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수석셰프 오키도키 (1)
“……예쁘네.”
식자재가 도착하자 오크들은 바로 데우고 구워서 요리해 먹었고 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진심이세요?”
“뭐가?”
“정말 저 모습이 예뻐 보여요?”
“흠…… 예쁘다기보다는 뭔가 짠하다고 할까? 말로 설명하기 좀 어렵네.”
내가 예쁘다고 말을 하며 오크들을 그윽하게 쳐다보자 옆에 서 있던 이부성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아무리 이제 동맹을 맺고 함께 하기로 했다지만 오크들의 외형은 예쁜 것과는 꽤 거리가 멀었다.
근데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밥을 먹고 있는 오크들을 보고 있자니 정감이 갔다.
외형적 생김새와 상관없이 진짜 예뻐 보일 만큼.
배고픔.
다른 건 다 접어두고 그 고통과 서러움만은 이해를 했기에.
물론 오크들처럼 먹을 게 없어서 생명의 위협까지 받아 본 적은 없지만, 넉넉지 못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지금 오크들의 심경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난 사람이든 동물이든 저렇게 아무 생각 없이 먹을 것에 집중하고 밥을 먹는 것을 보고 있으면 괜히 코가 시큰거리고 센티해 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이 그리 살기 나쁜 나라만도 아니야.”
“그렇긴 하죠. 적어도 뭐라도 일만 하면 굶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이부성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라 딱 집어서 얘기를 한 적은 없지만 이부성 역시 그동안의 삶이 그리 평탄치 않았기에 뒤늦게 나랑 비슷한 감정이 찾아온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
“#$##$#$#$오르쿠스!”
“#$#$#$#$#오르쿠스!”
식사를 마친 오크들이 팔을 치켜들었다가 내리길 반복하며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오르쿠스?”
[우리를 창조한 신의 이름이다. 우리 동족들이 성주 당신을 오르쿠스의 현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신이요? 고작 음식 좀 나누어 줬다고 저를 현신으로 믿는다고요?”
난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오키도키를 쳐다봤다.
물론 십만 마리나 되는 오크들이 먹을 식량을 나눠주는데 고작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지만 그렇다 해도 별안간 날 현신이라고 하는 건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고작이 아니다. 우리 오크들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평생을 먹을 것을 찾아 헤매며 위험을 무릅쓰고 사냥을 하고 또 떠돌아다닌다. 먹을 것이란 우리에게 목숨과도 같은 것이다. 성주 당신은 우리에게 그런 것을 나누어 준 것이고.]
“아…….”
오키도키의 말에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크들에게 고립되었을 때 나와 헌터들 그리고 헬퍼들이 가장 염려하고 찾아 헤맸던 것 역시 바로 먹을 것을 확보하는 것이었기에.
오키도키가 하고자 하는 말이 대충이나마 짐작을 할 수 있었고 이제야 오크들이 나를 현신이라 믿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원하는 것을 말해라. 성주가 시키는 건 뭐든지 하겠다.]
“일단 길부터 뚫죠. 도로부터 만들어야 할 것 같으니.”
[도로?]
“따라오세요. 보여줄 것이 있어요.”
도로라는 말에 오키도키는 의문스런 표정을 지었고 난 그를 스카이 캐슬로 데리고 현대 문물을 보여줬다.
시멘트와 벽돌로 만든 도로.
경운기.
상수도에 연결되어 물이 콸콸 나오는 수도꼭지.
.
.
.
“오크성에 안정적으로 식량을 제공하려면 일단 도로를 뚫어야 해요. 그리고 수로 시설까지 확장해서 농사짓는 법도 가르쳐 줄게요.”
[도로는 이해했다. 그리고 농사라면 우리도 지을 줄 안다.]
“농사를 지을 줄 안다고요?”
[땅을 개간해서 씨를 뿌리면 되는 거 아닌가. 헌데 가뭄이 오면 다 죽는다. 자라는데도 너무 오래 걸리고.]
오키도키가 날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딴에는 먹고 살기 위해 농사짓는 흉내도 내 본 모양이었다.
헌데 흉내까지인 듯했다.
제대로 된 농사 기술만 있었어도 이렇게 굶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일단 오크들을 시켜 길부터 만들어 주세요. 나머지는 직접 보여드리죠.”
[알았다.]
말로 백번 설명하는 것보다 눈으로 직접 한 번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아 난 설명을 생략하고 일단 길부터 만들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내,
“@##$#$#$#$#$”
“#$#$#$#$#$##”
쾅! 쾅!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오키도키의 말을 전해 들은 수십만 마리의 오크들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나무를 베고 언덕을 깎으며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뭐라 그랬기에 저렇게 말을 잘 듣는 거죠?”
[길 만들면 또 밥 준다고 했다. 그게 전부다.]
오키도키가 세상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오크들을 쳐다봤다.
오키도키 역시 순혈 오크들과 마찬가지로 밥 먹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모양이었다.
* * *
“성주 이름은 안해용이다.
“아해요.”
“아해요가 아니라 안. 해. 용이라고!”
“아뇨이.”
“안. 해. 용.”
“아뇨용.”
“아! 이런 멍청한 새끼!”
퍽! 퍽! 퍽!
“으읔.”
“혓바닥이 왜 그 모양이야! 안해용이라고! 안해용!”
[미안하다. 발음하기 어렵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
“닥쳐. 최선을 다할 필요 없다. 무조건 한 번에 잘해라. 언제까지 내가 널 따라다니면서 통역해야 하냐!”
퍽!
“읔.”
퍽!
“읔.”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려와 찾아와 봤더니 카프리가 또 오키도키를 열나게 패고 있었다.
보아하니 따라다니면서 통역해 주기 귀찮은 모양인데, 오키도키가 우리말을 배우는 게 좀 느린 듯했다.
“카프리 그만 하세요.”
“신경 쓰지 마라. 이놈들은 멍청해서 좋게 말로 하면 못 알아듣는다.”
“카프리도 그랬잖아요?”
“뭐라고! 내가 언제! 성주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냐?”
“끙…….”
내 기억으론 분명히 카프리도 우리말을 배울 때 발음 때문에 꽤 애를 먹였던 것 같았고 진실을 얘기하는데도 내게 버럭 화를 냈다.
‘아직 앙금이 남아 있는 건가?’
짐작건대 카프리는 오크들에게 노예로 잡혀 있던 시절에 받았던 핍박을 아직 잊지 못한 듯했다.
뒤끝 있는 드워프였다.
그런데 마침,
“해용이 형, 일단 제1 오크성부터 제10 오크성까지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폭으로 평탄화 작업이 거의 끝나가는 것 같아요.”
이부성이 나타나 화제를 전환해 주었다.
“벌써?”
“네. 오크들 장난 아니더라고요. 시간 되면 끼니마다 식량을 갖다주니까 거의 불도저 수준으로 길을 만들어 내더라고요.”
“……대단하네.”
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십만 마리나 투입이 되긴 했지만, 오크들의 곡괭이질과 삽질 실력은 인간들보다 어림잡아 서너 배 이상은 빠른 듯했다.
100km.
물론 그 위에 벽돌을 쌓고 시멘트까지 발라야 제대로 된 도로라 할 수 있겠지만 오크들은 그 긴 거리를 단 일주일 만에 길을 뚫고 평탄화 작업을 해내었다.
“대단하긴 한데 나무들을 너무 많이 뽑아내서 세계수에 한 소리 듣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부성이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하늘 다리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길을 만들기 위해 본의 아니게 숲을 파괴해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
[살아 있는 나무 얼마 안 뽑아냈다. 다 죽은 나무였다.]
오키도키가 이부성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죽어있었다고요? 제가 볼 땐 분명 살아 있었는데…….”
[에이비스는 원래 죽어도 몇 년 동안 계속 살아 있는 것처럼 모습을 유지한다. 그래서 착각한 거다.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그거 먹을 수 있다. 우리 나무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에이비스요?”
[에이비스는 열매 못 먹는다. 하지만 에이비스로 불 지피면 따듯하게 잘 수도 있고 마나도 채워 주고 그 불로 음식을 만들면 이능도 얻을 수 있다.]
에이비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로 쓰이는 침엽수와 같은 생김새를 한 나무를 뽑아 장작을 패 논 것을 보며 오키도키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말하는 것을 미루어 봤을 때 단순한 나무는 아닌 듯했다.
그런데 그때,
슈우웅 펑!
슈우웅 펑!
“성주님, 큰일 났어요. 제2 오크성 쪽으로 드레이크 두 마리가 날아가고 있어요.”
오키도키가 이끌고 있던 성 위로 붉은색 폭죽이 터져 올랐다.
“젠장. 빨리 가 보죠. 루카스!”
“히이잉.”
난 폭죽을 보자마자 바로 루카스를 타고 제2 오크성을 향해 내 달렸다.
오크들이 평탄화 작업을 해 놔서 이제 루카스를 타고 원 없이 속도를 낼 수 있었다.
* * *
“뭐 하는 거지? 설마 이 와중에도 밥을 먹는 건가?”
오물오물.
냠냠.
제2 오크성에 도착하자 백여 마리의 오크들이 나무 상자에 코를 박고 무언가를 열심히 먹는 게 보였다.
“꾸웩.”
“꾸우웩!”
“뭐 하고 있어요. 얼른 말리지 않고. 지금 저기 오크들 죽는 거 안 보이나요?”
난 하프 오크들을 보며 버럭 화를 냈다.
집채만 한, 아니 웬만한 10층짜리 빌라만 한 크기의 익룡이 하늘을 날며 불을 뿜어 대고 오크들에게 하강해 공격하고 있는데도 하프 오크들은 음식을 먹는 오크들만 쳐다보고 있었다.
“뀨오오오옷.”
“4 클래스 파이어볼 보다 더 화력이 강하고 빨라요. 도저히 다가갈 수가 없어요. 빨리 오크들을 피신시켜야 할 것 같아요.”
드레이크는 계속 오크성 상공을 날아다니며 입김을 쏘아 댔고 정찰대 팀장이 내게 부랴부랴 뛰어와 난색을 표해냈다.
“아무리 먹을 거에 환장했어도 그렇지.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난 잔뜩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여전히 상자에 코를 박고 음식을 먹고 있는 오크들을 쳐다봤다.
그런데,
‘저건 드레이크 꼬치구이?’
도대체 뭔 대단한 음식이기에 이 와중에 먹고 있는 건가 싶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일전에 오키도키가 내게 선물해 준 요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
“#$#$#$#$#$#$#”
상자 안에 있던 음식을 모두 먹은 백여 마리의 오크들이 별안간 괴성을 지르며 드레이크에게 달려갔다.
휘리릭!
휘리릭!
“끼오오오오오옷.”
“헐…….”
앞으로 달려간 오크들은 와이어가 달린 도끼를 던졌고 수십 개의 도끼가 드레이크에게 명중해 가죽을 뚫고 살에 파고들었다.
퍽! 퍽! 퍽!
“꾸웩!”
“꾸르륵!”
“꺄아아아아아앗.”
오크들은 드레이크가 불을 쏘든 옆에 있는 오크를 입으로 넣어서 씹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고 와이어를 잡아당겨서 드레이크를 땅바닥으로 끌어 내려 도끼질을 했다.
그리고 결국,
철푸덕.
“꾸웩!”
“꾸웨웩!”
“끼오오오오오옷.”
하늘을 주름잡으며 날아다녔던 드레이크 두 마리는 바닥에 나동그라짐과 동시에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휘두르는 도끼를 맞고 숨을 멈추었다.
전술이고 전략이고 뭐고 없었다.
하늘을 날아서 못 때리니 땅으로 끌어 내린 다음에 적의 공격을 무시하고 오로지 도끼만을 휘두르는 데 집중했다.
그런데,
“여기서도 이렇게 후끈한데 살아있다고?”
풍덩.
풍덩. 풍덩.
드레이크의 입김을 맞은 오크들이 멀쩡하게 걸어서 물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몸을 던졌다.
다들 아까 드레이크 꼬치구이를 먹은 오크들이었다.
그리고 그때,
[드레이크 꼬치구이 먹으면 마법 방어력 올라간다. 그럼 드레이크의 입김에 버텨낼 수 있다.]
“헐…….”
뒤늦게 도착한 오키도키가 다시 한번 드레이크 꼬치구이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마법 방어력을 올려준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이능을 발휘하게 해 주는 음식이었다.
[트롤이고, 오우거고. 만만한 게 우리 오크다. 그 새끼들 배고프면 툭하면 쳐들어와서 우리 잡아먹는다. 처음엔 안 죽으려고 싸웠지만, 이제는 우리도 그놈들 찾아가서 죽인다.]
오키도키가 드레이크의 사체를 보며 울분을 토해냈다.
짐작건대 이 대륙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꽤 어렵고 힘든 일을 많이 겪은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