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해상전 (3)
인간의 신체와 외형이 비슷한 해골로 변신을 했을 땐 크게 이질감이 없었는데 작은 산짐승으로 변신을 하니 몸에 꽉 끼어서 단추가 터지려고 하는 와이셔츠를 입은 것처럼 아주 불편했다.
[괜찮으십니까. 성주님?]
[네. 이제 슬슬 적응된 것 같긴 한데 저놈들이 너무 거슬리네요.]
산 다람쥐로 변신한 난 못마땅한 기색을 가득 풍기며 하늘을 쳐다봤다.
덩치가 작아져서일까.
평소 땐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던 숲속의 나무와 풀들이 거대하게 보이는 것도 적응이 안 되는데 머리에 털이 없는 독수리 몇 마리가 우리를 계속 따라다니며 상공을 날고 있었다.
짐작건대 우리가 진짜 산 다람쥐인지 알고 낚아채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 듯했다.
-걱정하지 마. 혹여나 너한테 다가오면 내가 바로 요절을 내 버릴 거니까.
‘그냥 지금 요절내주면 안 돼?’
-괜한 소란을 피웠다가 청방에서 눈치챌까 봐 참고 있었는데 그럼 그냥 그렇게 할까?
운디네가 살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여전히 우리 머리 위를 맴돌고 있는 독수리를 쳐다봤다.
아무리 주먹만 한 작은 산 다람쥐로 변신을 했다 하나 정령들이 있고 마법을 부릴 수 있어 위협이 되진 않았지만,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가 나를 잡아먹기 위해 쳐다보는 눈빛을 마주하는 건 변신을 하는 것보다 더 생소했고 불쾌감이 들었다.
[성주님, 독수리가 아니라 앞에 있는 것들을 어찌해야 할지 결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끼륵끼륵.
끼륵끼륵.
“저것들은 또 뭐죠?”
1m 남짓한 작은 키에 녹색 피부.
삐딱한 모양으로 입 밖으로 나온 뻐드렁니를 가진 생명체들이 우리를 보며 자기들끼리 무어라 대화를 주고받는 게 보였다.
[고블린이라고 아주 교활하고 음흉한 몬스터입니다.]
“몬스터가 교활하고 음흉하다고요? 서큐버스처럼 마법이라도 부리나요?”
[아니요. 마법을 부릴 정도로 상위 몬스터는 아닙니다. 무력 자체만 보면 오크족 아이들보다 약합니다. 아마 지구의 인간들도 서로 아무런 무장 없이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교활하고 음흉하다는 거군요.”
난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블린들을 쳐다봤다.
마치 누군가 얼굴을 만들어 놓고 발로 한번 밟았나 싶을 정도로 입술도 납작하고 코안 쪽이 다 보일 정도로 정말 엄청나게 못생긴 몬스터였다.
근데 퍼그나 불도그처럼 못생겼는데 왠지 살짝 귀여운 느낌이 들 정도로 키도 작고 몸이 왜소했다.
그래서 그런 듯했다.
덩치가 작고 힘이 약하니 다른 방면으로 진화를 한 모양이었다.
[네. 무력은 약하지만 엄청나게 빠른 놈들입니다. 그리고 손에 들린 저 대나무 안에 독침이 들어 있는데 저걸 맞으면 블랙앵거스 같은 거대한 동물들도 몇 분 안에 몸이 마비됩니다.]
“헐…….”
[아마 A급 이상의 헌터가 없으면 고블린의 독침을 이겨내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만약 독침에 중독되면 산채로 자신의 신체를 고블린들이 먹는 걸 지켜보게 될 거고요.]
“산 채로 먹는다고요?”
[네. 교활하고 음흉한 것도 모자라 아주 잔인한 놈들입니다. 사냥감을 독침으로 마비시켜 제압하고선 최대한 오랜 시간 살 수 있게 생명에 지장이 없는 부위부터 뜯어 먹습니다.]
고블린들을 보며 하몽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게 설명해 주기 위해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끓어오르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에 상위 마족이나 흑마법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오크와 일부 몬스터들이 인간과 타 생명체를 잡아먹는 건 사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인간과 우리 엘프들 역시 살아가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생명을 해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근데 저 고블린 놈들은 단지 먹기만 위해서 사냥하는 게 아니라 다른 생명체를 죽이는 그 행위를 즐기는 놈들입니다. 그리고 사냥감이 고통스러워할수록 더 즐거워하고요. 그래서 이곳 대륙에 살던 인간과 이종족은 물론이고 몬스터들까지 주위에 고블린이 보이면 열 일 제쳐두고 척살을 하거든요.]
“흠…….”
[그런데도 저렇게 숲을 활보하고 있다는 건 고블린과 성향이 맞는 어떤 존재가 비호를 해 주고 있을 가능성이 상당히 큽니다.]
고블린에 대해 설명을 하던 하몽의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변해갔다.
그런데 그때,
끼륵끼륵!
끼륵끼륵!
후다다다다닥!
후다다다다닥!
숲 안쪽에서 고블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를 사냥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던 고블린들이 소리를 따라 부랴부랴 뛰어가기 시작했다.
[덩치가 큰 사냥감을 발견했나 보네요.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 그냥 가던 길을 갈까요?]
“흠…….”
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블린들이 사라진 숲을 쳐다봤다.
하몽의 설명을 들으니 사냥을 할 수 있을 때 없애는 게 좋을 듯했는데 괜한 소란을 피웠다가 혹여나 청방 놈들에게 정체를 들키는 게 염려스러웠다.
-고민하지 말고 일단 따라가서 한번 지켜봐. 고블린들의 만행을 직접 보면 다음엔 결정을 내릴 땐 쉬워질 테니까.
‘너도 고블린을 알아?’
-응. 지난번에 소환됐던 차원에서도 고블린이 있었어. 원래 우리 정령들은 소환자와 관련된 존재가 아닌 상대에겐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방관자에 가까운데 그런 우리에게 마저 고블린은 불쾌감을 선사해 주더라고.
운디네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내 시선을 따라갔다.
표정을 보아하니 따라가서 고블린을 사냥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처음이었다.
그녀가 내 감정과 생각이 베이스가 아닌 스스로 자신의 의지로 감정을 표출했다.
“무얼 사냥해서 저리 몰려가는지 일단 따라가 보죠.”
[네.]
“네.”
난 산 다람쥐로 변신해 있는 일행들을 이끌고 고블린들을 따라갔다.
솔직히 말로 설명만 들은 거라 운디네와 하몽이 왜 이렇게까지 적대감을 표출하는지 의아했다. 아니 솔직히 무턱대고 고블린을 욕할 만큼 인간도 떳떳하지 못했으니까.
끼륵끼륵.
끼륵끼륵.
[살려주세요. 다신 도망치지 않을게요.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뭐야? 이거 하몽 님과 같은 언어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고블린들이 인간을 사냥한 것 같네요.]
“빨리 가 봐요.”
“네.”
고블린들의 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하몽과 카프리가 쓰는 대륙 공용어를 쓰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와 우리에 속도에 박차를 가했다.
다른 몬스터나 동물을 사냥한 거면 대충 모른 체하려고 했는데 인간을 그것도 어린아이라면 그냥 간과할 수 없었다.
“저리 꺼져! 이 새끼들아!”
100m쯤 될까?
수십여 마리의 고블린이 모여 있는 중앙에 하얀 피부에 노란 머리 그리고 파란 눈을 한 어린 여자아이가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운디네!’
-응, 알았…….
[성주님, 잠시만 멈춰 주십시오. 저놈들 아이를 바로 잡아먹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건 저도 방금 들어서 알아요. 마비를 시키면 천천히 즐기면서…….”
[그게 아니라 잡아먹으려고 마비 침을 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아이가 위험해 보여 당장이라도 정령 마법으로 고블린들을 쓸어버리려고 하는데 하몽이 내 팔목까지 잡으며 앞을 막아섰다.
[저것 보세요. 어딘가로 데리고 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흠…….”
고블린들이 아이의 손과 발을 묶어 나무에 묶더니 어깨에 들쳐 멨다.
[살려주세요. 제발. 흑흑. 전 도망가려 한 게 아니에요.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어요.]
아이는 고블린이 몬스터라는 자각이 없는지 계속 용서를 빌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아이의 팔과 다리에 이미 무언가에 묶여 있던 흔적이 가득했다.
게다가,
“저건 마법진 아닌가요?”
[마법진의 형태는 맞지만 처음 보는 겁니다]
아이의 몸 곳곳에 마치 타투처럼 처음 보는 마법진들이 그려져 있었다.
“근거지로 데리고 가려는 걸까요?”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차피 아이를 구하길 마음먹으셨다면 조금만 참았다가 근거지에 도착하면 고블린들을 싹 쓸어버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알겠어요. 근데 그 대신 저 아이는 일단 재워야 할 것 같네요.”
난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쳐다봤다.
일단 당장 고블린들이 해코지할 것 같지는 않아 발을 멈췄지만 저대로 두면 안 될 것 같았다.
거리가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데도 고블린을 보며 무섭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운디네.’
-응, 알았어.
따스하고 포근한.
파란색 빛을 머금은 물방울들이 하늘을 노닐며 날아가 아이의 머리를 감싸고 이내 스르르 눈을 감았다.
마음 같아선 당장 저 고통 속에서 해방해주고 싶었지만, 일단은 응급조치만 하고 잠시 참아야 할 듯했다.
“흠…… 이쪽은 청방 길드가 자리 잡은 방향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원래 저희가 가려 하던 방향인데?]
하몽과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블린들이 걸어가는 방향을 쳐다봤다.
고블린을 따라가다 보니 저 멀리 청방 길드 헌터들이 지어 놓은 높은 건물들이 보였다.
이대로 쭉 걷다 보면 청방 길드 헌터들과 조우를 할 수 있는데도 고블린들은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이내,
{쯧쯧. 기껏 도망을 가더니 고블린한테 잡힌 게야?}
끼룩끼룩.
끼룩끼룩.
우린 고블린들이 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인적을 따라 이동했는지 알게 됐다.
검은색 로브를 입고 후드를 깊게 눌러 쓰고 중국말을 하는 인간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아이를 쳐다봤다.
무언가 착오가 있거나 길을 잃은 줄 알았더니 고블린들의 배후가 마족이 아닌 인간이었다.
끼륵끼륵.
끼륵끼륵.
검은색 로브를 쓴 인간이 나타나자 고블린들은 마치 그레이와 네로처럼 그의 발목에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끼륵끼륵.
끼륵끼륵.
짐작건대 왠지 인간을 잡아 왔으니 칭찬해 달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권혁이에요!”
“네?”
너무나 어이없고 당황스러운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는데 아무런 말 없이 따라오고 있던 최은빈이 앞으로 나와 내게 말을 건네 왔다.
“일전에 중국에 있는 게이트에 지원 갔다가 본 적이 있어요. 청방 길드 부마스터 권혁이에요.”
최은빈이 경악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검은색 로브를 입은 인간을 쳐다봤다.
-일단 거리를 좀 더 벌려야 할 것 같아. 저 자에게서 진한 마기가 느껴져.
“인간인데 마기가 느껴진다고?”
-흑마법사야. 네가 나랑 계약한 것처럼 꽤 높은 위치에 있는 마족과 계약을 한 것 같아.
운디네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내 팔목을 잡아당겼다.
“하몽 님?”
그리고 하몽은 어느새 뒷걸음질을 쳐서 이미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마족과 계약을 한 흑마법사입니다. 저와 동급 아니면 그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저 정도 흑마법사면 우리의 변신을 눈치챌 수도 있습니다.]
하몽의 말에 엘프들과 마녀 부대도 뒷걸음질을 치며 거리를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