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비토섬 (1)
터벅터벅.
두 주먹을 불끈 말아 쥐고 활화산처럼 이글거리는 눈으로 한참 동안 카프리를 노려보던 장지원이 등을 홱 돌리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멍청이, 어디 가냐. 일어난 김에 막걸리 한잔 같이하자.”
“놔.”
“막걸리 한잔하자고.”
“놓으라고 했다.”
탁!
“…….”
“…….”
술 생각이 났는지 카프리가 장지원을 따라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잡았는데 장지원이 마치 부러뜨리기라도 하려는 것 마냥 강한 힘으로 카프리의 팔을 내리쳤다.
‘제대로 삐진 것 같은데…….’
장지원의 과격한 행동으로 인해 우리 주위를 깊은 침묵이 감쌌다.
카프리는 물론이고 지휘진 모두 많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다시는 너랑 술 안 마신다. 말도 섞지 않을 거고. 그러니 앞으로 내게 아는 척 하지 마라. 너랑 이렇게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고 화가 나니까.”
“......”
“…….”
장지원이 원수라도 만난 것같이 카프리를 노려보며 어깃장을 부렸다.
진짜 화가 많이 난 듯했다.
평소 땐 화를 내도 크게 감흥이 없었는데 지금은 마치 싸움을 앞둔 늑대가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기세가 흉흉했다.
“너희가 지원을 받는 것보다 마녀 부대 쪽이 효율이 높으니까 성주가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내 의견을 말한 건데 그게 잘못 한 거냐? 왜 나한테 시비야!”
“카프리 그만 하세요.”
그대로 두면 둘이 치고받고 싸울 것 같아 난 부랴부랴 다가가 카프리를 안았다.
“왜 날 잡아. 성주 네가 말 해 봐라. 내가 잘못한 거야?”
“나중에, 나중에 얘기해요.”
쾅!
“재수 없는 새끼.”
“…….”
“…….”
내가 카프리를 붙잡자 장지원이 옆에 있는 의자를 걷어차고선 자신의 숙소로 걸어갔다.
카프리는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장지원의 뒷모습과 지휘진들을 번갈아 쳐다봤고.
그런데,
“어휴. 제가 언제 카프리 님 사고 한번 칠 줄 알았습니다.”
“뭐라고? 너도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는 건가?”
설상가상 이부성마저 한숨까지 내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카프리 님이 잘못한 건 없죠. 카프리 님이 한 말 중에 틀린 말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근데 때로는 말을 아끼고 조심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에요. 아무리 옳고 합리적인 말이라고 하더라도 듣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엄청나게 아플 때도 많거든요.”
“내가 멍청이를 아프게 했다고? 이해하기 어렵다. 쉽게 말 해 줘라.”
“태백산맥 길드는 약해요. 그건 저도 알고 지원이 형도 알아요. 물론 여기 있는 지휘진들 모두 알고 있고요. 그래서 지원이 형도 욕심을 부린 거예요. 마녀 부대 인원이 선별돼서 지원을 받는 게 더 효율적이겠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배제되다 보면 태백산맥 사람들은 결국 영지 경비나 서고 공사 현장에 투입되다가 헌터가 아닌 헬퍼로 전락하고 말 테니까요.”
이부성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장지원을 대변해 주었다.
그가 이런 이유로 화를 냈다고 직접 말을 한 적은 없었지만 이부성의 짐작이 맞을 듯했다.
팩트 폭행.
장지원의 입장에선 카프리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 뼈를 때리는 기분이었을 테니까.
“그거야 태백산맥이 약하니까…….”
“처음 우리와 카프리 님이 만났을 때 오크들에게 고문을 받았던 카프리 님은 잔뜩 날이 서서 헌터들에게 상해를 입히고 집기를 부수며 반항했어요. 그때의 카프리 님은 지금처럼 영지에 도움을 주지도 않았고 뛰어난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능력도 증명이 안 됐는데도 그때 장지원 마스터는 아무런 조건과 요구 없이 카프리 님을 챙기고 살폈죠. 애지중지하며 몰래 숨겨 놓고 먹었던 소주까지 나눠 주면서.”
“흠…….”
“그래서 지원이 형이 저러는 겁니다. 카프리 님이 하는 말이 다 맞지만, 서운한 건 사실이니까요. 카프리 님은 합리적인 분이라 이성대로, 계산대로 생각하고 말할지 모르지만 지원이 형은 아니니까요.”
“흠…….”
이부성의 말이 이어질수록 카프리의 표정이 점점 변해갔다.
내가 태백산맥 길드에 헬퍼로서 처음 가입을 했을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장지원 마스터는 공사 구분을 잘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리고 그게 그의 치명적인 단점이자 장점이었다.
길드 차원에서 행사를 하고 결정을 할 때도 그는 숫자를 매기며 계산을 하는 것보다 가슴과 정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래서 지금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이었고.
믿을만하고 성실하다는 여동생의 한마디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날 헬퍼로서 가입 받아 천만 원에 이르는 많은 월급까지 약속하고 이곳에 데려왔으니까.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도 멍청이를 좋아하는 거다. 백 년을 넘게 살면서 누군가 내게 아무런 요구와 조건 없이 선심을 베풀고 정을 나누어 준 적이 없었다. 멍청이가 처음이었다. 난 분명히 말했다. 지!금!으로썬 마녀 부대 인원을 선별해서 육성하는 게 효율이 높다고.”
“네?”
“……?”
“……?”
카프리가 ‘지금’이라는 말에 악센트를 넣으며 말을 했고 사람들이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를 지그시 쳐다봤다.
터벅터벅.
“이 검에는 일렉트릭 쇼크 마법진이 그려져 있고 이 방패에는 쇼크 스턴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이 마법진들을 내가 만들어 냈을 것 같나?”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걸어가 해골 검과 해골 방패를 집어 든 카프리가 이부성과 지휘진을 향해 마법진을 보여 주었다.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술식이 아니군요. 기사의 것이네요.]
사람들이 모두 하몽을 쳐다봤고 해골 무구들을 살펴본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법사들이 마법을 만들고 또 변형해서 업그레이드시키곤 합니다. 그리고 카프리 님께선 그걸 또 변형시켜 무구에 장착을 시키고요. 근데 여기에 새겨져 있는 마법진은 마법사의 술식이 아닙니다.]
“그럼?”
“……?”
“하몽이 말 한 그대로다. 이 마법진은 켄트 왕국 근위 기사단장 퍼거슨이 썼던 스킬을 변형해 내가 만든 거다.”
“헐…….”
“헐…….”
나는 물론이고 지휘진 모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마법진이기에 당연히 마법인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하몽이 마나 홀과 마나 로드 그리고 술식과 룬어로 마법을 발현하는 것처럼 이곳 대륙의 전사들은 마나 홀과 마나 로드, 그리고 마나 심법을 사용해 육체를 단련한 것은 물론이고 이것처럼 이능까지 발현했다.”
“……?!”
“……?!”
“흑기사 부대와 태백산맥 헌터처럼 단순히 마나를 퍼부어 육체를 감싸고 무기에 덮어씌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이렇게 오러와 오러 블레이드로 전기를 일으키고 상대를 기절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마법사의 마법까지 베어 버렸다.”
“그럼 혹시 그 전사들 중에 살아 있는 존재가 있는 건가요?”
난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지금까지 겪은 그의 성정을 봤을 때 이런 얘기를 괜히 꺼내지는 않았을 듯했다.
마법사 하몽처럼 이곳 대륙 어딘가에 강한 전사가 살아 있고 카프리가 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안 가르쳐 준다.”
“네?”
“……?”
“나도 마음 상했다. 멍청이한테 가서 나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해라. 그럼 나도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고 얘기해 준다.”
“끙…….”
“끙…….”
구구절절 설명을 이어가던 카프리가 별안간 말문을 닫았다.
‘이런 고약한 영감탱이 같으니라고.’
아예 말을 꺼내질 말던가.
사람을 이렇게 들뜨게 해놓고 입을 닫아 버리니 얼굴이 후끈거릴 만큼 약이 올랐다.
“옛말은 드워프 말은 끝까지 들으라고 했다. 우리 드워프 거짓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음에 없는 말 하지 못한다. 하지만 난 멍청이를 좋아하고 도와주려 했는데 멍청이 나한테 상처 줬다. 나도 이대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터벅터벅.
“…….”
“…….”
카프리가 자신의 할 말만 하고 장지원 마스터처럼 등을 홱 돌리고 자신의 숙소로 걸어갔다.
‘아 놔!’
머리가 지끈거렸다.
마흔다섯 살 먹은 인간이 회의하다 삐져서 깽판 치고 간 것도 당황스러운데 백 년도 넘게 산 드워프마저 그 삐진 인간이 한 말에 상처를 받아 영지에 큰 도움이 될 만한 존재가 어디 있는지 알면서 말해 주지 않았다.
“형,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죠?”
“일단 잠 좀 자고 내일 고민해 보죠.”
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지금은 둘 다 감정이 격앙되어 있어 화해를 시키긴 힘들 것 같고 시간을 두고 지켜보며 타이밍을 봐야 할 듯했다.
* * *
“드래곤은 잘 자라고 있죠?”
“네. 잘 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구에서 들여온 특수 장비로 드래곤의 알을 살펴보던 이근학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돌덩어리처럼 단단한 알로 둘러싸여 있어 육안으론 무사한지 식별되지 않았지만, 특수 카메라로 비추니 마치 엑스레이 사진처럼 알 속에 있는 드래곤이 꼼지락거리는 게 보였다.
하늘 병원 옆에 위치한 비닐하우스.
겉으로 보기엔 시골 농촌에 가면 볼 수 있는 평범한 비닐하우스였지만 지금 이곳엔 온도와 습도를 비롯한 미세 먼지와 빛의 밝기까지 조절할 수 있는 최첨단 기기가 갖춰져 있었다.
동충하초를 양식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지금은 드래곤의 알이 그 혜택을 받고 있었다.
나의 지시를 받은 이근학은 레어 안에서 씨엘이 품고 있었던 것같이 모든 것을 조절해 드래곤의 알을 관리했다.
짐작건대 큰 사고만 생기지 않는다면 조만간 씨엘의 자식이 알을 깨고 나올 수 있을 듯했다.
“여기 계신지 모르고 한참을 찾았네요.”
“왜 또 무슨 일 생겼어?”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한참 드래곤의 알을 구경하고 있는데 이부성이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선 날 찾아왔다.
“귀환 마법진이 완성됐어요. 그리고 카프리와 하몽이 합작해서 드래곤 갑옷도 만들어 낸 것 같아요.”
“벌써 갑옷을 만들었다고? 한참 걸릴 것처럼 얘기하더니?”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처럼 드래곤의 부산물은 생명력을 잃고도 마나를 품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 강력함을 자랑했다. 그로 인해 카프리는 부산물들을 가공하는 게 쉽지 않을 것처럼 얘기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만들어 내었다.
“공방 헬퍼들은 물론이고 카프리가 닦달해서 하몽 님이랑 엘프들도 일주일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몰두를 한 모양이에요.”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장지원과 말다툼을 하고 이부성에게 면박을 당한 이후로 카프리는 마치 시위라도 하는 것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으며 작업에만 몰두했다.
중립.
벌써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지만 난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다.
둘 다 크게 잘못한 건 없지만 잘한 것도 없기에.
“카프리 삐져서 저하고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해요.”
“지원이 형은?”
“지원이 형은 근무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취해 있어서 얘기하고 싶어도 못하고요.”
“쯧쯧.”
“계속 모른 체하실 거예요? 형이 좀 나서주셔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나선다고 뾰족한 방법이 있나. 용 갑옷이나 구경하러 가자.”
“……네.”
난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등학생들도 아니고 다 큰 어른들이 싸워서 삐졌는데 내가 나선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을 듯했다. 그리고 굳이 끼고 싶지도 않았다. 그 누구의 편도 들든 다른 한쪽은 내게 섭섭하다고 난리를 칠 게 분명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