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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165화 (165/255)

165화. 마법 방어 아이템 (4)

“형, 저것 좀 보세요. 사람들이 나뭇잎으로 음식을 싸고 있어요.”

“집에 가져가려는 모양이네.”

“쯧쯧. 우리한테 말하면 어련히 챙겨 줄 텐데…….”

“어디서 많이 본 모습 같지 않아?”

씨익.

난 빙그레 웃으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이부성은 더러운 나뭇잎에 음식을 몰래 챙기는 모습이 못마땅한 모양인데 난 왠지 더 정감이 갔다.

“너도 얼마 전까지는 태백산맥 길드 헌터들 맛있는 음식 먹이겠다고 발키리 길드 일감 도와주고 구박받으면서 음식 얻어 왔었잖아.”

“……그죠.”

이부성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노예들, 아니 사람들을 쳐다봤다.

음식을 눈앞에 갖다 줘도 한참을 망설이더니 기껏 젓가락을 들어 놓고도 자신들의 입이 아닌 집에 있는 가족들부터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지구나 여기나 못 사는 사람들 마음은 다 거기서 거기인 듯했다.

“나뭇잎에 싼다 치고 그 음식은 어떻게 보관하시려고요? 날씨가 더워서 일 마치고 가져가면 상할 텐데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보니 집에 있는 애가 생각나서 그랬습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십쇼.]

“쩝.”

털썩.

부들부들.

헌터들과 헬퍼들의 눈을 피해 음식을 싸던 주민 한 명이 내가 다가가자 다시 바닥에 얼굴을 묻고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이들에겐 그저 내 존재 자체가 위협되는 모양이었다.

“이름이 뭔가요?”

[조지. 조지입니다.]

“일어나세요. 조지 씨. 제 앞에서 다시는 바닥에 얼굴을 갖다 대지 마세요. 한 번만 더 그러면 제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직접 눈으로 보게 될 거예요.”

아무래도 좋게 웃으며 얘기하면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아 난 조지의 어깨를 잡고 일으키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람들 한 명, 한 명과 다 눈을 마주쳤다.

“부성아, 식사 마치고 일단 신상명세서부터 작성해 줘.”

“신상명세서요?”

“응. 이들이 마음 편히 음식을 먹고 일을 하려면 가족들도 다 데리고 와야 할 것 같네.”

난 입술을 굳게 다물며 도시 안에 있는 크고 넓은 건물들을 쳐다봤다.

집안이 편해야 바깥일도 더 잘되는 법이었다.

퍼거슨의 심기를 다시 한번 건드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내 울타리 안에 데리고 와야 할 듯했다.

* * *

조지의 신상명세서를 보고 찾아가니 경기도의 전원주택과 같이 넓은 정원이 있는 집이 보였는데 그 한가운데에 우리가 지원해 준 식량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 집의 주인이 누구지?”

“스피로스 백작이라고. 왕실에서 관리를 뽑고 알맞은 부서로 배치하는 일을 맡은 자에요.”

“인사 팀장 같은 건가?”

“네. 맞아요. 우리가 지원해 준 식량을 인원에 따라 균등하고 분배하는 게 아니라 보시는 것처럼 귀족들이 먼저 차지해서 휘하에 있는 평민이랑 노예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 같더라고요.”

“그럼 평민과 노예들은 우리가 아니라 귀족들한테 감사함을 느끼겠네.”

“그게 또 그렇지가 않아요.”

“……?”

“우리가 나누어 준 식량이 평민들과 노예들에겐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식량을 지원해도 귀족들의 창고에 쌓일 분 제대로 배분이 되지 않고 있더라고요.”

이부성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계급 제도부터 어떻게 하자고 하더니 이곳의 사람들은 우리가 배우고 살아오며 경험했던 상식 외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청방 길드의 편에 서서 주민들을 착취했던 귀족들을 숙청했다고 하다니 자신들이 주민들을 착취하는 건 괜찮은 모양이었다.

[성주님 아닙니까? 저희 집엔 어쩐 일로?]

문 앞에 서서 집 내부를 살펴보고 있자 안에서 화려하고 반짝거리는 옷을 입은 중년의 사내와 부인이 걸어와 내게 인사를 해 왔다.

보아하니 이 자가 스피로스 백작인 듯했다.

“상수도 공사를 시작하려는데 인원이 부족해서요. 노예들을 더 데리고 갈 수 있을까 해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노예가 더 필요하시다고요? 얼마나?]

“전부 다요. 힘쓸 사람도 필요하지만 이래저래 허드렛일 할 것도 많아 아이와 여자들까지 모두 데려갔으면 합니다.”

[죄송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퍼거슨 공작님의 설명을 들어 상수도관이 완성되면 저희에게 큰 도움이 되는 건 알지만 노예들을 다 데리고 가시면 밥도 못 하고 빨래도 못 하고 청소도 못 합니다.]

“직접 하시면 되죠.”

[네?]

“직접 하시라고요.”

[전 귀족입니다만?]

스피로스가 세상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게다가 그의 뒤편에 서 있는 병사들은 명령만 떨어지면 바로 칼이라도 뽑겠다는 것같이 사나운 기세를 내뿜었다.

“백작님이라는 거들었습니다. 근데 백작이고 자시고 저희가 들여오는 물품을 지원받고 싶으면 그에 걸맞은 일을 하세요. 제가 보기에 당신은 이 많은 식량을 받고 의식주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만큼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네요.”

[이런 오만방자한 인간을 봤나? 우리 왕국에 도움을 준다고 해서 좋게 지내려고 하니 우리가 우습게 보이나?]

챙! 챙! 챙!

내 말이 불쾌했는지 스피로스는 얼굴이 잔뜩 붉어져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고 결국 병사들이 칼을 뽑아내어 내 목에 겨누었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아가라는 건데 마치 모욕이라도 당한 것처럼 몸까지 부르르 떨며 분노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 새끼들이 미쳤나? 어디다 칼을 들이미는 거야?”

휘이익!

퍽!

“컥.”

휘이익!

퍽!

“컥.”

휘이익!

퍽!

“컥.”

그 분노는 오래가지 못했다.

내게 칼을 겨누는 순간 내 뒤에 서 있던 마녀 부대 헌터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스피로스 백작과 병사들의 팔과 다리 그리고 복부를 공격해서 순식간에 바닥에 무릎을 꿇게 했다.

그리고 이내,

후다다다다다다다닥.

후다다다다다다다닥.

사방에서 무기를 든 기사들과 병사들 수백여 명이 쉼 없이 몰려들었다.

[안해용 성주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지 퍼거슨이 공작이 사색이 된 얼굴로 날 쳐다봤다.

“공사하는데 노예가 더 필요해서 지원 좀 해 달라고 하는데 노발대발하며 칼을 들이밀어서 어쩔 수 없이 제압했습니다.”

[노예들이 더 필요하시면 저한테 얘기하시지. 왜 직접 움직이셔서…….]

퍼거슨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스피로스 백작을 쳐다봤다.

[스피로스 백작. 스카이 캐슬 연합에서 진행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란 지시 못 들었나?]

[들었습니다. 저도 최대한 협조를 하고 있는데 저자들이 노예들을 모두 데리고 가려 해서…….]

“저자들?”

찌릿.

난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스피로스를 노려봤다.

“난 오크와 엘프, 드워프족과 동맹을 맺고 너희보다 수십 배는 많은 인원을 통솔하고 있는 지도자다. 그리고 지금은 너희 왕국과 동맹을 맺고 같이 이 비토섬을 발전시키고 운영하는 일까지 맡고 있고. 고작 백작 따위한테 하대를 받을 위치는 아닌 것 같은데?”

“그치만 먼저…….”

성난 사자같이 화를 내던 스피로스가 퍼거슨이 도착하자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할 만큼 눈치를 살피며 두려워하는 기색이 여력 했다.

[체포하게.]

“공작님…….”

[성주님이라 불리고 있지만, 이분은 우리와 동맹을 맺은 타국의 왕과 다름이 없다. 두 국가의 동맹을 흔들리게 하면 백작 자네라 해도 용서할 수가 없네. 정신으로 재판에 회부해서 잘잘못을 따지고 거취를 정 할 테니 일단 들어가 있게.]

[네, 알겠습니다.]

스피로스가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굴을 보아하니 많이 억울해하는 듯했지만 퍼거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무슨 꿍꿍이지?’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퍼거슨을 쳐다봤다.

애써 감추려고 하고 있지만 난 분명히 보았다.

잠시나마 그의 눈이 반짝거리고 입가가 올라가는 것을.

가뜩이나 날 못마땅하게 여기는 와중에 귀족들과 트러블마저 일으켜 미운털이 더 박힐 줄 알았는데 이 상황을 마음에 들어 하는 듯했다.

[저도 평민 출신입니다.]

“……?”

[기사들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공사 현장으로 보낸 노예들에게 푸짐한 음식을 나눠주고 같이 식사를 했다고요. 노예가 필요한 게 아니라 노예를 없애고 싶은 거 아닌가요?]

“…….”

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퍼거슨을 쳐다봤다.

날 바라볼 때 그의 눈에 서려 있던 경계심이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기대감이 대신 자리해 있었다.

[저 역시 어린 시절 귀족들에게 많은 수탈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분노와 증오, 슬픔을 원천으로 수십 년 동안 검을 연마해 공작의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고요.]

“…….”

[스카이 캐슬 연합 사람들을 보니 당신들에게 계급이 존재하지 않더군요. 당장 그리되는 건 힘들겠지만 성주님께서 이곳도 스카이 캐슬과 같은 제도로 만드시겠다면 제가 돕겠습니다.]

“…….”

당황스러웠다.

왕과 왕족들을 몰아내 비토섬 최고 권력자가 된 그가 이리 나올 줄은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고맙네요. 퍼거슨이 반대를 하실까 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하려고 했는데 큰 힘이 될 것 같네요.”

난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상치 못한 사안으로 퍼거슨과 조금이나마 거리를 좁히고 지금보다 나은 관계로 발전을 시킬 수 있을 듯했다.

* * *

[성주님,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내일 아침에 얘기해도 되는데 성주님께서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늦은 밤, 하몽이 굳은 얼굴로 내 숙소를 찾아왔다.

짐작건대 계급 제도와 퍼거슨 일로 나와 상의할 일이 생긴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 늦은 시간에 저런 표정으로 찾아올 리가 없으니까.

[제가 알기론 퍼거슨 공작은 어렸을 때 귀족들에 의해 양친 모두를 잃은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귀족들에 대한 감정이 그리 좋지 않고요.]

“네. 평민이었다는 말에 대충 짐작은 했습니다. 계급 제도를 건들면 퍼거슨이 반발을 할 것 같아 염려했는데 한시름 놓은 것 같네요.”

[퍼거슨 공작이 문제가 아닙니다.]

“네?”

[켄트 왕국이 건재했을 때부터 평민 출신이었던 퍼거슨 공작은 왕따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주민들과 함께 청방 길드를 몰아내 영웅이 되어 권력을 잡긴 했지만, 귀족들이 그를 몰아내기 위해 은밀히 회합하고 있습니다.]

“…….”

[청방 길드의 전투에서 왕과 왕족들을 모두 처형하긴 했지만, 훈련소에 린드라는 왕족 소녀 한 명이 살아 있었던 모양입니다. 감시가 삼엄해 대화 내용을 자세히 듣진 못했어도 예측해 보건대 귀족들이 그 아이를 여왕으로 추대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난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왕족이라는 말은 퍼거슨이 죽인 사람들의 친척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지금 말하는 아이가 여왕이 되면 퍼거슨의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숙청을 당할 수도 있었다.

린드라는 아이 관점에서 퍼거슨은 자신의 친척들을 죽인 원수나 다름이 없으니까.

“퍼거슨 반대파에 붙은 귀족 명단과 병력 규모를 확인해 주세요.”

[만약 내전이 발발되면 퍼거슨 공작 손을 들어 주시려는 겁니까?]

“저희를 탐탁지 않아 하지만 그래도 협조를 하고 있고 계급 제도 철폐에 대한 뜻도 같으니 일단은 퍼거슨과 함께하는 게 저희한테 좋을 것 같네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영지에 연락해서 북쪽 섬에 은밀히 병력을 대기시켜 놓겠습니다.]

“네.”

난 하몽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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