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수석셰프 오키도키 (2)
칡, 마, 쑥 그리고 수백 가지가 넘는 한약재까지.
지금이야 과학이 발달해 성분 검사를 해서 그것들이 비록 입에 쓰다곤 하나 몸에 좋은 것이라고 밝혀졌지만 과연 먼 옛날에는 무슨 근거로 저걸 먹기 시작했는지 의문이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난 먼 옛날 사람들은 저것들이 몸에 좋은 건지 알고 먹은 게 아니라 배가 고파서 먹었는데 몸에 탈이 나지 않으니 계속 먹었던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짐작할 뿐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내 짐작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지켜본 이가 서 있었다.
[음식을 못 구할 땐 나무들의 뿌리는 물론이고 껍질도 먹어봤고 어쩔 땐 흙도 퍼먹었다. 그렇게 배고픔을 못 이겨 이것저것 주워 먹다 죽은 오크들 많다. 드레이크라고 못 먹을 것 없다.]
“아…… 그래서 알게 된 거군요.”
난 오키도키가 선물해준 드레이크 꼬치구이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키도키가 버프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건 우리와 계기가 얼추 비슷했다.
우리도 먹을 것을 찾아 헤매다 얻게 된 고기와 야채를 섞어 먹다 알게 된 것이기에.
다만 오크들은 우리보다 상황이 더 열악했고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듯했다.
난 기대하는 표정을 짓고 오키도키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그동안 먹은 것들을 문서로 작성해 놓은 게 있나요?”
[그런 거 없다. 어머니에게 대륙 공용어를 배우긴 했지만, 글자를 쓸 일이 없어 잊어 버렸다.]
오키도키가 날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의 선조들은 배고팠던 시절 먹었던 산나물과 약초, 독초들을 다 기록했던 반면 하프 오크들은 그러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능이 낮아 기록의 중요성을 간과한 듯했다.
“아쉽네요. 그동안 먹어왔던 것들을 적어 놓은 게 있으면 정말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요.”
[적어 놓지는 않았지만, 눈앞에 가져오면 기억할 수 있다. 오키도키 똑똑하다.]
“흠......”
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오키도키를 쳐다봤다.
그리 신뢰가 가지 않았지만, 어차피 밑져야 본전일 것 같았다.
“부성아, 핑크 솔트와 암염 지대 주위에서 채취했었던 채소들을 모두 가져와 줘.”
“네. 알겠어요.”
이부성이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하늘 다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버프 음식.
블래앵거스 안심 스테이크, 멧돼지 꼬치구이, 잔치국수까지. 아니 드레이크 꼬치구이까지 생겼으니 4개다.
지금도 우리에게 큰 보탬이 되는 것이었고 오키도키의 경험에 의한 지식으로 더 많은 음식을 개발할 수 있다면 아주 큰 힘이 될 수 있을 듯했다.
“세훈아, 기술자들을 불러서 이곳까지 수로를 개설해 주고 농기계도 갖다줘.”
“여기에다가도 농사를 짓게?”
“그래야지. 십만 마리나 되는 오크들에게 언제까지 밖에서 재료를 사 와 식량을 제공할 순 없잖아.”
“아…….”
이세훈이 오크성 앞에 펼쳐져 있는 드넓은 숲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넓디넓은 땅과 이십만 명에 이르는 노동력이 있는데 그것들을 놀릴 수는 없지 않은가.
일단은 오크들의 노동력과 농기계들로 땅을 개간한 다음 논농사부터 시작하고 오키도키가 이능에 필요한 약초나 채소, 나물 같은 것을 가르쳐 주면 밭농사도 바로 이어가야 할 듯했다.
이대로 받는 것도 없이 계속 먹이기만 한다면 수억 원이 아니라 오크들 밥값으로 한 달에 수십억은 우습게 나갈 테니까.
그런데 그때,
“성주야, 머리 나는 음식부터 만들자. 재료 좀 구하러 가자. 우리 대머리 머리카락 나게 해 줘야 한다.”
카프리가 바다가 있는 방향을 향해 내 등을 떠밀었다.
짐작건대 바다에 탈모에 효과가 좋은 재료가 있는 모양이었다.
“알았어요. 지금 바로 가요.”
“고맙다.”
난 빙그레 웃으며 바닷가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난 카프리의 손길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도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열 일 제쳐두고 만들었으니 나도 그가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당연했다.
* * *
“당분간 형이랑 이곳에 올 시간은 없을 줄 알았는데 좋네요.”
바닷가에 도착한 이부성이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두 팔을 벌리고 눈을 감으며 바닷바람을 만끽했다.
나도 이 상황이 참 재미있기는 했다.
수백만 마리의 언데드 몬스터가 도처에 숨어 있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나도 이런 식으로 바닷가를 찾게 될 줄 몰랐다.
“만약 카프리의 말처럼 정말 김용규 본부장의 머리를 나게 할 수 있다면 그의 충성심은 얻는 건 물론이고 큰돈을 벌 수 있을 거예요.”
“큰돈은 그렇다 치고 충성심까지 얻을 수 있다고요?”
“네. 제가 알기론 김용규 본부장이 대한민국의 안전 다음으로 중요시 하는 게 머리카락이거든요.”
“아…….”
박민정이 세상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바다를 쳐다봤고 나도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탈모.
난 마흔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머리에 숱이 가득했지만 군 시절 후임병과 어웨이 플러스 재직 시절 밑에 있던 직원 중에 탈모 증세가 있던 동생들이 있어 그들의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윤두영.
그는 아주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후임병들에게조차 언성을 잘 높이지 않는 부드러운 성격을 갖고 있었는데 딱 한 번 진짜 무섭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말년 병장이 심심하다고 그의 머리를 움켜쥐었다가 머리카락 열 개 정도가 뽑혔는데 그때 그는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하극상을 부리다 군장을 돌든가 육군 교도소를 가든가 상관없다는 듯 말년 병장을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달려들었었다.
오크들이 식량을 목숨같이 여기는 것처럼 그들에겐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그와 비슷한 듯했다.
“둘 중 하나만 얻을 수 있어도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겠네요.”
난 빙그레 웃으며 바다를 쳐다봤다.
김용규의 충성심과 돈.
비록 언데드 몬스터와 싸울 수 있는 직접적인 힘은 아니더라도 둘 중의 하나만 얻을 수 있으면 큰 보탬이 될 것 같았다.
“어서 오세요. 성주님.”
“많이들 잡으셨나요?”
“네. 부지런히 잡는 중이에요.”
바닷가에 도착하자 이능 피쉬를 잡기 위해 낚시를 하고 있던 발키리 헌터들이 내게 인사해 왔다.
그리고 그때,
[이것도 먹어봤다. 핑크 솔트, #$#$, $%&@를 넣고 에이비스의 불로 찜 쪄 먹으면 시력 좋아진다. 그럼 저 하늘의 독수리보다 더 멀리 볼 수 있다.]
오키도키가 발키리 헌터들이 잡은 물고기 하나를 손에 들고 이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알려 줬다.
“카프리?”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그동안 통역을 잘해 주더니 오키도키가 말하는 두 가지 재료를 말할 때 우리말이 아닌 원래 자신이 쓰던 말로 발음을 했다.
“오키도키가 말하는 #$#$, $%&@ 이 두 가지는 성주 너희가 뭐라고 부르는지 아직 배우지 못했다.”
“흠…….”
“땅에서 자라는 채소다. 하나는 나물이고. 근데 성주 너희 나라말로 그것이 뭔지 모르겠다.”
“아…….”
난 카프리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어.
오키도키가 손에 든 물고기는 지구의 연어와 생김새가 같았다.
하지만 지구의 연어와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고 다른 재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키도키 이 물고기는 이제 연어라고 부르도록 하죠.”
“어어?”
“연어요.”
“여어?”
“연! 어!”
“년어.”
“네. 맞아요.”
난 오키도키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앞으로 계속 함께하게 될 테니 이렇게 하나씩 알려 주면 될 듯했다. 이렇게 하나하나씩 맞추다 보면 언젠간 서로가 말하는 것이 뭔지. 원하는 것이 뭔지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바다에 들어가면 검은색인데 하늘하늘 움직이는 거 있다. 그거 따오면 된다.”
“검은색인데 하늘하늘 움직인다고요?”
“김성준 팀장이 미역국이라고 끓여준 적 있다. 그거랑 비슷하게 생긴 거 따오면 된다.”
“아…….”
난 카프리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닷가로 왔기에 당연히 낚시하게 될 줄 알았는데 물질을 해야 할 듯싶었다.
‘운디네!’
-걱정하지 마. 물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최대한 편안하게 움직이며 오랜 시간 머물 수 있게 해 줄 테니까.
바다 수영.
밖에서도 몇 번 해본 적 있고 스노클링을 해서 전복을 몇 번 따보기는 했지만, 살짝 겁이 나긴 했는데 운디네를 믿고 들어갔다 와도 될 듯했다.
첨벙.
“와우!”
바닷속으로 들어오니 미역은 물론이고 전복과 소라, 조개 같은 해산물들이 잔뜩 보였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바다 자원이 넘칠 정도로 풍부했다.
‘몇 개씩만 가져가야겠다.’
대왕 전복.
대왕 소라.
대왕 조개.
미역을 따러 들어왔지만, 천생 낚시꾼이었던 난 눈앞에 있는 해산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잔뜩 들고 다시 뭍으로 나왔다.
“카프리 찾는 게 이거 맞아요?”
“오. 맞다. 수고했다.”
쓰담쓰담.
미역을 보여주자 카프리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친한 사람한테는 해도 된다고 했더니 내 머리를 만지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나이 40이 다 돼서 누군가 머리를 만지는 게 그리 유쾌하진 않았지만, 장지원의 만수무강을 위해서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이것도 먹어봤다. 여기 안에 들어 있는 진주랑 핑크 솔트 #$#$, @#@#랑 같이 에이비스의 불로 찜 쪄 먹으면 몸 빨라진다.]
오키도키가 대왕 조개를 들고선, 이것 또한 이능을 발휘하는 음식 재료라고 말했다.
#$#$, @#@#
이번에도 두 가지 재료는 이곳 대륙어로 얘기했다.
“채소와 나물의 한 종류다.”
“……네.”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아하니 손정모가 개발한 스테이크와 꼬치구이처럼 음식으로 이능을 얻기 위해선 한 가지 재료가 아니라 채소가 곁들어져 그 시너지를 얻어야 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암염 지대 주위에서 가져온 채소를 보여주고 거기에도 없으면 직접 같이 숲을 탐사하며 찾아보는 수밖에 없을 듯했는데.
“답답해 죽겠다. 종이와 펜 가져와라!”
카프리가 인상을 쓰며 손으로 가슴을 두들겼다.
비슷한 생김새를 한 것을 보고도 서로 부르는 이름이 다르니 그림으로 그려 줄 모양인 듯했다.
“부마스터님.”
“네. 알았어요.”
나와 눈이 마주친 박민정이 뒤에서 따라오던 발키리 길드 헌터를 바라봤고 그녀는 바람과 함께 영지로 달려갔다.
카프리의 손재주라면 그림 역시 기본은 할 테니 절로 기대감이 생겼다.
그리고 이내,
“참외인가? 아닌데 참외라면 일전에 가져온 적이 있어서 알아볼 텐데? 아보카도인가?”
“흠…… 이거라면 제가 본 적이 있어요.”
“아스파라거스인가? 그리고 저건 브로콜리 같은데?”
“저것도 암염 지역에서 본 것 같아요.”
카프리의 그림을 본 윤다영이 아는 체해 왔다.
“역시 카프리네요! 이렇게 하면 굳이 서로 이름을 몰라도 금방 찾아낼 수 있겠어요.”
쓰담쓰담.
난 빙그레 웃으며 카프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