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마나 팔찌 (2)
“평소에 잘해라.”
“네?”
“내가 맥주를 좋아하긴 하지만 이것 때문에 일의 우선순위를 바꿀 만큼 한가로운 사람이 아니다. 나 엄청 바쁘다. 그러니 절로 가라.”
“……네.”
카프리는 원래 까칠한 구석이 있었고 작업할 때는 더 예민했다.
그는 좋아하는 맥주를 보고서도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최은빈을 쫓아냈다.
“이렇게 마나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드래곤 하트는 나도 처음이다. 이것만 있으면 귀환 마법진은 물론이고 광역 마법진과 레전드급 이상의 아이템 수십 개도 만들 수도 있다.”
“흠…….”
“지금 내 머리가 복잡하니 관계자 외 모두 나가라.”
카프리가 최은빈은 물론이고 사람들을 모두 내쫓았고,
‘나도 나가야 하나?’
난 그의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구석 자리로 이동했다.
분위기상 왠지 나도 나가야 갈 것 같긴 한데 이대로 쫓겨나 드래곤의 해체 작업을 보지 못하면 많이 아쉬울 것 같았다.
“카프리가 고민이 많은가 보네요.”
“……?”
“헬퍼들에게 들어보니 근래 계속 하늘 다리에 있는 풍차에 가서 계속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흠…….”
구석으로 이동해 숨소리마저 조심하며 쥐 죽은 듯이 있는데 이부성이 다가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동족들 때문인가?”
난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의 시선 끝에 있는 카프리를 같이 쳐다봤다.
중국인들에게 잡혀 목에 쇠사슬을 달고 노예 생활을 하는 드워프들.
카프리는 모르는 드워프들이라 상관없다 했지만, 그들이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혼자서 하늘 다리로 가 청승맞게 거기서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었으니까.
피, 비늘, 뼈, 힘줄, 내장…….
터벅터벅.
아무런 말 없이 열흘 내내 해체 작업을 했던 카프리가 내게 걸어왔다.
“다 됐다. 영지로 돌아가자.”
“네.”
드래곤의 해체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나는 그때야 드래곤의 알을 챙겨 같이 영지로 돌아갔다.
* * *
“성주, 잠깐 얘기 좀 하자.”
“네.”
하늘 다리.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유난히도 바람이 많이 부는 곳. 그 덕분에 영지에 전기를 공급하는 백여 대의 풍차를 만들어 세워 둔 곳으로 카프리가 날 데리고 갔다.
이부성이 했던 말처럼 그의 얼굴엔 마치 이 세상 고민은 혼자 다 짊어진 것만 같이 근심이 가득했다.
“씨엘의 드래곤 레어 안에서 우리 부족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 패턴을 파악해 레어 끝에 비교적 쉽게 내려갈 수 있었고.”
“……?”
“자발적으로 간 것일 수도 있지만, 강제로 끌려갔었을 가능성이 크다.”
“…….”
“그게 나 그리고 우리 드워프 종족의 삶이었다. 인간이든, 드래곤이든, 마족이든. 대륙의 주인이 수없이 바뀌고 세상이 변해도 우리 드워프는 단 한순간도 순탄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아…….”
“우리 종족 무언가를 만들고 개발하는 거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물품으로 인해 누군가 미소를 짓고 삶의 질이 개선되는 걸 지켜볼 때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우리 종족을 잡아가 노예로 부리고 거래를 튼 이 종족 대부분이 우리에게 무기를 원했다.”
“…….”
“생명을 해하는 물건을 만들고 싶지 않았지만 살기 위해서, 종족의 보존을 위해서 우리는 굴복할 수 없었다.”
글썽글썽.
카프리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 처음이었다.
그저 술과 만드는 것만 좋아하고 그리 생각이 많지 않은 존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의 표정과 말투로 미루어 봤을 때 지금 그는 오랫동안 가슴속에 품어 뒀던 말을 내게 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내,
“받아라.”
“……?”
카프리가 내게 노란색 팔찌 두 개와 발찌 2개를 건네줬다.
“백여 년 넘게 살면서 내가 내 의지대로 처음으로 만든 무구다.”
“……?!”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팔찌와 발찌를 쳐다봤다.
마치 테니스를 할 때 착용하는 팔목 아대와 같은 넓이와 두께의 팔찌와 발찌에는 수십여 개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일전에 그에게 잠깐 마법진을 배울 때는 보지 못한 복잡한 문양이 겹쳐진 새로운 것들이었다.
“저 풍차를 보고 힌트를 얻어 만든 물건이다. 너희 대륙의 기술 대단하다. 바람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것처럼 그 팔찌를 착용하면 코어에너지를 흡수해 마나로 전환할 수 있다.”
“마나로요?”
난 경악스런 표정을 지으며 팔찌를 쳐다봤다.
그의 설명을 듣고 네크로맨서와 서큐버스에게 얻은 반지를 사용할 때처럼 마나를 흘려보내니 팔찌에서 A급 이상 S급에는 약간 못 미치는 거대한 마나가 느껴졌다.
“그것만 있으면 각성을 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마나를 사용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지금은 A급과 S급 사이의 마나를 담아두는 게 한계이지만 드래곤 하트를 사용해 장치를 만든다면 S급 이상까지 마나를 담을 수 있게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카프리가 세상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내 눈을 쳐다봤다.
“백 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요즘같이 행복한 적이 없다. 말 한마디, 손짓 한 번에 항상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제공되고 또 술까지 마실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
“그리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좋다. 그 누구도 내게 강제적으로 아이템을 만들라고 하지 않는다. 내가 뛰어난 무구를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강제하지 않았고.”
“흠…….”
“그게 모두 성주 너 때문이란 걸 알고 있다. 넌 그동안 내가 봐 왔던 권력자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믿는다.”
“아…….”
난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뭔가 장황하게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믿음.
그는 지금 나를 믿고 신뢰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라. 성주가 원하면 내 능력이 닿는 데까지 다 만들어 준다.”
“헐…….”
“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하다. 그리고 정식으로 인사를 하겠다.”
털썩.
“헐…….”
카프리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이내,
“드워프 종족의 수장 카프리가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
내게 군례를 취했다.
이것 역시 처음이었다.
존댓말.
그는 할 줄 알면서도 못한 척했던 것이었다.
인간과 오크, 엘프 그리고 드워프 종족까지 이끄는 연합체의 수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 * *
선착장과 스카이 캐슬 중간에 커다란 신전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간에는 마치 뱀이 똬리를 트는 모양으로 동그란 모양의 마법진이 새겨진 미스릴 합판들이 층층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곳 스카이 캐슬을 방어하고 레이드에 나간 헌터들의 목숨을 지켜줄 귀환 마법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성주님 그게 사실입니까? 일반인들도 이능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무구를 만들었다는 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귀환 마법진이 만들어지는걸. 구경하고 있는데 김용규가 호들갑을 부리며 내게 다가왔다.
“헐…… 그 머리 뭔가요?”
“꼭 한번 해 보고 싶었거든요.”
투블럭.
어느새 그의 윗머리는 나 못지않게 머리카락이 잔뜩 자라나 있었고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하는 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5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60대 초반까지 보일 정도로 노안이었는데 지금은 40대 중후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많이 젊어 보였다.
카프리가 알려 준 식단이 큰 도움이 된 듯했다.
“아무튼, 지금 제 머리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게 카프리 님이 만들어 줬다는 마나 팔찌입니까?”
김용규가 세상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의 팔과 다리에 착용 되어 있는 무구를 매만졌다.
“네. 이게 맞긴 한데 그게 그 정도로 기뻐할 물건은 아니에요. A급의 마나를 모으는데 그동안 언데드 몬스트를 사냥해서 모은 코어를 전부 쏟아부었거든요.”
“전부요?”
“네. 아마 돈으로 환산하면 수백억 원은 족히 넘을 거예요.”
이부성이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A급 헌터만큼의 마나를 모으려면 수만 마리, 아니 용의 계곡까지 진출하기 위해 잡았던 십만 마리가 넘는 언데드 몬스터의 코어 에너지를 모두 흡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돈으로 환산하면 수백억 원을 넘어 천억 가까이 될 만큼 엄청난 양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팔찌를 넘겨받은 이부성은 몹시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헌터를 꿈꾸며 헬퍼들과 함께 헌터 사관 학교를 차리기 위해 준비 중이니 분명 속으론 엄청 좋아할 것이 분명한데도 이부성은 겉으로 내색하지 못했다.
“그럼 A급 헌터 열 명을 만들려면 1조에 가까운 코어를 사서 충전시켜야 하네요?”
“……네.”
“좋네요!”
“네?”
“지금 우리나라에 A급 헌터가 열 명 있습니다. 성주님이 각성하기 전까지 그 열 명에서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있었고요. 근데 이제 돈만 있으면 A급 헌터를 만들어 낼 수 있으니 대단한 거 아닙니까?”
김용규가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마나 팔찌를 쳐다봤다.
코어가 예상보다 많이 필요하다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게다가 이 사실이 알려지면 분명 일반인 중에도 꽤 많은 사람이 레이드에 참여하길 원할 겁니다. 귀환 마법진만 완성된다면 언제든 위험할 때 스카이 캐슬로 텔레포트를 할 수 있을 테니.”
“흠…….”
“안 그래도 세계 헌터 협회에서 계속 압력이 들어와 곤란했는데 배짱 좀 부려 봐도 되겠네요.”
“압력이요?”
“네. 지난 레드문 때 전 세계 다발적으로 몬스터 웨이브가 발발했는데 아직도 처리를 못 한 모양입니다. 그로 인해 유럽과 남미에 있는 작은 나라들은 이미 멸망했거나 큰 나라에 자진 귀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우리에게 계속 지원을 보내 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고요.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나라가 멸망할지 모르니 안 도와주면 전쟁이라도 일으키겠다고 협박까지 하면서요.”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며 김용규를 쳐다봤다.
우리가 네크로맨서를 막고 드래곤의 레어를 터는 동안 바깥의 상황이 더 심각해진 모양이었다.
“도와줘야겠네요.”
“네?”
김용규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너 이런 캐릭터 아니잖아?’
그의 입은 분명 닫혀 있는데 환청이 들려왔다.
일전에 일본에 바가지를 씌워 미스릴을 판매하고 최영식과 레인보우 길드를 파견한 걸 떠올리는 모양이었다.
“그땐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때는 다른 나라야 어떻게 되든 우리만 잘 먹고 잘살면 될 줄 알았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그들이 싸워주고 버텨줘야 우리도 시간을 벌고 마족들도 시선이 분산되지 않겠습니까?”
“아…….”
김용규가 감탄스런 목소리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바뀐 생각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카프리, 마나 팔찌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드나요?”
“제자들도 이제 곧잘 따라 해서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다가 아니고 않습니다.”
“저희 차원의 다른 나라들에게 좀 판매를 했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괜찮다.습니다.”
심경의 변화를 느끼고 내게 군례를 취한 이후로 어째 카프리의 말투가 더 이상해졌다.
“그냥 하던 대로 말하세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카프리가 존댓말 하니까 제가 더 불편하네요. 그냥 우리 예전처럼 지내요.”
“오케이. 알았다. 사실 나도 이게 편하다.”
카프리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딴에는 오키도키와 하몽처럼 내게 예의를 지켜보려는 모양인데 같이 보낸 시간이 있어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 역시 원하는 일이 아니었고.
“다른 인간들에게 마나 팔찌를 팔겠다는 말인가? 일전에도 얘기했지만 난 성주를 믿는다. 하지만 다른 인간들은…….”
“네. 저도 알아요. 그래서 조금 개조를 했으면 해요.”
“개조?”
“지금 한 번 마법진을 가동하면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죠?”
“그렇다. 너희 세계에 있는 시계 톱니바퀴처럼 한번 가동하면 마법진끼리 맞물려서 계속 유지된다.”
“그걸 바꿔 주세요. 일정 시간마다 저희 영지로 보내거나 아니면 와서 충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난 빙그레 웃으며 저 멀리 아직 전화 개통도 인터넷도 되지 않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은솔이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