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142화 (142/255)

142화. 드래곤 레어 (2)

‘네가 보기엔 지금 드래곤이 죽었는데 살아 있는 척 꾸민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지?’

-단정할 순 없지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을 것 같아.

‘흠…….’

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동굴 안쪽을 쳐다봤다.

허장성세(虛張聲勢)

운디네의 말을 듣고 있자니 지금껏 살아오며 잊을 만하면 들었던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중국의 옛 나라들이 자주 써먹던 전법이었다.

실제론 몇만밖에 안 되면서 십만 대군, 백만 대군이라 부풀려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 적에게 두려움을 심어 싸우지도 않고 항복을 받아 낼 때도 많았다고 한다.

‘……몸에 문제라도 생긴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이미 죽었지만 무언가 지킬 게 남아 있을 수도 있지.

‘지킬 게 남아 있다고? 죽으면 그만이지. 그런 게…….’

-헤츨링.

‘헤츨링?’

-드래곤도 새끼는 낳거든.

‘흠…….’

-지금 정황으로 봤을 때는 네가 얘기한 것처럼 몸에 문제가 생겼거나 아니면 드래곤은 이미 죽었지만 헤츨링이 살아 있어 보호하기 위해 안배해 놓았을 가능성이 클 것 같아.

‘아…….’

난 운디네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카프리도 그렇고, 하몽의 태도를 봤을 때 드래곤 성격상 살아 있으면 우리를 잡으러 와도 열 번은 왔을 텐데 이리 놔두는 걸 보니 우리의 짐작이 더 설득력이 있을 듯했다.

“하몽 님, 혹시 최근에 드래곤이 밖으로 나와 활동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나요?”

[흠…… 최근에는 들은 적이 없고 수십 년 전에 마족들을 이끌고 온 마왕이랑 싸웠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드래곤이 마왕이랑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도망친 걸 수도 있네요?”

[싸우다 죽었으면 죽었지. 도망칠 존재는 아닙니다.]

“흠…… 그럼 마왕이랑 마족을 물리쳤지만 드래곤도 심각한 부상을 당했을 가능성은?”

[그거라면 가능합니다. 혹시 성주님께선 씨엘 님의 신상에 무언가 변고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저와 계약을 맺은 정령이 지금 이곳의 모습이 드래곤의 성격이랑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요.”

[흠…… 저도 뭔가 이질감이 느껴지긴 했는데 그것 때문이었군요.]

하몽이 손을 올려 턱을 쓰다듬었다. 그가 보기에도 뭔가 좀 이상하긴 한 듯했다.

[더 들어가 볼까요?]

“네. 그래보고 싶네요.”

[성주님의 뜻이 그렇다면 따르겠습니다. 그럼 앞에 있는 몬스터들은 해치우는 게 나을 것 같네요.]

두려운 기색을 한 것도 잠시 하몽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몬스터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파워, $#$#[email protected]#덱스, #$#$#$헤이, @#@#@#블레스…….”

마법 주문을 영창했고 전방에 서 있는 마스터들의 몸에 빛이 감싸기 시작했다.

“지금 이게 버프 마법의 힘이라고요?”

“와아! 장난 아닌데요. 최소 두 배 이상은 강해진 것 같은데요?”

수정이와 조성태를 비롯한 마스터들이 경악스런 표정을 지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짐작건대 하몽의 버프 마법이 영지에서 개발한 이능 아이템 못지않게 효과가 대단한 듯했다.

[지금이야 우리를 공격하지 않지만,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해치우면서 전진하죠.]

“네, 알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마스터들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몬스터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휘이익.

휘이익.

뽀각.

뽀각.

순식간에 해골들이 부서지며 바닥에 뼈가 나뒹굴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공격을 받으면 바로 부활한 거와 다르게 마스터들의 공격을 받은 해골들은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마스터의 검에 신성력이 덧씌워 있어서 그래.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마스터들의 전투를 지켜봤다.

매일 소극적인 전투만 하다가 검을 들고 시원시원하게 싸우는 모습을 보니 속이 뻥 뚫리는 모양이었다.

변신과 버프 마법.

하몽의 합류로 인해 마스터들의 전투력이 두 배, 아니 열 배 정도 강해진 듯했다.

스르륵.

스르륵.

휘이익.

휘이익.

뽀각.

뽀각.

마스터들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몬스터들 사이에 들어가 활개를 쳤고 그들의 무기가 움직일 때마다 몬스터들이 하나둘씩 움직임을 멈췄다.

“으윽.”

“#$#$#$#$힐.”

“와우!”

그리고 간혹 몬스터의 공격에 부상을 입는 상황이 생겼지만 하몽의 마법으로 바로 치료가 되었다.

운디네가 사용하는 정령 마법은 상처를 치료해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하몽의 치료 마법은 마치 애초에 상처가 낫지 않은 것같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저 정도는 나도 바로 완치시킬 수 있거든?

비록 버프와 백업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마녀 부대보다 전투에 크게 이바지했다.

오 분, 십 분…… 삼십 분.

하몽의 도움을 받으며 전투를 한 마스터들은 백 단위가 넘어가는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다 해치웠다.

“성주님, 이것 좀 보세요. 레어급 무구들입니다.”

“레어급이라고요?”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해골들이 들고 있던 무구들을 살폈다.

검, 창, 도끼, 활, 방패…….

“사람이었던 건가?”

[켄트 왕국에서 사용하던 무구들입니다.]

해골들의 무구를 보고 우리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하몽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설명해 주었다.

“성주님, 이거 어떻게 할까요? 이대로 두고 가기엔 다들 너무 아까운 것들인데…….”

“일단 한곳으로 모아 놓죠. 상황 봐서 돌아갈 때 가지고 갈 수 있으면 가져가죠.”

“네, 알겠습니다.”

마스터들이 해골들이 사용하던 무구를 한곳에 모으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무구들에 모두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고 이렇게 버리고 가기엔 모두 아까운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때,

[제가 챙기겠습니다.]

“네?”

“#$#$#$#$#$”

하몽이 다시 마법 주문을 영창했고 그의 옆에 게이트에서 뿜어 대는 것과 같은 밝고 환한 붉은빛을 만들어 내더니 그 속에 무구들을 집어넣었다.

“무구들이 다 어디로 간 거죠?”

[제가 사용하고 있는 아공간입니다. 안전한 곳에 있으니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헐…….”

“헐…….”

“헐…….”

나는 물론이고 마스터들 모두 얼빠진 표정을 지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금속제 무구들이라 족히 수백 킬로그램은 넘을 듯싶은데 하몽이 그 많은 것을 아공간에 순식간에 넣은 것도 신기한데 이동을 하는데도 아무런 제약이 없어 보였다.

[아공간 처음 보십니까?]

“네.”

“네.”

끄덕끄덕.

[흠…… 카프리 님 능력이면 충분히 아공간 주머니나 아공간이 탑재된 무구를 만들 수 있을 텐데요?]

“카프리가 저 아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요?”

[제가 알기론 그렇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아공간 무구를 만들어 인간들과 여러 번 교류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아나! 이 영감탱이가…….”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나오는 걸 겨우 참아냈다.

저리 대단한 걸 만들 수 있으면서 모른 체했다고 생각하니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오빠, 참으세요. 카프리 님 계속 바빴잖아요. 일부러 안 만들어 준 건 아닐 거예요.”

“네. 맞습니다. 성벽을 짓고 다른 무구들을 만드느라 얘기하지 못했을 것 같네요.”

“그런 거겠지?”

“네. 그런 걸 거예요.”

“네. 그럴 겁니다. 돌아가서 만들어 달라고 해 보시죠.”

“그래.”

난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들 수만 있다면 아공간 주머니는 카프리가 만들었던 그 어떤 무구보다 효율성이 대단한 아이템이었다.

[얘기 끝나셨으면 계속 갈까요?]

“네.”

“네.”

무구들을 챙긴 우린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내,

“어느 쪽으로 가야 하죠?”

[흠…….]

하나였던 길이 갑자기 세 갈래로 바뀌었다.

[드워프 종족까지 데리고 와 레어를 지어서 의아해했는데 역시나 미로였군요.]

“미로요?”

[네. 성주님의 짐작대로 아무래도 씨엘 님의 신변에 무언가 변고가 생긴 게 확실한 것 같네요.]

하몽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황상 드래곤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한데 미로가 문제였다. 카프리의 손재주를 미루어 봤을 때 드워프가 이 레어를 만든 거라면 저 안으로 들어가면 왠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밑으로 내려가려고 하는 거면 맨 왼쪽 길로 가면 돼.

‘응?’

-그 어느 방향으로 가도 다시 갈림길이 나오는 건 마찬가지인데 왼쪽으로 가는 게 가장 빨라.

노움이 형상화되어 나타나 맨 왼쪽 동굴을 보며 손가락질을 했다.

-꽤 어지럽게 만들어놓기는 했지만 걱정하지 마. 나만 믿고 따라오면 돼.

‘다시 나올 수 있는 거지?’

-물론이지. 6층 이후론 감지가 안 되는데 거기까진 들어가도 충분히 다시 돌아올 수 있어.

‘6층까지나 있다고?’

-응. 6층까지는 감지가 되는데 그 이후론 안 되는 걸 보니 7층이 드래곤이 머물거나 머물고 있던 자리인 것 같아.

노움이 자신 있어 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혹여나 기관지식으로 인해 길이 막힌다 해도 힘으로 뚫고 빠져나올 수 있어. 물론 그 정도 힘을 사용하면 또 혼절하거나 한동안 요양을 좀 하긴 해야겠지만 옆에 엘프도 있고 마스터들도 있으니 탈출하는 데는 무리 없을 거야.

‘그래. 고마워.’

난 빙그레 웃으며 일행들을 이끌고 맨 왼쪽 길로 발걸음을 향했다.

1층. 언데드 몬스터, 타란툴라.

2층. 언데드 몬스터, 타란툴라.

3층. 언데드 몬스터, 타란툴라.

노움의 안내를 받으며 우린 순조롭게 계속 밑으로 내려갔다. 중간, 중간 계속 몬스터가 출몰을 했지만, 변신상태에서 하몽의 버프 마법을 받은 마스터들의 기습 공격으로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었다.

문제는,

“젠장! 이놈들 또 살아났어요.”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팔을 잘랐는데도 1초도 되지 않아 금방 재생이 됐습니다.”

4층부터였다.

트롤.

인간의 신체와 말머리를 한 몬스터가 새로이 출몰했는데 언데드 몬스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르게 신체 복구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성주님, 트롤들이 계속 몰려옵니다.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쪽에서 언데드 몬스터도 몰려오고 있어요. 피해야 할 것 같아요.”

몬스터들과 싸우던 마스터들이 낭패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가슴을 베고, 팔을 자르고, 다리를 잘라도 금세 재생을 해서 다시 달려드는 트롤 때문에 순식간에 몬스터한테 둘러싸이고 말았다.

그런데 그때,

-목을 잘라야 해.

살랑살랑.

시원하고 차가운.

노란색 빛을 머금은 바람이 트롤에게 다가갔다.

쑤컹.

윈드 블레이드.

어느 형상화 되어 나타난 실프가 바람의 칼날로 트롤의 목을 잘라냈다.

“어! 죽었어요.”

“목을 자르세요. 그럼 죽는대요.”

“네!”

“네!”

목이 자른 트롤이 움직이지 않는 걸 확인한 마스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프 덕분에 해치울 방법을 알아내긴 했지만, 목을 잘라 내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기에.

허나,

“$E%$$%$%슬로우.”

“#$#$#$#$커스.”

[지금이에요. 다시 공격해 보세요.]

하몽이 또 마법을 영창하자 트롤의 몸놀림이 현저히 느려지기 시작했고 마치 눈이라도 먼 것처럼 허공에 손을 허우적거렸다.

스르륵!

스르륵!

휘이익!

휘이익!

“흐으응!”

“흐으응!”

마스터들의 공격으로 끝내 트롤이 한두 마리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갑작스런 상위 몬스터의 등장으로 잠시 애를 먹긴 했지만, 정령들과 하몽의 콜라보레이션 덕분에 이번에도 위기를 극복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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