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마나 팔찌 (1)
‘일단 헤츨링부터.’
난 드래곤의 사체 밑으로 들어갔다. 씨엘과 거래한 대로 그의 새끼부터 확인을 하고 보호를 하기 위해서.
[성주님?]
“잠시만요.”
사체 밑으로 들어가니 금색 빛을 띠고 있는 사람 크기만 한 알이 있어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마지막 드래곤이라네요.”
난 드래곤 로드 씨엘과 대화를 하고 거래했던 내용을 하몽에게 모두 알려 주었다.
[……역시 그렇게 된 거였군요.]
하몽이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었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드래곤은 신의 의지를 받아 중간계를 조율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족과 마물들에 의해 대륙이 파괴되는데도 가만히 있어 신변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닐까 하고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중간계의 조율이요? 그건 정확히 하는 일이 뭔가요?”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중간계의 조율자.
씨엘이 일부 전수해준 지식에도 언급이 되었던 단어였는데 난 그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니 드래곤이 누구 편인지 모호했다.
씨엘은 물론이고 카프리역시 드래곤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겼지. 자신을 지켜주는 보호의 대상이나 존경의 대상은 아니었으니까.
[모든 인간과 이종족, 동물들은 살아가는 데 있어 반드시 다른 생명체를 해하며 삶을 영위하죠.]
“흠…….”
[드래곤이 이해하는 건 딱 거기까지입니다. 헌데 인간은 마치 이 중간계가 자신의 것인 마냥 가장 많은 땅을 차지하고 타 종족을 압박하고 때론 일부 동물들을 멸종시키기까지 하죠.]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며 하몽의 말을 경청했다.
그의 말이 마치 뼈라도 맞는 것처럼 아팠다.
[드래곤이 중간계의 조율자로서 대륙에 징벌을 내린 건 딱 두 번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위해 대륙 모두를 차지하려 했던 인간들의 제국에게.]
“끙…….”
[드래곤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성주님께서 특별해서 선택되신 게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죽이고 파괴하는 마족보다는 그나마 인간이 나으니까.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신 것 같네요.]
하몽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드래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어째 말하는 본새가 인간이나 마족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식이었다. 허나 난 그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이곳 세계가 어땠는지는 몰라도 지구의 인간들은 그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인간들이 만든 왕국이 제국이 되고 성장해서 거대해지면 매번 드래곤을 공격하는 역사가 반복됐습니다. 이 대륙을 온전히 차지하기 위해서는 드래곤이 걸림돌이었으니까. 그래서 마족을 제외하고 드래곤의 생명을 해한 것 역시 인간이 유일합니다.]
“인간이 드래곤을 죽인 적이 있다고요?”
[네. 몇 번 되지는 않지만, 인간의 역사에 드래곤 슬레이어는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아…….”
난 하몽의 설명을 들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말대로라면 인간에게 있어 드래곤은 적에 가까운 존재인 듯했다.
난 뭐 신의 의지를 이어받았다고 해서 절대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걸 어떻게 옮긴담?”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씨엘의 사체를 쳐다봤다.
학교 운동자만큼이나 큰 크기로 보건데 어림잡아도 수백 톤은 될 듯했다.
게다가 레어 안과 용의 계곡에 여전히 가디언들과 언데드 몬스터들이 득실거려 가져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스카이 캐슬로 가져가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레어 밖으로 꺼냈다가 마족들이 드래곤의 기운이라도 느끼면 열 일 제쳐두고 바로 찾아올 겁니다.]
“흠…….”
[대륙을 모두 차지하려 했던 인간들이 드래곤을 걸림돌로 여겼던 것처럼 마족 입장에서도 드래곤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니까요. 행여나 마왕들이 직접 찾아와 드래곤이 죽은 걸 알면 드래곤 하트를 뺏기는 것은 물론이고 저희 모두를 죽이려 들 겁니다.]
“아…….”
하몽이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데몬과 발록.
보아하니 드래곤만큼이나 마왕도 꽤 강력한 놈들인 듯했다.
“싸우면 질까요?”
[마왕이랑 말입니까?]
“네.”
난 하몽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왼쪽 심장 부근에 있는 마나 홀.
드래곤 로드 씨엘의 축복과 의념을 이어받은 후 그곳에 정령력 못지않은 강대한 힘이 느껴졌고 나도 모르게 호승심이 불타올랐다.
왠지 지금이라면 네크로맨서와 그가 이끌고 있던 언데드 몬스터 모두와 싸운다 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드래곤은 물론이고 마왕 역시 물리쳤다는 기록이 있긴 합니다. 그걸 미루어 봤을 때 마왕 역시 절대적인 존재는 아닙니다. 헌데 드래곤보다 마왕이 더 무서운 건 네크로맨서처럼 그들이 부리는 권속들입니다. 아마 마왕이 이곳에 오게 되면 적게는 수십만에서 많게는 수백만의 상위 마물들이 몰려올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데스 나이트와 리치, 네크로맨서와 같이 상위 마족들도 함께 몰려올 가능성도 다분하고요.]
“아…….”
[마왕과 싸우기 위해서는 마왕이 부리는 권속들까지 같이 대적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하몽이 날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설명을 미루어 봤을 때 아직 마왕과 전면전을 치르기엔 힘이 턱없이 부족한 듯했다.
[그리고 씨엘 님이 남겨 주신 이것들이 우리가 마왕을 상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줄 듯합니다. 저와 카프리 님이 힘을 합쳐 강력한 아티팩트들을 만들어 내어 엘프족의 아이들과 성주님의 동료들이 마왕의 권속들을 상대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지금처럼 숨어 있지는 않아도 될 듯싶습니다.]
“네. 알겠어요.”
[그럼 전 일단 스카이 캐슬로 돌아가 카프리 님과 장인들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네.”
서큐버스의 반지에서 노란색 빛이 나는 것 같더니 하몽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 * *
하몽이 사라지고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카프리와 장인들 그리고 헌터들이 레어에 도착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아직 가디언들이 많이 남아 있었을 텐데?”
“우리 부족원들이 만든 거다.”
“네?”
“이 레어 우리 부족 원들이 만든 거다. 가디언들 피해 지름길로 왔다.”
레어 안에 들어온 카프리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씨엘의 사체를 쳐다봤다.
하몽이 드워프의 손길이 느껴진다고 하더니 카프리의 친구들이 이 레어를 만들었던 모양이었다.
[성주님, 여기. 잘 썼습니다.]
“하몽 님이 가지고 계세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보단 그게 나을 것 같네요.”
다시 레어로 돌아온 하몽은 서큐버스의 반지를 내게 내밀었고 난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짐작건대 스카이 캐슬로 간 하몽이 레어 앞까지 다시 광역 텔레포트를 한 듯했다.
하몽이 반지를 가진 게 가장 효율이 높을 것 같았다.
“염병할 놈. 잘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결국 마족의 손에 뒈져버렸네.”
[카프리 님. 아무리 죽었다 하나 위대한 존재…….]
“위대한 존재는 얼어 죽을…… 나한테는 이놈도 오크랑 인간들이랑 다를 게 없다. 이 레어를 보고도 내게 그런 말이 나와?”
[끙…….]
카프리가 잔뜩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하몽을 노려봤다.
중간계의 조율자 어쩌고저쩌고하면서 하몽은 나름 존경심 비슷한 마음을 품고 드래곤의 사체를 대했는데 카프리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에겐 그저 귀환 마법진과 무구를 만들 재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했다.
“피 필요하지?”
[네. 드래곤의 피가 있으면…….]
“설명은 됐고 담을 용기나 꺼내.”
[네.]
하몽이 아공간을 열어 투명한 유리병을 꺼내자 카프리가 씨엘의 사체를 빙빙 돌며 여기저기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이게 피에서 나오는 마나라고?’
난 놀란 눈을 하고선 카프리와 공장 장인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심장도 아니고 고작 피에서 나는 마나가 A급 헌터들과 비슷했다.
[연금술을 해서 정제를 해야겠지만 드래곤의 피만 있어도 여러 가지 포션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포션의 효능도 강화할 수 있고요. 저희 마법사들에게 있어선 보물 같은 것이지요.]
내가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유리병에 든 피를 쳐다보자 하몽은 감탄을 넘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설명해 주었다.
“멍청이, 비늘 떼어 낼 테니까 도구 꺼내.”
“네, 알겠습니다. 스승님.”
이성민 헬퍼.
카프리의 제자가 된 그가 수백여 개의 검은 색 단검을 땅에 내려놓았다.
보아하니 아만티움으로 만든 것 같은데 아만티움조차 드래곤의 사체를 해체하려면 날이 상하는지 꽤 많이 만들어서 가져왔다.
“마스터들 다 이리 와라.”
“저흰 왜?”
“비늘 단단하다. 검기 없으면 못 떼어낸다.”
“아…….”
조성태, 최영식, 최병용, 지윤미…….
카프리의 지시에 마스터들이 드래곤 사체에 다가갔다.
“잘 봐. 한 번만 가르쳐 준다.”
“네.”
“여길 이렇게 들면 물렁뼈가 만져질 거야. 거길 도려내서 떼어내면 된다.”
“이게 물렁뼈라고요? 미스릴보다 더 단단한 것 같은데…….”
“거기가 젤 약한 부분이야. 비싼 거니까 조심히 떼어내.”
“끙…….”
카프리가 얘기한 곳에 손을 댄 마스터들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카프리는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지만 A급 헌터들이 낭패스러운 표정을 질만큼 단단한 모양이었다.
“빨리해. 할 거 많으니까. 나중에 갑옷이라도 하나 얻어 입고 싶으면 조심해서 뜯어내.”
“네? 갑옷이요? 이걸로 저희 갑옷을 만들어 주실 건가요?”
“그럼 이걸 뭐하러 뜯어내겠어?”
“아! 감사합니다. 바로 시작할게요.”
낭패 어린 표정을 지었던 것도 잠시 마스터들이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들고 비늘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덩치가 크고 죽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마나를 품고 있어서 그런지 해체를 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했다.
“카프리, 여기 맥주 한잔하면서 해.”
한참 작업지시를 하는 카프리를 향해 장지원 마스터가 다가갔고 그는 와인이 담겨 있을 법한 고급스러워 보이는 병을 카프리에게 건네줬다.
“맥주?”
“이거 벨기에서 새로 만든 건데 최고 품질의 원료만을 사용해서 만든 최고급 맥주야. 인공 향료를 쓰지 않고 천연 재료로만 향과 맛을 낸 거야. 네가 좋아할 것 같아서 내가 어렵게 구해왔어.”
“흠…… 그래?”
꿀꺽, 꿀꺽.
카프리가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병을 건네받아 맥주를 마셨다.
“오! 맛있다.”
“맛있지? 역시 네가 좋아할지 알았어.”
장지원을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몸까지 배배 꼬며 알랑방귀를 뀌었다.
보아하니 드래곤의 부산물로 만든 무기를 얻으려고 아양을 부리는 듯했다.
허나,
“멍청이.”
“응? 나 여기 있어. 왜? 맥주 다 먹었어? 더 갖다 줄까?”
“가라.”
“어?”
“작업 방해되니까 절로 가라고.”
“아…….”
카프리는 맥주만 마시고선 마치 파리라도 쫓듯이 장지원에게 손짓했다.
그리고 이내,
“카프리 님, 이거.”
“뭔가?”
“독일에서 만든 수제 맥주예요. 카프리 님이 좋아하실 것 같아 한번 가져와 봤어요.”
최은빈마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카프리에게 맥주병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