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마법 방어 아이템 (3)
-섬의 남쪽 방향 지하에 아주 깨끗하고 맑은 물이 있어.
‘오! 정말?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섬의 지하로 들어갔던 운디네와 노움이 반나절 만에 제대로 된 식수를 찾아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헬퍼들을 쳐다봤다.
“모두 절 따라오시죠. 정령들이 깨끗한 물을 찾은 것 같네요.”
“벌써요? 수십억 원이 넘는 장비가 있어도 이 넓은 섬을 다 탐사하려면 족히 몇 년은 걸릴 텐데 정말 대단하네요.”
기술자와 헬퍼들이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내 뒤를 따랐다.
이제 적응할 법도 됐는데 현대 과학의 능력을 압도하는 정령들의 능력과 마법은 볼 때마다 놀라운 모양이었다.
‘여기야?’
-응. 근데 이곳의 지하수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마나까지 듬뿍 머금고 있어.
‘마나를 머금고 있다고?’
-응. 내 아쿠아 워터 정도는 아니지만 마나 함유량이 많아서 이곳에 있는 지하수만 장복해도 몸에 있는 노폐물을 배출시켜 건강을 유지하고 면역력까지 올라가 잔병치레 따위는 하지 않게 될 거야.
‘헐…… 그 정도면 나랑 처음 계약했을 때 내 몸을 정화시켜 줬을 때랑 거의 비등한 효능 아닌가?’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운디네를 쳐다봤다.
처음 운디네와 계약을 하고 그녀는 한동안 내게 아쿠아 워터를 이용해 술과 담배. 그리고 기름진 음식들로 인해 몸에 쌓여 있던 독소를 제거해 주었다
땅을 가르고 해일을 만드는 지금 그녀의 능력과 비교하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삶의 질이 높아져 건강관리에 신경 쓰는 현대인들에게 판매하면 석유보다 더 귀하고 비싸게 팔 수 있을 듯했다.
술과 고기, 치킨을 먹지 않으면 더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지만, 그것들을 먹지 못하면 딱히 오래 살 이유가 없으니까.
근데 이곳의 지하수는 맛있는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면서도 노폐물을 배출시켜주어 건강을 유지해주니 600g에 15만 원 남짓 하는 홍삼 엑기스보다 더 높은 가치를 받을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수백 년. 아니 어쩌면 수천 년을 넘어 수억 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이곳 비토섬은 석유에 이어 정말 귀한 것을 하나 더 품고 있었다.
500mL짜리 제주 삼다수를 육칠백 원씩에 파는 것을 보고 물을 돈 주고 파는 것도 기가 막히는데 가격까지 높아 속으로 욕을 했는데 이제는 내가 물을 퍼 올려 파는 사람이 될 듯했다.
“여기라네요.”
“네, 알겠습니다.”
운디네가 가르쳐 준 곳에 도착해 알려주자 기술자들과 헬퍼들이 땅 위에 처음 보는 기계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짐작건대 지질 같은 것을 확인하는 기계인 듯했다.
“저 성주님 혹시 지하수가 몇 미터 아래 있는지도 확인이 되나요?”
-너희 세계 수치로 계산하면 1000m가 조금 안 될 거야.
“1000m 조금 못 된다고 하네요.”
“흠…….”
기계에 적힌 수치를 보며 내게 추가 설명을 들은 헬퍼 한 명이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지하수 있는 게 확실하고 장비만 들여오면 물을 퍼 올리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워낙에 깊은 곳에 있어 인력이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이곳 주민들을 동원할 수 있게 해 드릴게요.”
난 걱정하지 말라는 듯 헬퍼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지하수 공사를 해 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지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는 짐작이 되었다.
그저 땅을 파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중간에 물이 오염되지 않게 하고 또 이후로도 계속 유지하려면 정말 대 공사가 될 테니까.
“기사님, 상의할 일이 있어 그러는데 퍼거슨한테 안내해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주민들을 동원하기 위해선 퍼거슨의 허락이 필요했기에 난 헬퍼들을 남겨두고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 * *
[……그러니까 성주님 말씀은 이곳 섬 아래에 바로 마셔도 되는 깨끗한 물이 있고 상수도관이라는 걸 만들어서 그 물을 외부에 팔고 우리 주민들에게도 공급해 주겠다는 거죠.]
“네. 맞아요. 상수도 시설이 완공되면 지금처럼 물이 필요할 때마다 우물에 가지 않아도 더 깨끗한 물을 집에서 편히 사용할 수 있게 될 거에요. 추가 공사를 해야 하겠지만 겨울에도 언제든 따듯한 물도 공급받을 수 있고요.”
[……왜요?]
“네?”
[상수도 공사의 이점은 알겠습니다. 근데 왜 그런 걸 저희에게 만들어 주시겠다는 거죠? 성주님 입장에서는 저희가 지금처럼 물과 식량이 자급자족 되지 않는 게 좋지 않습니까? 그래야 컨트롤하기 더 쉬울 테니까요.]
퍼거슨이 의문과 의심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의 말처럼 식량과 물을 무기로 압박을 하면 이곳 사람들을 손쉽게 발아래 둘 수 있는데 내가 내 손으로 그걸 없애려 하니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아니 내게 뭔가 저의가 있는지 의심이 들어 물어보고 싶은데 애써 에둘러 얘기하는 듯했다.
“전 이곳을 켄트 왕국의 것이라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지. 제 것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적은 없죠. 하지만 성주님께선 전쟁을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스카이 캐슬 연합이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한테 침략을 당하고 멸망하게 될 테니까 저희에게 당신의 손을 잡으라고 선택을 강요하셨죠. 저흰 그 말이 살고 싶으면 항복을 하라고 들렸습니다. 그리고 살고 싶어서 고개를 끄덕였고요.]
“듣고 싶은 말만 들으셨네요. 제가 그런 뜻으로 말을 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전 다른 하나도 약속했습니다. 이곳에서 얻은 자원을 팔아 생긴 이익을 공평하게 나눠 드린다고. 겁박하긴 했지만 전 동맹을 제안한 겁니다. 그리고 공작님께선 그걸 수락하셨고 전 동맹국이자 이 땅의 공동 소유자로서 켄트 왕국 주민들의 편안하고 즐거운 삶을 도와드리려 하는 거고요.”
[흠…….]
퍼거슨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눈동자가 쉼 없이 흔들린다.
바로 어제 전쟁을 언급하며 협박을 한 내가 켄트 왕국 주민의 안락한 삶을 원한다고 많이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할 일이 많습니다. 공동의 이익과 또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공사를 하려는 것이니 일단 허락해 주세요. 함께하다 보면 제가 청방 길드처럼 켄트 왕국의 땅을 침범한 늑대인지 아니면 발전을 시키고 삶의 질을 향상해줄 친구인지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번에도 저희한텐 선택권이 없으니 그렇게 하는 하죠.]
퍼거슨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쩝.’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는지 건설적인 일을 진행하고자 하는데도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 * *
“해용이 형, 일어나셨어요?”
“어. 일어나긴 했는데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새벽 6시.
이른 아침부터 이부성이 내 숙소에 찾아왔다.
“그게 밖에 나가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켄트 왕국 쪽에서 사람을 보내 왔어요.”
“사람?”
“네. 공사에 필요한 인원을 보내준 것 같은데 다들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요.”
“쩝.”
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일어나 아직 세수도 못 했는데 난 바로 이부성과 건물을 나왔다.
“멀쩡한데?”
밖으로 나온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주민들을 쳐다봤다.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에 내심 퍼거슨이 노약자들만 보낸 거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하나같이 모두 건장한 청년들이었다.
“가까이 가 보세요. 그럼 알게 될 거예요.”
“그래?”
터벅터벅.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주민들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이내,
털썩털썩.
“……?!”
주민들이 별안간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묻으며 내게 절을 올렸다.
“이번 숙청당한 왕족과 귀족들의 노예들이었데요. 형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고 저희가 다가가도 무슨 죄라도 지은 거같이 바로 저래요. 그러지 말라고 해도 말을 안 듣네요.”
이부성이 잔뜩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며 켄트 왕국 사람들을 쳐다봤다.
왕이 있고 귀족이 있더니 노예마저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족이랑 몬스터에게 쫓겨 이 외진 섬까지 도망쳐 와 놓고선 노예 제도마저 유지하고 있었다니 정말 대단하네.”
“그러니까요. 상수도 공사도 중요하지만, 이것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일단 모른 체하자. 가뜩이나 우릴 경계하는데 계급 제도부터 뜯어고치려고 하면 죽자고 달려들지도 몰라.”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음 같아선 나도 바로 퍼거슨을 쫓아가 계급 제도부터 없애고 싶었지만, 만약 그렇게 하면 퍼거슨이 군사를 일으켜 덤빌 가능성이 컸다.
“밥부터 먹자.”
“네?”
“보아하니 다들 밥도 안 먹고 찾아온 모양인데 아침 먹어야지.”
“네, 알겠어요.”
이부성이 빙그레 웃으며 헬퍼들에게 다가갔다.
별말 하지도 않았는데 내 의도를 파악한 모양이었다.
소 갈비찜.
생선찜.
생선회.
탕수육.
모둠전.
소고기 미역국.
.
.
.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자 헬퍼들이 상을 펴고 출장 뷔페라도 나온 것 마냥 갖가지 음식들을 세팅했다.
“드세요.”
[……?!]
“여러분 드시라고 가져온 것이니 눈치 보지 말고 편안하게 가져가서 드세요.”
[…….]
[…….]
웅성웅성.
선두에 선 사람들에게 음식을 권하자 모두 군침을 삼킬 뿐 눈치를 보며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부성아, 귀찮겠지만…….”
“네, 알겠어요. 형님들 죄송하지만 음식 좀 퍼서 좀 갖다 주세요.”
“알았다.”
“그래.”
난 헬퍼들과 함께 접시에 음식을 퍼서 사람들에게 일일이 갖다 줬고,
[…….]
[…….]
그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다시 머리를 땅에 갖다 대며 절을 했다.
“우리가 온 세상에서는 계급이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교육을 받았고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모두 어려워하지 마시고 앞에 있는 음식부터 드세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저도 배가 고파서 일단 배부터 채워야겠네요.”
털썩.
사람들 모두 음식 받는 걸 확인하고 나서 난 바닥에 주저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부성아, 옷이랑 신발도 좀 지급해 줘야 할 것 같네.”
“네. 영지에 연락해서 넉넉하게 가져오라고 할게요.”
“공사 현장 옆에 저들이 머물 숙소도 따로 짓자.”
“네.”
“작업도 바로 시키지 말고 건강 검진도 하고 며칠 동안 안전 교육을 한 후에 투입하는 방향으로 하자.”
“네.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저희 헬퍼들 대하듯이 똑같이 월급도 주고 복지에 만전을 다 할 테니 염려 놓으시고 식사하세요.”
오물오물.
냠냠.
큼지막한 소 갈비찜 한 개를 씹던 이부성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 명, 두 명, 열 명.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쭈뼛거리며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보였다.
같이 일하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자면서 우리와 함께 생활하다 보면 저들도 깨닫고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받은 대우가 부당했다는 것을.
퍼거슨을 압박해 계급 제도를 없애면 좋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으니 일단 이들이라도 교육해서 변화시켜야 할 듯했다.
더 이상 존중과 예에 의한 것이 아닌 계급의 차이로 인해 같은 인간에게 고개를 숙여 땅에 처박지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