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마법 방어 아이템 (1)
[성주님, 저희도 합류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퍼거슨과 기사들을 바라보던 하몽이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권혁과 친위대들을 제압하긴 했지만, 아직도 수천여 명이 넘는 군인들과 헌터들이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좀 지켜보죠.”
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 와서 그냥 지켜만 보시겠다고요? 아무리 할아버지와 기사단 삼촌들이라도 저 많은 청방 헌터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예요.]
“내가 보기에도 그래 보이네.”
[뭐라고요? 지금 그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겠다는 건 우리와 청방 길드가 같이 파멸하기라도 바라는 건가요?]
아이들과 함께 권혁과 친위대를 밧줄로 묶은 케인이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날 노려봤다.
당연히 우리가 퍼거슨과 기사들과 합류해 도와줄 줄 알았는데 구경만 한다고 하니 배신감이라도 드는 모양이었다.
“나한테 뭐 금덩어리라도 맡겨났나?”
[네?]
“너희 왕국 국민은 저렇게 손만 빨고 발만 동동거리며 구경만 하고 있는데 왜 우리가 저 개싸움에 끼어들어야 하지?”
[끙…….]
케인이 앓는 소리를 내며 도시 속 시가지를 쳐다봤다.
혼란을 틈타 퍼거슨과 기사단들이 청방 헌터들과 싸우고 있는데도 여전히 주민들은 같이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라를 유지하고 지키는 건 스스로 힘으로 해야 하는 거다. 만약 지금 우리가 저 개싸움에 끼어들어서 싸움에 참여하게 되면 우리 역시 청방 못지않게 너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어.”
[…….]
“아직까진 우리 일행들에게 사상자가 없지만, 저곳에 가게 되면 분명 다치게 되는 사람이 생길 테고 그렇게 되면 너흰 정말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어야 할 거야.”
[뭘 드리면 되는데요. 제가 할아버지한테 얘기해서…….]
“이 섬에 있는 모든 것. 만약 우리 일행 중의 한 명이라도 사상자가 생기면 너희가 가진 모든 것을 줘야 할 거야. 아니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난 너희가 가진 것 전부보다 내 동료의 목숨 하나가 더 중요하거든.”
[…….]
부들부들.
케인이 말끝을 잇지 못한 채 주먹을 말아 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리 상위 헌터들이라 하지만 우리의 인원은 고작 사십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있는 전투는 이겼을지 몰라도 왕국 주민들이 힘을 보태주지 않는다면 전쟁에선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하몽 님 우린 여기서 원거리 지원만 하는 걸로 하죠. 그래야 혹여나 전선이 밀려도 후퇴할 수 있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마녀 부대도요.”
[네.]
엘프와 마녀 부대 헌터들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들 시가지로 들어가 함께 싸우지 않는 것을 찝찝해하는 것 같긴 했지만 내 지시를 따랐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나 역시 현재 저들과 비슷한 감정을 품고 흥분된 상태이긴 하지만 지휘관으로서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지켜보고 판단했다.
“#$#$#$#$#$#$미티어 스트라이크.”
“#$#$#$#$#$파이어 스톰.”
잠시 휴식 아닌 휴식을 취해서인지 마나가 회복된 일행들이 청방 길드 헌터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광역 마법을 발현시켰다.
딱 여기까지가 좋았다.
케인은 우릴 보며 여전히 섭섭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일행들 모두가 마법사인 우리는 이렇게 원거리공격을 하는 게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고 효율도 좋았다.
“잘 싸우는데요?”
“그러게요. 우리가 원거리 지원은 한다지만 그걸 고려한다 해도 애초에 한 명, 한 명이 다 혼자서 열 명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한 것 같아요.”
원거리 지원을 하기에 우린 시가지 내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고 퍼거슨과 기사단들이 생각 이상으로 선전을 하고 있었다.
권혁이 이끌었던 부대여서인지 도시에 남아 있는 헌터들 역시 대부분 마법 계열 헌터들이었는데 기사단과 맞닥뜨리면 채 1분도 버티지 못하고 모두 바닥에 쓰러졌다.
[켄트 왕국 기사단은 마계의 문이 열리고 처음부터 전쟁에 끼어들어 마지막까지 싸웠던 사람들입니다.]
“흠…….”
[보기엔 그저 닥치는 대로 움직이며 싸우는 것 같지만 이동 동선도 그렇고 전투를 벌이는 장소 역시 자신들이 유리한 곳에서만 하고 있네요.]
최은빈과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하몽이 다가와 대신 설명해 주었다.
게다가,
{이런 개자식들. 너희의 왕을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걸 모르나? 이러고도 너희의 왕이 무사할 것 같아?}
“#$#$$#$#$#$슬로우!”
“#$#$#$#$#$에너지 볼트!”
“#$#$#$#$#파이어볼!”
번쩍번쩍.
번쩍번쩍.
기껏 마법 주문을 영창해 발현시켜 명중해도 기사단이 입고 있는 투구와 망토에서 붉은빛이 번쩍거리며 마법을 소멸시켰다.
대단했다.
기사단들은 마법사들이 마법 주문을 외울 시간도 없이 요상하며 빠른 스텝으로 다가갔고 기껏 마법을 발현시켜도 검으로 베거나 착용하고 있는 무구들이 대신 막아 주었다.
그런데 그때 도시 한가운데서 커다란 폭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의 왕과 귀족들이 머무르는 곳이었다.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성주님 저기 좀 봐 보세요.”
“헐…….”
“헐…….”
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긴 난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소드 마스터 에릭.
그곳엔 케인의 아버지이자 현재 왕국의 근위 기사단장을 맡은 사내가 자신의 기사단을 이끌고 왕궁을 부수고 화려한 액세서리와 복장을 한 사람들을 도륙하고 있는 게 보였다.
[퍼거슨 공작의 아들이자 왕국 근위 기사단장 에릭 백작이다. 백성들은 들어라. 청방 길드와 손을 잡고 너희들의 눈물을 외면한 왕과 귀족들을 내 손으로 처단했다. 모두 나를 따라 무기를 들고 청방놈들과 싸워라!]
[싸워라!]
[싸워라!]
아이들이 포로로 잡혀 있어 청방에게 협조를 했었는데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지니 자신이 모시던 왕과 귀족들마저 직접 처단하며 백성들을 선동했다.
그때부터였다.
[싸우자!]
[싸우자!]
전투가 벌어짐과 동시에 자신의 집에 들어가 숨어 있던 사람들과 멀리서 지켜보며 방관하고 있던 자들이 손에 곡괭이와 낫과 같은 무기를 들고 같이 전투에 합세하기 시작했다.
“이겼네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두 무기 내려놔!}
{모두 무기 내려놔!}
아이, 여자 할 것 없이 이만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손에 무기를 쥐고 달려들자 결국 청방 길드 헌터와 군인들이 손에 들고 있던 검과 지팡이, 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 * *
[왕국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왕국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백성들과 함께 청방 길드를 제압한 퍼거슨과 에릭이 찾아와 내게 감사 인사를 해 왔다.
혹여나 우리의 노력을 모른 체하고 안면박대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히 은혜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사악한 놈. 은혜를 아는 게 아니라 크라켄을 불러들였으니 네가 아니면 이제 이 사람들은 식량을 구할 곳이 없어졌잖아. 그러니 당연히 이런 식으로 나올 수밖에.
‘먹을 거 없으면 물러가겠지. 우리 영지에 왔을 때도 그랬잖아.’
-크라켄이 물러나면 다시 청방 인간들이 오겠지. 그럼 이곳 주민들은 10억 명이 넘는 크고 강대한 국가와 싸워야 하고.
‘그런가?’
-그런 게 아니라 다 생각하고 한 거 아니야?
‘어, 맞아. 근데 말로 그렇게 콕 집으니 내가 좀 나쁜 놈이 된 것 같아서.’
-쩝. 처음 만났을 땐 참 순수했었는데 말이야.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성주가 되어 한 영지를 이끌다 보니 계산적으로 움직이는 내 모습이 살짝 실망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동안 청방이 이곳에 머물며 저질렀던 만행들이 많아 정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은인들을 그때까지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저희에게 원하는 것이 뭔가요?]
간단한 감사 인사를 하고 나서 이내 퍼거슨이 바로 용건을 물어왔다.
“이곳에 있는 석유와 기사단들이 마법사들을 상대했던 기술과 아이템. 그리고 생포한 청방 헌터들의 인도를 원합니다.”
[석유라면 청방 놈들이 채취했던 검은 물을 말하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흠…….]
퍼거슨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청방 길드 사람들과 함께하다 보니 우리에게 석유가 얼마나 크고 대단한 자원인지 알고 있는 듯했다.
“석유를 가져가 얻는 이익을 공평하게 나눠 드리죠.”
[흠…….]
사람이란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고 했던가.
퍼거슨 내 요구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보아하니 뭔가 착각을 하는 듯했다.
그들은 지금 나와 거래를 함에 있어 무언가 선택할 권한이 없었다.
운디네가 얘기했던 것처럼 내 손을 붙잡지 않으면 이들은 이곳 섬에 고립되어 궁핍한 생활을 이어가거나 그도 아니면 청방 길드의 재침공을 받게 될 테니까.
“지금 뭔가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전 지금 부탁을 드리는 게 아니에요.”
[네?]
“당신들 혼자서 청방 길드를 무너뜨렸나요? 우리 역시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청방 길드와 싸웠어요.”
[아, 알고 있습니다.]
“아니요. 제가 보기엔 잘 모르는 것 같네요. 전 이곳 비토섬과 석유가 당신들 것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거든요.”
난 입술을 굳게 다물며 퍼거슨을 노려봤다.
석유는 바다 생물들이 땅속에 묻혀 퇴적물이 계속 쌓여 오랜 시간 높은 열과 압력을 받아 만들어진 화석 에너지이다.
잘은 모르지만, 이곳에 있는 석유가 만들어지기까지 수천 년은 걸렸을 것이다.
근데 퍼거슨은 도망치듯 이곳에 와서 정착하여 살고 있다고 마치 석유의 주인이 자신들 것인 거같이 굴었다.
그것도 스스로 지킬 힘이 없어 청방 길드에 의해 지배까지 받았으면서 말이다.
“지난 일로 제 일행인 엘프들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데도 우린 당신들과 싸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그래서 그 일로 오해를 하나 본데 굳이 선량한 사람들의 생명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거지. 당신들을 이곳의 주인이라 여겨서 그랬던 게 아니에요.”
[……?!]
[……?!]
퍼거슨과 에릭. 그리고 케인과 아이들의 얼굴에 분노와 배신감 같은 복잡한 감정이 가라앉았다.
은인이라고만 여겼던 내가 냉정하게 말을 하자 많이 서운한 모양이었다.
만약 내가 은인이 아니었다면 당장 칼을 뽑아내 목에 겨눠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성주님…….]
“성주님…….”
“저도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진 않았는데 알 건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하몽과 최은빈을 쳐다봤다.
인구수 이만.
병력. 이천에서 삼천 남짓.
이곳에 사는 사람은 대한민국의 구 단위의 인구보다 적었다.
당장 청방 길드를 몰아내긴 했지만 머지않은 시간에 지구의 다른 국가들도 이곳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대부분 모두 이곳을 도모하려 들 게 분명했다.
지구의 국경선은 수백, 수천 년 동안 억 단위 이상의 생명이 희생되어 만들어진 거였지만 이곳 대륙의 국경선은 명확하지 않았으니까.
먼저 영토를 차지하고 자리를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킬 힘이 없으면 온전히 주인이라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