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132화 (132/255)

132화. 대농장 (1)

[카프리 네가 시키는 대로 만들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

오물오물 냠냠.

오물오물 냠냠.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오크 주제에 음식을 제법 잘하는군.]

야생 벼와 검은콩으로 만든 잡곡밥.

들깨가 잔뜩 들어간 미역국.

땅콩 가루와 계란프라이가 먹음직스럽게 올려져 있는 연어찜.

바닷가와 하늘 목장, 하늘 정원을 돌며 이것저것 음식 재료를 고른 카프리는 그걸 오키도키에게 맡겨 요리해 맛을 봤고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머리한테 당분간 다른 거 먹지 말고 이것만 먹으라고 하면 된다. 그럼 금방 머리카락 나기 시작할 거다.”

“흠…….”

난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며 앞에 있는 요리들을 쳐다봤다.

잡곡밥, 미역국, 연어찜.

카프리가 가르쳐 준 레시피는 스테이크나 꼬치구이처럼 바로 이능이 발휘되지 않았다.

“그 표정 매우 불쾌하다. 지금 나를 못 믿는 건가? 성주?”

내가 의심하는 표정을 짓자 카프리는 불쾌한 기색이 가득했다.

허나 난,

“아니 그게 아니라…… 전 당연히 카프리를 믿죠. 근데 만에 하나라도 효과가 없다면 김용규 본부장한테 너무 미안할 것 같아서요.”

이 음식들을 바로 김용규 부장한테 시식하게 하는 건 망설여졌다.

애초에 포기 하고 살았을 땐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렇게 잔뜩 기대했다가 행여라도 머리카락이 나지 않으면 그 상심은 두 배, 아니 열 배 이상 커질 수도 있기에.

“일단 영지민에게 먼저 먹여보고 효능이 증명되면 그때 식단을 알려 주는 방향으로 하면 안 될까요?”

“난 약속대로 레시피를 알려 줬으니 그건 성주 뜻대로 해라.”

카프리가 잔뜩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의 지식을 의심하는 거에 대해 불쾌한 듯했지만 내 뜻을 따라줬다.

이런 사소한 일로 투덕거리기엔 우리의 사이가 그리 가볍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때,

“그럼 제가 먼저 시식해 봐도 될까요?”

“저도 허락해 주시면 이 식단대로 식사해 보고 싶어요.”

지윤미와 박민정이 자처해서 실험에 참여하길 원했다.

“들으셔서 알겠지만 지금 이 식단은 탈모에…….”

“요즘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그런지 샴푸를 하고 나면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서…….”

“저도요. 괜히 성주님 신경 쓰게 할까 봐 말 안 했는데 여기 한번 봐 보세요.”

“헐…….”

땜통.

박민정은 손으로 자신의 옆머리를 들쳐 올렸고 거기엔 500원짜리만 한 하얀색 땜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

둘 다 내색을 안 해서 몰랐는데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모양이다.

“……저희 참여해도 되죠?”

“……네.”

그녀들의 얼굴은 홍당무보다 더 붉어져 있었고 꽤 큰 용기를 내서 얘기를 꺼낸 듯했다.

난 지윤미와 박민정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이내,

“헐…….”

“헐…….”

“왜요? 음식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너무 맛있어요.”

“와! 진짜 장난 아니에요. 예전에 성주님이 해 줬던 음식 저리 가라인데요?”

조심스레 들깨 미역국을 입에 넣은 지윤미와 박민정이 세상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미역국이 맛있어 봤자 일 텐데…….”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숟가락을 들고 미역국을 맛보았다.

그리고 이내,

“크으! 죽이네.”

나 역시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보기엔 맛이 조금 심심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평범한 비주얼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켜니 그런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미역국의 뜨거움이 식도를 타고 위장까지 가는 게 생생하게 전해졌고 입 안 가득 미역 향이 감돌았다.

마치 전날 술을 잔뜩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 해장국을 먹던 것이 떠오를 정도로 국물 맛이 엄청 깊고 진했다.

[우리 오크들 주는 대로 잘 먹지만 고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사냥을 늘 성공 하진 못했다. 고기가 부족할 때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끓여주곤 했었다.]

“고기요?”

[자세히 보면 소고기랑 홍합도 보일 거다. 미역만 넣고 끓이면 어린 오크들은 잘 먹지 않으려 하고 힘도 쓰지 못한다. 그래서 나의 어머니가 몇 없는 고기로 이렇게 국물을 내서 미역국을 끓여주시곤 했었다. 그럼 어린 오크들도 잘 먹었다.]

오키도키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자신이 한 음식을 우리가 맛있다고 하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엄마의 레시피라…….’

오키도키의 어머니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끓인 미역국은 국물 맛이 깊었고 진짜 어머니의 손맛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20대 시절 잔뜩 술을 먹고 친구네 집에서 자고 일어났을 때 친구 어머니가 끓여준 콩나물국과 같이 혀는 물론이고 왠지 가슴까지 간질거리게 했다.

“훌륭한 어머니를 두셨네요. 오키도키. 미안한데 이 음식들을 좀 많이 해 줄 수 있을까요?”

[많이?]

“네. 너무 맛있어서 저희만 먹기 미안해서요.”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여기저기 흩어져서 맡은 일을 하는 헌터들과 헬퍼 그리고 영지민을 쳐다봤다.

맛있고 좋은 음식을 먹고 있자니 절로 저들이 떠올랐고 이 맛을 함께 공유하며 웃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재료만 구해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네. 제가 지금 바로 더 따올게요.”

오키도키는 저 멀리 있는 바닷가를 쳐다봤고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아 미역과 홍합이 바다에 널려 있었고 고기 역시 하늘 목장이 날이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어 재료 수급을 하는 건 전혀 문제가 없었다.

* * *

“해용이 형, 식당 거리에 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식당 거리에?”

오키도키가 탈모에 좋은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지 열흘이 지난날 이부성이 호들갑을 떨며 내 팔을 잡고 식당 거리로 끌고 갔다.

한국 헌터 협회 이만여 명.

오크들은 알아서 음식 재료만 갖다주면 알아서 밥을 해 먹는다고 해도 한국 헌터 협회에서 온 헌터들의 인원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게도 알아서 음식과 밥을 해 먹거나 식당을 열어 음식 장사를 할 수 있게 땅을 내주었고 자연스레 푸드 코트 존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왜 저기에 다 몰려 있는 거야? 설마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한 거야?”

“네. 그것도 그렇지만 형이 들깨 미역국을 처음 만든 날 사람들에게 나눠 줘서 음식 맛이 소문나 저렇게 된 것 같아요.”

오크 식당.

유독 한 식당에만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 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그 기쁨을 함께하고 싶어서 나누어 준 것인데 본의 아니게 그게 홍보가 됐던 모양이었다.

보아하니 오키도키가 음식 하는 곳은 한 번에 식사를 할 수 있는 인원이 이백여 명 정도 될 법한 규모의 식당이었는데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것도 모자라 그 앞에 천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식사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용규에게 음식을 나눠 주기 전, 레시피의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내부 식당 하나를 내준 것인데 의도치 않게 다른 식당의 생계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맛있긴 한데 저 정도는 아니지 않나? 저런 식으로 독점을 하면 다른 식당들은 영업하기가 힘들 텐데…….”

난 의문과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다른 식당들을 쳐다봤다.

고깃집.

중국집.

백반집.

부대찌개.

생선구이.

피자.

햄버거.

.

.

.

푸드 코트 존에는 재난 관리 본부와 헌터 협회에서 직영으로 관리를 하는 내부 식당과 그 외에도 정해진 메뉴만 먹기 지겨운 사람들을 위해 따로 돈을 주고 사 먹을 수 있게 다양한 식당들이 들어차 있었는데 대부분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다른 장사와 달리 음식 장사는 재료에 유통 기한이 있어 준비해 둔 재료만큼 소진이 되지 않으면 그대로 다 손실을 봐야 했다.

그런데 그때,

-인간도 동물과 마찬가지야. 오키도키라는 오크의 요리 실력도 한몫했겠지만, 몸이 좋아지는 걸 스스로 느끼니 다 저기로 몰려가는 거야.

‘몸이 좋아진다고?’

-당연하지. 하나하나가 전부 다 보물 같은 것들인데.

‘보물?’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오크 식당을 쳐다봤다.

-혹시 나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처음 만났을 때?’

-그때 내가 그랬잖아. 도대체 뭘 먹고 살았기에 몸이 이 모양이냐고.

‘어. 생각나. 그때 네가 내 몸에 노폐물이 많다면서 너 아니었으면 나 십 년 안에 죽었을 거라고 했잖아.

난 운디네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매일 술을 마시고 담배는 거의 입에 달고 살고 달고 짜고 매운 음식을 즐겨 먹었던 내 몸은 만신창이 상태였고 운디네의 치료로 노폐물을 밖으로 빼내며 난 한동안 꽤 고생했었다.

-안심 스테이크와 꼬치구이처럼 특정 재료들이 만나서 시너지를 일으켜 단숨에 이능을 발현하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자라는 것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모두 몸에 좋은 것들이야.

‘흠…….’

-세계수의 기운이 가득 담겨 있는 대지에서 자란 식물들과 또 그 식물들을 먹고 자란 초식 동물들. 생김새는 비슷한지 몰라도 지구의 것들과는 그 기본적으로 그 성질이 달라. 그때 네가 그런 생각 했었지. 그 중국인가 하는 나라에서 날아오는 미세 먼지를 먹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그랬지.’

-너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세계수의 기운을 받으며 자란 나무들이 정화한 이곳의 공기는 실제로 너희 몸을 건강하게 해 주는데 꽤 큰 보탬을 주고 있어.

‘흠…….’

-이곳에서 계속 살면서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들만 먹고 산다면 너와 함께 온 인간들의 평균 수명은 최소 2배는 늘어날 거야.

“헐…….”

따스하고 포근한.

파란색 빛을 머금은 물방울이 내 머리를 감싸며 운디네가 자신의 지식을 공유해 주었고 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식습관.

탈모고 뭐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좋은 음식을 잘 챙겨 먹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보통 병에 걸리고 아픈 곳이 생기면 식습관부터 개선하지 않는가. 심지어는 살던 곳을 떠나 공기 맑은 곳으로 이사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고.

운디네는 나의 기억에 있는 지구를 비교하며 스카이 캐슬의 공기와 먹거리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한 최상의 조건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단지 운디네 덕분에 내 몸이 건강해 진 게 아니었구나.”

난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저 멀리 서 있는 장지원을 쳐다봤다.

44세.

인간이 40대가 되면 몸이 늙어 가고 있다는 게 눈으로 보인다.

시력이 점점 안 좋아지거나, 이에 충치가 생기거나 혹은 잇몸이 약해져서 이가 빠지거나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병원에 가게 되는 일이 많아진다. 그 외에도 각종 성인병으로 잔병치레를 하는 경우도 많았고.

근데 나와 함께 이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그 흔한 감기조차 걸린 사람이 없었다.

‘진짜 다 보물들이었구나.’

운디네의 말처럼 우리가 사는 이곳은 공기조차 담아서 팔아도 될 정도로 깨끗하고 마나와 생명력을 듬뿍 머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숨을 마시고 내뱉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생활해 의식하지 못했는데 설명을 들으니 공기를 들이마실 때마다 왠지 상쾌해 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부성아, 혹시 오크 식당에 사용하는 재료들은 다 우리가 공급해 주고 있는 건가?”

“네. 맞아요. 저긴 우리가 운영하는 식당이라 재료를 공급해 주고 다른 식당들은 헌터 협회에서 주관해서 운영하고 있어서 밖에서 재료들을 공수해 오고 있어요.”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헌터 협회에서 주관하는 식당들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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