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대농장 (2)
“저기 식당들은 헌터 협회에서 임대한 거지?”
“네. 사람이 워낙 많아서 자체적으로 식사를 제공하는 건 버거운지 이래저래 공모해서 데리고 온 모양이에요.”
이부성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따라 헌터 협회에서 주관하는 식당을 쳐다봤다.
그곳엔 오십 대 중후반의 사람들이 앞에 나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오크 식당을 쳐다보고 있었다.
한국 헌터 협회 소속 이만여 명.
나름 만 단위가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 상주한다고 해서 부푼 꿈을 가지고 이곳까지 온 모양인데 저런 표정을 짓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혹시 안해용 성주님이신가요?”
“……?”
“성주님 맞죠?”
오십 대 후반의 사내가 다가와 내게 아는 척을 해왔다.
보아하니 식당을 운영하는 사장 중의 한 명인 듯했는데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장사가 더 시원찮은지 얼굴색이 매우 어두웠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헌터들 말고도 더 많은 사람이 우리 쪽으로 넘어와 식사를 해결하고 있는 듯했다.
“네. 그렇긴 한데…….”
“성주님. 저희 좀 살려주십쇼. 재난 관리 본부에서 이곳에 들어와서 장사하면 노후에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라고 해서 퇴직금 받은 걸로 이렇게 인테리어까지 신경 써 장사를 시작했는데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제가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될까요?”
“제가 먹어보니 맛도 맛이지만 이곳의 재료들이 훨씬 더 신선하고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헌터들이 더 애용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한테도 영지 내 재료들을 구입할 수 있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흠…….”
“어려울까요?”
“네. 그건 힘들 것 같네요. 조금만 알아보시면 알겠지만 헌터 협회 쪽 상인들에게까지 재료를 공급할 만큼 양이 넉넉지 않거든요.”
난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퇴직금을 가지고 장사를 시작했다는 말에 어지간한 부탁은 들어주려고 했는데 재료를 공급하는 건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영지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선 우리가 재료를 공급하는 게 아니라 재난 관리 본부와 헌터 협회에서 들여온 물품과 재료들이 영지 안에 퍼져야 했다.
“그럼 저희는 어떡합니까? 헌터들이 대부분이 스카이 캐슬에서 운영하는 식당에서만 식사하려고 하는데…….”
“재료를 공급해 드리진 못해도 장사를 할 수 있게 조치해 드릴게요.”
“정말이십니까? 성주님께서 직접 나서주시겠다는 건가요?”
“네. 물론이죠. 몬스터의 위협도 무릅쓰고 이렇게 용기를 내서 왔는데 당연히 제가 도와야죠.”
난 죽는시늉을 하는 식당 주인을 달래주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헌터 협회에서 데리고 온 상인들은 대부분 오십 대 후반에 육십 대 초반의 노년층이 많았고 밖에서 딱히 할 일이 없으니 큰마음 먹고 여기까지 흘러들어 온 듯했다.
기회의 땅.
재난 관리 본부랑 헌터 협회만 믿고 여기까지 온 듯한데 이곳까지 온 용기를 생각해서라도 잘 먹고 잘살 수 있게 해 주는 게 내 도리인 듯했다.
그래야 앞으로 사람들을 유입시키는데도 더 큰 도움이 될 테고.
게다가 이런 식으로 영지 내 재료들만 소비가 된다면 금세 동이 나고 말 테니까.
“부성아, 일단 가격을 열 배로 올리자.”
“열 배나요?”
“저분들도 먹고살아야지.”
“그렇긴 한데. 헌터들도 우릴 도와주러 온 건 마찬가지인데 가격을 그리 확 올리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들깨 미역국 10,000원.
연어찜 70,000원. (한 마리 2~3인분.)」
이부성이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오크 식당 메뉴판을 쳐다봤다.
지금도 가격이 그리 싼 편은 아닌데 여기서 열 배나 더 올리자고 하니 헌터들의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했다며? 그럼 이제 일반 요리 가격만 받고 파는 것도 좀 그렇잖아? 이능이 증명됐으니 헌터들도 이해해 줄 거야.”
“그럼 다행이긴 한데…… 열 배로 올려도 사람들이 사 먹을까요? 열 배면 미역국 1인분에 십만 원이라는 얘기인데…….”
“나갈 거야. 이 세상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머리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사람이 꽤 많거든.”
난 이부성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세훈과 어웨이 플러스에 근무했을 때 직원의 90% 이상이 50대 주부 사원이었다. 그리고 그 주부 사원 중에 또 90% 이상이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허전해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그로 인해 일반 샴푸의 두 배가 넘는 기능성 샴푸를 사서 쓰는가 하면 이래저래 머리에 좋다는 음식을 영양제 먹듯이 찾아 먹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물론 그 효과는 미비했다.
아무리 좋은 샴푸를 쓰고 머리에 좋다는 음식을 먹어도 이능이 발휘되지 않는 이상 세월을 이겨낼 수는 없었으니까.
지금처럼 줄 서서 먹을 만큼 사람들이 몰리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유지가 될 듯했다.
Win-wim
만약 내 계획대로만 된다면 오크 식당과 헌터 협회 식당 모두 좋았다.
굳이 탈모가 아닌 사람은 다시 원래대로 가격이 저렴한 헌터 협회 쪽 식당을 이용 할 테니까.
“……십만 원이 아니라 백만 원이라도 먹을 사람들은 먹을 거야.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이 계속 우리 쪽 식당을 이용하면 이곳에서 자라는 동물과 물고기, 채소들은 남아나질 않을 테고.”
난 이부성에게 내가 살아오며 탈모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하던 사람들의 예를 들며 내 의도를 밝혔다.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요. 그럼 지금 바로 올리라고 할까요?”
“오늘은 일단 가격이 오른다는 공지만 하고 내일부터 올리자. 만 원인 거 보고 줄 서 있었을 텐데 갑자기 가격 올리는 건 좀 그렇잖아.”
“네, 알겠어요.”
이부성이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공지 글을 적어 나갔다.
겉으론 고개를 끄덕거리며 알아들은 척했지만, 그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리 확 와 닿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외모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는 걸.
그리고 세월을 이기지 못해 점점 없어지는 머리카락을 다시 풍성하게 할 수 있다면 이 정도 금액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식당이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고 있지만 열흘 만에 머리를 자라게 했다면 밖에서 파는 어지간한 약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테니까.
* * *
“뭐야? 이 시간에 여기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
“말도 마세요. 헬퍼들 말하는 거 들어 보니 저 사람들 다 새벽 5시부터 나와서 저러고 있대요.”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며 오크 식당을 쳐다봤다. 이익률도 좀 올리고 인원을 좀 분산시키기 위해 가격을 올렸는데 되레 공지를 붙이고 나서 사람들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가격을 올렸는데 왜 사람이 더 늘어나?”
“그동안은 맛이 좋고 이능이 발휘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겸사겸사 왔던 모양인데, 이제는 가격마저 오르고 눈으로 직접 오크 식당 음식을 먹으면 머리카락이 난다는 확신까지 생겨서 그런 것 같아요.”
이부성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헌터 협회에서 주관하는 식당들을 쳐다봤다.
식당 앞에 서 있는 직원들의 얼굴은 어제보다 더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헌터들 벌이가 좋다는 걸 깜빡했네.”
실수였다.
나름 딴에는 머리를 쓴 건데 헌터들의 연봉이 기본 억 단위를 넘는다는 걸 간과했다.
게다가 지금 이곳에 온 헌터들은 재난 관리 본부의 지원과 우리의 보호 아래 나름 안정적으로 언데드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기에 다른 곳에서 사냥하는 헌터들보다 수익이 몇 배는 더 좋을 테고.
아무래도 단순히 가격을 올리는 것만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듯했다.
“십만 원이면 좀 비싸긴 하지만 당장 오늘 사냥을 나가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한 끼를 먹어도 제대로 먹어야지.”
“그죠.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하잖아요.”
헌터들은 미역국 1인분에 십만 원이라는 가격표를 보고도 불만을 토해 내는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알아서 합리화를 시키고 있었다.
‘본의 아니게 귀족 마케팅을 해 버린 격이 됐네.’
얼마 전에서부터 백화점 식품 코너에 유기농 채소가 조금씩 입점하는가 싶더니 지금은 아예 식품관 전체가 유기농 상품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요즘은 유기농 채소와 과일은 물론이고 고기조차 유기농으로 찾았다.
약을 치고 먹인 것보다 가격이 두 배에서 세 배 이상 비싸고 맛이 떨어지는데도 건강을 위해서 그 두 가지를 양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린 맛까지 좋았다.
미역국 1인분에 십만 원.
만약 예전의 나였다면 그런 금액에 미역국을 팔면 바로 욕을 내뱉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사 먹는 사람 역시 또 미친놈이라고 욕을 했을 테고.
근데 몸에 좋다고 하면 그런 금액을 주고 사 먹는 사람이 이미 예전부터 많았다는 걸 잊고 있었다.
배 하나에 몇만 원씩하고 수박 한 통에 수십만 원을 하는데 돈 있는 사람들은 다 사 먹었다.
나 같이 없던 살던 사람들은 유기농이고 자시고 그냥 싸고 맛있는 걸 선호했지만 돈 있는 사람들은 달랐다. 아니 이제는 꼭 상류층이 아니더라도 어지간히 먹고살 만한 사람들은 음식 하나를 골라도 금액이 조금 비싸더라도 건강을 생각해서 사 가는 사람이 많은 시대였다.
삼겹살과 치킨, 햄버거, 피자와 같은 것들이 몸에 안 좋은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안 먹고살 수는 없는 노릇인가.
그래서 나 역시 언젠가부터 삼겹살을 먹더라도 그나마 몸에 덜 나쁘다고 알려진 것을 사 먹었으니까.
몸에 좋다고 하면 헌터들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돈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영위하고 있던 듯했다.
“……저쪽 식당에다가도 재료를 공급해 주는 수밖에 없는 건가?”
“저쪽에다가요? 그럴 만한 양이 돼요?”
“당연히 안 되지. 근데 여기서 가격을 더 올릴 순 없잖아. 게다가 밥 먹는 거 가지고 강제로 저쪽 가서 먹으라는 것도 우습고.”
“그렇긴 한데. 없는 걸 어떻게 공급하시려고요?”
“……만들어 봐야지.”
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바닷가를 쳐다봤다.
다행히 오크 식당에서 사용하는 재료들은 대부분 바다에서 나는 것이었고 지난번에 물질을 해 보니 가까운 바다에 있는 미역만 해도 수백 톤은 될 듯했다.
문제는 음식에 들어가는 야생 벼를 비롯한 갖가지 잡곡과 채소들이었다.
“이거 자급자족이 아니라 제대로 양식장도 만들고 큰 농장을 만들어야 하는 건가?”
“큰 농장이요? 얼마나 크게 만드시려고요?”
“저기 숲 전부.”
“네? 설마 지금 저기 전체를 농장으로 만드시겠다는 건 아니죠?”
이부성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내 눈과 숲을 번갈아 쳐다봤다.
“저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정말 저 숲 전체에다 농사를 짓겠다고요?”
“……어.”
“형, 제 눈 좀 봐 보세요. 그러니까…….”
그는 내 시야를 따라 멍하니 숲을 쳐다봤고 자기가 생각하는 넓이가 맞는지 계속 두세 번 확인했다.
“……다 보물들이래. 아마 우리가 아무리 조절하려고 해도 영지 내 재료로 만든 음식을 찾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늘어날 거야.”
난 운디네가 공유해 준 지식을 이부성에게도 알려 주었다.
“양식장도 만들고, 땅도 놀리느니 암염 지대에 있던 채소들 씨앗을 가지고 제대로 농사 한번 지어 보면 어떨까 해서.”
“흠…….”
“왜 별로야?”
“아니 운디네가 그렇다고 하니 몸에 좋은 건 알겠는데 저 넓은 땅에 농사를 지으려면 그건 누가 …….”
“오크들이 있잖아.”
“오크요?”
“하프 오크들에게만 설명해 주면 알아서 순혈 오크들을 통솔해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씨익.
난 빙그레 웃으며 저 멀리 주방에서 부지런히 음식을 만드는 오키도키를 쳐다봤다.
언데드 몬스터들과 싸우면서 땅을 개간하고 농사까지 짓는 게 어렵고 위험하긴 하지만 오크들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 듯했다.
게다가 지금은 이능을 발휘하는 레시피를 몇 가지 알아내지 못했지만, 내 계획대로 대량으로 생산해 많은 사람이 이용하게 되면 지금 보다 더 빠르게 깃들여진 이능을 알아낼 수 있을 듯했다.
“지휘부를 소집해 줘.”
“네, 알겠어요.”
당황해했던 것도 잠시 내 설명을 들은 이부성이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지휘부 인원을 찾아 뛰어다녔다.
대농장.
어웨이 플러스에서 근무하다 들은 건데 호주에 목장이 몰려 있는 지역이 우리나라만큼 넓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어지간한 논들도 그 크기가 너무 커서 헬리콥터까지 동원해서 약을 친다고 하고.
언데드 몬스터만 몰아내면 저 넓디넓은 오크의 숲이 내 땅이 되는데 우리라고 못 할 것도 없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