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137화 (137/255)

137화. 엘프족 (3)

대한민국 국가 재난 관리 본부.

“본부장님 큰일 났습니다. 일본에 리치가 출몰했답니다.”

“리치? 그건 또 뭔가?”

“세계 헌터 협회에서 전달받은 바로는 9티어 이상의 마족이라고 합니다. 일전에 도쿄를 폐허로 만들었던 데스 나이트 열 마리를 수하로 부린다고 합니다.”

“이런! 데스 나이트 열 마리라니!”

김용규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임풍훈 팀장을 쳐다봤다.

데스 나이트 세 마리 출현으로 수도를 잃었었는데 그보다 더 상위 몬스터가 출몰했다고 하니 그 피해는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레드 문, 레드 문 때문인가?”

“네. 그렇습니다. 지금 세계 헌터 협회를 통해 각국에서 지원을 보내 달라고 난리입니다. 미국도 뱀파이어 수천 마리가 바리케이드를 뚫고 도심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런 미친 새끼들을 봤나. 지금 당장 우리도 죽을 판인데 무슨 지원을 보내 달라는 거야.”

쾅!

김용규는 불같이 화를 내며 주먹을 말아 쥐고 책상을 내리쳤다.

레드 문.

노란색 달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고 나서 전 세계 열린 게이트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고 미스릴 무기와 치료제가 있는 대한민국에 지원 요청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늑대인간, 해골, 스파토이, 좀비, 구울…….

게이트가 열린 지 3년.

이제는 하위 몬스터로 자리 잡아 나름 공략법이 생겼던 언데드 몬스터들이 그동안 축적됐던 데이터를 무시하고 게이트를 넘어와 미친 듯이 날뛰며 세계를 혼란 속으로 빠뜨리고 있었다.

“안해용 성주는 아직인가?”

“네.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레이 기사단과, 플로라, 울프, 레인보우…… 헌터 협회에 연락해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병력이 지금 용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걸로는 부족해. 데프콘3를 발동하고 군인들도 다 출동시켜.”

“군인들까지 말입니까? 어차피 현대 무기는 잘 통하지도 않는데 굳이…….”

“가서 고기 방패라도 하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임풍훈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몬스터 웨이브가 발발했지만 대한민국은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다만, 수십만의 언데드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다는 스카이 캐슬의 연락이 있었을 뿐이다.

“안해용 성주가 죽으면, 그리고 스카이 캐슬이 밀리면 우리도 끝이야!”

김용규는 확신했다.

스카이 캐슬에서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 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곳이 뚫리면 대한민국도 혼란에 빠지게 될 거라는 것을.

스카이 캐슬이 뚫리면 그나마 확보해 두었던 미스릴과 치료제마저 빼앗기는 것이었기에.

* * *

“어진아, 종관아!”

“성주님.”

“해용아.”

“살아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다행이다.”

“이렇게 죽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네 얼굴은 보고 죽을 수 있겠네. 하하.”

협회 소속 헌터들은 용의 계곡까지 쫓겨 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얼굴에 피 칠갑하고 있던 김종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날 지그시 쳐다봤다.

“죽긴 누가 죽어. 이제 내가 왔으니까 걱정하지…….”

“아무리 너라도 이젠 틀렸어. 저놈은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김종관이 세상 다 산 사람 같은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쳐다봤다.

레드 문 아래 검은색 로브를 입고 후드를 깊게 내려쓴 인영이 보였다.

저놈이 네크로맨서인 듯했다.

“해골들을 아무리 죽여도 소용없어. 저놈이 바로바로 다시 살려내거든.”

“맞아. 저놈을 죽이면 된대.”

“어떻게? 하늘 위에 저렇게 떠 있는데? 화살을 날려 봤는데 저놈 텔레포트 능력까지 있어.”

“그럼 내려오게 해야지.”

난 입술을 굳게 다물며 하늘을 쳐다봤다.

‘실프!’

-더 이상은 안 돼. 설사 네가 죽는다고 해도 지금 힘으론 저놈 못 죽여.

실프가 네크로맨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언데드 몬스터들을 상대하느라 힘을 너무 많이 소비했어. 멀쩡한 상태에서 만나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인데 지금 상태론 1%의 승산도 없어. 일단 도망가고 후일을 도모해야 해.

‘도망가자고? 이 많은 사람을 데리고 어떻게?’

-당연히 다 못 데리고 가지. 일단 퇴각 명령을 내리고 나머진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어.

‘미친!’

운디네의 조언에 난 절로 욕지거리가 나왔다.

기껏 있는 힘, 없는 힘을 짜내서 사람들을 모아 여기까지 왔는데 이곳이 우리 무덤이 될 모양이었다.

수십만 마리.

동, 서, 남, 북 어디를 둘러봐도 언데드 몬스터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구나.

이명이 들려왔다.

‘운디네 제발!’

-없어. 수만 명이 있어봤자 물리 공격력으론 저놈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오러 블레이드급 이상의 마나 공격을 해야 해. 그것도 여럿이서.

“지윤미 마스터님. 언데드 몬스터 무시하고 모두 활에 마나를 주입하고 저놈을 조준 사격해 주세요.”

“네, 알겠어요.”

내 지시를 받은 지윤미 마스터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두 네크로맨서를 조준하세요.”

“네.”

“셋, 둘, 하나, 고!”

스르륵.

스르륵.

지윤미 마스터의 지휘하에 수천 발의 화살이 네크로맨서에 날아갔다.

허나,

-미천한 존재들이여…….

네크로맨서는 바람처럼 사라졌고 어느새 한참이나 떨어진 곳에 다시 나타났다.

그동안 봐 왔던 헌터들의 마법과는 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저놈이라고 마나가 무한하지는 않아. 지금과 같은 화력으로 몰아붙여서 계속 마나를 사용하게 하면 죽이진 못해도 물러나게 할 수는 있을 것 같아.

‘정말?’

-어. 그런데 언데드 몬스터들은 어떻게 하려고?

‘제길…….’

진짜 방법이 없는 건가?

“고!”

스르륵!

스르륵!

“고!”

스르륵!

스르륵!

헌터들의 화살 공격에 네크로맨서는 계속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해 몸을 피했다.

그리고 우린,

“치료제! 치료제!”

“여기도!”

그 사이에 언데드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치료제가 있기에 언데드 몬스터의 공격은 그리 치명적이지 않았다.

허나 숫자가 너무 많아 헌터들이 눈에 띄게 지쳐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있다간 칼에 맞아 절명하는 게 아니라 체력이 빠져 스스로 목을 내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저놈만, 저놈만 죽이면 언데드 몬스터들은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다더니 정말 무시무시한 능력을 갖춘 놈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성주님!”

다다다다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다다다다.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스카이 캐슬 방향에서 지원군이 도착했다.

조성태, 이아영, 이슬비…… 그리고 군인들.

“#$%#$#%$%오르쿠스!”

“$%$%$%$%$오르쿠스!”

그리고 수십만 명의 오크들까지.

“모두 다시 언데드 몬스터들을 공격하세요.”

“하지만 계속 부활을 하는데…….”

“일단 공격하세요. 죽이고 또 죽이면 언젠가 진짜로 죽겠죠.”

“네!”

“네!”

지원군을 본 난 다시 언데드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오크들과 군인들 덕분에 이제 제법 숫자는 비슷해졌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꿈틀대는구나.

‘저 새끼가!’

이명이 들려 하늘을 쳐다보니 네크로맨서가 미소를 지으며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설사 이곳에서 죽는다고 하더라도 저놈 면상에 어퍼컷이라도 한 대 날려보고 싶을 만큼 얄미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캬아앙.”

“캬아앙!”

“흰 토끼?”

수백 마리의 토끼들이 뛰어와 우리를 넓게 감싸며 울기 시작했고.

“캬아앙.”

“캬아앙.”

뿌지직.

뿌지직.

해골들이 별안간 부서지며 먼지로 화하기 시작했다.

-이놈들 엘프였어.

‘엘프?’

-턴 언데드라고 신성 마법을 부리고 있어.

“…….”

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흰 토끼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턴!”

“@#$$#$#$턴!”

“헐…….”

“헐…….”

토끼들의 형상이 조금씩 바뀌더니 커다란 귀와 파란 눈만 그대로인 채 모두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하몽! 네 놈이…….

-…….

-왜! 이제 와서…….

네크로맨서의 짜증스런 목소리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또 하나의 인영이 하나 더 보였다.

그리고 이내,

“#$#$#$#$사일런스.”

-인간 지도자님, 발을 묶어 두었으니 네크로맨서를 공격하세요.

새로운 목소리의 이명이 들려왔다.

“지윤미 마스터님! 네크로맨서를 공격하세요!”

“네, 알겠어요. 모두 네크로맨서 위치 확인하세요.”

“네!”

“네!”

“셋, 둘, 하나, 고!”

스르륵.

스르륵.

“읔.”

이명의 내용대로 네크로맨서는 텔레포트를 하지 못했고 미스릴 화살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허나,

-감히 인간 따위가…….

마족이라 그런지 땅으로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비행을 시작했다.

“#$%$#%$%슬로우!”

-계속!

“마스터님!”

“둘, 셋 고!”

스르륵!

스르륵!

“둘, 셋. 고!”

스르륵!

스르륵!

“읔.”

이명이 지휘에 맞춰 헌터들은 계속 화살을 날렸고 결국 네크로맨서가 땅으로 추락했다.

“이 개새끼 잘 만났다.”

“죽여!”

푹! 푹! 푹!

수십 명의 헌터들이 달려가 그의 몸에 칼을 박아 넣었다.

하늘을 유유자적 날아다니며 우릴 유린했던 마족이었는데 엘프 마법사가 도와주자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너무 손쉽게 무너져 버렸다.

-하몽, 어째서, 아니 왜 이제 와서 인간들을 돕는 것인가!

-꼭 들어야 하겠는가?

-말해라. 어서!

-호박고구마가 너무 맛있었다.

-뭐라고? 호박고구마?

-그렇다. 인간들이야 어떻게 되든지 말든지 그냥 조용히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호박고구마가 계속 먹고 싶었다.

-미친. 그게 무슨 개소리인가!

-넌 말을 해 줘도 모를 줄 알았다. 마족 따위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냥 조용히 가시게.

“#$#$#$#$#$$#디스.”

헌터들의 무차별한 공격에도 네크로맨서는 계속 꿈틀거리며 이명을 내보냈고 하늘에서 거대한 창이 내려와 그걸 맞고 나서야 숨을 멈췄다.

그리고 이내,

“끝난 건가?”

우리를 괴롭히던 수십만의 언데드 몬스터들이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귀한 음식을 얻어먹었는데 이제야 인사를 드리네요.

눈처럼 하얀 피부.

파란색 눈.

뾰족한 귀.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존재가 내게 와서 아는 체를 해 왔다.

“저를 아시나요?”

-엘프족을 이끄는 하몽이라고 합니다. 전 초면입니다만 저희 아이들이 그대에게 많은 신세를 졌다 하더군요.

하몽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를 감싸고 넓게 퍼져 있는 엘프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캬아앙!”

“캬아앙!”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엘프들이 다시 흰 토끼의 모습으로 변하더니 내게 다가와 마치 빈 상자를 때렸던 것처럼 냥냥 펀치를 날렸다.

-알아보시겠습니까?

“……네.”

-저희가 도움이 된 거 맞지요?

“……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신세를 져도 될까요?”

“신세라 하면?”

-호박고구마가 정말 맛있더군요.

“……그거면 되겠습니까?”

-네. 그거면 충분합니다.

하몽이 세상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짐작건대 앞에 있는 존재가 카프리가 말했던 엘프족의 현자 급 마법사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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