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대농장 (3)
스카이 캐슬. 카프리, 오키도키.
발키리 길드. 지윤미, 권수정, 박민정, 김성준, 유거성, 배상우, 최유라.
태백산맥 길드. 장지원, 김현규, 김영균, 이부성, 이세훈.
마녀 부대 최은빈.
재난 관리 본부 김용규, 임풍훈.
헌터 협회. 이어진, 김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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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집에 스카이 캐슬을 이끄는 단체의 지휘관들이 모두 한곳에 모였다.
“……양식장과 농장을 크게 만들면 광산만큼이나 우리에게 막대한 부를 얻게 해 줄 것 같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난 지휘관들을 둘러보며 이부성과 나누었던 얘기를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카프리의 대장장이 기술에 이어 수산업과 농업까지 확장 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면 일전에 내가 기술직 헬퍼들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몸을 쓰고 직접 땀을 흘리는 이들이 좀 더 귀히 여겨지는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듯했다.
“……그러니까 성주님 말씀은 오크들을 데리고 직접 농사를 짓겠다는 거죠? 그리고 언데드 몬스터를 몰아내고 저 넓은 땅을 다 논과 밭으로 일구어내면 헬퍼들과 영지민까지 투입을 하게 될 거고요?”
“네, 맞아요. 괜찮지 않나요? 지금으로선 광산의 금속들과 카프리의 무구들 말고는 딱히 영지에 수익이 없으니…….”
“하아…….”
“……?”
“그럼 토벌은 누가 하죠?”
대농장을 만들면 영지가 얻게 될 이익에 대해 한참 설명하는데 지윤미 마스터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끓었다.
“우리가 지금 언데드의 숲, 아니 오크의 숲에 있는 언데드 몬스터들을 토벌하고 있는 건 용의 계곡까지 진군하기 위함이 아니었나요?”
“……그렇죠.”
“용의 계곡에 들어가 엘프 종족을 만나 설득해서 귀환 마법진을 만들기 위해서 재난 관리 본부와 헌터 협회에서도 이렇게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고 있는 거고요.”
지윤미 마스터가 코끝을 찡그리며 현재 영지 인원들이 주력으로 움직이고 있는 행사에 관해 설명했다.
그녀의 표정과 말하는 것을 들어 보니 내가 직접 농사를 짓는 게 탐탁지 않은 모양이었다.
“물론 성주님 말씀처럼 농장을 만들어 이능을 발휘하는 음식들을 발전시키고 또 다양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언데드 몬스터와 싸우는 데 큰 힘이 될 거예요. 하지만 그 일은 꼭 성주님이 아니더라도 할 사람이 많지 않을까요?”
“그래서요?”
“네?”
“말 돌려 하지 마시고 마스터님께선 제가 뭘 했으면 좋겠는데요?”
“…….”
마치 몰이사냥을 하듯 말로서 나를 궁지에 몰던 지윤미 마스터가 내가 정색을 하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이렇게 내게 불만을 토해낸 것도 처음이었고 내가 그녀에게 이렇게 정색한 것도 처음이었다.
성주.
난 그녀가 왜 이러는지 알고 있다.
난 지금 이곳 스카이 캐슬의 지도자였다.
짐작건대 그녀는 내가 농사가 아닌 영지에서 주력을 다 해 진행하고 있는 영지 운영과 토벌에 참여하길 원하는 듯했다.
“진지 구축과 학익진, 투석기, 안개를 이용한 공성전까지. 성주님께선 지난 시간 동안 효율적인 전투를 위한 많은 아이디어를 내주셨고 저흰 큰 손실 없이 승리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수십 년 동안 공무원 생활을 했던 김용규 본부장과 신경전을 벌이며 서로 만족할 만한 합의를 끌어냈고요. 그래서 전 성주님께서 지금까지 하셨던 것처럼 성주로서 조금 더 중요한 일을 했으면 하는 건데 제 생각이 잘못된 건가요?”
“그럼 소는 누가 키웁니까?”
“네?”
“영지 경영은 대한민국에 경제학과와 경영학과를 졸업한 수만 명의 인재가 있습니다. 토벌 역시 육사를 나온 인재들이 수두룩하고요. 예전에야 고립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이제는 역량에 맞는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
지윤미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도 인지하고 있었다.
말로는 내가 성주이니 중요 업무를 맡길 원한다고 하지만 내 역량이 그만큼 되지 못한다는 걸.
비록 우리가 이곳을 개척하고 지금까지 발전시켰다고 하지만 더 밝은 미래를 위해선 전문 경영인이나 인재들을 섭외해 자리에 올리는 게 좋을 듯했다.
게다가 난,
“……재미가 없어요.”
영지 운영과 토벌 계획을 짜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네?”
“마스터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그 두 가지다 제 적성에 안 맞아요. 제가 대한민국을 배척하면서까지 김용규 본부장과 신경전을 벌였던 건 같이 생사고락을 한 사람들과 또 우리를 믿고 이곳에 따라와 준 사람들이 행복하고 안락하게 살게 해 주기 위함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다들 나름 편안하고 즐겁게…….”
“저는요?”
“…….”
“저도 즐거워야죠. 근데 그 일을 하는 게 전 하나도 즐겁지 않네요.”
“끙…….”
“끙…….”
“…….”
“…….”
지휘 막사에 모인 사람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날 쳐다봤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지는 예상조차 하지 못한 듯했다.
“전 낚시를 하고 또 무언가를 만들 때 그리고 농사를 짓는 게 재밌어요. 몬스터와 싸우는 것도. 다른 나라의 견제를 막아내는 것도. 눈으로 보기엔 총과 칼로 싸우는 것 같지만 그 전에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것들이잖아요. 직접적으로 효과가 드러나진 않지만, 농사를 짓는 것 역시 영지가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우리 욕심을 버리고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자리에 가서 일하죠.”
“설마 그 말은 성주 자리에서 내려오겠다는 말인가요?”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죠. 그리고 지금 하는 일이 역량이 안 되거나 힘들면 다른 분들도 신중히 생각하고 판단해서 적절한 자리로 이동하는 걸 추천해 드려요.”
“헐…….”
“헐…….”
“그럼 이만.”
지휘관들 모두 완전 넋이 나가 입을 벌리며 날 쳐다봤고 난 그들의 눈빛을 외면하고 지휘 막사를 나왔다.
* * *
“초딩이냐?”
“…….”
“농사짓고 싶으면 그냥 농사짓고 싶다고 얘기를 하면 되지. 애들도 아니고 왜 꼬라지를 부리고 그래?”
막걸리 한잔이 생각나 식당에 왔는데 이세훈이 부랴부랴 따라와 면박을 주었다.
“넌 다 문제인데 가끔 그렇게 미친놈 널뛰기하듯이 꼬라지 부리는 게 제일 문제야. 알지?”
“눈이랑 귀랑 막고 있었어? 내가 농사짓고 싶다고 했잖아. 근데 지윤미 마스터가 먼저 내 말을 무시하고 면박을 줬잖아.”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꼬라지를 부리고 싶어서 부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화내기 싫었다.
그런데 이렇게 강력하게 얘기를 하지 않으면 보통의 사람들은 남의 말을 흘려 드는 경우가 많았다.
지윤미 마스터 역시 마찬가지였고.
난 처음 이능을 각성했을 때부터 헌터가 아닌 헬퍼로 남길 원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성주가 되고 또 레이드에 참여하고 이래저래 영지 운영에 깊이 발을 들여놓으니 지윤미 마스터와 지휘부 모두가 이제는 당연하듯이 내게 토벌을 맡기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방법이 없어 꼬라지를 부린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참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시키려 할 테니까.
김용규와 최영식, 이어진 마스터.
이제 와 생각하면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웃으면서 좋게 얘기를 했을 때 알아들으면 좋을 텐데 그런 사람은 흔치 않았고 꼭 화를 내고 나서야 말귀를 알아먹지 않는가.
“됐다. 말을 말자. 내가 볼 땐 너 역마살 찾아온 거 맞아. 그냥 이참에 성주 때려치우고 농사나 짓자. 그게 맞는 것 같다.”
“…….”
“왜 그건 싫어?”
“아니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나 성주 하기 싫다. 잘할 자신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 적성에 안 맞아.”
난 이세훈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성주 그건 잠깐 해보니 진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자리인 듯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신경 써야 할 일도 많고, 희생해야 할 것도 너무 많은 자리였다.
아무래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내일 다시 지휘부를 소집해서 정식으로 내 생각을 밝히는 게 현명할 듯했다.
영지의 발전을 위해선 나보단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은 사람이 훨씬 나을 테니까. 물론 지휘부는 그대로 유지를 하고 혹여 생길지 모를 불순한 일들을 차단하는 감시자 역할을 하면 될 듯했다.
“미친놈아, 거기서 왜 고개를 끄덕거려?”
“어? 너도 이참에 그만하는 게 나을 것 같다며?”
“반어법 몰라? 반어법? 네가 그렇게 나올까 봐 그러지 말라고 하는 얘기잖아.”
“아…….”
이세훈이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언성을 높였다. 점점 예민하게 구는 내 모습이 싫어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안 관둘 거지?”
“.....”
“대답 안 하냐?”
“……모르겠어. 어떡해야 할지.”
“끙…… 일주일, 아니 삼 일만 더 생각해 보자. 네가 지금 성주를 관둔다고 하면 영지민이 동요할 수도 있어. 그걸 원하는 건 아니지?”
“……그래.”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음 같아선 당장 내 뜻을 알리고 싶었지만 영지민이 눈에 밟혔다.
* * *
“오빠, 저희 왔어요. 일어나셨으면 미역 따러 가요! 헤헤.”
“…….”
이른 아침.
윤다영의 목소리가 들려와 밖으로 나오니 발키리 길드 이십여 명의 헌터들이 해녀복을 입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미역을 따러 가자고? 갑자기 왜 이래?”
“뭐가 갑자기 에요? 오크 식당이 그렇게 장사가 잘된다면서요? 미역 떨어질 때 되지 않았어요?”
“그렇긴 한데…….”
“어서 가요. 우리끼리 해 보려고 했는데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오빠가 좀 가르쳐 주세요.”
“……그래.”
해녀복을 곱게 차려입은 윤다영은 다짜고짜 내 팔을 붙잡았고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이끄는 대로 바닷가로 걸어갔다.
“오빠, 혹시나 하고 얘기하는 건데 윤미 언니랑 민정이 언니 다 레이드 갔어요.”
“응?”
“지휘부 소집해도 못 오니까 딴생각하지 말고 오늘은 일단 미역 따는 데만 전념해요. 우리.”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원래 내가 일어나 막사를 나오면 이세훈이나 이부성 혹은 박민정이 찾아와 보좌해 주었는데 오늘은 그 누구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짐작건대 어제 주고받은 이야기를 이세훈이 지휘부 사람들에게 알린 모양이었고 내가 관둔다고 말하지 못하게 애초에 다들 피하기로 말을 맞춘 듯했다.
“오빠가 하고 싶다는 일에 다시는 딴지 안 걸 테니 성주 관둔다는 말만 하지 말아 달래요. 한 번만 더 성주 관둔다고 말하면 죽여 버린대요.”
“죽여 버린다고?”
“죽인다는 게 아니고 죽는대요. 언니들 성격 알죠? 한다면 하는 사람들이라는 거.”
“끙…….”
“다들 어제 오빠가 한 말 때문에 화가 많이 나 있어요. 근데 오빠가 진짜 성주 관둘까 봐 무서워서 화도 못 내는 모양이에요.”
윤다영이 새침한 표정을 지으며 손에 낫을 들고 바닷속으로 걸어갔다.
미역은 수심이 낮은 암초에 많이 자라 있었고 마치 벼를 베는 것처럼 거꾸로 잠수하여 들어가 베는 것이 효율적이었기에.
보아하니 내 마음을 달래 주기 위해 미리 교육이라도 받고 왔는지 막힘이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부우웅, 부우웅.
부우웅, 부우웅.
달달달달달달달.
달달달달달달달.
저 뒤편에서 요란하게 소리를 내며 수백여 대의 농기계와 경운기들이 오크성을 향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미안하게…….’
보아하니 영지민마저 열 일 제쳐두고 오크성에 가서 땅부터 개간할 모양인 듯했다.
* * *
헉! 헉!
“몇십 시간은 한지 알았는데 이제 점심시간 된 거야?”
“그러게. 나도 최소한 대여섯 시는 됐을 줄 알았는데…….”
점심 12시.
반나절 동안 물질을 한 헌터들이 땅으로 걸어와 죽는시늉했다.
물의 정령과 함께 하는 덕분에 초짜임에도 물질을 할 수는 있었지만 그만큼 마나가 소비되어 몬스터 사냥할 때보다 더 힘들어했다.
게다가,
“저걸 언제 다 캐지?”
“그러게. 우리 자칫했다간 미역 캐다가 시간 다 보내겠는데요?”
“이 정도 속도면 한 달 정도는 더 해야 할 거야.”
스카이 캐슬 뒤편 바닷가 인근엔 내가 확인 한 것보다 훨씬 더 암초 지대가 많았고 미역이 엄청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정도 양이면 지구의 것이라 해도 수십억 원 이상은 될 듯했다.
“너희들은 가서 밥 먹고 와.”
“오빠는요?”
“난 생각 없어.”
잠시 땅에 앉아 휴식을 취한 난 다시 바다로 들어갔다.
물을 하도 먹어서 그런지 그리 배도 고프지 않았고 지윤미 마스터와 얼굴까지 붉히며 시작한 일인데 쉬엄쉬엄하기엔 마음이 편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