑대들을 잡아가지 않았으면 애초에 새끼 늑대들에게 위기가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
헌데 그게 자연의 섭리였다.
약육강식.
약하면 잡아먹히는 것이었다.
당장 큰 전쟁을 앞두고 있고 마족과 몬스터와 싸워야 하는데 늑대들의 사정까지 봐주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아니 지금보다 상황이 훨씬 좋았어도 난 똑같이 행동했을 것 같았다.
오크들을 등에 태우고 있는 늑대들이 너무 탐이 났으니까.
오크들처럼 태백산맥과 발키리 헌터들이 늑대 등에 올라탄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했다.
“깨엥.”
“깨엥.”
핥짝핥짝.
핥짝핥짝.
“성주님, 저기 보세요. 성주님 말이 맞았어요.”
“네.”
어미 늑대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어둠이 찾아오고 나서야 자신의 굴을 찾아갔고 수백여 개의 파란색 빛들이 주위에 가득했다.
어둠이 깊게 내려 앉아 늑대들의 형체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밝게 빛나는 눈동자들이 대충 숫자를 가늠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너무 많은데요?”
“그러게요. 늑대들도 새끼를 많이 낳나 보네요. 제가 여기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 마스터님은 영지로 돌아가셔서 발키리 길드와 태백산맥 길드 헌터들을 이끌고 와 주세요.”
“네, 알겠어요.”
지윤미 마스터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영지로 날아, 아니 뛰어갔다.
늑대들이 생각보다 많아 생포하려면 아무래도 많은 인원이 필요할 듯싶었다.
그런데 그때,
“크아아아아아아앙!”
“크르릉.”
“크르릉.”
늑대 소굴이 있는 곳에서 땅이 흔들리고 절로 등이 시릴 정도로 커다란 포효가 들려왔다.
“뭐지? 다른 포식자가 나타난 건가?”
울음소리를 듣자 하니 늑대보다 훨씬 크고 거대한 다른 동물이 찾아온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