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카시오페아 신전 (3)
부우우우우웅.
유거성호에 탑승해 잠시 눈을 감은 것 같은데 어느새 스카이 캐슬에 도착했는지 커다란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해용이 형. 도착한 것 같아요.”
“그래.”
안에서 휴식을 하고 있던 난 이부성과 함께 갑판으로 나왔다.
“벌써 저렇게 개발시켜 놓았다고?”
밖으로 나온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저 멀리 보이는 스카이 캐슬을 쳐다봤다.
얼마 자리를 비운 것 같지도 않은데 스카이 캐슬은 그새 대한민국의 어지간한 도시 못지않게 급격하게 발전되어 있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달달달 소리를 내며 경운기와 농기계 정도만 왔다 갔다 했던 도로가 더 넓고 크게 확장되어 신호등마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위를 지구에서 들어온 승용차들이 오가고 있는 게 보였다.
게다가 서너 척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배도 십여 척 넘게 더 건조되어 항구에 정박해 있었다.
“형이 그러셨잖아요. 개척의 시작은 도로라고. 땅굴에 이어 바닷길마저 열려 지구의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더라고요.”
“그치. 개척의 시작은 도로지.”
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항구를 쳐다봤다.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운 것 같아서 살짝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을 한 듯했다. 내가 없어도 아니 내가 관여를 할 때보다 어째 더 빠르게 개발이 되고 잘 운영되는 듯했다.
‘사람들도 많이 는 것 같네.’
배가 항구에 가까워질수록 영지 모습이 더 자세히 보이기 시작했는데 비토섬으로 떠나기 전보다 헌터들의 숫자도 꽤 많이 늘어난 듯했다.
“발키리의 제자들이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태백산맥의 제자들이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오크족 족장 오키도키가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네. 모두 오랜만이에요. 적당히 하시고 모두 일어나세요.”
항구에 도착하자 지휘부와 헌터들, 오크들까지 마중 나와서 내게 예를 올렸고 난 바로 자리에서 일으켰다.
“영지에 사람이 꽤 많아진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죠?”
“마나 팔찌를 외부에 판매하자 각성을 하고도 레이드에 회의적이었던 헌터들이 코어를 모으기 위해서 끊이지 않고 영지에 찾아오고 있어요.”
“얼마나 들어온 거죠?”
“오만 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저희 말고 다른 지역에 뚫린 게이트들은 아직 개발되어 있지 않고 안전망이 구축되어 있지 않아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 같아요.”
마치 홍대 입구 번화가처럼 상점 거리에 바글바글 모여 있는 헌터들을 보고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지윤미 마스터가 설명해 주었다.
멀리서 보고 인원이 좀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았다.
각성하고도 재난 관리 본부의 소집에 응하는 게 싫어서 감추고 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마저 꽤 많이 넘어온 것 같았다.
[저희보다 더 잘 살고 인구가 많을지는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저도요.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아요. 사실 성주님의 말을 듣고도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파라다이스가 있었네요]
시골에서 살다가 처음 서울에 상경한 사람처럼 린드 공주와 퍼거슨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고, 기사단과 마법사단은 놀라움과 긴장감 섞인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경계했다.
좁은 섬에 갇혀 살다가 발전된 문물과 수많은 사람을 보니 자신들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넘어와서 좋긴 한데 저 사람들을 만족시킬 만큼 이곳에 몬스터가 아직도 그렇게 남아 있나요?”
“아니요. 없어요. 매일 수만여 명이 언데드의 숲과 용의 계곡까지 들어가 사냥을 하다 보니 씨가 마른 지 오래예요.”
지윤미가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이 모이면 돈이 된다. 그리고 그만큼 스카이 캐슬의 안전은 더 견고해지기도 했고.
그래서 내가 계속해서 아이템을 외부로 풀고 판매를 한 것인데 몰려도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버렸다.
“퍼거슨 님, 옛 켄트 왕국의 지도가 있나요?”
[네. 혹시 몰라서 챙겨왔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윤미 마스터님, 그레이 기사단이 관리하는 늑대인간의 숲 지도도 갖다 주세요.”
“네, 알겠어요.”
No. 0001 늑대인간의 숲.
동쪽. 언데드의 숲.
서쪽. 늑대인간의 숲.
남쪽. 오우거의 숲
북쪽. 난쟁이족의 숲.
켄트 왕국.
동쪽. 언데드, 버그베어, 바실리스크, 스콜피온.
서쪽. 고블린, 늑대인간, 타란툴라, 오우거.
남쪽. 난쟁이, 임프.
북쪽. 사이클롭스, 그리폰.
.
.
.
퍼거슨과 지윤미 마스터에게 각각 지도 한 장씩을 건네받은 난 가만히 그것들을 살펴봤다.
역시 우리가 조사한 것보다 오랜 시간 그 땅에 살며 마족과 몬스터에 대항해서 그런지 퍼거슨이 준 지도에 지형과 몬스터의 분포도가 더 자세히 적혀 있었다.
“퍼거슨 님, 여기 바실리스크랑 사이클롭스, 그리폰, 임프……. 제가 아직 보지 못한 몬스터들이 적혀 있는데 강한 몬스터들인가요?”
[꽤 강한 몬스터들이긴 하지만 염려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저희가 영토를 버리고 허겁지겁 도망간 건 상위 몬스터들 때문이 아니라 언데드 몬스터와 타란툴라의 독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 두 가지만 해결할 수 있으면 바로 진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네요?”
[네. 그렇긴 한데…….]
퍼거슨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비토섬에서 딱히 엔트 키트를 사용할 일이 없어 그는 아직 우리가 해독제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듯했다.
“지윤미 마스터님. 지휘부를 소집해 주세요.”
“네? 설마 진짜 바로 진격하시려고 하는 건 아니죠?”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데 정작 몬스터가 없다면서요? 그럼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어요? 어차피 늑대인간의 숲도 개척하려고 했었잖아요?”
“그렇긴 한데 성주님 방금 돌아오신 건 아시죠?”
“아…….”
“일단 며칠 좀 쉬시면서 가족들이랑 함께하는 시간을 좀 가지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네.”
난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고 바로 켄트 왕국의 옛 영토로 건너가려고 했는데 내가 너무 마음이 앞섰던 모양이었다.
날 바라보는 지윤미 마스터의 눈초리가 따가웠다.
“그럼 이분들 안내 좀 부탁드릴게요.”
“네, 알겠어요.”
난 켄트 왕국에서 데리고 온 사람들을 지윤미 마스터에게 부탁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해용이 형, 저랑 같이 상점 거리에 좀 들렀다 가요.”
“상점엔 왜? 뭐 살 거 있어?”
“아뇨. 살 게 있는 게 아니고 이미 사서 주문해 놓은 게 있어요. 아마 지금쯤 도착했을 거예요. 그거 찾아서 집에 가져가세요.”
“가져가라고? 내 꺼야? 뭔데?”
“형께 아니고 수정이 누나 생일 선물 주문해 놓은 거예요. 형이 산 척하고 갖다 주세요.”
“엥? 오늘 수정이 생일이었어? 그래서 아까 지윤미 마스터가 노려본 거였나?”
“오늘이 아니고 지난주였어요. 알고는 있었는데 비토섬에 가 계시느라 못 챙긴 것처럼 하고 갖다주세요.”
“헐…… 지났구나. 고맙다. 부성아, 역시 너밖에 없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부성을 끌어안았다.
수정이의 생일이 지났다는 말에 순간 간담이 서늘했는데 부성이가 얘기한 것처럼 하면 수정이가 서운해하지 않게 넘어갈 수 있을 듯했다.
“아니에요. 전 이미 깨질 대로 깨져서 넝마가 됐지만, 형이라도 사셔야죠.”
“깨질 대로 깨졌다고?”
“지난달에 현지 생일이었는데 저도 바빠서 그냥 지나갔거든요. 아니 애초에 일이 바빠서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지나갔다가 고생 좀 했어요.”
“아…….”
이부성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몸서리를 쳤다.
늑대인간에게 중독됐던 현지 곁을 지키면서 세레나데까지 불러서 사귀게 됐는데 생일을 기억하지 못해 어지간히 시달렸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부성이 아니었으면 나 역시 같은 상황에 놓일 뻔했다.
그처럼 나도 수정이 생일을 모르고 있었기에.
애초에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사랑이 싹트고 여전히 하루하루가 고비인 삶을 사느라 서로에 대해 자세히 알만큼 시간이 없었다.
“뭐야? 피씨방도 생긴 거야? 인터넷이 연결됐어?”
“지구하고는 안 되지만 이곳 영지 내에서 자체적으로 서버를 만든 모양이에요.”
“아, 그렇구나. 그래도 대단하긴 하네. 지구하고 안 되는 게 아쉽긴 하지만 이제 우리끼리 전화도 할 수 있다는 거잖아?”
“네. 맞아요.”
“굿이네.”
난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상점 거리를 둘러봤다.
피씨방, 당구장, 노래방…….
헌터 상점과 식당뿐만이 아니라 상점 거리엔 어느새 위락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용의 계곡에 가실 D급 이상 탱커 1명 모집합니다.”
“용의 계곡에 가실 D급 이상 힐러 1명 모집합니다.”
“1:1로 언데드의 숲에 가실 탱커 모집합니다. C급 힐러 입니다.”
그리고 김성준이 만든 호프집 앞에는 헌터들이 열심히 파티 모집을 하는 게 보였다.
“힘들게 왜 저러고 있지? 길드에 들어가면 알아서 팀을 짜 줄 텐데? 저 사람들은 길드가 없나?”
“네. 맞아요. 저 사람들은 길드가 없어요. 재난 관리 본부와 헌터 협회에 헌터 등록도 하지 않았고요.”
“헌터 등록도 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다고?”
“예전에야 발 한번 잘 못 내딛어도 바로 황천길로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귀환 주문서 때문에 이제 여차하면 바로 텔레포트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그냥 개인적으로 와서 저렇게 자기들끼리 팀 짜서 사냥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어요.”
“그래도 길드에 들어가는 게 더 안전할 텐데? 소집령 때문인가?”
“네. 그것도 그거지만 길드에 가입하면 일정 금액을 길드비로 상납해야 해서 그게 싫은가 보더라고요.”
“아…….”
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개인 헌터들을 바라봤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이곳에 와서 거주하고 사냥을 하는 것만으로도 고맙긴 했지만, 저들을 동원할 수 없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재난 관리 본부나 헌터 협회에 가입되어 있으면 김용규 본부장과 이아영 마스터한테 협조 요청을 하는 것만으로도 옛 켄트 왕국으로 진격하는데 동원을 할 수 있는데 저들에게는 강제할 수 없었다.
“형님, 제가 부탁한 거 도착했나요?”
“어, 안 그래도 왜 안 오나 했다. 여기.”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편의점 앞에 도착하자 이부성이 안으로 들어가 박스 하나를 받아왔다.
“형, 여기요. 이태리에서 직구한 명품 신발이에요.”
“명품 신발이라고?”
“네. 아무거나 사다주면 미리 준비한 티가 안 나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쉽게 구하지 못하는 디자인으로 주문해 놓았어요. 발 사이즈도 몰래 알아내서 주문한 거니까 딱 맞을 거예요. 형 것도 같이 샀으니까 커플 신발로 신으세요.”
“아, 정말 고맙다.”
난 다시 한번 이부성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