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마법 방어 아이템 (5)
“그레이 기사단장 조성태가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그레이 기사단이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
어둠이 가고 다시 아침 해가 뜨고 있는 이른 새벽 천여 명의 그레이 기사단이 비토섬 북쪽에 도착했다.
“그레이 기사단 전부를 이끌고 온 건가요?”
“네. 하몽 님께서 상황이 다급하니 최대한 많은 병력을 이끌고 오라고 해서 전부 다 데리고 왔습니다. 현재 영지 내에도 데프콘3이 발동되어 이곳 비토섬에 내전이 발발하면 일만의 군사가 반나절 안에 이곳에 상륙하게 될 겁니다.”
조성태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날 지그시 쳐다봤다.
만약을 대비해 지원요청을 한 건데 이미 스카이 캐슬 지휘부에선 전쟁을 예상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해용이 형, 기다릴 거 없이 그냥 우리가 먼저 치면 안 돼요?”
“흠…….”
“퍼거슨도 그렇고 상대 귀족파도 그렇고 우리를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잖아요. 이렇게 어영부영 있다가 한 대 맞고 싸우는 것보다 어차피 싸울 거면 우리가 선제공격하면 큰 피해 없이 모두 제압할 수 있잖아요.”
이부성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도시 속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왕성을 쳐다봤다.
그의 눈이 스산하게 빛나고 있었다.
같은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귀족들의 모습에 화가 많이 나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먼저 공격하면 쉽게 이길 수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켄트 왕국에선 많은 사람이 죽게 될 거야. 그리고 그 죽은 사람의 가족들은 우리가 아무리 잘해 줘도 평생 우리를 원수로 여기게 될 거고.”
난 이부성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라가 망하려고 하니 같이 화합을 해도 모자랄 판에 자기들끼리 편을 가르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어 우리가 먼저 기습 공격을 하면 이곳을 어렵지 않게 정복을 할 수 있을 듯했지만 내키지 않았다.
우리의 지난 역사가 알려 주고 있지 않은가.
총과 칼로 정복을 하면 언젠가 그게 발목이 잡혀 그 대가를 받게 되어 있었다.
우리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청방 길드를 칠 수 있었던 것처럼 나중에, 아주 먼 나중에 다른 강대국들이 이곳에 오게 되면 그들에게 우리를 칠 수 있게 할 명분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부성이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자.”
난 이부성과 그레이 기사단을 보며 내 속마음을 다 알려 주었다.
“성주님 말씀이 맞습니다. 조금 어렵고 힘들더라도 웬만하면 싸우지 않고 화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고마워요. 이해해 줘서.”
“아닙니다. 부성이도 진짜 화가 나고 욕심이 나서 공격을 하자고 한 건 아닐 겁니다. 이대로 있으면 만에 하나라도 저들이 성주님을 공격할 수도 있으니 그게 염려돼서 말을 꺼냈을 겁니다.”
이제 어엿한 한 길드의 수장이자 오랜 시간 헌터 일을 해서인지 긴 설명 없이도 조성태는 나와 이부성의 의중을 파악했다.
“솔직히 그게 불안하긴 해요. 만에 하나라도 저들이 암계를 벌여 형을 납치라도 해가면 우린 이곳에서 전원 철수를 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이곳을 도모할 수 없게 될 테니까요.”
“…….”
“근데 그렇게 해서 형이 무사할 수만 있다면 이까짓 섬에 안 가져도 그만이지만 만약 형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전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만약 저들이 성주님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병력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다 찢어 죽일 거다. 아니 이곳에 살아 숨 쉬는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까지 쫓아가서 다 없애 버릴 거야.”
조성태와 이부성이 입술을 굳게 시선을 주고받았다.
귀족들에 대한 분노 때문에 공격하자고 하는 줄 알았더니 내 안위를 걱정해 그런 말을 했나 보다.
“무섭다.”
“네?”
“이곳 사람들이 정말 암계라도 벌여 날 납치할까 봐 무섭다고. 그럼 너희들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진짜 다 죽일 것 같거든. 농담이라도…….”
“농담 아니에요.”
“저도 농담 아닙니다. 진짜 다 죽일 겁니다.”
조성태와 이부성의 눈빛이 스산하게 빛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저들 손에 잡히면 안 되겠네.’
말로만 그러는지 알았는데 정말 내게 해코지를 하면 정말 이곳에 있는 생명체를 모두 없앨 것 같았다.
“성주님, 남쪽 섬에 마을 주민들이 와 있습니다.”
“벌써요?”
06:00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시계를 쳐다봤다.
“아홉 시까지 출근하라고 말 안 했어요?”
“한 열 번은 얘기했습니다. 일찍 올 필요 없으니까 아홉 시에 시간 맞춰 출근하라고. 다들 대답을 잘하기에 말귀를 알아들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쯧쯧. 알았어요. 일단 가 보죠.”
난 혀를 차며 남쪽 섬으로 이동했다.
9시부터 6시.
우리 스카이 캐슬 대부분의 헌터들과 헬퍼들은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여덟 시간 주 사십 시간을 일한다. 혹여나 연장 작업을 할 일이 있으면 그에 합당한 아니 넘치는 보수를 주지만 촌각을 다투는 일이 아니면 그마저도 하지 못하게 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그걸 쓰고 즐길 시간이 없으면 아무 의미 없으니까.
김용규의 도움으로 스카이 캐슬 주민들은 그렇게 삶의 질을 높이고 있었고 어제 헬퍼들은 이곳 켄트 왕국 노예 출신 사람들에게도 우리의 제도를 교육했는데 그게 제대로 먹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하는 거죠?”
남쪽 섬에 도착하자 어제 귀족들에게 빼앗은 아니 귀족들의 손에서 구출해온 노인과 부녀자, 아이들이 손에 호미 같은 것을 들고 스카이 캐슬 소속 헬퍼들과 함께 땅을 일구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게 자신들이 살 집을 지어 준다고 하니 뭐라도 도와주고 싶다고 저러고 있네요. 그래서 저희도 구경만 할 수 없어 같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헬퍼 한명이 머리를 긁적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노인과 아이들까지 일을 시키면 어떻게요!”
“평생을 자기 재산이 없이 살다가 집과 돈을 준다고 하니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돕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는데 나보러 어떡하라고!”
“…….”
이부성이 헬퍼들을 보며 소리까지 지르며 야단을 치니 헬퍼들이 되레 더 큰소리를 지으며 이부성을 타박을 했다.
‘웃고 있네.’
헬퍼들의 말처럼 새벽부터 나와 일을 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얼굴에 모두 웃음꽃이 만개해 있었다.
우리에 대한 두려움으로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해 일찍 나온 게 아니라 정말 집이 생긴다는 즐거움에 자발적으로 나온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도 그러셨다.
평생을 뚜벅이 생활을 하던 아버지에게 큰마음 먹고 2010년식 아반떼를 중고로 사드리니 매일 새벽같이 차를 쓸고 닦고 하시더라. 아니 새벽에만 하는 게 아니라 하루에도 열두 번씩 주차장에 가서 차를 닦으셨다.
오백만 원.
출고된 지 십 년 가까이 되고 한 이삼 년 타고 폐차를 해야 할 만큼 닳고 닳은 중고차였지만 아버지는 마치 몇억짜리 외제 차라도 생긴 것처럼 애지중지하셨다.
내게 단 한 번도 차를 갖고 싶다거나 운전을 하고 싶다고 얘기를 한 적은 없었지만, 평생을 뚜벅이 생활을 했던 게 한이 될 뻔하다가 내가 차를 사주니 그 한이 기쁨으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짐작건대 저들의 미소도 그래서 생긴 듯했다.
태어나 지금까지 수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노예로 지내다가 자기들의 재산이 생긴다고 하니 그동안의 서러움이 기쁨으로 변한 것 같았다.
“밥 먹자.”
“네?”
“그만 싸우고 밥 먹자고.”
“저 사람들 계속 저렇게 일하게 두시겠다고요?”
“그럼 어떻게? 자기들이 하고 싶어서 한다는데.”
“……네.”
난 이부성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고 그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식사 준비를 하러 갔다.
* * *
소 갈비찜.
생선찜.
생선회.
탕수육.
모둠전.
소고기 미역국.
.
.
.
헬퍼들이 신경을 썼는지 오늘 아침도 어제 못지않게 푸짐하게 식사가 준비됐다.
다만 달라진 것은,
[짐, 맛있어?]
[응. 정말 맛있어. 매일매일 이렇게 먹고 싶어.]
[그래. 엄마가 이제 매일매일 이렇게 먹게 해 줄게. 흑흑.]
노예 출신 사람들이 이제는 두려운 기색 없이 음식을 먹으며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기하네요. 어제 모습만 보면 우리 제도에 적응하려면 시간 좀 걸릴 줄 알았더니 하루 만에 확 바뀌었네요. 우리의 마음이 제대로 전달이 된 모양이에요.”
“아닐걸.”
“네?”
“우리 마음이 전달돼서 바뀐 게 아니라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서 저러는 것 같아.”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노예 출신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머물러 있었지만, 얼굴 어디에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바램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수십 년을 노예로 지냈는데 단 하루아침에 우리를 믿고 변한다는 건 애초에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할 말이 있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노예 출신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어제 아침 나뭇잎에 음식을 싸던 조지가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게 보였다.
“조지 씨, 무슨 할 말이 있나요?”
[네. 그렇습니다.]
내가 아는 체를 해 오자 조지가 조심스런 몸짓과 발걸음으로 내게 걸어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제 내 협박이 통했는지 이제 나와 눈이 마주치거나 말을 건다고 땅에 얼굴을 처박지 않았다.
“제게 원하고 부탁할 게 있으면 어려워하지 않아도 편하게 얘기하세요. 제가 들어 줄 수 있는 일이면 최대한 들어 드리고 혹여나 무리한 부탁을 해도 당신을 야단치거나 혼내지 않을 테니까요.”
[저희는 지금처럼 이렇게 삼시 세끼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원이 없습니다. 자식새끼를 낳고도 배불리 먹이지 못하고 매일 밤 배고픈 고통을 참으며 자는 애들을 보는 게 한이 됐거든요.]
“그렇군요. 그럼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죠?”
[성주님께 알려 드리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알려주고 싶은 내용이요?”
[네. 그렇습니다. 아직 이렇게 성주님과 눈을 마주치고 말을 하는 것이 두려워 참고 있었는데 성주님께서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흠…….”
[왕실 마법사 단장이랑 휘하 마법사들이 매일 밤 만나서 회합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퍼거슨 공작님 휘하에 있던 간부들도 몇몇 다녀갔고 날이 지날 때마다 더 늘어 가고 있습니다.]
“…….”
[평민 출신인 퍼거슨 공작이 권력을 잡으니 켄트 왕국의 근간이 되는 계급 제도를 없애고 나라 전체를 스카이 캐슬에 팔아먹으려는 한다는 명목으로 처단을 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조지를 쳐다봤다.
어젯밤 하몽에게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조지가 하는 말은 더 자세했다.
“지금 그 말을 제게 해 주는 이유가 뭔지 물어도 될까요?”
[평생을 사람 취급 받지 못하며 살아왔습니다. 근데 성주님께선 저희한테 푸짐한 음식을 베풀고 집까지 지어 주시려 합니다. 그리고 어제 앉아서 얘기하는 걸 듣기만 했는데도 음식도 모자라 돈까지 주셨습니다. 저는 아니 여기 있는 노예들 모두 수십 년 동안 살아오며 느꼈던 기쁨보다 어제 하루 느꼈던 기쁨과 행복이 더 큽니다. 귀족들의 싸움에 휘말려, 말 한마디 잘못해서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해도 저희 모두는 무슨 일을 하시든 간에 성주님께서 잘되시길 바랍니다.]
“…….”
[저희는 이곳에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며 살아왔지만, 귀족들이 생활하는 모든 공간에 저희가 있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이 도움이 됐다면 앞으로도 계속 아니 지금보다 더 자세하게 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얘기해드리겠습니다.]
조지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날 그윽하게 쳐다봤다.
일을 시켰으니 당연히 그 대가를 나누어준다는 것인데 그것만으로도 목숨을 걸고 날 도와주고 싶을 만큼 내게 반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