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해상전 (5)
[조금 더 살펴보고 올까요?]
“네. 그래 주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저도 미심쩍은 것이 있어 그러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찍찍.
찍찍.
내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자 하몽이 다시 한번 변신을 바꿨다. 산 다람쥐와 생김새가 비슷하긴 했지만, 이번엔 손가락만큼 작은 햄스터로 변신했다.
건물들이 다 중세 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품기는 건물 형태라 아름다웠고 그에 반면 작은 생명체들이 이동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이 보였다.
산 다람쥐로 변신해 숲을 활보하는 것보다 비록 덩치가 작아지긴 해도 햄스터로 변신해 도시 속을 이동하는 게 오히려 더 위협이 적을 듯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햄스터로 변신한 하몽과 엘프들은 다시 도시 곳 깊은 곳으로 이동했고 나와 마녀 부대는 도시 외곽을 돌았다.
“가시죠.”
“어디로?”
“확인 해 볼 게 있습니다.”
“네.”
숲과 도시의 경계선.
비록 건물을 짓고 사람들이 거주하고 물품을 교류할 수 있는 도시를 형성했다고 하나 바로 옆에 몬스터와 야생 동물들이 우글거리는 숲이 있었다.
비토섬의 도시는 우리 스카이 캐슬보다 더 넓게 형성되어 있어 커다랗고 긴 성벽이 없는 대신 망루와 초소를 만들어 몬스터를 경계하고 있었다.
“역시 단순한 동맹은 아닌 것 같네요.”
“그러게요. 동맹을 맺었으면 원주민들과 청방에서 같이 경계를 했을 텐데 모두 청방 사람들밖에 없네요.”
마녀 부대와 함께 십여 곳의 초소를 살펴보자 의심이 점점 확신으로 변해갔다.
칼과 검, 활을 들고 있는 수백 명의 헌터와 총을 들고 있는 수천여 명의 군인들까지.
비토섬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대부분 검은 머리와 황토색 피부를 한 중국인들이었다.
유럽 사람들과 같은 노랑머리 혹은 갈색 머리를 하고 하얀 피부를 자랑하는 이곳 원주민 중에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은 채 10%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성주님, 하늘을 보세요!”
“저게 뭐죠? 운석인가?”
최은빈이 경악하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니 저 하늘 위에서 불로 뒤덮인 무언가가 떨어지는 게 보였다.
얼핏 보기엔 별이 아닌 거 정도로 작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고 있었다.
[성주님, 제가 어서 제게 다가오십시오.]
“…….?”
하몽도 별똥별을 봤는지 엘프들을 이끌고 내게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는 게 보였다.
[미티어 스트라이크입니다. 위험합니다. 어서 제게 붙으세요.]
“……네.”
“……네.”
난 상황 파악을 할 겨를도 없이 하몽에게 다가갔다.
짐작건대 단순한 별똥별이 아닌 듯했다.
[모두 바닥에 엎드리고 눈을 감으세요. 너희들은 내게 마나를 보태주고.]
[네.]
[네.]
하몽과 엘프들이 본 모습으로 돌아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룬어를 읊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앱솔루트 베리어!”
우리 주위를 투명한 막이 감쌌고.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별이 청방 길드의 깃발이 꽂혀 있는 건물로 떨어지며 커다란 폭음 소리가 들려왔다.
건물과 별똥별이 부딪히며 생긴 뿌연 연기로 인해 시야가 차단되었지만 짐작건대 완전 박살이 났을 듯했다. 당연히 그 안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생명을 잃었을 테고.
TV에서 보았던 핵폭탄이 터지는 것처럼 버섯 모양의 불길과 화마, 연기가 하늘마저 뒤덮을 정도로 대단한 파괴력이었다.
[휴우! 온전한 미티어 스트라이크가 아니었나 보네요.]
“네? 저게 온전한 마법이 아니라고요?”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거리가 이렇게 떨어지고 방어 마법까지 펼쳤는데도 몸이 후끈거릴 만큼 이렇게 열기가 전해지는데도 하몽은 되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제대로 된 미티어 스트라이크였으면 저 도시는 물론이고 이곳까지 박살이 났을 겁니다.]
“……?”
[보아하니 저 정도 되는 마법사가 아이템과 주변의 도움을 받아 억지로 발현했나 보네요.]
“저기 미완성 마법이라면 온전한 마법은 어느 정도일지 상상도 되지 않네요.”
부들부들.
난 떨리는 몸을 애써 진정시키면 주먹을 말아 쥐고 불을 진화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내려가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동맹을 맺은 건 맞지만 보호를 핑계로 청방 길드에서 은근슬쩍 군인들을 대거 데리고 와서 무력으로 이곳을 차지하고 원주민들을 착취하고 수탈했던 모양입니다.]
“그럼 전쟁이라도 시작된 건가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곳을 지도하고 있던 왕과 왕족들은 여전히 청방 길드와 동맹을 유지하길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저건?”
[주민들이 청방 길드에 의해 노예에 가깝다시피 대접을 받는데도 왕과 왕족들이 모른 체하자 퍼거슨 님이 왕실 기사단과 마법사단을 이끌고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확인은 하지 못했지만, 퍼거슨 님의 일행들이 공격한 것 같습니다.]
“쯧쯧.”
난 혀를 차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 듣지 않아도 대충 짐작이 되었다.
원주민들의 정보와 지식. 그리고 이곳 섬의 자원을 교환하는 것만으론 청방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완벽한 소유를 원했던 모양이고 그로 인해 이 사달이 난듯했다.
“그럼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거네요.”
[네. 그렇습니다. 왕실 기사단장 출신인지라 마음먹고 숨으면 여간해선 찾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쩝.”
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적의 적은 동지라고. 퍼거슨을 만나서 합류하면 지금보다 더 일이 쉽게 풀릴 줄 알았는데 여의치 않은 모양이었다.
“하몽 님, 혹시 미티어 스트라이크 발현하실 수 있겠습니까?”
[미티어 스트라이크를요?]
“네. 가능하면 한 번 더 쓸 데가 있는 것 같아서요.”
난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해안가 옆 창고를 쳐다봤다.
불이 나서 원주민과 청방 길드 사람 구별 없이 모두 물을 길어와 불을 끄려고 하고 있는데 유독 창고 옆에 군인들만 자리를 지키고 경계를 서고 있었다.
짐작건대 저곳에 식량을 보관하고 있는 듯했다.
“저기도 태워 버리죠. 저기를 태워 버려야 청방 길드와 손잡았던 원주민들도 생각을 달리할 것 같네요.”
[흠…… 저 정도 규모를 날려 버릴 정도의 마법은 쓸 수 있지만 앞으로 움직일 때 많이 불편하지 않을까요?]
“그러지 않을 거예요. 아직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걸 모르니 청방 쪽에선 저곳 역시 퍼거슨 일행들이 한 지 알 테니까요. 그리고 퍼거슨 쪽에선 자신들이 하지 않은 테러가 발생하면 자신들을 도와주는 세력이 있는 걸 눈치채고 찾으려 할 테고요.”
[아! 제가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습니다. 정말 괜찮은 방법 같네요.]
하몽이 날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우리 혼자 퍼거슨 일행을 찾는 것보다는 그쪽에서 우릴 찾게 하는 것이 청방의 눈을 피해 한시라도 빨리 만날 수 있을 듯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인데 그 외에도 제법 이래저래 우리한테 이득이 될 듯했다.
[들었지? 모두 위치로 가.]
[네.]
[네.]
엘프들이 다시 한번 마법진과 같은 형태를 이루며 이동해서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렸고 그 중심에 하몽이 자리했다.
제법 높은 고위 마법인지라 그런지 아직 하몽 혼자선 발현을 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미티어 스트라이크.”
한참 동안 마나를 공유하고 룬어를 읊어대던 하몽이 결국 마법을 영창했고 다시 저 멀리 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비토섬에 지은 청방의 길드 본부에 이어 식량 창고까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돌아가죠.”
“네.”
“네.”
난 일행들과 다시 배를 정착해둔 곳으로 돌아갔다.
소나기는 피하라고 했다고.
테러를 당한 청방 길드에서 당분간 수색과 경계를 강화할 게 분명하니 잠시 몸을 피해 있는 게 좋을 듯했다.
* * *
[성주님, 큰일 났습니다. 청방에서 원주민들의 집에 쳐들어가 식량을 약탈하고 있답니다.]
“쯧쯧.”
혹시나 했는데 청방 길드는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창고가 타버렸으면 사냥을 하거나 낚시해서 식량을 수급해야 하는데 그들은 쉽고 빠른 방법을 택했다.
“주민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그게 식량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반항하고는 있지만, 총과 칼로 무장한 청방 길드를 당해 낼 재간이 없어 울분만 토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배가 덜 고픈가 보네요.”
“네?”
“울분만 토하고 있다면서요. 진짜 배가 고프면 그러고 있겠어요?”
난 하몽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난 이 상황이 지속되고 더 악화하길 원했다.
그래서 이곳 주민들이 퍼거슨과 그의 일행처럼 스스로 청방 길드에 대항했으면 했다.
청방 길드 헌터 이천여 명.
군인 이천여 명.
원주민 이만여 명.
비토섬에는 꽤 많은 청방의 병력이 상주해 있었고 우리끼리 싸우기엔 인원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청방의 배가 언제 들어오는지 확인했나요?”
[네. 보름에 한 번씩 들어오는데 열흘 전에 왔다 갔다고 합니다. 오 일 후에 들어올 것 같습니다.]
“오 일이라…… 애매하네요.”
터벅터벅.
난 하몽과 대화를 하며 해안가로 걸어가 바다를 살폈다.
[제가 잘 못 들은 건가요? 뭐가 애매하다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오 일 후에 배가 들어오면 다시 식량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곳 사정을 알게 됐으니 보름에 한 번이 아니라 다음엔 더 빨리 들어올 테고요.”
[네. 그렇겠죠. 근데 여전히 성주님의 애매하다는 표현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하몽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통역 마법으로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고 있어 뭔가 오류라도 생긴 줄 알고 당황스러워하는 듯했다.
“제대로 들은 거 맞아요. 배가 들어오면 식량 창고에 불을 낸 게 무의미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전 배를 못 들어오게 할 생각이에요.”
[배를 못 들어오게 한다고요?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지난번에 듣기론 청방 길드가 자리 잡은 곳은 암초도 없고, 조차 역시 완만하다고 들었는데 잘못 들은 건가요?]
“아니에요. 맞아요. 동쪽 해안은 배가 들어오고 나오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거예요. 그래서 청방에서도 거기다 항구를 만들어 지었을 테고요.”
[그럼 어떻게?]
“크라켄이 있잖아요. 그동안 크라켄의 눈에 띄지 않아서 바다를 잘 오고 갔나 본데 이번엔 그러지 못 하게 하려고요.”
난 하몽을 보며 다시 한번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대왕 문어 낚시.
예전에 한창 배낚시를 할 때 몇 번 해 본 적이 있었다.
숙련된 낚시꾼마저 몇 날 며칠을 가도 한 마리도 못 잡을 정도로 어려운 낚시였지만 그 손맛은 생선 낚시 못지않게 짜릿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 오래 많이 낚시하러 다녔던 나마저도 아직 그 손맛을 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이참에 한 번 더 도전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