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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163화 (163/255)

163화. 마법 방어 아이템 (2)

“성주님 혹시 이곳을…….”

“어차피 언젠가는 그 어딘가에는 복속될 곳입니다.”

“그건 그렇지만 일단은 우호를 다지고 천천히 시간을 가지면서…….”

“속에 있는 생각과 마음을 숨기고 친분을 다지고 싶지는 않네요. 그건 너무 양아치 같잖아요.”

난 최은빈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일단 함께 청방 길드를 쫓아냈으니 켄트 왕국 사람들과 웃으며 협상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난 내키지 않았다.

아무리 서로 같은 적을 두고 함께 싸우며 웃으며 시작된 관계라 해도 언젠가는 꺼내야 할 문제였고 얼굴을 붉히게 될 사안이었다.

어차피 얼굴을 붉혀야 한다면 정을 주고받고 나서가 아니라 지금 붉히는 게 나을 듯했다.

[지금 그 말은 저희가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저희랑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말처럼 들리네요.]

“정확히 들으셨습니다.”

[정확히 들었다고요?]

“그러질 않길 바라지만 거절하면 저희로서도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네요. 저흰 청방은 물론이고 마족들과도 계속 싸워야 하는데 그러려면 이 섬에 있는 석유가 꼭 필요하거든요.”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면 그건 거짓말이 될 테니까.

뿌드득.

[성주님이라고 하셨던가요? 당신도 지금 하나 착각을 하고 있나 본데 우리도 지금 마음만 먹으면 당신들도 이곳을 빠져나가기는 힘들 겁니다.]

“…….”

“…….”

퍼거슨과 에릭이 이를 갈며 날 노려봤고 그들의 몸에서 파란색 아니 깊은 심연의 바다처럼 검은색에 가까운 농도 높은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조심해! 그랜드 마스터야.

‘나랑 동급인 건가?’

-그렇긴 한데 지금 이 정도 거리에서 붙으면 필패야.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퍼거슨을 쳐다봤다.

카프리와 하몽의 말에 의하면 이곳 사람들이 마왕과 마족에게 패배해 이곳으로 피신한 지 수십 년이 지났다고 했다.

그리고 퍼거슨은 그때 왕실 근위 기사단장이었다고 했다.

짐작건대 그때도 그리 나이가 적지는 않았을 테고 수십 년이 흘렀으면 최소 팔십 살 이상은 나이를 먹었을 텐데 마나 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저 눈을 마주치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칼날에 스치는 것처럼 몸이 따끔거렸다.

“마음처럼 되지도 않겠지만 혹여나 우릴 모두 해치워도 당신들한테 좋을 건 없을 거예요. 당장 식량도 필요하지 않나요?”

[당신들이 갖다주지 않아도 지금까지 충분히 자급자족하면서 살아…….]

“살아는 왔겠죠. 근데 넉넉지 않았던 거 아닌가요? 제가 보기엔 딱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을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래서 어떤 인간들인지도 모르고 청방 길드를 쉽게 섬에 들이기까지 한 거고요.”

[끙…….]

퍼거슨이 앓는 소리를 내며 내 시선을 피했다.

“저희가 사는 대륙에서는 수천 년 동안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싸웠던 전쟁 기록들이 상당 부분 보관되어 있고요. 저희도 마음만 먹으면 청방 길드처럼 웃으며 지내다가 당신들이 미처 인식도 하지 못하는 사이 이곳을 점령할 많은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하아…….]

[하아…….]

퍼거슨과 에릭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날 쳐다봤다.

[잔인한 분이시네요. 검과 총으로 우릴 핍박하고 위협했던 청방 길드보다 성주님의 말이 더 아프네요.]

“아프셨다면 유감이긴 하지만 그게 현재 현실이니까요.”

[늑대를 쫓아내려다 사자를 불러들인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일단 은 성주님의 요구대로 하겠습니다.]

퍼거슨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협박처럼 들릴 수도 있었겠지만 난 팩트를 얘기했고 그도 자신들의 처지가 언제 꺼질지 모르는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잘 생각하셨어요. 하나는 확실히 약속드리죠. 적어도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당신들을 기만하거나 속이는 행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원하는 것이 있고 필요한 게 있다면 지금처럼 솔직히 있는 그대로 다 얘기하죠.”

난 빙그레 웃으며 퍼거슨에게 손을 내밀었고,

[쩝.]

그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

“하몽 님, 영지로 가서 이곳 사정을 알리고 식량을 가져와 주세요.”

[저 혼자 갔다 오라는 얘기인가요?]

“네. 배를 타고 돌아갔다 오면 시간이 지체될 것 같으니 일단 혼자 가서 배를 몰고 와 주세요.”

퍼거슨과 협약을 체결한 난 하몽에게 영지 복귀를 지시했다.

식량 창고를 불태우고 청방의 배마저 침몰시켰기에 식량 수급을 서둘러야 할 듯했다.

“이만여 명이 먹을 식량을 구하다 보면 청방 길드의 눈과 귀에 걸릴 수 있을 거예요. 김용규 본부장과 세훈이가 어련히 잘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의를 하라고 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반짝반짝.

반짝반짝.

내 지시를 받은 하몽은 가슴팍에 손을 넣어 귀환 주문서를 꺼내 찢었고 밝은 빛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법 주문도 없이…… 서, 설마 지금 하몽 님이 찢은 양피지가 귀환 주문서입니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퍼거슨이 경악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내가 당신들을 이곳의 주인이라 인정할 수 없다고 협박할 때보다 더 놀란 얼굴이었다.

“네. 맞아요. 카프리 님께서 드래곤 하트를 이용해 만들어 주셨어요.”

[헉! 엘프 족장도 모자라 드워프 족장까지. 진짜 이종족 연합이 생긴 거군요. 그래서 제가 위협을 할 때도 그리 태평할 수 있었던 거고요.]

“뭐 꼭 귀환 주문서를 믿고 그런 건 아니지만 비슷해요.”

난 퍼거슨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악의 경우 귀환 주문서로 텔레포트를 하면 되기에 조금이나마 여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던 건 맞지만 난 그가 우릴 공격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살짝 있긴 했다.

정말 우릴 공격할 거였으면 말로 먼저 협박을 할 게 아니라 몸을 먼저 움직였을 테니까.

[드래곤 레이드마저 성공하다니. 만에 하나라도 우리가 공격을 했으면 정말 우리는 모두 이곳에서 잠들었을 뻔했네요.]

부들부들.

퍼거슨이 몸을 부르르 떨고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드래곤 하트를 이용했다고 했지. 레이드를 했다고 한 적은 없는데 오해를 하고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듯했다.

굳이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씨익.

난 아무런 말 없이 퍼거슨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 *

“해용이 형!”

와락!

“네가 직접 온 거야?”

“네. 하몽 님 얘기를 들어보니 저희가 할 일이 많을 것 같아서 제가 헬퍼들과 기술자들을 인솔해서 데리고 왔어요.”

“잘했다. 잘했어.”

쓰담쓰담.

식량과 헬퍼들을 데리고 온 이부성은 날 보자마자 내 품에 안겨 왔고 나도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꼭 안아 주었다.

헤어진 지 채 열흘 남짓 됐는데 마치 수십 년 동안 보지 못한 것처럼 달려드는 게 살짝 부담스럽긴 했지만 나 역시 부성이와 헬퍼들을 다시 본 반가움이 더 커서 장단을 맞춰 주었다.

“와! 진짜 이세계 사람들이네요. 저희 먹을 것만 남기고 식량은 저 사람들한테 건네주면 되는 거죠?”

“어. 맞아.”

“네, 알겠어요. 그럼 후딱 가서 건네주고 올 테니 쉬고 계세요.”

“그래.”

내 얼굴을 봐서인지 이부성은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어린아이처럼 신이 난 얼굴을 하고선 헬퍼들을 지휘해 켄트 왕국 관리자들에게 식량을 전달했다.

“어째 청방 길드보다 저희를 더 경계하는 것 같네요.”

“그러게요. 제가 자초하긴 했지만 조금 아프긴 하네요.”

항구에 서서 주민들에게 식량을 나눠 주는 걸 보고 있는데 주민들 모두 우리와 거리를 떨어진 채 움직이며 시선을 떼지 않고 감시하듯 노려봤다.

짐작건대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이 나와 퍼거슨이 했던 대화 내용을 그대로 다 전달을 한 듯했다.

“사람들이 참 야박하네요. 성주님이 좀 모질게 말을 하긴 했지만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아이들도 구해 줬는데 그건 다 지워 버린 것 같네요.”

최은빈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환영은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명쯤 다가와서 고맙다는 말을 할 법도 한데 찍혀도 아주 단단히 찍힌 모양이다.

“근데 이곳 사람들은 먹을 것도 부족하다면서 차를 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차를 좋아한다고요?”

“네. 저것 보세요. 밀이랑 고기를 놔두고 차부터 챙기잖아요. 일전에 변신해서 몰래 숨어왔을 때도 보니까 다들 차를 입에 달고 살더라고요.”

최은빈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현대인에게 있어 차는 삶의 여유를 만끽하며 휴식을 취할 때 마시는 사치품에 가까웠는데 섬에 고립되어 식량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 차 마시는 걸 즐기는 게 의문스러운 모양이었다.

‘설마?’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저 멀리 우리의 안내 겸 보호를 위해 배치된 기사들이 보였다.

“저 기사님 혹시 주민들이 먹는 식수를 볼 수 있을까요?”

[식수요? 우물을 말하는 건가요?]

“우물에서 물을 떠서 마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근데 갑자기 우물은 왜?]

“일단 안내부터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난 기사들과 함께 도시 중앙에 있는 우물로 갔다.

“여기 한 군데인가요?”

[아닙니다. 이런 우물이 열 군데 정도 더 있습니다.]

“그렇군요.”

기사의 설명을 들은 난 우물을 덮고 있는 뚜껑을 열었다.

일단 눈으로 보기엔 맑고 투명했다.

‘운디네.’

-응. 알았어.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우물 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한 물 맞아.’

-아니 더러워. 세균이 바글바글해. 먹어도 죽지는 않겠지만 이걸 이대로 먹으면 세균에 오염돼서 복통에 시달리게 될 거야. 그리고 장복하면 큰 병이 생길 수도 있고.

우물 안의 물을 확인한 운디네가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래서 주민들이 차를 즐겨 마신 것이었다.

물이 더러워 그냥 마시면 몸에 이상이 생기고 맛도 없으니 차와 함께 끓여서 마시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 어떤 맛있고 몸에 좋다는 차보다 깨끗한 시원한 물을 마시는 게 더 맛있고 몸에 좋은 법인데 이곳 주민들은 그동안 그 즐거움을 느껴보지 못한 듯했다.

‘운디네, 혹시 지하에 좀 더 깨끗한 물이 없는지 확인해 줄 수 있어?’

-응, 알았어. 노움 도와줘.

-오케이.

내 부탁을 들은 운디네와 노움이 다시 우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계셨네요. 형. 우물엔 무슨 일이에요?”

“여기 사람들이 차를 즐겨 마신다고 해서 혹시나 하고 와봤는데 물이 너무 더러워서. 깨끗한 지하수가 없는지 찾아보는 중이야.”

“그래요? 그럼 지하수 찾으면 얘기해 주세요. 상수도와 하수도 기술자들도 많이 데리고 왔으니까 지하수만 찾으면 어렵지 않게 퍼낼 수 있을 거예요.”

내 설명을 들은 이부성이 다시 헬퍼들에게 다가갔고 그들은 이내 공사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스카이 캐슬을 개발하기 위해 이래저래 공사 경험이 생겨서인지 자세히 얘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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