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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151화 (151/255)

151화. 비토섬 (3)

잠시 카프리를 노려보고 나서 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최은빈과 조성태를 쳐다봤다.

“오빠, 그만 항복하세요. 그러다 진짜 크게 다치는 수가 있어요.”

“까불지 말고 계속 해. 난 아직 포기 하지 않았으니까.”

“어휴. @##$#$#$#$슬로우! #$$$#$에너지 볼트!”

조성태는 여전히 슬로우 마법을 이겨내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에너지 볼트를 맞으며 연신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헌데 그는 항복하지 않고 입술에서 피가 새어 나올 만큼 입을 굳게 다물고 전투 의지를 내비쳤다.

무언가 은원이 있거나 원하는 것이 있어 펼쳐진 결투가 아닌데도 필요 이상으로 감정을 소모했다.

저대로 뒀다간 진짜 싸움이 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쯤에서 결투를 중단시키는 게 나을 듯했다.

-조금만 더 놔둬 봐.

‘……?’

-의도가 불순하긴 하지만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자리에서 일어나 결투를 중단시키려 하니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내 앞길을 막았다.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켈베로스와 드래곤 플라이는 물론이고 마계의 마물들은 대부분 마법을 사용해. 계속 세를 확장하며 영토를 넓혀 가다 보면 마법을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파헤칠 방법도 필요하거든.

‘…….’

-네크로맨서를 상대하며 너도 겪어 봤잖아. 하몽의 마법으로 처치하긴 했지만, 마법을 꼭 마법으로 제압할 필요는 없거든. 기다려 봐. 저 인간 눈빛을 보아하니 슬슬 슬로우에 적응을 한 것 같으니까.

‘……?’

-서큐버스가 펼쳤던 현혹 마법은 단계가 높아 바로 파훼할 수 없지만 슬로우는 하위 마법이야. 저 인간 정도 되면 힘으로 찍어 누르거나 적응만 하면 벨 수도 있을 거야.

운디네가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조성태를 쳐다봤다.

내가 보기엔 그저 최은빈의 에너지 볼트에 두들겨 맞고만 있는 것 같은데 그녀는 내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는 듯했다.

“오빠 그만 항복하시…… 으읔.”

“내가 얘기했지. 잡히면 죽는다고!”

몸으로 계속 에너지 볼트를 받아 내던 조성태가 기어코 창을 휘둘러 최은빈의 몸에 명중시켰다.

퍽! 퍽! 퍽!

“어, 어떻게…… 분명 슬로우 지속 시간까지 계산해서 계속 시전했는데…….”

“마지막 한 방은 안 걸렸거든. 흐흐.”

창에 복부를 맞은 고통으로 무릎을 꿇은 최은빈을 보며 조성태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슬로우 마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지 알았는데 운디네의 짐작대로 마법을 배워 놓고도 일부러 모른 척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듯했다.

백전노장.

가진바 마나의 크기와 농도 이외에도 그는 아무런 정보 없이 이곳 대륙에 들어와 수없이 많은 몬스터와 전투를 치른 인물이라 그런지 임기응변이 좋았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그는 상황을 역전시켰고 어느새 그의 창이 최은빈의 목에 겨누어져 있었다.

“은빈아.”

“억울해요. 다시 해요. 다시 하면…….”

“알아. 슬로우 마법을 걸고 네가 파이어볼 같은 강력한 파괴 마법을 시전했으면 진즉에 승패가 갈렸다는 걸.”

“오빠…….”

“그걸 알면서도 그동안 쭉 이겨왔던 상대에게 항복을 하는 게 자존심도 상하고 분하더라고. 그러니까 오늘은 이쯤하고 우리 비긴 걸로 하면 안 될까?”

“치! 알았어요.”

최은빈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성태가 다칠까 염려되어 약한 마법을 시전했던 배려로 인해 역전을 당한 게 분한 듯했지만, 한발 양보한 듯했다.

짝짝짝짝짝!

“두 분 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 빙그레 웃으며 박수를 쳤다.

초반에 최은빈이 살짝 얄밉게 굴기는 했지만, 끝은 아름다웠다.

재결투를 하면 승리를 할 수 있을 텐데도 최은빈은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상대의 방심을 이용해 승리를 따낸 조성태 역시 스스로 몸을 낮추었다.

승자는 없지만, 패자도 없는 훈훈한 결투로 마무리가 됐다.

“카프리 저 모습을 보고 뭔가 느끼는 거 없습니까?”

“최은빈 부대장이 이긴 거다. 애초에 봐주지 않았으면…….”

“그거 말고요. 제가 묻는 건 그게 아니에요.”

난 코끝을 찡그리고 눈에 힘을 주며 카프리를 노려봤다.

아마 처음인 거 같았다.

내가 이렇게 카프리를 적대적으로 쳐다본 것은.

“조성태 마스터가 내 예상보다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라고 했어요. 저도 카프리가 뭘 보여주고 싶었는지 그리고 뭘 원하는지 알겠지만, 이번에도 역시 방법이 그리 좋지는 않았어요.”

“……?!”

내가 나무라듯 얘기하자 카프리의 얼굴이 찡그려지고 붉으락푸르락해지며 피부색마저 변했다.

“일전에 부성이도 얘기했지만, 그때 카프리가 한 말 중에 틀린 말은 없었어요. 그리고 지금 눈으로 직접 증명까지 했고요.”

“근데도 내게 이러는 건가? 성주?”

“말했잖아요. 사과를 원해서 이런 거라면 그 방법이 잘못됐다고. 카프리가 정말 지원이 형을 친구로 생각했다면 다른 좋은 방법도 많았을 거예요. 근데 제가 보기엔 지금 카프리나 지원이 형이나 둘 다 좋은 방법을 떠올리고 실행할 마음가짐은 안 되는 것 같네요.”

“…….”

“따라오세요. 부성아, 넌 지원이 형을 불러 줘.”

“……네.”

난 카프리의 팔목을 잡고 조성태와 최은빈이 결투를 했던 중앙으로 데리고 갔다.

어지간하면 알아서 둘이 화해하길 기다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 듯했다.

이대로 놔뒀다간 감정이 상하다 못해 자존심 싸움으로 커질 것 같았다.

그렇게까지 되면 내가 손을 쓴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 있었다.

친구이기에. 그리고 또 가족이기에.

함께 밥 먹고 살 부딪히다 보면 어지간한 일들은 알아서 풀리겠지만 최악의 경우 평생 등을 질 수도 있기에.

몇 번 안 되긴 하지만 실제로 별거 아닌 거로 싸웠다가 그 감정의 골이 깊어져 아예 등을 돌리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두 분 다 먼저 사과할 마음은 없는 거죠?”

“…….”

“…….”

난 마지막으로 장지원과 카프리에게 자발적으로 사과하고 화해할 기회를 주었지만 둘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둘 다 무릎 꿇고 손드세요.”

“……?!”

“뭐라고? 지금 나한테 여기서 무릎 꿇고 손을 들라고?”

“네. 둘 다 저보다 연륜이 높은 분들이라 알아서 풀릴 줄 알고 기다렸는데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아이처럼 삐져 있으니 수준에 맞춰 드리려고요. 스카이 캐슬의 성주로서 명령합니다. 두 분 다 무릎 꿇고 손드세요.”

“끙…….”

“끙…….”

장지원과 카프리가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몸을 돌리고 쳐다보지도 않더니 성주로서 내가 엄포를 놓자 얼굴에 두려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꿇으라고 했어요. 성주의 명령을 어길 참인가요?”

“어긴다는 게 아니라…….”

“…….”

장지원과 카프리가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슬며시 무릎을 굽히기 시작했다.

“멍청이 네가 먼저 사과해라. 그럼 받아 주겠다. 그리고 나도 사과를 하겠다.”

“네가 먼저 재수 없는 말로 내 가슴을 후벼 팠잖아. 그러니 네가 먼저 해. 그럼 나도 받아 줄게.”

“드워프말 끝까지 들으라고 했다. 난 마지막 반전이 있었는데 네가 끝까지 안 듣고 삐져서 간 거다. 그러니 네가 먼저 사과하는 게 맞다.”

일주일 내내 서로 마주쳐도 투명인간 취급하던 이들을 기껏 붙여 놨더니 무릎을 꿇고 손을 들면서도 또 말다툼하기 시작했다.

진짜 나이만 먹었지. 애들이 따로 없었다.

“형님도 동생들 보기 창피하시겠지만, 저도 한때 마스터로 모셨던 분을 이런 모습을 취하게 하는 게 마음이 편치가 않습니다.”

“뭐야? 그 말은 나한테 먼저 사과하라는 거야?”

“먼저 사과하라고 한 적 없어요. 전 두 분 중 누구의 편도 들어주고 싶지 않거든요. 제가 원하는 건 두 분이 화해하는 것뿐이에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눈치를 안 볼 테고. 지원해 줄 사람들을 선별할 수도 있을 테니.”

난 장지원과 카프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귀환 마법진도 완성되고 드래곤 갑옷도 완성되고 오늘은 참 좋은 날이네요. 그래서 전 술과 고기를 풀어 잔치를 열 거예요. 그러니 두 분도 잔치에 참여하고 싶으면 화해를 하고 오세요. 만약 화해하지 않고 이 자리를 벗어 나거나 자세를 풀면 영지에서 추방시킬 겁니다. 명심하세요.”

“…….”

“…….”

난 세상 서운한 표정을 짓고 날 쳐다보는 인간과 드워프를 뒤로하고 다시 지휘진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 *

카프리와 장지원 마스터 때문에 시야와 생각이 분산되긴 했지만 귀환 마법진의 완성은 드워프 종족을 구하고 마족과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하는 우리에게 있어 정말 큰 도움이 될 시선이었다.

언데드 숲을 정화하고 네크로맨서와 수십만의 언데드와 싸웠던 영지민을 위해 난 오늘 하루 모든 작업을 중단하고 술과 고기를 풀었다.

“좋은 날이 맞긴 맞아서 먹기는 하는데 공방 헬퍼들과 태백산맥 헌터들은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에요.”

멧돼지 숯불 고기를 앞에 두고도 이부성이 선뜻 젓가락을 들지 못하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자신들을 이끄는 대장들이 중앙 광장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으니 마음이 불편해서인지 수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눈치를 살피며 잔치를 즐기지 못하는 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진짜 진풍경이네요. 이곳 대륙을 지배하던 제국의 황제와 상위 마족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 분인데 저리 무릎을 꿇고 손을 들며 벌서는 모습을 볼 줄은 몰랐네요. 하하.]

장작불에 구운 호박고구마를 크게 한입 베어 문 하몽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중앙 광장을 쳐다봤다.

고기와 술이 잔뜩 준비되어 있었지만 하몽과 엘프들은 채소들만 손을 댔다.

‘이쯤 했으면 못 이기는 척하고 화해했으면 좋겠는데…….’

사실 나도 고맙고 미안하긴 했다.

고집불통에 안하무인 같지만 그래도 내 말은 따라주니 오히려 황송할 지경이었다.

[만약 퍼거슨 님이 살아 있다면 이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

하몽이 로브 안쪽에서 지도 하나를 꺼내 내게 보여 주었다.

“이건?”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니 일전에 카프리가 석유가 있다고 했던 섬의 위치를 그려 놓은 것이었다.

[마왕과 마족에게 대항하기 위해 모인 연합군이 패하고 남은 인간 세력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바다를 건넜다고 꼭 이리로 갔다는 보장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드워프 종족이 갇혀 있는 화룡의 지대. 그레이 기사단이 머무는 늑대인간의 숲 모두 지형이 험난하고 몬스터들에 의해 길이 막혀 있을 뿐 모두 육지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바다를 건넜다는 건 이 섬으로 갔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

[비토섬. 직접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이 섬 밑 바다 깊은 곳에 용궁이 있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마왕과 마족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용궁까지 공격하진 못했을 거고 인간 세력은 용궁을 방패 삼아 그쪽으로 피신을 했을 겁니다.]

하몽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으로 섬을 가리켰다.

설명하다 보니 또 마왕과 마족에 대한 두려움에 중립을 선언했던 과거 기억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카프리가 화해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하몽 덕분에 퍼거슨이 어디 있는지 알아낸 것 같았다.

만약 하몽의 말대로 이 섬으로 퍼거슨이 피신을 했다면 이 대륙에 살고 있던 인간들마저 만나 볼 수 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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