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150화 (150/255)

150화. 비토섬 (2)

‘싫어서 싸운 게 아니니 시간이 지나면 풀리겠지.’

난 걱정 가득한 표정을 한 이부성을 뒤로 하고 중앙 광장으로 걸어갔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모양인데 그의 바람을 들어주긴 힘들었다.

사십 평생을 살아오며 사람들과 부딪혔던 내 경험이 지금은 둘을 화해시키기 위해 무언가 하려고 하기보다 시간을 주는 게 현명하다고 알려 주고 있었다.

학교생활을 하며, 직장 생활을 하며 누구나 이런 경험이 한 번정도는 있지 않은가.

괜히 화해를 시키기 위해 자리를 마련하고 액션을 취하면 오히려 신이 나서 더 날을 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어차피 장지원 마스터나 카프리나 이미 이곳에 터를 잡았고 떠날 사람들이 아니 그냥 모른 체하고 있다 보면 힘이 빠져 어영부영 예전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클 듯싶다.

[오셨습니까. 성주님.]

“귀환 마법진이 완성됐다고 해서 구경하러 왔어요.”

[네. 안 그래도 필드에 나간 헌터들이랑 게이트에 가 있는 헌터들과 약속된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마침 잘 오셨습니다.]

귀환 마법진에 도착하자 하몽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인사를 건네 왔다.

그리고 이내,

“읔. 눈부셔.”

“아씨. 선글라스라도 끼고 올걸.”

귀환 마법진에서 마치 화창한 날의 태양처럼 절로 눈을 감기게 할 만큼 환하고 큰 빛을 뿜어 댔다.

터벅터벅.

“헐…… 대장 진짜 스카이 캐슬이에요.”

“미친! 눈 한번 깜빡했더니 진짜 이곳에 도착했네.”

“그러게. 내가 직접 몸으로 체험을 했는데도 믿어지지 않는다.”

찬란하게 빛났던 빛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어느새 조성태와 흑기사 부대 헌터들이 자리해 있었다.

다들 자신들의 베이스캠프에 있다가 텔레포트를 했는지 완전 넋이 나간 얼굴들이었다.

반짝반짝.

반짝반짝.

“누가 더 오나 보네요. 모두 뒤로 물러나 주세요.”

“……네.”

조성태와 흑기사 부대가 도착하고 이내 다시 마법진에서 빛을 뿜어 댔고 마법진 발동을 돕는 헬퍼가 사람들을 뒤로 물렸다.

“헉! 진짜 스카이 캐슬이에요.”

“와아! 설명을 들으면서도 설마 했는데 진짜 텔레포트를 하다니…….”

이번에 도착한 사람들은 최은빈과 마녀 부대였고 뒤이어서 계속,

플로라 길드.

화랑 연합.

울프.

레인보우.

귀환 마법진을 체험하길 원했던 길드의 헌터들이 속속 도착했다.

[걱정했는데 제대로 발동이 된 것 같네요. 모두 이동하시는 도중에 불편함은 없었죠?]

“하몽 님이 주신 양피지를 찢고 나서 바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불편해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몸소 귀환 마법진의 위용을 확인한 헌터들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하몽을 쳐다봤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마치 재밌는 놀이 기구를 타고나서 한 번 더 타고 싶어 하는 얼굴들이었다.

[귀환 마법 주문서입니다. 대륙 어디에 있든 이 양피지를 찢으면 귀환 마법진으로 텔레포트를 할 수 있습니다. 헌데 아쉽게도 차원은 넘나들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재난 관리 본부 쪽에도 양피지를 주고 지구고 건너가 찢으라고 했는데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하몽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었을 거라 짐작되는 주문서를 건네주었다.

“양가죽인가요?”

[네. 변지섭 헬퍼한테 요청을 해서 양가죽을 비롯해 동물들의 가죽을 지원받아 만들었습니다.]

“꼭 살아 있는 동물의 가죽이 필요한가요?”

[꼭 그렇지는 않지만 마법진을 그리고 그 안에 마나를 머금게 하고 그걸 유지하려면 쉽게 찢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일반 종이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김용규 본부장한테 인조 가죽을 공급해 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그걸로 주문서를 만들어 보세요.”

[……네.]

난 약간 굳은 표정을 지으며 다른 원료로 주문서를 만들길 권유했다.

귀환 마법진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났고 모두 그 성능에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짐작건대 이대로 활성화를 시키면 하루에도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귀환 주문서를 사용해 텔레포트를 할 테고 그렇게 되면 이곳의 동물들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다.

먹기 위해 도축을 하는 건 용납이 되지만 다른 목적을 위해 도축을 하는 건 탐탁지 않았다.

“최은빈 마스터. 어때? 갑옷 쓸 만해?”

“네. 최고예요. 카프리 님 말씀처럼 갑옷에 마나가 담긴 공격에 충격을 받으니 팔찌에 마나가 차올랐어요!”

“카프리 님 짱이예요!”

붉은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옷을 입고 있는 최은빈과 마녀 부대 헌터들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저게 용 갑옷이라고?”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마녀 부대 헌터들을 쳐다봤다.

용 갑옷이라고 해서 체인 메일과 같은 형태를 예상했는데 그녀들은 마치 걸 그룹 가수의 무대 의상과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성주, 고정 관념을 버려라. 방어구라고 해서 꼭 몸을 칭칭 감고 있을 필요는 없다. 드래곤의 비늘과 피가 들어간 무구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외형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건 그렇지만…….”

“성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보기엔 그냥 일반 옷처럼 보이고 노출된 부분도 많지만, 방어력이 장난 아니에요.”

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보자 최은빈이 미소를 지으며 몸을 빙그르르 돌았다.

내가 보기엔 뭔가 하늘하늘한 게 사냥이 아니라 무대 위로 올라가 춤을 추면 어울릴 것 같았는데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모양이었다.

“제 허리 보이시죠? 이 벨트가 멋으로 있는 것 같지만 치료 키트와 해독 키트가 장착되어 있어요.”

“치료 키트랑 해독 키트요?”

“네. 기존에는 해골이나 늑대인간한테 긁히거나 물리면 동충하초 포션과 엔트 주사기를 꺼내서 마시고 찔러야 했는데 벨트를 장착하고 있으니까 알아서 투약해 주더라고요.”

“헐…….”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최은빈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벨트를 쳐다봤다.

벨트 역시 헬퍼들이 메고 있는 거와 달리 무언가 적재를 할 수 있는 외형이 아니라 화려하기만 했는데 꽤 뛰어난 성능을 가진 듯했다.

[회복 포션과 해독 주사, 그린 피쉬, 바이올렛 피쉬…… 다들 위험에 빠졌을 때 큰 도움이 되는 것들이긴 하지만 이용하는 데 있어 불편함이 많은 것 같아 제가 연금술을 이용해 농축시켜 봤습니다. 그리고 그걸 벨트에 아공간을 만들어 넣어 놓은 것입니다.]

“아…….”

내가 놀라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용 갑옷을 쳐다보자 하몽이 설명해 주었다.

카프리와 공방 헬퍼. 그리고 하몽과 엘프들이 잠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만들었다고 하더니 그동안 영지에서 개발하고 발견해 낸 이능의 집약체였다.

“조성태 마스터, 최은빈 부대장과 겨뤄 보겠나?”

“은빈이랑 둘이 결투를 하라고요? 일대일로요?”

“왜 자신 없나?”

“자신 없는 게 아니라 일대일로 결투를 하는 건 애초에 싸움이 안 될 텐데요?”

“그건 네가 당연히 이긴다는 말이지?”

“…….”

카프리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조성태 마스터를 도발했고 조성태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파티를 짜고 다수 대 다수의 전투라면 모를까 육체 능력이 떨어지고 마법 딜레이가 있는 마법사가 창기사와 일대일로 싸우는 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최은빈 부대장. 너도 같은 생각이야?”

“아니요. 예전의 저라면 모를까. 지금은 지고 싶어도 질 자신이 없어요. 성태 오빠, 다치지 않게 할 테니 한번 붙어 보죠.”

“…….”

카프리와 눈을 마주친 최은빈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조성태를 쳐다봤다. 그녀마저 손을 까딱거리며 조성태를 도발했다.

“뭔가 있네요.”

“그러게. 카프리가 뭔가 또 꿍꿍이가 있는 것 같네.”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창기사 VS 마법사.

같은 근접캐릭터도 아니고 이상한 구성으로 결투를 조장하는 거로 미루어봤을 때 카프리는 일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증명하려 하는 것 같았다.

No.1 그레이.

조성태는 이곳에서 나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사람이었고 그의 길드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세력으로 알려져 있었다.

만약 카프리와 최은빈이 자신 있어 하는 것처럼 정말 결투에서 이긴다면 그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것이었다.

“성주님 허락해 주신다면 은빈이와 겨뤄 보고 싶습니다.”

“마스터까지 왜 이래요?”

“저한테 한 얘기가 아니라 모른 체하려고 했는데 카프리가 장지원 마스터를 언급하며 근접 클래스들을 통 들어 무시했다고 들었습니다.”

“끙…….”

“카프리한테 일반화의 오류에 대해 알려 주고 싶네요. 그리고 그런 카프리를 믿고 오만하게 구는 제 여동생도 혼 좀 내줘야 할 것 같네요. 다치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네.”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카프리와 최은빈의 도발이 먹혀들었는지 조성태도 살짝 흥분한 듯했다. 내가 지금 허락하지 않으면 따로 자리를 만들어서라도 결투를 할 기세였다.

“모두 뒤로 물러나세요.”

“네.”

“네.”

조성태와 최은빈이 결투 자세를 취하자 사람들이 넓게 원을 그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금세 소문이 났는지 영지 곳곳에서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몰려들기 시작했다.

“은빈아, 같은 편이 돼서 잊어버렸나 본데 오빠 흑기사 부대장 조성태야!”

“네. 잘 알고 있어요. 성주님이 각성하기 전에 오빠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는 것도. 근데 이제 그 자리 저한테 내주셔야 할 것 같아요. #$#$#$#$헤이!”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최은빈이 자신에게 버프 마법을 시전했다.

보아하니 그린피쉬와 바이올렛 피쉬처럼 몸놀림을 빠르게 도와주는 마법인 듯했다.

“고작 헤이 마법으로 오빠의 창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얍!

조성태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빠르고 날랬다.

나니까 뛰어오른 모습을 캐치했지. 어지간한 사람들은 조성태가 텔레포트를 한 건 아닐까 하고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순식간에 최은빈에게 날아갔다.

허나,

“#$#$#$#$슬로우!”

“…….”

“#$#$#$#$슬로우!”

“.....?!”

“#$#$#$#$슬로우! 오빠 뭐예요? 너무 느리잖아요?”

막상 최은빈을 사정거리에 넣은 그의 창이 현저하게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니 창 뿐만이 아니라 마치 속도를 늦춰 놓은 영상을 보는 것처럼 그의 몸이 전체적으로 느려졌다.

“#$#$#$#$에너지 볼트!”

“읔.”

“#$#$#$#$에너지 볼트!”

“읔! 이씨.”

최은빈은 느리디느린 조성태의 창을 피하면서 에너지 볼트를 만들어냈고 만들어 내는 족족 조성태의 몸에 적중했다.

1단계 마법이라 A급 헌터의 생명을 해칠 정도의 파괴력은 없었지만, 조성태의 표정을 보아하니 꽤 아픈 모양이었다.

하몽에게 가르침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하위 마법이라 그런지 벌써 능숙하게 사용했다.

“하몽 님이 그러셨어요. 상위 헌터를 상대한다고 꼭 강한 마법을 구사할 필요는 없다고. $##$#$에너지 볼트!”

“읔! 너 잡히면 죽을 줄 알아!”

“제가 얘기했잖아요. 지고 싶어도 질 자신이 없다고. 호호.”

최은빈은 헤이 마법으로 빨라진 반면 조성태는 연속으로 펼쳐진 슬로우 마법으로 인해 몸이 느려져 둘의 속도는 확연하게 차이가 났고 앉은 자리에서 계속 에너지 볼트를 몸으로 받아 내던 조성태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약이 많이 오른 듯했다.

“이게 지금 스카이 캐슬 전사들의 현실이다. 고작 하위 마법조차 극복하지 못해 애를 먹는 저 모습. 만약 진짜 전투였다면 조성태 마스터는 진즉에 죽었다. 그런데도 계속 나를 나무랄 거야?”

“…….”

“…….”

“멍청이한테 얘기해서 빨리 사과하라고 해.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이런 굴욕을 당하게 될 테니까.”

결투를 지켜보던 카프리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이부성을 번갈아 쳐다봤다.

‘심술쟁이 영감 같으니라고.’

이미 알고 있었지만, 뒤끝이 장난이 아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