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카시오페아 신전 (5)
“설마 오크들을 데리고 가서 전투하겠다는 건가요?”
“네. 맞아요. 오크들을 데리고 가서 싸우면 혹여나 살아서 도망가는 인원이 생겨도 청방 쪽에선 몬스터들에게 침공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흠…….”
노발대발하며 내게 따지고 들었던 김용규가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날 쳐다봤다.
그의 눈빛이 흔들린다.
내 계획이 제법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허락해 주세요. 성수도 성수지만 이곳은 오크들과 함께 지내기에 너무 좁잖아요.”
“흠…….”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고 있다 하나 여전히 오크들의 숫자가 우리보다 더 많습니다. 게다가 오크들의 번식력이 빨라서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식량을 제공하면 금세 백만 단위로 숫자가 늘어날 겁니다.”
“흠…….”
“하프 오크들과 맹약을 해서 당장은 좋게 지내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오크들의 세가 늘어나도 지금의 관계가 유지될지는 장담할 수 없잖아요.”
“그렇긴 하죠. 안 그래도 벌써 부터 불만이 나오고 있긴 했습니다. 오크들이 나름 우리를 돕고 있다 하나 저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이 우리보다 몇 배는 더 넓으니까요.”
김용규 본부장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랑 사생결단을 내서라도 전쟁을 막아 내려고 찾아온 듯했는데 오크들 때문이라도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걸 그도 인지하고 있었다.
오크들의 임신 기간은 6개월밖에 되지 않고 한 번에 8마리에서 1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그리고 그 새끼는 또 6개월이 지나면 사냥에 나설 수 있을 만큼 성장을 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생식 활동까지 하게 된다.
이대로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놔두면 이곳 스카이 캐슬은 인간들의 땅이 아니라 다시 오크들의 땅이 될 수도 있었다.
맹약을 맺어 오크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으니 오크들의 세에 걸맞는 영토를 차지해 이동을 시키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의 선택인 것이다.
마족과 몬스터들을 막기 위해 오크들은 물론이고 헌터들 숫자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 계속 안정적으로 지내려 했다간 그 힘이 내부에서 폭발할 수도 있으니까.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전쟁의 참혹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시국이 우리에게 전쟁을 요구하고 있네요.”
“네. 그런 것 같네요.”
김용규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도 이제야 마음을 굳힌 모양이었다.
“그럼 전 오키도키 좀 만나 보러 갈 테니 오크들이 늑대인간의 숲으로 이동할 수 있게 조치 좀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김용규와 인사를 하고 오크성으로 이동했다.
* * *
“……옛 켄트 왕국의 땅을 되찾으려고 하는 데 오크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오키도키를 찾아가 난 지금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그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지금 바로 출발하면 되겠습니까?]
“그래 주면 고맙긴 한데 다른 족장들과 회의를 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전쟁이 나면 적지 않은 오크들이 많이 다치고 죽게 될 수도 있습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다 허락할 겁니다. 아니 제가 데리고 가지 않으려 해도 자기들이 따라나서려고 할 겁니다.]
“……?”
[상황이 여의치 않아 스카이 캐슬에 주는 식량을 제공 받고 있지만, 오크들은 천성적으로 몸을 직접 움직여 사냥하는 걸 즐기는 종족입니다. 먹고 싸고 자는 것만큼이나 달리고 싸우는 것도 그만큼 좋아합니다.]
씨익.
오키도키가 미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날 그윽하게 쳐다봤다.
내심 오크들이 협조하지 않으려 하면 어쩌나 했는데 그는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기뻐하는 것 같았다.
“그럼 준비가 되면 알려 드릴 테니 오크들도 바로 출정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20만 마리의 오크가 스카이 캐슬의 병사로 본격적으로 합류하는 순간이었다.
* * *
“해용이 형, 아무래도 형이 직접 공방에 다녀오셔야 할 것 같아요.”
“왜 또 카프리가 뭐라 하는 거야?”
“네. 자긴 죽어도 그 시간 안에 못 만들어 낸대요.”
김용규와 오키도키의 허락으로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를 시작하자마자 이부성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날 찾아왔다.
헌터들과 달리 오크들의 무구는 조잡하기 이를 데 없었고 공방에 부탁해 오크들이 입을 만한 무구를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카프리가 또 땡깡을 부리는 모양이었다.
“어휴. 가 보자.”
난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공방으로 걸어갔다.
할 일이 태산인데 뭐 하나 쉽게 넘어가는 게 없었다.
“카프리 님, 전쟁이라고 했어요. 전쟁. 이렇게 배 째라고 나올 상황이 아니라니까요.”
“나도 안다. 하지만 한 달 안에 20만 명이 입을 무구를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하다. 오크들 가죽 질기다. 그냥 그대로 가서 싸우라고 해라.”
공방에 도착하니 지윤미 마스터와 카프리가 실랑이하는 게 보였다.
“카프리 님!”
“야이. 염병할 인간아. 무슨 내가 일하는 기계냐! 어째 좀 살 만하다 싶으면 계속 일을 만들어 내는 거야!”
나와 눈이 마주친 카프리가 잔뜩 화를 내며 내게 언성을 높였다. 내가 무슨 부탁을 할 때마다 매번 투정을 부려서 이번에도 잘 달래주면 될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이번엔 진짜 많이 화가 난 모양이었다.
“많이 힘드신가 보네요.”
“안 힘들게 생겼어? 20만 명이나 되는 인원을 무장하라고 하는데…….”
“그럼 하지 마세요.”
“엥?”
“그렇게 힘들면 하지 마시라고요. 밖에다가 의뢰할 테니까.”
난 잔뜩 화를 내는 카프리를 뒤로하고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김용규 본부장한테 얘기해서 지구에 있는 공방에다가 의뢰해 주세요. 카프리 님이 만들어 주는 무구만큼은 아니더라도 거기도 제법 쓸 만하게 만들어 내잖아요.”
“네, 이제 지구의 공방들도 제법 솜씨가 좋아졌더라고요.”
지윤미 마스터도 설득하다 지쳤는지 내 말에 바로 수긍을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야? 진짜 밖에다가 맡기려고?”
카프리가 세상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보아하니 내가 또 사정이라도 할 줄 알았다가 바로 포기를 하니 당황한 기색이 여력 했다.
“힘들다면서요?”
“힘들긴 한데…….”
“그러니까 쉬시라고요.”
“이씨.”
“…….”
“…….”
참 이상한 드워프였다.
당황한 것도 잠시 카프리가 또 인상을 찡그리며 날 노려봤다.
“스카이 캐슬의 공방 대장은 나다. 내 허락 없인 이곳에서 다른 무구를 들여올 수도 없고 사용할 수 없다.”
“……?”
“기한 내로 맞춰 볼 테니 성주는 가서 볼일 봐라.”
“만들어 준다고요?”
“그래. 내가 만든다.”
“……네.”
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선 다시 발걸음을 되돌렸다.
“카프리가 성주님 얼굴 한번 보고 싶었나 보네요.”
지윤미 마스터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날 따라왔다.
“그냥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하면 되지. 왜 매번 저렇게 꼬라지를 내는지 모르겠네요.”
“나이만 먹었지. 아직 마음은 아이인 것 같아요. 그도 아니면 외로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요. 가서 위로 한번 해 주세요.”
“위로해 주라고요?”
“카프리 얼굴 한번 봐 보세요. 성주님이 차갑게 구니까 세상 무너진 얼굴을 하고 있잖아요.”
“흠…….”
난 고개를 살짝 돌려 카프리의 얼굴을 쳐다봤다.
‘성질은 자기가 부려 놓고선…….’
지윤미 마스터의 말처럼 카프리가 마치 사랑했던 연인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처량한 표정을 지으며 난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투정을 부릴 때마다 매번 내가 받아 주다가 안 받아 주니 많이 서러운 모양이었다.
“오늘은 그냥 가죠.”
“네?”
“한 번쯤 저도 튕겨야죠. 계속 받아 주니까 더 저러는 것 같네요.”
풉!
“밀당하는 건가요?”
지윤미 마스터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으며 날 쳐다봤다.
“그렇게 보이나요?”
“살짝?”
“어휴.”
난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 역시 비슷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정작 여자 친구인 수정이는 내게 투정을 부리지 않는데 진짜 카프리랑 연애라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 놀리시고 전쟁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나요?”
“네. 이제 무구도 해결됐고. 보급로 운영만 어떻게 할지 정하면 될 것 같아요.”
“보급로라…… 그게 제일 문제긴 하네요.”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켄트 왕국의 옛 지도를 꺼내 쳐다봤다.
지도를 보아하니 게이트가 있는 늑대인간의 숲과 카시오페아 신전은 꽤 거리가 멀었다.
짐작건대 헌터들의 발걸음으로도 족히 일주일은 걸릴 듯싶었다.
제대로 보급로를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크의 숲에서처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면 큰 낭패를 겪을 수도 있었다.
“야생마도 오크처럼 새끼를 좀 많이 나으면 좋을 텐데 그게 아쉽네요.”
“네. 그러니까요. 쩝.”
지윤미 마스터가 입맛을 다시며 하늘 목장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변지섭 헬퍼가 부지런히 야생마의 마릿수를 늘리고 있지만, 아직 대규모 전투에 동원할 만큼 되지는 못했다.
20만 마리나 되는 오크들의 식량을 공급할 걸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데 그때,
“꾸륵, 꾸륵.”
“컹, 컹, 크르르르릉.”
저 멀리 앞에서 오크와 늑대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 볼까요?”
“네.”
지윤미 마스터와 눈을 마주친 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늑대들은 항상 무리로 다녀서 혹여나 오크들이 소수로 다니다가 조우하면 역으로 사냥을 당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어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컹, 컹. 크르르릉.”
“크르르릉.”
“엥?”
소리가 난 곳에 도착하니 백여 마리의 오크들이 십여 마리의 늑대들을 감싸고 포위해 두들겨 패는 것이 보였다.
[오셨습니까? 성주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왜 늑대들을 두들겨 패는 거죠?”
마침 오키도키도 함께 있어 난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그를 쳐다봤다.
오크들은 늑대도 잡아서 먹기에 사냥을 하는 건 이해하지만 저런 식으로 괴롭히는 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길들이고 있는 겁니다.]
“길들이고 있다고요? 제가 보기엔 그냥 괴롭히는 것 같은데?”
[인간들을 보니 야생마를 길들여서 타고 다니더군요. 그래서 저희도 늑대들을 길들이고 있는 겁니다. 지휘부 얘기를 들어 보니 장거리 행군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저희 오크들이 순간적인 힘은 좋지만, 체력이 그렇게 좋지는 않거든요.]
오키도키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현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하프 오크라 그런지 전쟁을 도와달라는 말에 가만히 있다가 몸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도움이 되기 위해 머리를 쓴 모양이었다.
“의도는 좋은데 저런다고 늑대들이 길들여질까요?”
[네. 길들여집니다.]
“……?”
[반항을 멈출 때까지 계속 두들겨 팼다가 고기 좀 나눠 주면 말을 듣더라고요. 벌써 백여 마리 정도 길들여 놨습니다.]
“헐…….”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오키도키의 시선을 따라갔다.
늑대들을 두들겨 패는 모습에 미처 인식하지 못했는데 오크들의 뒤에 입마개를 하고 등에 안장까지 채워져 있는 늑대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는 벌써 오크들이 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