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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158화 (158/255)

158화. 해상전 (6)

[크라켄을 동쪽 섬으로 유인해 오신다는 겁니까? 물의 정령이 그 큰 생명체를 끌고 올 만큼 바닷물까지 조정할 수 있나요?]

“한 번 더 상승하면 왠지 그 정도도 가능할 것 같긴 한데 아직은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문어 낚시하는 데 정령의 힘까지 빌릴 필요 있나요? 떡밥만 잘 던지면 되지.”

씨익.

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하몽을 뒤로 하고 전까지만 해도 바닷물이 들이 차 있던 해변을 쳐다봤다.

이곳은 마치 서해안처럼 썰물 때가 되면 섬의 크기가 두 배 정도 커질 만큼 저 멀리 바닥까지 물이 빠졌다가 다시 밀물이 되면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이것을 조석 현상이라 하는데 지구에서는 달과 지구, 태양의 끌어당기는 힘에 따라 발생했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바닷물은 꽤 먼 곳까지 옮겨 다니며 순환이 되었다.

“숲에 멧돼지가 있는 것 같으니 그것들을 잔뜩 잡아서 썰물 때 떡밥으로 쓰면 한 마리쯤은 오지 않을까 싶네요.”

[낚시꾼들이 떡밥을 써서 물고기를 유인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긴 한데 이 큰 바다에서 어디 있는지도 모를 크라켄을 유인한다는 얘기는 처음 듣네요.]

“그거야 크라켄을 보면 피하지. 힘을 빌리겠다고 유인까지 하는 미치광이가 아직 없어서 아닐까요?”

[그렇긴 하죠. 그런 미친…….]

하몽이 대화를 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나의 조금은 허무맹랑하고 어이없는 계획에 순간 내게 미친놈이라고 할 만큼 살짝 정신을 놓았었던 모양이었다.

“멧돼지를 사냥하려면 조금 발품을 팔아야겠지만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잖아요. 제 계획대로 크라켄이 오면 알아서 청방의 배를 침몰시켜 줄 테니까. 청방 길드와 직접 몸을 부대끼며 싸우지 않을 수 있는데 한 번 시도해 볼 만하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그럼 숲으로 가서 멧돼지를 사냥해 올까요?]

“같이 가죠.”

하몽의 동의를 받은 난 엘프들은 물론이고 마녀 부대까지 모두 데리고 숲으로 들어갔다.

배낚시를 할 때는 어획 탐지기로 물고기가 자리 잡은 곳 근처까지 가서 낚시하기에 떡밥이 그리 많이 필요하진 않았지만, 이번엔 멧돼지를 백 마리 이상 잡아 풀어야 할 만큼 꽤 많이 필요했다.

* * *

“성주님, 30분 거리에 이십여 명의 아이들이 보이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이들이 여기까지 왔다고요?”

“네. 식량 창고가 불타서 헌터들이 아이들한테 훈련을 핑계로 사냥을 시킨 것 같아요.”

한창 떡밥으로 줄 멧돼지를 사냥해서 모으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동쪽과 남쪽과 달리 이곳은 숲이 우거지고 산세가 험해서 몬스터와 포식자의 위치에 있는 육식 동물들이 득실거렸다.

변신한 우리야 비교적 안전하고 편하게 이동하며 사냥을 할 수 있었지만, 아직 어리고 등급이 낮은 아이들이 사냥을 할 만한 곳은 되지 못했다.

“길을 잃은 거 아니에요?”

“저도 혹시 그랬나 싶어서 지켜봤는데 일부러 찾아온 것 같아요. 식량 창고가 불타 아이들까지 동원해 사냥하다 보니 동물들이 눈치를 채고 산세가 험한 이곳 북쪽과 서쪽에 있는 산맥을 따라 섬의 외곽으로 모두 도망을 쳐서 일부 아이들이 그 흔적을 찾아온 것 같아요.”

“왠지 들짐승들이 쉽게, 쉽게 잡히나 했더니 몰이를 해 주고 있었군요.”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들이 있다는 방향을 쳐다봤다.

식량 창고를 태운 여파가 생각보다 심각한 모양이었다.

“일단 가 보죠.”

“네, 알겠어요.”

난 마녀 부대를 데리고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일단 아이들의 동태를 보고 강력한 몬스터로 변신을 해서 쫓아내든지 아니면 납치를 하든지 결정을 해야 할 듯싶었다.

‘어제 그 아이네.’

2번 훈련병.

목숨까지 위협하며 동료의 자리와 멧돼지를 뺏고 마음 약해지지 말라며 독하게 자신의 일행까지 나무랐던 아이가 보였다.

[케인 형, 돌아가자. 여긴 너무 위험해.]

[안 돼. 이대로 돌아가면 우린 전부 다 굶게 될 거야. 맞는 건 두렵지 않지만 배고픔을 참는 건 너무 괴로워. 잘 먹어야 이 지옥 같은 곳을 버틸 수 있어. 그러니 잔말 말고 어서 따라와.]

[……알았어.]

이번에도 역시나 아이는 자신의 일행들을 다그치며 이끌고 있었다.

‘납치해야 하는 건가?’

난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하몽과 최은빈을 보며 눈을 마주쳤다.

아이들의 상태를 보니 어지간해선 발길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운디네!’

-응, 알았어.

따스하고 포근한.

파란색 빛을 머금은 물방울들이 아이들에게 날아갔다.

-슬립!

[으음. 나 왜 그러지. 너무 졸려.]

[나도.]

털썩.

털썩.

운디네의 수면 마법에 걸린 아이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쓰러지며 잠들었다.

나름 마법을 배우며 훈련을 받은 것 같았지만, 중급 정령인 운디네의 정령력은 이겨내지 못하는 듯 했는데,

[모두 정신 차려! 몬스터야! 저쪽으로 단검을 날려.]

[응!]

[응!]

휘이익.

휘이익.

2번 훈련병을 필두로 한 몇몇 아이들이 수면 마법을 이겨내고 내게 단검을 던졌다.

‘ㅅ……발 깜짝이야.’

다행히 나를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던진 건 아닌지 내게 적중한 것은 없었지만 바로 옆에 있는 나무에 단검이 박힐 정도로 꽤 위협적이었다.

수년간 레이드를 다니며 나름 산전수전 다 겪은 발키리 길드 헌터들마저 처음엔 내 수면 마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는데 어리디, 어린 아이들이 마법을 이겨낸 것도 모자라 변신한 내 위치까지 찾아내었다.

‘운디네?’

-네가 무의식중에 아이들한테 무리가 가지 않게 제압하라고 해서 마법을 약하게 해서 그래. 이번엔 제대로 할게.

‘믿어도 되지?’

-하위 마법이긴 하지만 웬만한 B급 헌터들도 재울 수 있을 정도의 농도였어.

따스하고 포근한.

파란색 빛을 머금은 물방울들이 다시 아이들에게 날아가는데,

[모두 피해!]

[응!]

[응!]

“……?!”

“……?!”

이번엔 아예 일찌감치 몸을 움직여 마법을 피했다.

그리고 결국,

[저희가 하겠습니다. 모두 변신 풀어.]

[네.]

[네.]

아이들을 둘러싸고 넓게 자리 잡은 하몽과 엘프들이 변신을 풀고 마법을 시전했다.

“#$##$#$#$#$#$#슬로우.”

“#$###$#$#$#$#$슬로우.”

[뭐야! 엘프들이잖아!]

[엘프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결국 마족들이랑 편을 먹은 건가?]

슬로우에 마법에 걸린 아이들이 마치 불천지 원수라도 보는 것처럼 엘프들을 노려봤다.

[꼬마야, 우릴 아니?]

[당연히 알지. 인류의 배신자. 할아버지가 그랬어. 엘프는 인간과 이종족을 배신하고 마족에게 들러붙은 아주 나쁜 놈들이라고!]

[…….]

[…….]

슬립 마법에 걸리지 않고 결국 정신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제압을 당한 아이들이 말로써 하몽과 엘프들의 마음을 후벼 팠다.

엘프들은 중립을 선언했지. 마족의 편을 든 것이 아닌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와해가 된 모양이었다. 그도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을 수도 있었고.

[네 할아버지가 혹시 퍼거슨 공작님이니?]

[…….]

[표정을 보니 맞나 보네. 성주님 아무래도 이 아이들을 꼭 데리고 가야겠네요. 어차피 이대로 돌아가면 모두 죽임을 당할 테니.]

[그러게요.]

난 아이들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단검을 날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고 슬립 마법까지 이겨내더니 할아버지한테 따로 가르침이라도 받았던 모양이었다.

“$#$##$#$#$슬립.”

[몬스터한테 죽임을 당했으면 당했지. 절대 엘프들한텐 굴복하지 않아.]

“#$#$#$#$#$슬립.”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여. 할아버지한테 짐이 되고 싶지…….]

“$#$#$#$#$슬립.”

아이들은 슬로우 마법으로 몸이 구속되고서도 2번이나 더 마법에 저항하다 잠이 들었다.

[휴우. 이제야 잠이 들었군요. 역시 퍼거슨 님의 손자라 그런지 정신 마법을 이겨내는 수련을 했나 보네요.]

“고생하셨어요. 많이 아프셨죠?”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요. 배신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도망간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변명조차 하지 못하겠다고요. 그것도 상대가 어린아이이니까요.]

하몽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째 카프리를 다시 만나 구박을 받을 때보다 더 씁쓸해하는 것 같았다.

취익! 취익!

취익! 취익!

아이들이 잠이 든 걸 확인한 하몽과 엘프들이 오크로 변신을 하더니 이내 우리의 발자국을 지우면서 나무를 부러뜨리고 여기저기 손톱자국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해 놓으면 오크들과 싸우다 당한 줄 알 겁니다.]

“이 정도로 청방 헌터들이 속을까요?”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 이렇게라도 해 놔야죠.]

“그죠. 만약에 제가 청방 길드라면 속을 것 같긴 하네요.”

오랜 시간 용의 계곡에 숨어 지내서 그런지 엘프들은 뒤처리도 제법 능숙하게 했다.

* * *

하루 동안 사냥을 하고 사흘 동안 부패시킨 동물을 들고 동쪽 해안 인근까지 걸어간 난 바다로 뛰어 들어갔다.

아무리 바닷속이라 하나 백 킬로가 넘는 큰 동물을 들쳐 메고 수영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운디네의 힘과 스카이 캐슬 해안에서 미역을 따며 물질을 했던 게 큰 도움이 되었다.

비토섬 동쪽 바다 멀리, 썰물 때도 물이 빠지지 않는 곳까지 잠수해서 들어간 난 한 마리씩 바닥에 묶었고 백여 마리의 동물들의 사체에 일일이 단검으로 상처를 내어 내장과 피, 그리고 냄새가 썰물을 타고 멀리 퍼질 수 있게 해 두었다.

‘자식들 바로 달려드네.’

사흘 동안 따듯한 곳에 푹 삭혀서 그런지 주위에 있던 물고기와 해양 생물들이 금세 바글바글 몰려들었다.

이놈들 먹이 주려고 이 고생을 한 건 아니지만 그대로 놔두었다.

멧돼지의 고기와 피 냄새를 맡고 올 수도 있지만 이렇게 물고기들을 따라 크라켄이 올 수도 있으니까.

[고생하셨습니다. 성주님]

“고생하셨습니다. 성주님.”

“네, 고마워요.”

물 밖으로 나오자 하몽과 최은빈이 마실 물과 생수를 건네줬다.

수영하지 못해 같이 작업을 못 한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인지 둘 다 얼굴에 미안함이 가득했다.

“이 고생을 했는데 크라켄이 오지 않으면 정말 허무할 것 같네요.”

[이번 배가 아니더라도 크라켄이 한 번은 와도 올 것 같습니다. 염려치 않으셔도 될 것 같네요.]

“제 생각도 그래요. 솔직히 처음 들었을 땐 허무맹랑하게 들렸는데 왠지 지금은 크라켄이 꼭 올 것 같아요.”

이번 작전에 회의적이던 하몽과 최은빈이 빙그레 웃으며 바다를 쳐다봤다.

막상 바다에 떡밥을 바다에 묶고 오니 기대감이 생긴 모양인 듯했다.

“그죠? 사실 저도 그렇긴 합니다. 그리고 그런 기대감 때문에 계속 낚시해 왔고요.”

난 하몽과 최은빈을 보며 화답의 미소를 지었다.

가끔 낚시 초보들이 묻곤 한다. 똑같은 미끼를 쓰고 수심도 맞췄는데 아직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냐고.

그럼 난 항상 같은 말로 답했다.

떡밥 던지고 바늘에 미끼 껴서 계속 던지라고.

고기가 잡힐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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