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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160화 (160/255)

160화. 해상전 (8)

[네가 대장이지! 아무리 우릴 현혹하고 속이려 해도 난 절대 속지 않아. 그러니 지금 날 죽이는 게 좋을 거야. 만약 내가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면 너희를 찾아 모두 죽여 버릴 거니까.]

“어린놈의 새끼가 말하는 본새 하고는. 쯧쯧.”

은거지로 돌아오니 목과 팔목, 발목에 쇠사슬이 감긴 케인이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며 날 노려보고 저주를 퍼부었다.

“아이들 모두 다 고집이 장난 아니에요. 아무리 어우르고 달래도 저희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아요.”

아이들의 보호를 맡았던 마녀 부대 헌터들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고기 스테이크, 생선찜, 호박고구마…….

바닥을 보니 뷔페 못지않게 다양한 음식들이 차갑게 식어 널브러져 있었다.

아이들을 다독이기 위해 꽤 신경을 쓴 모양인데 다 실패한 듯했다.

“다들 좋게 해선 말 안 듣게 생겼잖아요.”

삼 일째 음식을 거부한 아이들은 그새 부쩍 더 야위어 있었고 그 때문인지 눈이 더 부리부리해졌다.

눈빛으로 사람을 해칠 수 있다면 아마 여기 있는 마녀 부대 헌터들은 대부분은 아이들의 눈빛에 중상을 입었을 듯했다.

“너희 어머니가 갖다주라고 하더군. 이게 없으면 어려서부터 잠을 못 잤다며.”

“…….”

난 아공간에 넣어둔 이불을 꺼내 케인의 몸에 덮어 주고 불을 지펴 고깃국을 끓였다.

무와 파로 짐작되는 야채를 썰어 놓고 고기 조금 넣어서 끓인 국.

어지간히도 졸였는지 왠지 쌀밥이 생각날 정도로 짜기만 한 국이었는데 케인의 눈빛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ㄱ……새끼들. 우리 엄마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쾅! 쾅! 쾅!

이불에서 느껴지는 체취와 고깃국 냄새를 맡은 케인이 자신의 몸이 상하는 것도 모른 채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 협박이라도 받아 온 줄 알고 오해를 하는 듯했다.

“세상에 그 어떤 어머니도 자신의 안위 때문에 자식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아.”

[…….]

“네 놈들이 귀를 닫고 우리말을 듣지 않으려고 해서 우리도 목숨 바쳐 숨어서 받아 온 거야. 그러니 일단 좀 먹어. 그래야 이곳에서 탈출하든. 우리를 죽이든 후일을 도모할 거 아니야?”

난 적당한 온도로 끓인 고깃국을 아이들 앞에 내려놓았다.

[형, 이거 진짜 에일리 아줌마 고기 스튜 같은데?]

[……?!]

영지에서 가져온 최고급 음식을 줘도 쳐다보지도 않던 아이들이 군침을 삼키며 고깃국과 케인을 번갈아 쳐다봤다.

표정을 보아하니 케인이 먹으면 다른 아이들도 바로 고깃국을 마실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 엄마가 정말 자발적으로 이걸 너희에게 줬다고?]

“반말하지 마라. 내가 보기엔 어려 보여도 첫사랑에 성공했으면 너만 한 자식이 있을 나이야. 새끼야.”

“…….”

“…….”

아이들과 일행들이 살짝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성주님, 아이들이 흔들리는 것 같은데 조금 더 친절하게 얘기를 하시는 게…….”

“친절하고 다정하게 굴면 오히려 더 오해하고 의심을 할 거예요.”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이들은 이미 청방에 속아 부모와 생이별을 하고 목숨을 위협받는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나 역시 아이들한테 이리 투덜거리는 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왠지 괜한 다정함과 친절함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것 같아 나도 마지못해 이러는 것이었다.

[먹어.]

[그래도 돼?]

끄덕끄덕.

[내 이불이 맞아. 그리고 어머니의 스튜도 맞고. 저 이방인이 얘기한 것처럼 위협을 받았다고 내게 해가 될 만한 일을 할 분이 아니야. 그건 너희들도 알잖아.]

[어. 당연히 알지. 에일리 아주머니는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야!]

[맞아!]

고민하는 얼굴을 하던 케인이 아이들과 대화를 주고받더니 사흘 만에 식사하기 시작했다.

[엄마…… 흑흑.]

고깃국을 맛본 케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쯤 되면 된 것 같다.

“음식을 치우세요.”

“네?”

“공복에 갑자기 기름기가 들어가면 탈이 날 수도 있어요. 죽 좀 끓여서 갖다주세요. 그것부터 먹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네.”

나의 지시에 헌터들이 고깃국을 치웠고,

[…….]

[…….]

아이들이 세상 서러운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어느새 아이들의 눈에 서려 있던 독기는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너희 아버지 꽤 강하신 분이더군. 근데 너희가 청방 사람들에게 볼모로 잡혀 있어 싸우지 못하고 있다.”

[우,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몇 번이나 도망갈 기회도 있었고 기습을 할 수 있었는데 도시에 있는 부모님들에게 해코지할까 봐 계속 참고 있었어요. 흑흑.]

침구류와 고깃국으로 인해 우리한테 믿음이 생겼는지 사흘 만에 처음으로 케인과 대화 같은 대화가 이뤄졌다.

말투 역시 어느새 공손하게 변해 있었다.

“보아하니 아이들이 네 말을 잘 따르는 것 같은데 우리를 도와줄 수 있나?”

[아이들을 구할 생각인가요?]

“그래야겠지. 그래야 도시에 있는 어른들이 청방 길드랑 싸울 수 있을 테니까.”

[적지 않은 아이들이 절 따르는 건 맞지만 전부 그런 건 아니에요. 청방 길드에서 왕족과 귀족 아이들은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 못지않게 잘해 주고 있어요. 그리고 아이들 사이사이에 청방 길드에 우호적인 마음을 숨기고 스며들고 있고 이계에서 온 아이들도 바로 밀고할 거예요.]

케인이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미 우리를 만나기 전부터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을 하고 플랜을 만들어 봤던 모양이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머지않은 시간에 청방 길드를 따랐던 이들도 곧 등을 돌리게 될 테니까.”

[그들은 절대 그러지 않을 거예요. 청방 길드와 동맹을 맺고 나서 대부분 주민의 삶은 더 힘들어졌지만, 왕족과 귀족들은 더 배부르고 호화롭게 살 수 있게 청방 길드가 많은 지원과 혜택을…….]

“이젠 그걸 못 하게 됐거든.”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저 멀리 있는 동쪽 바다를 쳐다봤다.

왕족과 귀족.

그동안 염탐을 하고 케인의 설명을 들으니 마왕과 마족에게 쫓겨 이 외딴 섬까지 이주를 해 놓고도 여전히 계급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퍼거슨을 따르는 이들을 제외한 지배층 대부분이 청방 길드에 우호적으로 대하고 있는 듯했다.

-섬 주위로 멸치와 고등어, 삼치 떼 같은 수많은 물고기가 몰려들고 있어. 그리고 그것들을 잡아먹으며 크라켄이 오고 있고.

‘성공한 건가?’

-어. 이대로 있으면 한두 시간이면 청방과 켄트 왕국사람들도 크라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거야.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난 운디네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동쪽 바다를 쳐다봤다.

단 하루 만에 대어가 떡밥을 따라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모양이었다.

“크라켄이라고 들어 봤나?”

[바다의 지배자를 말하는 건가요?]

“대왕 문어가 바다의 지배자라고?”

[어른들이 하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어요. 크라켄이 바다에서 가장 세다고. 설마 크라켄이 찾아온 건가요?]

케인이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내 시선을 따라갔다.

이 대륙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라 그런지 어른들한테 크라켄의 존재를 들은 모양이었다.

“내가 불렀다. 그리고 이제 청방 길드는 더 이상 이 섬에 어떤 자원도 들여올 수 없게 될 거다. 그럼 자연스럽게 청방 길드를 따르던 사람들도 등을 돌리게 되겠지.”

[끙…….]

케인이 앓는 소리를 내며 날 쳐다봤다.

거대한 바다 몬스터.

수십 명이 넘는 A급 헌터한테 사로잡혔을 때도 엘프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리더니 아직 아이라 그런지 괴물은 무서운 모양이었다.

[한스와 짐, 마크…… 그 아이들에게도 부모님의 징표를 갖다주세요.]

“믿을 만한 아이들인가?”

[네. 청방 길드 놈들한테 지인들을 잃은 아이들이에요. 그리고 저처럼 많은 아이들이 따르고 있고요. 똑똑한 애들이니 징표를 갖다주면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챌 거예요.]

“그래. 알았다.”

난 입술을 굳게 다물며 하몽과 엘프들을 쳐다봤다.

“다시 한번 마을에 가서 징표를 받아와 훈련소에 갖다 놔야 할 것 같네요.”

[지금 출발 하시겠습니까?]

“네. 그래야죠. 청방의 배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빼내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네요.”

[네, 알겠습니다.]

다시 산 다람쥐로 변신한 난 하몽과 엘프들과 함께 동쪽 섬으로 달려갔다.

* * *

[이걸 한스에게 갖다주면 당신의 말을 들을 거예요.]

“이건 닭 뼈 아닌가요?”

[네. 맞아요. 어려서부터 식성이 좀 특이한 아이였어요. 아무리 맛있는 디저트를 사다 줘도 닭 뼈를 입에 물고 사탕처럼 빨아먹는 걸 좋아했거든요.]

“아…….”

반지와 목걸이, 팔찌. 들에 피어 있던 이름 모를 꽃과 과일.

아이들을 구하려 한다는 설명에 부모들은 제각각 아이들과 추억이 서린 징표를 건네줬다.

[성주님, 등대 쪽으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등대요?”

[네. 계속해서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크라켄을 온 걸 눈치채고 청방에서 무언가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몽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항구 옆에 우뚝 솟아 있는 곳에 있어 빛을 뿜어 대고 있는 등대를 쳐다봤다.

크라켄이 너무 일찍 와서 청방에서 이미 확인을 한 모양이었다.

“마법진 같은데 뭘 만드는 걸까요?”

[소리를 증폭시키는 마법진입니다.]

등대 옆으로 가니 수백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마치 귀환 마법진처럼 커다란 건물을 세우며 마법진을 세기는 게 보였다.

청방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직 통신 시설을 구축하지 못해 이능으로 대신해 연락을 주고받으려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제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 일단 훈련소로 가서 징표를 몰래 놓고 오세요. 보아하니 대부분 이쪽으로 몰려온 것처럼 보이니 어렵지 않을 것 같네요.”

[네, 알겠습니다.]

하몽이 엘프들을 데리고 훈련소로 달려갔다.

도시 안은 우리가 처음 왔을 때보다 눈에 띄게 청방 길드원들이 많이 보였다.

물자를 실은 배가 섬에 당도할 수 있는 일에 사활을 건 듯했다.

그런데 그때,

[시키는 대로 하면 정말 저희 아이들을 훈련소에서 졸업시켜주고 귀족으로 올려주는 거 맞죠?]

[그렇다니까. 글쎄. 여기 너희 왕의 직인이 찍힌 명령서도 있잖아. 너희가 크라켄을 유인해 배가 무사히 섬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 준다면 너희 가족들의 삶은 우리가 성심을 다해 살펴줄게.]

[네, 알겠습니다.]

뱃사공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항구로 걸어가 배에 승선하기 시작했다.

“미친…….”

나도 모르게 절로 욕지거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급하게 만들었는지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배에 올라탄 사람들은 모두 이곳 원주민들이었고 그들을 미끼를 크라켄을 유인하려는 모양이었다.

천운이 따라 미리 크라켄의 존재를 확인했으면 들어오는 배를 돌리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면 될 것을 청방은 원주민들을 크라켄의 제물로 바다에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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