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드래곤 레어 (3)
“휴우. 성주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털썩.
마지막 트롤을 해치운 조성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등이 흥건했다.
검으로 베고 찔러도 계속해서 재생하는 트롤의 능력 때문에 진땀을 흘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내,
“$%$%$$%$%$%”
하몽이 다시 마법 영창을 하며 아공간을 열더니 수십, 아니 수백여 개의 유리병을 꺼냈다.
“그건 뭐 하시려고?”
[트롤의 피에는 회복제를 만드는 주력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가져가면 두고두고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아 챙겨 가려 합니다.]
“아…….”
[이것들을 거꾸로 매달아 주시겠습니까?]
“혹시 그 회복제라는 걸 복용하면 트롤처럼 재생 능력이 생기는 건가요?”
[재생 능력까지 생기지는 않지만 제가 사용하는 치료 마법정도의 효과를 발휘할 수는 있습니다.]
유리병에 이어 S자 갈고리를 꺼낸 하몽이 그것들을 나와 마스터에게 건네주었다.
영차!
난 마스터들과 함께 트롤을 거꾸로 매달았다.
-저 정도 클래스의 마법사면 연금술 실력도 상당할 거야. 너희가 만든 동충하초 포션보다 최소 서너 배 이상 뛰어난 포션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운디네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그동안 위기가 생길 때마다 정령들이 이래저래 애를 썼는데 하몽 덕분에 한결 편안해져 만족스러워하는 듯했다.
[레어급 벨트네요. 이것도 챙겨 갈 테니 여기에다 아공간 마법진을 그려달라고 하면 제법 큼직한 공간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큼직하다고 하면 얼마나?”
[사두마차 한 대에 시를 만큼의 짐을 넣을 수 있을 겁니다.]
“사두마차요?”
-너희들 세계에 있는 1톤 차량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
“와우!”
난 입을 쩍 벌리며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1톤 정도의 짐을 나르려며 헌터들이 최하 수십은 필요했다.
땅굴과 배.
그래서 내가 그렇게 부단히도 교통 시설을 마련하려 했던 것이었는데 아공간 주머니만 있어도 앞으로의 대륙 탐사가 제법 수월해 질듯했다.
변신 반지와 아공간 벨트.
이 두 가지만 있어도 헌터 세계를 두 단계, 세 단계 이상 발전시킬 수 있을 듯했다.
[앉은 김에 여기서 요기 좀 하고 계시죠. 레어 중심으로 갈수록 더 강한 몬스터가 등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네.”
“네.”
트롤의 피를 채취하며 우린 주먹을 밥을 먹으며 배를 채취하고 소모한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4층 해골, 타란툴라, 트롤.
짐작건대 한층 더 내려가면 또 다른 몬스터가 등장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역시나,
-안아 주세요.
[이런! 서큐버스예요. 모두 조성태 마스터에게서 떨어져서 눈을 감으세요.
내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별처럼 아름다운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생김새는 엘프와 비슷한데 분위기와 느낌이 완전 달랐다.
엘프가 순수한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다면 서큐버스는 뭔가 요염하고 욕망을 자극하는 섹시함을 뿜어 댔다.
붉은 입술과 잘록한 허리.
탄력 있어 보이는 다리.
.
.
.
꼭.
“정신 차리세요.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예요!”
서큐버스와 눈을 마주친 조성태는 마치 오래된 연인이라도 만난 거같이 그녀에게 다가와 포옹을 했다.
그리고 이내 서큐버스의 붉은 입술이 얼굴과 목을 지나 점점 가슴으로 내려갔다.
‘운디…….’
“오빠, 정신 차리세요! 갑자기 옷을 왜 벗어요!”
조성태를 살리기 위해 하몽의 말을 듣지 않고 눈을 뜨고 있던 난 서큐버스와 눈을 마주쳤고 정신이 점점 몽롱해졌다.
-쯧쯧. 고작 저런 하위 마족의 매혹 스킬에 넘어가더니…….
‘…….’
-눈 감고 있어. 우리가 해결할 테니.
이대로 있으면 정신줄을 놓을 것 같아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깨물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버텨내고 있는데 운디네가 그런 노력은 알아주지 않고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런데 그때,
-이 ㅅ……년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퍽,
“아응.”
퍽,
“아응.”
퍽!
“아응.”
수정이가 전생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서큐버스에게 달려가 그녀를 활대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언니 때리지 마세요. 아파요. 여기 보세요.”
“닥쳐. 이 요망한 년아.”
퍽!
“아응.”
수정이도 분명 서큐버스와 눈을 마주쳤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녀는 서큐버스의 매혹 스킬을 무시하고 계속 활대를 휘둘렀다.
그런데 그때,
-성태 오빠, 저 언니가 저 때려요. 혼내 주세요.
끄덕끄덕.
기껏 서큐버스의 손아귀에 풀려난 조성태가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수정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서큐버스의 매혹 마법에 완전히 홀려 버렸는지 눈에 초점이 없었다.
-영식 오빠, 안아 주세요.
끄덕끄덕.
-병용이 오빠, 안아 주세요.
끄덕끄덕.
한 마리, 두 마리…… 열 마리.
수정이와 조성태가 싸우는 동안 서큐버스는 추가로 계속 출몰을 했고 호기심에 눈을 뜬 다른 마스터마저 유혹했다.
이어진, 김종관까지.
‘나니까 이 정도로 버틴 거야!’
매혹 스킬을 이겨내고 자리를 버티고 있는 나와 달리 다른 마스터들은 모두 혼이라도 나간 사람처럼 서큐버스에게 걸어가 포옹을 했다.
[성주님, 저대로 두면 서큐버스가 심장을 파먹을 겁니다. 그 전에 처치해야 합니다.]
“저도 그러고 싶긴 한데…….”
-호호호, 오빠 억지로 참지 마세요. 안으셔도 돼요.
무언가를 생각하고 움직일 만큼 정신을 부여잡는 게 쉽지가 않았다.
눈을 감아도 서큐버스의 목소리와 웃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정신이 몽롱했다.
마음 같아선 그냥 이대로 다 내려놓고 서큐버스가 시키는 대로 하면 편안해질 것만 같았다.
살랑살랑.
스으윽!
“아응.”
-하급 마족 따위가 감히 누굴 잡아먹으려고!
살랑살랑.
-아쭈! 피해? 피하면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살랑살랑.
-아응! 빌어먹을 정령 같으니라고!
살랑살랑.
쑤걱!
‘고마워.’
실프가 날 유혹하려 했던 서큐버스를 해치웠는지 그때야 점점 정신이 맑아졌다.
‘실프, 서둘러 줘!’
-응, 알았어.
살랑살랑.
노란색 빛을 머금은 바람이 동굴 안을 노닐었고 그때마다 서큐버스의 목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 마스터들이 유혹에서 벗어났다.
허나,
“조성태, 너 정신 안 차려! 감히 날 공격해?”
짝!
짝짝!
자신을 공격한 게 분이 풀리지 않는지 수정이가 있는 힘껏 조성태의 따귀를 때렸지만 물먹은 솜 마냥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권수정 헌터님, 그만 하세요. 정신 공격을 받아서 그런 겁니다. 무리하게 깨우면 아예 백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몽이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수정이의 손목을 잡았다.
5분 아니 10분이나 지났을까.
그 짧은 시간 만에 마스터들 모두 서큐버스의 유혹 후유증으로 바닥에 널브러졌고 그 원흉들은 바람의 칼날에 목이 베어 모두 차가운 시체가 되어 있었다.
“#$#$#$#$#$블레싱.”
하몽은 마스터들에게 다가가 다시 마법 영창을 했고 그들의 몸에 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밝은 빛이 잠시 감싸다 사라졌다.
[축복 마법을 썼으니 조금 있으면 곧 깨어날 겁니다.]
“하몽 님은 괜찮으신가요?”
[네. 전 다행히 바로 눈을 감아서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방비를 해야 했는데 서큐버스가 있을 줄은 짐작을 못 했습니다.]
하몽이 죄라도 지은 것같이 내게 사과를 해 왔다.
드래곤의 가디언으로 몬스터가 아닌 마족이 있을 줄은 그도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다들 무사했으면 됐죠. 뭐. 피곤하네요. 좀 쉬었다가 가죠.”
털썩.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 거라곤 눈감은 거밖에 없는데 마치 마라톤 완주라도 한 것같은 피곤함이 몰려왔다.
유혹에 넘어가진 않았지만 그걸 이겨내기 위해 정신력이 꽤 소모된 모양이다.
-이겨냈다기보다는 잠시 버텼다는 게 맞지 않을까? 우리가 아니었으면 너도 얼마 안 있어 가서 안길 것 같았는데?
‘꼭 그렇게 말해야 속이 시원해?’
-아니 난 그저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 주려고…….
찌릿.
운디네가 말끝을 흐리며 내 시선을 피했다.
[과연 드래곤의 레어는 다르네요. 10서클 마법사와 중급 정령사 그리고 최상급 익스퍼트 전사가 다섯이나 있는데도 이리 애를 먹고 있는 걸 보면요.]
하몽이 긴장감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서큐버스의 사체를 살펴봤다.
짐작건대 무언가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찾는 듯했다.
‘도와야겠지?’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기력을 회복한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서큐버스에게 걸어갔다.
“제가 할 테니 더 쉬세요.”
“같이…….”
“제가 한다고요!”
“……그래.”
찌릿.
수정이가 잔뜩 신경질이 난 표정과 목소리를 내며 노려봐서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몬스터이긴 하나 여성체의 모습을 하고 있어 내가 살펴보는 것조차 탐탁지 않아 하는 듯했다.
[순간 이동 조종 반지라니…… 서큐버스 중에서도 꽤 서열이 높았나 보네요.]
“순간 이동 조종 반지요? 좋은 건가요?”
[좋다 뿐이겠습니까? 변신 조종 반지처럼 이것도 착용하고 있으면 원하는 곳으로 텔레포트를 할 수 있는 아티팩트입니다.]
하몽이 흥분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서큐버스가 착용하고 있던 반지를 건네줬다.
“원하는 곳으로 텔레포트를 할 수 있다고요? 혹시 네크로맨서가 부렸던 순간 이동을 말하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헌데 여기선 사용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반지의 힘을 이용하면 여기서 바로 스카이 캐슬까지 순간 이동을 할 수 있지만 드래곤의 기운 때문에 다시 오려면 걸어와야 할 테니.]
“아…….”
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변신 조종 반지에 이어 이번엔 순간 이동 조종 반지라니…….
아공간에 대한 지식과 트롤의 피를 얻은 것도 큰 수확인데 아주 보물 창고가 따로 없었다.
[성주님 허락해 주신다면 서큐버스의 반지는 제가 잠시 맡아도 되겠습니까? 제가 마스터한 마법 중에 텔레포트 마법이 있는데 그 반지까지 갖고 있으면 일행들을 데리고 함께 이동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함께 텔레포트를 시킬 수 있다고요.”
[네. 만약 드래곤이 살아 있어도 사일런스만 걸리지 않는다면 다 함께 텔레포트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아, 그럼 당연히 맡겨야지요.”
난 기쁜 표정을 지으며 하몽에게 서큐버스의 반지를 넘겨줬다.
5층 해골, 타란툴라, 트롤. 서큐버스.
어째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까다로운 몬스터가 출몰해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보험 하나가 생긴 듯했다.
“다들 정신 차렸으면 이제 일어날까요?”
“네. 면목 없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서큐버스의 유혹에 빠졌다가 정신을 회복한 마스터들이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와아! 저건 또 뭐람?”
[사이클롭스라는 거인족입니다.]
6층에 도착하자 웬만한 빌라 10층만큼 큰 거대한 외눈박이 괴물이 우릴 맞이했다.
보아하니 트롤이나 서큐버스처럼 특수한 능력이나 마법을 부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 덩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손에 들고 있는 방망이로 한 대만 맞아도 골로 갈 것 같았다.
6층 해골, 타란툴라, 트롤. 서큐버스, 사이클롭스.
갈수록 첩첩산중이다.
“저건 어떻게 상대해야 하죠?”
[한 마리 정도는 제가 어떻게 해 볼 수는 있지만, 너무 많습니다.]
“그럼 어떻게?”
[달리시죠.]
“…….”
“…….”
하몽이 7층 입구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