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153화 (153/255)

153화. 해상전 (1)

“배를 멈추세요.”

“네. 성주님.”

배를 운항하고 있던 선원들이 모두 날 쳐다보고 있었고 내가 손을 올리자 요란하게 돌아가던 프로펠러가 멈췄다.

“저쪽에선 우릴 못 봤겠죠?”

“이렇게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데 과연 못 봤을까요?”

지윤미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는 청방 쪽에서도 우리를 봤을 거라 확신하는 얼굴이었다.

허나 난 생각이 조금 달랐다.

지윤미는 은폐, 엄폐물이 없는 바다 한가운데 있어 우리가 노출됐을 거라 여겼지만 반대로 난 그래서 아직 우리의 정체를 확인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다.

우리야 정확한 목표를 정하고 이동하는 중이라 주먹만 한 섬을 보고도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펴봤지만, 저쪽에선 사방이 뻥 뚫려 있는 한없이 크고 넓은 바다 전체를 일일이 망원경으로 살피긴 힘들 테니까.

난 내 심증에 확신하기 위해 선원들을 쳐다보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이내 잠시 고민하던 선원 한 명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최정광 헬퍼.

나와 함께 스카이 캐슬에 고립되어 포기하지 않고 계속 건조 작업을 해 끝내 유거성호를 완성한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저쪽에선 아직 우릴 못 봤을 겁니다. 섬이 주먹만 하게 보일 정도의 거리인지라 상대적으로 훨씬 더 작은 우리는 손가락보다도 더 작게 보일 테니까요.”

“……저쪽에도 망원경이 있지 않을까요?”

“이 망원경 보기엔 이래도 억이 넘는 겁니다. 저희야 제가 부성이한테 고집을 부려서 구비해 두었지만, 저쪽에서 이 정도 망원경을 구비하고 있긴 힘들 겁니다. 세계에 단 3대 밖에 없는 거거든요.”

최정광이 자부심 어린 표정을 짓고 망원경을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아직 저쪽에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지 못했을 거라 짐작하고 있었다.

망원경도 망원경이지만 바다에서의 시야는 통상적으로 보고 느끼는 거와 다를 때가 많았으니까.

“흠…… 그럼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뭐가 달라지나요?”

“달라지죠. 저쪽에서 우릴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직 기습할 기회가 남아 있다는 얘기이니까요.”

“영지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습격을 하시겠다고요?”

지윤미가 입을 벌리며 날 쳐다봤다.

많이 놀란 표정이었다.

청방 길드가 먼저 깃발까지 꽂아 놓고 자리를 잡고 있으니 당연히 내가 퇴각을 결정할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아직 접전이 없었을 뿐 인천에 좀비 웨이브를 조장하고 드워프를 노예로 부리는 걸 확인했을 때부터 청방을 적으로 간주했습니다. 언제까지 계속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

“게다가 저곳엔 전사들에게 스킬을 전수해 줄 수 있는 인물이 살고 있을 수도 있고 석유까지 있습니다. 이대로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곳이잖아요.”

난 입술을 굳게 다물며 카프리의 설명 아래 그려진 지도를 쳐다보면 선을 그렸다.

“비토섬 쪽으로 다가가지 말고 넓게 우회하면서 몰래 숨어들어 갈 만한 곳이 있는지 확인해 보죠.”

“네, 알겠습니다. 성주님.”

내 지시를 받은 최정광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조타실 쪽으로 걸어갔다.

“성의 동쪽과 남쪽만 인적(人的)이 보이고 서쪽과 북쪽은 개척하지 못한 모양이네요.”

“서쪽과 북쪽은 산세가 매우 험해 보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산세가 험한 곳을 개척하고 개발시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산세가 험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면 그만큼 강력하거나 혹은 많은 몬스터들이 터를 잡고 있을 가능성도 크고요.”

선원들을 지휘하며 난 멀리 거리를 두고 섬을 살피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비토섬 말고도 주변에 작은 섬들도 많은 것 같네요.”

“네. 좀 더 가까이 가봐야 알겠지만 여기 보이는 것들 모두 다 꽤 면적이 넓은 섬처럼 보입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이쪽으로 다가가면 청방의 눈을 피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재수 없으면 배가 침몰할 수도 있겠네요.”

“네. 주변에 저리 작은 섬들이 많다면 그만큼 수심이 낮을 테고 조류 역시 어떨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비토섬의 서쪽과 북쪽을 살펴보던 선원들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직 청방 길드가 손을 뻗치지 않은 곳으로 야음을 틈타 접근하면 그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바다가 문제였다.

“저 죄송한데, 저희한테도 좀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가 보기엔 앞쪽으로 가나 옆쪽으로 가나 똑같을 것 같은데 뭐가 차이가 있고 뭐가 위험하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사실 저도 궁금하긴 했습니다.”

선원들과 지도를 보며 접근 루트를 살피고 있는데 지휘진이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우릴 쳐다봤다.

바다를 잘 모르는 그들은 망망대해 속에 덩그러니 있는 비토섬을 보며 뭐가 그리 신경 쓸 게 많은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밀물과 썰물이라는 말은 들어 보셨죠?”

“네. 들어 봤어요.”

“밀물이 되어 바닷물의 높이가 가장 높아졌을 때를 ‘만조’, 썰물이 되어 바닷물의 높이가 가장 낮아졌을 때를 ‘간조’라 해요. 이때의 높이차를 ‘간만의 차’ 또는 ‘조차’라고 하고요. 모든 바다는 공통으로 이 조류 현상을 나타내고요.”

“흠…….”

“흠…….”

“선원들이랑 저는 지금 그 부분을 얘기하는 거예요. 비토섬 인근에 작은 섬들이 많다는 건 그 주위가 수심이 낮을 가능성이 크거든요. 수심이 낮으면 암초도 위협적이지만 간만의 차도 심할 수 있어서 프로펠러의 힘으로 어쩌지 못할 만큼 물이 엄청나게 빠르게 흐르고 최악의 경우엔 우리의 의지가 아닌 바닷물이 인도하는 대로 강제로 배가 움직일 수도 있어요.”

“흠…….”

“흠…….”

설명해 달라고 해서 설명해 줬더니 지휘진의 얼굴이 어째 더 복잡해졌다.

내가 설명을 잘못하는 건지 아니면 그들이 이해력이 부족한 건지 같은 한국말로 대화를 하는데도 잘 전달이 되지 않았다.

“성주님, 제가 설명을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부탁드릴게요.”

우리의 모습이 답답했는지 최정광이 앞으로 나서 설명을 자처했고 난 그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바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땅덩어리가 작을 뿐 3,000개 넘는 섬들이 주위를 포진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50개가 넘는 곳엔 사람들이 기거하고 있고요.”

“우리나라에 그렇게나 섬이 많아요?”

“네. 아주 많습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죠. 그리고 성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나라의 남해와 서해는 조수간만의 차가 엄청나게 심해 옛날부터 우리 뱃사공들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바다에 대한 이해력이 높았죠. 그리고 그 덕분에 수십 년간 이어진 해적질도 모자라 대규모로 침공을 한 왜구들도 막을 수 있었고요.”

“흠…….”

“흠…….”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의 용맹함과 거북선만으로 왜구들을 격파한 줄 알지만, 바다를 이해하고 바닷속 지형을 살폈던 많은 뱃사람 덕분이 컸습니다. 아무리 총과 대포로 무장을 했다지만 배를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아무 의미 없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저 비토섬과 주변 섬들의 형태가 우리나라의 동해와 남해 쪽에 있는 섬들과 비슷한 지형을 품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아, 그러니까 보기엔 잔잔하고 평온해 보이는데 실제론 엄청나게 물살이 빠르거나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는 얘기네요? 그리고 그 물살에 빨려 들어가면 배가 좌초할 수 있고요?”

“네. 맞습니다.”

내가 설명했던 얘기와 크게 달리 설명한 부분이 없는 것 같은데 이번엔 지윤미와 지휘진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가 스카이 캐슬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해 오크들과 싸운 것처럼 바다에서는 조류가 그 지형지물 역할을 하는 거라는 거죠?”

“네. 맞아요. 기습에 성공해 청방 길드를 단번에 몰아내고 그들이 포기하면 좋겠지만 만약 실패하거나 청방에서 피해를 감수하고서도 계속해서 쳐들어온다면 주변 조류 상황을 더 자세히 파악해 두는 쪽이 저 섬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클 거예요.”

최정광과 선원들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지휘진을 쳐다봤다.

육지에선 비전투계 인원들이지만 해전이 펼쳐지면 그들은 상위 헌터들보다 더 중요하고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었고 그걸 스스로 잘 인지하고 있었다.

든든했다.

나야 배낚시를 다니며 수박 겉핥기식으로 들은 게 전부지만 배를 건조하고 운영하는 헬퍼들은 어느새 바다를 이해하는 뱃사람들이 다 되어 있었다.

[저희 대륙 사람들은 비토섬 아래에 용궁이 있다는 얘기가 있어 사람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서 침몰시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우리의 대화를 옆에서 듣던 하몽이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배가 침몰했다고요?”

[네. 사실은 대륙의 수많은 제국과 왕궁에서 비토섬을 차지하기 위해 수십 차례에 걸쳐 인원을 보냈지만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간혹가다 비토섬에 들어갔다 나오는 걸 성공했다 하더라도 두 번째, 혹은 세 번째엔 결국 목숨을 잃었지요. 그래서 퍼거슨 님과 그 일행들 역시 마왕과 마족이 두려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비토섬으로 가기로 했던 거고요. 어차피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죽기는 마찬가지니까 혹시라도 무사히 비토섬에 들어갈 수 있으면 마왕과 마족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이니까요.]

“많은 부분이 지구의 환경과 비슷해 추측하는 것일 뿐 저희의 가정이 틀릴 수도 있어요.”

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달은 지구 둘레를 공전하고 지구는 태양 둘레를 공전한다. 그리고 그 공전과 위치에 따라 지구에 미치는 인력이 커지고 같은 지역이더라도 간만의 차가 심해진다고 한다.

과학이 발달한 지구 사람들은 그렇게 바다를 이해하고 파악하고 있었지만 이능이 만연한 이곳 대륙 사람들은 비토섬의 인근의 거친 바다를 무언가 특별한 존재가 자리 잡고 있어 그런 거라 여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일단 눈에 보이는 대로라면 우리의 짐작대로 지형과 조차로 인해 바다가 거친 것일 수도 있지만 하몽이 얘기한 대로 무언가 특별한 존재가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듯했다.

그런데 그때,

-역시 내가 괜히 너의 목소리를 들었던 게 아니었나 보네. 바다를 이렇게까지 이해하고 있었을지는 몰랐네.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주변에 인어들이 몇몇 어슬렁거리는 게 보이긴 하지만 용궁이나 강력한 마나가 느껴지는 존재나 몬스터는 없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가 예상하는 것처럼 지형적 특성 때문에 물살이 거친 거야. 그러니 그것만 파악하고 접근하면 문제없을 거야.

‘네가 해 줄 수 있어?’

-당연하지. 그러려고 나온 거잖아. 여기서 쉬고 있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응, 알았어. 고마워.’

물의 정령이면서 자신을 파도의 요정이라 소개했던 운디네가 자신의 근거지에 와서 기분이 좋은 신이 난 얼굴로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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