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드워프 구출 작전 (2)
“성주님, 주무십니까?”
“……?”
“저 김용규입니다.”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아까 못한 말이 있어서 지휘진들이랑 잠시 들렸습니다.”
새벽 2시.
한창 꿈나라에 빠져 있는데 김용규가 지휘진과 하몽, 카프리, 오키도키까지 데리고 내 숙소에 찾아왔다.
“자고 계셨군요. 죄송합니다. 아까 못한 말들이 많은데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아니에요. 앉으세요.”
난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와 지휘진에게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다들 당장 전쟁이라도 나가는 사람같이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보아하니 제법 심각한 얘기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일단 이것부터 보시죠. 임 팀장.”
“네.”
김용규와 눈을 마주친 임풍훈 팀장이 손에 들고 있는 서류철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청방 길드.
헌터 수 이만 이상. (추정)
한국의 버팔로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일본, 북한, 러시아 헌터 길드들와 은밀히 동맹을 맺고 있을 거라 사료됨.
.
.
.
」
「마스터 김연창 ?급 근접 이능 특화.
*외부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중국에서도 데스 나이트가 출몰한 적이 있는데 김연창이 간부들만 이끌고 가서 토벌했다는 정황과 증거 발견. 미스릴과 아이템이 아닌 자체 이능으로 전면전을 치러서 해치운 것으로 추정.
부마스터 권혁 S급 마법사.
*청방 길드가 진행하는 레이드를 지휘하는 브레인.
실질적으로 청방 길드를 이끄는 리더 중의 한 명.
부마스터 장원재 S급 정령사?
활과 마법을 주로 사용하며 때론 어떤 이능인지 확인이 안 되는 신묘한 힘을 사용함.
뛰어난 두뇌와 지략으로 많은 길드원이 충성하고 있음.
권혁과 함께 실질적으로 청방 길드를 운영하는 브레인 중의 한 명.
부마스터 김지훈 ???
* ???
부마스터 강유 ????
* ???
.
.
.」
「화룡의 둥지.
켈베로스.
불골렘.
드래곤 플라이.
샐러맨더.
이프리트.
피닉스.
.
.
.」
서류철 안에는 청방 길드 중요 인사들의 프로필과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대륙의 지도와 몬스터에 대한 것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언제 이런걸?”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를 쳐다봤다.
서류철에 끼어 있던 지도를 살펴보니 드워프들이 갇혀서 혹사를 당하고 있는 성과 주변 위치의 지형까지 제법 자세히 그려져 있었다.
“신분을 감추고 청방 길드에 침투해 있는 저희 요원들이 알아낸 것들입니다. 이것들을 알아내기 위해서 백여 명에 이르는 요원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계속 정보를 모으고 있습니다.”
김용규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것들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설명해 주었다.
청방 길드가 두려워 그냥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었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버팔로와 조성태를 처리한 성주님처럼 직접적인 무력 충돌을 한 적은 없지만,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청방 길드에 대한 첩보전은 계속 진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역시 지금 이곳 스카이 캐슬에 스파이를 심어 놓았을 가능성이 크고요. 그래서 아까 보여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사람들이 잠든 시간을 정해 찾아온 겁니다.”
“아…….”
난 반쯤 넋이 나가 김용규를 쳐다봤다.
늙은 생강이 맵다고 하더니. 오랜 시간 나랏일을 해서 그런지 그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하며 손을 뻗치고 있었다.
[켈베로스와 드래곤 플라이도 모자라 샐러맨더까지 서식하면 변신을 한다 해도 숨어 들어가긴 힘들 것 같습니다.]
“……?”
[인간과 오크. 중간계의 종족들이 전염된 언데드 몬스터와 달리 여기 적혀 있는 몬스터들은 그 뿌리가 모두 지금도 마계에서 종족을 유지하고 땅을 차지해 영위할 만큼 강한 마물들입니다. 변신한다고 해도 금방 알아챌 겁니다.]
서류철에 그려진 몬스터의 그림을 본 하몽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청방 길드 헌터뿐만이 아니라 몬스터부터 경계하고 조심해야 할 만큼 스카이 캐슬에 출몰하는 몬스터보다 청방 길드가 차지하고 있는 대륙의 몬스터들이 훨씬 더 강한 모양이었다.
내 딴에는 날짜를 잡아 배를 타고 가서 은밀히 침투해 드워프를 구해 텔레포트를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을 듯했다.
[이 정도 마물들이 출몰하는 지역에서 터를 잡고 세를 확장하고 있다면 적지 않은 헌터들이 성주님이나 저 못지않게 강해야 할 겁니다. 특히 이프리트와 피닉스는 성주님과 저 그리고 여기 있는 마스터님들 모두 힘을 합쳐 싸운다 해도 무찌른다는 보장이 없을 만큼 강한 존재들입니다.]
“……네크로맨서보다 더 강한가요?”
[일전에도 얘기를 드렸지만 네크로맨서는 수하로 부리는 언데드 몬스터 때문에 상대하기 까다로운 것이고 이프리트와 피닉스는 그냥 존재 자체가 강합니다.]
“끙…….”
난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지도를 쳐다봤다.
지도를 보아하니 청방 길드가 자리 잡은 곳도 우리처럼 인근에 해변이 있고, 산이 있는 듯했는데 아직 해변까지 개척하지 못한 듯했다. 산맥 역시 마찬가지였고.
드워프가 갇혀 있는 성 주위를 제외하곤 몬스터의 종류와 개체 수가 모호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만약 이대로 출정하게 된다면 청방 길드가 아니라 몬스터와 싸우다가 되돌아올 공산이 커 보였다.
‘운디네.’
-응?
‘무슨 방법이 없을까?’
난 운디네를 소환해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보아하니 몬스터들이 대부분 불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듯했고 운디네라면 왠지 공략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너 집에 불났는데 그거 끈다고 부채질하거나 바가지에 물 담아서 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흠…… 더 번지겠지?’
-잘 알고 있네. 네가 짐작하는 것처럼 여기 그려진 몬스터들이 물에 약하긴 하지만 그것도 격이 같았을 때 얘기야. 물론 지금 너와 우리의 힘이 여기 있는 몬스터들 하나하나보다 강하긴 하지만 지난번에 언데드 몬스터와 싸웠을 때처럼 쪽수로 밀어붙이면 또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돼서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커.
운디네가 코끝을 찡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녀도 마땅한 방법이 없는 듯했다.
-소수 정예론 힘들어. 그러니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헌터들을 육성해서 대규모로 침공하는 게 좋을 거야.
‘얼마나 육성시켜야 할까?’
-싸우는 게 목적은 아니지만, 인간들을 보면 마물들은 분명 달려들 거야. 그러니 길을 뚫으려면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할 테고 최소한의 전투만 치르며 달려간다 해도 A급 헌터 백여 명은 필요하겠지.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며 운디네를 쳐다봤다.
이부성이 차고 있는 마나 팔찌에 A급 헌터만큼의 마나를 채우는데 수십만 마리에 이르는 언데드 몬스터의 코어가 들어갔다.
계산상 B급과 C급의 상위 헌터들을 선별한다 해도 A급 헌터 백 명을 만들려면 수천만 마리를 또 사냥하고 코어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주. 너무 조바심낼 필요 없다. 드워프들이 어디 갇혀 있는지 알았고. 또 가는 길도 알고 있다. 그리고 상대의 세력과 힘이 어느 정도인지도 가늠이 되었고.”
“…….”
“이곳 대륙이 마족과 마물들에 의해 잠식된 지 벌써 백여 년 가까이 흘렀고 우린 계속 싸워왔다. 며칠, 몇 달 만에 내 동족을 구하고 마물들을 몰아내길 기대한 적 없다. 그러니 성주도 여유를 갖고 준비해라. 나와 내 동족 때문에 이곳에 있는 누군가가 희생되는걸. 원치 않는다.”
쓰담쓰담.
카프리가 다가와 내 등을 쓰다듬었다.
“네, 알았어요.”
난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마음먹었을 때 청방 길드 근거지로 가서 싹 뒤집어엎고 드워프들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난 애써 참아냈다.
그의 말처럼 괜한 혈기를 부렸다가 누군가 희생을 당하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으니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운디네가 조언한 대로 최대한 전력을 보강해서 대규모로 기습을 하는 게 나을 듯했다.
“연합 차원에서 헌터들을 육성시켜야 할 것 같네요.”
“연합 차원에서 헌터들을 육성시킨다고요?”
“네. 화룡의 둥지를 습격할 A급 헌터 백 명을 양성해야겠어요. 영지에서 벌어들이는 돈으로 코어를 매입해 헌터들에게 충전시키죠. 그리고 그렇게만 모으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앞으론 조금 더 적극적으론 레이드도 활성화하여 자체적으로 코어를 모으고요.”
“헐…….”
“헐…….”
지휘진들 모두 완전 넋이 나가 입을 벌린 채 날 쳐다봤다.
어째 재난 관리 본부 소속 요원들이 모은 청방에 대한 기록을 볼 때보다 더 놀란 표정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평범했던 사람도. 아니 지극히 가난하고 궁핍한 삶을 살았던 사람조차 각성하고 A급이 되는 순간 돈과 명예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까지 대한민국 그 자리에 오른 사람은 열 명밖에 안 되었고.
지윤미, 권수정, 박민정, 조성태, 최은빈, 최영식, 최병용, 이아영, 이슬비, 이어진…….
A급 헌터가 되면 단순히 무력만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세력까지 구축할 수 있었다.
레이드에 나가면 강한 사람과 함께해야 무사할 확률이 높기에 자연스럽게 곁에 사람들이 몰려들 테니까.
그런데 그런 A급 헌터를 구십 명을 더 마나 팔찌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만들겠다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원은 어떤 기준으로 선별하실 겁니까?”
“인원은 어떤 기준으로 선별하실 거죠?”
“인원은 어떤 기준으로 선별할 건데?”
김용규, 지윤미, 장지원이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다른 지휘진들 역시 말을 내뱉지 않았을 뿐 다들 같은 질문을 하려 했던 얼굴이었다.
지휘진들의 얼굴에 궁금함과 기대감 그리고 흥분이 가득했다.
지금 스카이 캐슬의 자금력과 생산성이라면 제법 많은 코어를 매입하고 직접 습득도 할 수 있기에 다들 자신이 속해 있는 곳의 헌터들이 그 기회를 얻게 됐으면 하는 표정이었다.
“하몽 님, 마나 팔찌의 마나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나요?”
[네. 물론입니다. 카프리 님이 만든 아티팩트라 그런지 몸속에 있는 마나 홀과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일전에도 얘기를 드렸지만, 마법을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술식과 룬어를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네. 그건 기억하고 있습니다.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최은빈을 쳐다봤다.
마녀 부대.
그동안은 파이어볼과 같은 강력한 화력을 자랑함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을 배제한 전투를 많이 했지만 하몽과 함께 하다 보니 마법만큼 레이드에 용이한 이능도 없는 듯했다.
“성주님, 아니 해용아.”
“네?”
“이번에도 되지도 않는 이유를 대며 우릴 배제하면 나 가만히 안 있을 거다.”
“…….”
장지원이 마치 나랑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굳은 표정을 지으며 날 노려봤다.
난 아직 아무런 결정도 하지 않았고 당연히 입 밖으로 내뱉지도 않았는데 그의 눈이 활화산처럼 이글거렸다.
그런데 그때,
“멍청한 놈. 마나 쓰는 법도 몰라서 무식하게 힘으로 휘두르고 때려 박는 놈들이 욕심하고는. 쯧쯧.”
“뭐라고! 너 말 다 했어!”
“아무리 멍청해도 생각이라는 걸 해라. 멍청이. 지금으로선 마나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들에게 마나 팔찌를 채우고 충전을 시켜 주는 게 좋다. 하몽한테 치료 마법과 버프 마법을 배운 마법사들이 많아지면 너희들도 자연스레 강해진다는 걸 모르나?”
“끙…….”
카프리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장지원을 타박했고 장지원은 앓는 소리를 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카프리의 말처럼 마법사들이 강해지면 자연스레 근접전투를 하는 헌터들도 그 혜택을 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