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드래곤 레어 (1)
“……같이 가시죠.”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지사지.
만약 내가 저들의 입장이라고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같이 가려고 들었을 테니까.
[이들도 함께 가는 겁니까?]
“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변신부터 해야 하니 이쪽으로 모여 주시겠습니까?]
“변신이요?”
[성주님도 보셔서 알겠지만 언데드 몬스터의 개체 수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지금이야 해가 떠서 숨어들었지만 해가 지면 또 스멀스멀 기어 나올 겁니다.]
“아…….”
하몽의 지시에 따라 난 마스터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그리고 이내,
[성주님부터 시작하죠.]
“네.”
하몽이 흑장로의 반지를 내 약지 반지에 착용시켰다.
‘흠…….’
마나가 꿀렁인다.
마치 반지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내 가슴을 간질이며 마나 좀 나눠 달라고 속삭이는 기분이 들었다.
[흠…… 정령사인지 짐작은 했는데 성취가 꽤 높으시네요.]
“…….”
[보통 검사는 마나 홀이 여기 명치에 그리고 저 같은 마법사는 이곳 심장 부근에 마나 홀이 생성됩니다. 그런데 성주님께서는 양쪽 모두 마나 홀이 생긴 것은 물론이고 여기 이곳 마나 로드에도 또 기운이 뭉쳐 있습니다.]
“…….”
[이런, 제가 실례를 했군요. 일부러 그런 게 아니고 변신하는 방법을 알려 주려다가…….]
내 손을 잡고 마나를 흘려보내며 관조하듯 날 살펴보던 하몽이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내게 사과를 해 왔다.
-엘프 종족이라 이건가? 스캔 한 번에 다 알아챘네.
‘넌 알고 있었던 거야?’
-알고 있었던 게 아니고 우리가 이렇게 만든 거야. 널 처음 만났을 때 몸이 하도 쓰레기라 정령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거든. 그래서 심장에 임시방편으로 마나 홀을 만들어 그 힘으로 널 치유하고 그 힘을 사용했었어.
‘그럼 명치에 생긴 건 뭔데?’
-그건 카샤랑 노움이 한 거야. 정령 마법 특성 때문에 어느 정도 신체가 뒷받침해 줘야 하거든. 가슴에 있는 건 마나 홀이 아니라 자연의 기운을 쓸 수 있는 통로가 열린 거고.
“아…….”
-굳이 배울 필욘 없지만, 명치와 심장 두 군데 다 마나 홀이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검사와 마법사의 스킬을 다 배울 수 있는 몸이 된 거야. 고생한 보람이 있지?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봤다.
정령들이 계속 내 신체가 마음에 안 든다고 구시렁거리며 고통이 수반된 뭔가를 하더니 내 몸을 강해지기 위해 최적화된 좋은 그릇으로 만들어 놓았다.
“괜찮으니까 계속하세요. 가르침을 주려고 하는 건데 제 몸 좀 살펴보는 게 대수인가요.”
난 빙그레 웃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그럼. 제 손을 따라 마나를 인도해 주세요.]
“네.”
하몽의 손이 내 심장에서 시작해 흑장로의 반지를 착용하고 있는 곳까지 가며 내 몸을 훑었다.
[직접 마법을 발현을 시키는 것도 아티팩트에 내장된 마법을 발동시킬 때도 각각 이렇게 정해진 마나 로드가 있습니다.]
“아…….”
[그리고 그에 맞는 주문도 따로 있고요. 지금 알려 준 대로 마나를 움직이면서 절 따라 언데드 몬스터를 상상하면 됩니다.]
“네.”
“#$#$#$##$#$폴리모프.”
“#[email protected]$#$#@$폴리모프.”
난 하몽이 알려 주는 대로 마나를 움직이며 룬어를 따라 했다.
그리고 이내,
“헐…….”
“헐…….”
몸이 조금씩 변하는가 싶더니 해골처럼 뼈만 남고 살과 머리카락 등 장기들이 모두 사라졌다.
[심장과 명치에 있는 마나가 미비하나 정령력으로 인해 성주님께선 더 강한 존재로 변신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언데드 몬스터로 변신을 유도했습니다. 마음에 드십니까?]
“네.”
끄덕끄덕.
난 하몽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엘프들이 변신하는 것을 봤기에 나도 변신을 할 수 있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직접 이렇게 다른 존재로 몸이 바뀌니 어안이 벙벙했다.
‘다른 걸로도 해 볼까?’
난 하몽이 알려 준 대로 다시 마나를 움직이며 변신을 시도했다.
“$%$%$%$%$폴리모프.”
아오오오오오.
늑대.
“$%$%$%$%$폴리모프.”
히이이이이잉.
말.
“$%$%$%$%$폴리모프.”
캬아앙.
여우.
“$%$%$%$%$폴리모프.”
냐앙.
고양이까지.
마치 어렸을 적 아버지가 처음 로봇 장난감을 사줬을 때처럼 흑장로의 반지에 마나를 흘려보내며 신이 나서 변신을 남발했다.
“오빠, 신기하고 재미있는 건 알겠는데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을까요?”
“냐아앙. 아, 미안.”
난 머리를 긁적이며 흑장로의 반지를 수정이에게 건네줬다.
[변신하는 이유는 굳이 언데드 몬스터와 싸우지 않고 통과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굳이 강한 존재로 변신을 할 필요가 없으니 마스터님들께서도 해골로 변신하면 될 것 같네요.]
“네, 알겠어요. 근데 이건 그냥 호기심에 물어보는 건데 혹시 독수리 같은 새로 변신하면 하늘도 날 수 있나요?”
[네. 가능은 합니다. 헌데 강한 존재나 본체의 능력과 괴를 달리 하는 존재로 변신을 하면 그 만큼 마나가 많이 소모됩니다. 최악의 경우엔 마나가 폭주할 수도 있고요. 그러니 되도록 무리한 변신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네.”
하몽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경고를 했다.
[더 궁금한 거 없으시면 제 손을 따라 마나를 인도하세요.]
“네.”
[……마나를 인도하세요.]
“네.”
권수정, 조성태, 최영식, 최병용, 이어진, 김종관…….
하몽의 가르침대로 마나를 인도한 마스터들이 모두 해골로 변신을 했고,
“가시죠.”
“네.”
“네.”
우린 드래곤의 레어가 있는 용의 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용의 계곡에 들어오니, 마치 강남 한복판에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처럼 언데드 몬스터들이 가득했다.
“변신 안 하고 왔으면 언데드 몬스터랑 싸우다가 또 날 샐 뻔했네요.”
“그러게.”
처음 언데드 몬스터의 바로 옆으로 지나갈 땐 침을 꼴깍 삼킬 정도로 긴장감이 가득한 일행들이 어느새 이제는 바로 옆에 언데드 몬스터가 있는데도 말까지 주고받을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인간의 모습으로 있을 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맹목적으로 달려들던 언데드 몬스터들이 지금은 하몽이 자신한 대로 본질까지 언데드의 기운을 따라 하는지 우리를 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하몽 님 근데 이거 변신이 언제까지 유지되는 거죠?”
[성주님 같은 경우엔 캔슬 마법을 받지 않은 이상 며칠이고 유지가 될 겁니다. 마스터님들은 하루 정도 유지될 것 같고요.]
“왜 차이가 있는 거죠? 혹시 마나 양에 따라 시간이 정해지는 건가요?”
[네. 비슷합니다. 폴리모프를 발현할 때 사용된 마나의 질과 양으로 시간이 정해집니다.]
하몽이 날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A급 헌터 24시간.
SS급 헌터 72시간.
정확한 건 아니지만 하몽의 설명을 미루어 봤을 때 B급과 C급 헌터들은 변신 반지를 사용하면 대략 10시간 이상은 변신을 유지 할 수 있을 듯했다.
“이거 돈 좀 되겠는데요?”
“그치?”
“네. 레이드에 나가는 헌터들에게 일정 금액을 받고 변신만 시켜줘도 제법 쏠쏠할 것 같아요. 몬스터로 변신을 하면 혹시나 대규모로 몬스터가 나타나도 도망을 가는데 쉽고 몰래 한 마리씩 사냥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십만 원씩만 받고 변신시켜도 하루에 수천만 원은 우습게 벌리겠는데?”
“그리고 정찰대 헌터들에게도 꽤 쉽게 쓰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정이가 욕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변신 반지를 쳐다봤다.
표정을 보아하니 반지가 탐이 나는 모양이었다.
네크로맨서. 흑마법을 사용하던 마족이 쓰던 거라 마법사에게 용이한 아이템일 줄 알았는데 클래스에 상관없이 그 누가 쓰던 용이한 아이템이었다.
“자! 여기.”
“네?”
“발키리 길드에서 관리해 줘. 돈도 돈이지만 네 말처럼 정찰대에서 사용하면 안전성이 확 올라갈 테니까.”
“그래도 될까요?”
“그 대신 다른 아이템은 마녀 부대에 맡길게. 일전에 데스 나이트 불검은 태백산맥 줬으니까.”
“네.”
난 빙그레 웃으며 수정이에게 변신 반지를 건네줬다.
그런데 그때,
[성주님, 도착한 것 같습니다.]
“…….”
“…….”
하몽이 주먹을 말아 쥐고 얼굴 옆으로 올렸다.
우리는 용의 계곡으로 들어와 12시간 내내 산을 올랐고 20층 크기의 아파트만 한 커다란 동굴이 눈앞에 보였다.
[카프 님이 같이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카프리는 왜?”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이 아닙니다. 짐작건대 아마 씨엘 님께서 드워프 종족을 데리고 레어를 만든 것 같습니다.]
하몽이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동굴 입구를 쳐다봤다.
동굴 안쪽은 우리가 판 땅굴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높았고 갖가지 마법진은 물론이고 불도 없는데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디언도 가디언이지만 기관지식이 있을 수도 있으니 지금부턴 모두 긴장 좀 하셔야 할 것 같네요.]
“네.”
[그럼 제가 먼저 들어갈 테니 조심히 따라오세요.]
“네.”
끄덕끄덕.
하몽이 긴장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한발, 한발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조금씩 전진했다.
[전투 준비하세요. 가디언들입니다. 이놈들은 저흴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네.”
“네.”
하몽의 지시에 마스터들이 무기를 빼 들었다.
검, 창, 활, 도끼, 방패까지.
생긴 건 똑같은데 동굴 안에 있는 해골들은 모두 제법 좋아 보이는 무기를 들고 있었다.
게다가,
“타란툴라예요!”
동굴 바닥과 벽에 있는 작은 흠에서 수십, 수백 마리의 거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레이 기사단이 관리하는 늑대인간의 숲에 서식하는 타란툴라와는 크기가 비교도 안 될 만큼 작았지만, 장소가 협소하다 보니 오히려 더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성태야!”
“응, 알았어.”
“저희도 있습니다.”
조성태, 이어진, 김종관, 최병용, 최영식이 하몽의 앞으로 걸어가 앞을 막았고,
‘실프!’
-응, 알았어.
나도 발걸음을 멈추고 해골과 타란툴라 무리를 보며 언제든 공격할 자세를 갖췄다.
그런데 그때,
스르륵.
스르륵.
“%$$%$%$%$%베리어.”
갑자기 벽에서 수백여 발의 화살이 날아왔고 하몽이 방어 마법으로 펼치며 그것들을 모두 튕겨 냈다.
[조성태 마스터님. 뒤로 물러나세요.]
“네.”
화살들을 막아낸 하몽이 굳은 표정을 지으며 조성태를 쳐다봤다.
분명 방금까지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느새 조성태가 밟고 있던 땅에 마법진이 나타나 밝게 빛나고 있었다.
짐작건대 저 마법진이 화살을 발사시킨 듯했다.
[아무래도 드래곤이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씨엘 님이 자연으로 돌아갔으면 몬스터의 권속도 풀었을 텐데 저리 건재하고 기관지식마저 작동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드래곤이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성주님.]
“흠…….”
하몽이 두려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눈앞에 있는 몬스터들과 기관지식이 위협적이긴 하지만 막아 낼 수 있을 듯싶었는데 드래곤이 살아 있을까 걱정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저것만 보고 단정 짓기는 좀 그런 것 같은데?
‘어?’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내가 아는 드래곤들은 자존감이 정말 대단했거든.
‘자존감이 대단하다고?’
-응. 레어 근처에 가디언들을 세워 두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이 두지는 않거든. 숙면과 휴식을 방해하는 침입자가 귀찮아서 권속을 부리는 건데 이 정도면 오히려 가디언들이 거슬릴 것 같은데?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의문스런 표정 지으며 동굴 안쪽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