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마법사의 탑 (1)
“얘기 중에 미안한데, 나 부탁 하나만 해도 되나?”
“부탁이요? 얘기해 보세요.”
“그게 우리가 밤새 전투했잖아. 그래서 일단 조를 나눠서 내가 1조로 오침을 좀 하게 됐는데 맥주 한잔하고 잤으면 싶어서.”
“흠…….”
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장지원 마스터를 쳐다봤다.
밤새 전투를 치르고 나서 갑자기 다가와 부탁할 게 있다는 말에 의아해했는데 음주를 허락해 달라는 거였다.
“그게 다들 큰 전투를 치르느라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해하는 것 같더라고.”
장지원이 손을 꼼지락거리며 나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헌터들을 번갈아 쳐다보며 눈치를 살폈다.
보아하니 그만 먹고 싶은 게 아니라 헌터들의 의견을 모아 대표로 나선 모양이었다.
“한 캔씩만…….”
“두 캔.”
“네?”
“한 캔씩을 누구 코에 붙여. 두 캔, 아니 딱 세 캔씩만 먹을게.”
“딱 세 캔 만이에요. 더 이상은 안 돼요.”
“당연하지! 고마워. 역시 허락해 줄지 알았어.”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장지원이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헌터들에게 걸어갔다.
“카프리, 너도 해용이 그만 귀찮게 하고 가서 한잔하자.”
“알았다. 멍청이.”
꿀꺽.
맥주라는 말에 카프리가 침을 삼키며 장지원을 따라갔다.
행복이 별거겠는가.
‘애들도 아니고 알아서 조절들 하겠지.’
전쟁터 한복판에서 술을 마시는 게 살짝 염려되긴 했지만 저리 좋아하니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죄송해요. 카프리가 속은 안 그러는데 가끔 저렇게 까칠하게 굴 데가 있어요. 며칠 저러다 말 테니 너무 괘념치 마세요.”
다시 하몽과 둘이 남게 된 난 그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드워프 종족이 원래 거침이 없다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짓이 없고 말을 속에 담아 두지를 못하죠. 저희 엘프족한테 화가 많이 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표현한 거고요.
“끙…….”
-허나 염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자초한 일이고 이렇게 꾸지람을 들으니 되레 속이 좀 편안해지는 것 같거든요.
“아…….”
하몽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카프리의 무례한 언사와 행동에 하몽과의 관계가 틀어질까 염려를 했는데 되레 고마워하는 듯했다.
카프리에게 했던 말처럼 진즉에 몬스터와 싸우지 않은 걸 후회하고 또 반성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싸가지 없는 새끼들. 본 모습으로 안 있냐?]
“캬아앙.”
장지원과 함께 식사를 배급받은 카프리가 사막여우로 변신해 있는 엘프들에게 또 시비를 걸었다.
[안젤리나.]
“캬아앙.”
[폴리모프를 해제해.]
“캬앙.”
카프리를 지켜보던 하몽은 근처에 있던 엘프 한 명을 불렀고 다시 인간의 외형으로 돌아왔는데.
“와아…….”
미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안젤리나라 불린 엘프는 과연 여신이 있으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만큼 아름다운 미모를 뽐냈다.
[아이들도 모두 변신 풀라고 해.]
[그래도 될까요?]
[말은 거칠어도 생각이 깊은 드워드다. 그가 신뢰하는 이들이고 아이들의 변신을 못마땅해하니 해제를 하는 게 예의인 듯하네.]
[네, 알겠어요.]
하몽은 안젤리나를 통해 엘프들의 변신 해제를 지시했고 그녀는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모두 변신 풀어.]
엘프들에게 다시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내,
“헐…….”
“헐…….”
엘프들의 곁에 있던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반쯤 넋이 나간 모습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전투 중엔 경황이 없어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는데, 만약 진짜 신이 있다면 엘프 종족에게 아름다움을 몰빵해 준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뽐냈다.
-성주님, 저희도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
“…….”
-성주님?
“아, 죄송해요. 너무 잘생기고 아름다워서 제가 무례를 범했네요.”
짝! 짝!
“이쪽으로 가시죠.”
-네.
난 내 따귀를 때리며 정신을 되잡은 후 하몽과 안젤리나를 데리고 식사를 배급하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여기서 받으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내 설명을 들은 엘프들은 헌터들과 섞여 같이 배급을 받기 시작했고,\
“휴우.”
난 그때서야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저 성주님, 엘프 수장과 인사를 하고 싶은데 소개시켜 줄 수 있나요?”
최은빈이 슬며시 다가와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평소 속마음이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는 스타일이었는데 지금 그녀의 얼굴엔 간절함이 가득해 보였다.
짐작건대 엘프들의 마법을 보고 감명이라도 받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또 가능하다면 엘프들에게 마법을 전수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런 쓰레기들 말고 진짜 마법사가 필요하다. 마법진의 술식과 룬어를 이해하는 진짜 마법사가. 너희 세계 마법사들 다 가짜다.’
카프리는 중국에 있다는 7서클 이상의 S급 마법사를 두고도 쓰레기라 일컬으며 최은빈과 마녀 부대를 무시했고 그때 들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최은빈의 눈빛이 너무 뜨거워 굳이 듣지 않아도 그녀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었다.
“혹시 일전에 카프리가 했던 말 때문인가요?”
“창피하지만 엘프들의 마법을 직접 보니 카프리가 했던 말에 수긍하게 되었어요. 저들이 부리는 마법은 저희와 격이 다르다는 걸.”
“그 정도로…….”
“아니 격이 다른 정도가 아니라 그동안 저희가 배우고 습득했던 마나 운용 방식과 발현 자체가 잘 못 된 것 같아요. 게이트가 생기고 지난 3년 동안 지구에 있는 수많은 연구원과 헌터가 던전 안에서 발견한 마법진과 룬어들을 연구해서 지금 이 자리까지 왔지만, 해석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거든요.”
“해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요?”
“네. 일단 연구원들의 해석을 통해서 마법이 구현되기는 하니 쉬쉬하고는 있지만, 상위 마법사들은 이미 다 오래전부터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었거든요. 하위 마법을 쓸 때는 별로 티가 안 나는데 상위 마법을 쓸 때마다 뭔가 어긋나고 몸이 상하고 있다는 걸.”
최은빈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날 지그시 쳐다봤다.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난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파이어볼.
마녀 부대 헌터들이 주로 사용하는 마법은 강력한 화력을 자랑했지만, 단점이 많았다.
일단 마법을 구현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몇 번 구현하면 마치 물먹은 솜처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그 때문이었다.
언데드 몬스터들이 미스릴에 약해 화살 공격 위주로 그동안 레이드를 지휘한 것도 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마녀 부대를 후방에 두고 소극적으로 운영을 했었다.
그런데 그게 다 잘못된 마나 운용과 발현방식에 의한 부작용이었던 것이었다.
“배울 수만 있다면 큰 도움이 되겠네요.”
마녀 부대와 달리 하몽과 엘프들은 수십만의 언데드 몬스터와 싸우며 마법을 난사했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음식을 받아 식사하고 있었다.
“같이 가시죠.”
“네, 감사해요.”
난 최은빈과 함께 다시 하몽과 안젤리나의 곁으로 걸어갔다.
“하몽 님, 저희 연합의 마법사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입니다. 인사를 하고 싶다는데 괜찮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안녕하세요. 전 엘프족을 이끄는 하몽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마녀 부대 부대장 최은빈이라고 합니다.”
하몽이 식사를 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최은빈과 악수를 하였다.
그리고 이내,
[괜찮으십니까?]
“네?”
하몽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최은빈의 몸을 훑어봤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구현해 볼 수 있겠습니까?]
“……네.”
마법사라는 말에 하몽은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먼저 최은빈의 마법을 살펴 주었다.
“……파이어볼!”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S급으로 분류된 헌터답게 최은빈의 마법은 화력이 대단했다.
만약 목표지점에 몬스터가 있다면 바로 숯불 구이가 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와 폭발력마저 있었다.
허나,
[……그동안 계속 이런 식으로 마법을 구현하신 겁니까?]
“……네.”
[마나 홀이 파괴되지 않은 게, 아니 살아 있는 게 용하군요.]
하몽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최은빈을 쳐다봤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마나 운용과 발현 방식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만 명 중의 한 명. 저희 대륙에서도 누구한테 배우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마나를 느끼고 또 그걸 몸에 받아들여 마나 홀을 생성시키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나를 사용해 속성 마법마저 아무런 교육 없이 발현시켰고요. 헌데 제대로 된 교육도 없이 그렇게 막무가내로 마법을 난사했다간 종국엔 결국 다 마나 홀이 파괴되거나 생명을 잃었죠.]
“끙…….”
[제대로 된 아니 지금 저희가 사용하는 마법 술식과 룬어도 완벽하다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수백 년 동안 연구와 연구를 거듭해 인체에 최대한 무리가 없고 가장 효율적으로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개발이 된 거죠.]
“아…… 그럼 저도 배울 수 있을까요?”
[함께 하기로 했으니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헌데 생각하시는 만큼 그렇게 빠르지는 않을 겁니다.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죠.]
“얼마나?”
[지금 헌터님께서 사용하신 마법은 4클래스가 맞습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4클래스 마법사가 되려면 빠르면 십 년. 그리고 배움이 느리면 십오 년도 넘게 걸립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이들이 그 단계에서 정체되어 생이 다할 때까지 머무르는 이들도 많고요.]
1클래스 1~3년.
2클래스 2~6년.
3클래스 4~8년.
4클래스 8~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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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며 마법사로 성장을 하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지 설명해 주었고 최단기간에 습득해도 최하 7년은 수련을 해야 4클래스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5클래스에 올라가려면 또 8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고 단계가 오를수록 수련 시간은 배로 늘어났다.
짐작건대 그의 말대로 수련을 하면 최은빈은 노년의 나이가 되고 나서야 7서클에 오를 수 있을 듯했다.
“하몽 님께선 몇 클래스이신가요?”
[저는 9클래스입니다. 여기까지 오르는데 80년 정도 걸린 것 같네요.]
“80년이요? 제가 보기엔 20대처럼 보이는데?”
[하하, 그 말은 인간들 사이의 칭찬이라지요. 저희 엘프가 원래 인간들과 비교해 노화가 느립니다. 백 살 이후론 세어 보지 않아서 가물가물하지만 제가 카프리 님 보다 두세 살 어립니다.]
“아…….”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하몽을 쳐다봤다. 카프리야 털도 있고 생긴 것도 제법 연륜이 있어 보여 그러려니 했는데 하몽도 그 못지않게 나이가 많았다.
짐작건대 아이들이라 일컫는 어린 엘프들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나이가 적지는 않을 듯했다.
“어떻게 하죠? 성주님?”
최은빈이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수련을 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몸이 상한다고 하는데 계속 지금처럼 마법을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당장 저희가 빠지면…….”
“잘 먹고 잘살려고 이리 싸우고 영지를 개발하는 건데 몸을 축내면서까지 마법을 사용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끙…….”
최은빈이 앓는 소리를 내며 날 쳐다봤다.
“다시 처음부터 배우세요. 제가 못 들었으면 모르되 몸이 상한다는 걸 안 이상 앞으로 마녀 부대의 마법 발현을 금지합니다.”
“…….”
“만약 제 명령을 어기면 영지에서 추방입니다.”
고민하는지 최은빈의 눈동자는 계속 흔들렸고 그대로 두면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아 난 눈에 힘을 주고 강경하게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