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하프 오크 (3)
“진짜 걸신들린 것처럼 먹네요. 저것들을 먹이려면 한 달에 수십억 원은 들 것 같은데요?”
헬퍼들과 함께 제2 오크성에 음식을 들고 온 김성준이 게걸스럽게 밥을 먹고 있는 오크들을 보며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러 댔다.
이만여 마리나 되는 오크들을 갑자기 먹여 살리려니 머리가 지끈거리는 모양이었다.
“힘들겠지만 고생 좀 해 주세요.”
“성주님이 시키면 하기야 하겠지만 꼭 오크들과 편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은 아쉬운 게 있어서 저리 고개를 숙이는지 모르겠지만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잖아요? 배고프면 동족도 잡아먹는다면서요?”
“배 안 고프게 하면 되죠. 그리고 당장 한 손이 아쉬운 마당에 오크들이 와서 도와주면 큰 힘이 될 것 같아서요.”
토닥토닥.
난 김성준의 등을 쓰다듬으며 가만히 오크들을 쳐다봤다.
오크는 6개월이면 성체가 되고 F급 헌터에 육박하는 괴력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나 역시 몬스터를 곁에 두는 게 불안하긴 했지만, 말만 잘 들으면 오크만 한 인부도 없을 듯했다.
게다가 오크들의 항복을 받아내면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구역이 다 스카이 캐슬의 영토가 되는 것이었다.
땅굴의 길이만 해도 100km가 넘었다.
짐작건대 오크들이 차지하고 있던 땅만 해도 서울 크기는 될 듯했다.
오크도 오크지만 난 땅이 더 탐났다.
우걱우걱.
냠냠.
우걱우걱.
냠냠.
난 하얀 쌀밥에 소불고기가 든 접시에 코를 박고 흡입하고 있는 오키도키에게 걸어갔다.
“오키도키 그러고 보니 그쪽은 맹세하지 않은 것 같네요.”
[……?]
“오키도키도 메티스께 맹세해 주세요. 우리가 이렇게 음식을 공급하는 대신 우리의 일을 돕고 절대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다고요.”
[나 오키도키는 인간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절대 먼저 공격하지 않고 동족들을 이끌어 안해용 성주가 하는 일을 돕겠다고 메티스님께 약속합니다.]
배에 음식이 들어가서일까.
오키도키는 아까보다 훨씬 편안해진 얼굴을 하고선 내가 원하는 대로 메티스에게 약속했다.
다만,
‘생각했던 것보다 똑똑한데?’
그는 인간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이라는 전재를 붙였다.
그 말은 우리가 공격하면 반격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놓은 것이다.
하프 오크라 하더니 인간의 피를 꽤 진하게 물려받은 모양이었다.
“아까 듣기론 일부 부족이 인간을 해치고 식인을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거기가 어디인지 알고 있나요?”
[고부웅크와 데크헤드가 이끄는 부족이 얼마 전에 인간 무리를 공격한 부족들이다. 다른 부족은 인간들 해치지 않았다.]
“지금 하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메티스의 이름으로 얘기할 수 있나요?”
[물론이다. 나 오키도키는 안해용 성주에게 진실만을 말할 것을 메티스의 이름으로 약속합니다. 고부웅크와 데크헤드가 이끄는 부족만 인간들을 헤쳤고 다른 부족들은 인간들을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오키도키가 밥을 먹다 말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메티스의 이름을 대며 내 질문에 대답했다.
[사실 배고프면 인간이고 뭐고 공격을 했겠지만 이미 이곳 대륙의 인간들은 대부분 죽었다. 그래서 해치고 싶어도 해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 두 부족만 얼마 전에 이곳 세력과 싸운 부족이다.]
“그렇군요.”
오키도키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지도를 보고 손가락을 가리켰다.
오크성 32만.
오크성 42만.
고부웅크와 데크헤드.
그 2개 부족이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온 지원군을 공격한 오크 무리인 듯했다.
“부마스터님. 흑기사 부대와 용병 출신이었던 태백산맥 길드원들을 모두 불러 주세요.”
“네.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박민정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난 늑대인간의 숲에 가 있는 조성태와 흑기사 부대는 물론이고, 광산의 경계 근무를 위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용병 출신 길드원까지 모두 소집했다.
직접 복수를 하게 해 주기 위해서.
* * *
대한 헌터 협회 소속 헌터. 만여 명.
스카이 캐슬 연합 헌터 이천여 명.
현대 무기로 무장한 영지민 천여 명.
오키도키 부족의 오크 이만여 마리.
투석기 삼백여 대.
발리스타 백여 대.
.
.
.
영지에 최소 인원만 남겨두고 우린 바로 고부웅크가 이끄는 세 번째 오크성에 도착했다.
“꾸우욱!”
“꾸웨웩!”
우리가 진군하는 걸 봤는지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렸고 이번에도 하얀색 백기를 든 오크들이 달려 나왔다.
“고부웅크라는 오크도 하프 오크인가요?”
[2세대는 아니고 할머니가 인간이었다.]
오키도키가 씁쓸한 표정을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해서 같이 오긴 했지만 동족들을 처단하는데 같이 온 게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
허나,
“부마스터님, 공격하시죠.”
난 자비를 베풀어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네, 알겠어요. 발사!”
스르륵.
스르륵.
“꾸웩.”
“꾹.”
박민정의 지휘 아래 헌터들이 화살을 날렸고 항복을 하러 나왔던 오크들은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이제부터 지휘는 두 분께 맡기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성태와 박민정.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오다가 천삼백 명이나 되는 동료를 잃었던 두 사람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날 밤,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슈우웅 펑!
슈우웅 펑!
“꾸웩. 꾸웪.”
“꾸르륵. 꾸르륵.”
오크의 숲은 투석기와 박격포 소리. 그리고 오크들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 * *
제5 오크성 이만.
제6 오크성 삼만.
제7 오크성 사만.
.
.
.
고웅부크와 데크헤드가 이끄는 부족을 제외하고는 항복을 받아줬고 순식간에 이십만 마리의 오크가 우리 휘하에 들어왔다.
“다들 많이 야위었네. 언데드 몬스터 때문인가?”
[그렇다. 성 밖으로 나가면 언데드 몬스터가 공격한다. 언데드 몬스터한테 공격당하면 중독된다. 이곳 숲에 우리 오크 부족 수백만 명도 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언데드 몬스터 때문에 이것밖에 안 남은 거다.]
“헐…….”
언데드라는 말에 오키도키는 울분을 토하며 언성을 높였고 난 그 말에 놀란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내,
“수백만 마리가 있었는데 지금 없다는 말은 그 많은 오크가 전부 언데드화 됐다는 얘기잖아요?”
“미친!”
지윤미와 박민정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오키도키의 말을 미루어 봤을 때 많아야 십만 마리 정도 있을지 알았던 언데드 몬스터가 그보다 수십 배는 더 많이 이 숲에 도사리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오크들을 증오할 일만은 아니었네요.”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오크 숲을 쳐다봤다. 마치 몬스터 웨이브처럼 오크들이 이곳에 몰려왔을 때 그들은 무슨 목적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고 언데드 몬스터한테 쫓겨서 온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해서 언데드 몬스터와 전쟁을 치르고 있던 듯했고.
짐작건대 오크들마저 없었으면 우리는 애초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언데드 몬스터와 전쟁을 치르고 있거나 아니면 전멸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아무래도 오크들은 계속 성을 지키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네.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지윤미 마스터가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오크들이 차지하고 있던 드넓은 숲을 쳐다봤고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크들에게 부탁해 용의 계곡 입구에 성벽을 쌓고 해자를 파려고 했는데 이곳을 지켜 내는 게 더 급할 듯싶었다.
“오키도키. 성을 지휘하고 있던 지휘 오크들을 모두 불러 주세요.”
[알았다.]
나의 지시를 받은 오키도키가 각 성을 이끌었던 수백여 명의 오크들을 데리고 왔다.
그런데,
“이 오크들 모두 하프 오크들인가요?”
[내 자식들과 손자들. 그리고 그 손자들의 자식들 그리고 그 자식의 자식들. 모두 내 피를 물려받은 아이들이다.]
“헐…….”
그 많은 오크가 모두 다 오키도키의 자식들이었다.
어째 순순히 다들 항복하는 것 같더니 단지 먹을 것 때문은 아닌 듯했다.
[맹세를 원하는가?]
“네.”
끄덕끄덕.
[……안해용 성주가 하는 일을 돕겠다고 메티스님께 약속합니다.]
[……안해용 성주가 하는 일을 돕겠다고 메티스님께 약속합니다.]
난 오키도키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고 이십만의 오크들을 이끌었던 지휘 오크들이 모두 날 돕겠다고 메티스에게 약속했다.
“일단 오키도키만 저희 성으로 같이 가고 나머지 오크들은 계속해서 이곳 성들을 사수하면서 언데드 몬스터를 막아 주세요.”
[먹을 것은?]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내로 갖다줄 테니까.”
[알았다. 믿는다.]
언데드 몬스터로 인해 먹을 걸 제대로 구하지 못했는지 오크들은 대부분 뼈가 앙상할 정도로 말라 있었다.
배가 고프면 동족마저 잡아먹는다고 하더니 지금 남아 있는 오크들은 제법 본능을 억누를 줄 아는 놈들 같았다.
“부성아. 식량은?”
“네, 안 그래도 세훈이 형이 밖에다 연락해서 마장동이랑 경기도에 있는 냉장 창고에 있는 고기들 깡그리 다 매입해서 가지고 오고 있대요.”
“그럼 어디까지 왔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줄래? 좀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네. 알겠어요.”
이세훈과 이부성이 어련히 잘 처리했겠지만 그래도 난 다시 한번 채근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오크들한테 먹을 것을 나눠줘야 할 듯했다.
고기.
오크는 쌀은 물론이고 야채도 주는 대로 잘 먹는 듯했지만 고기를 특히 좋아하는 듯했다.
제2 오크성의 오크들 이만여 마리는 당장 영지에 있는 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제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숫자가 너무 늘어 재료를 주고 직접 해 먹으라고 해야 할 듯했다.
그리고 그때,
“해용아, 우리 왔다. 제기랄. 길부터 뚫든가 해야지. 들고 오느라 죽는 줄 알았다.”
“형님, 좀 도와줘야 할 것 같아요. 최대한 많이 들고 온다고 왔는데 길이 없어서 들고 오는 데 좀 한계가 있네요.”
장지원과 태백산맥 헌터들이 어깨에 쌀과 고기가 든 박스를 들고 다가왔다.
뱃길이 열리고 경운기가 다닐 수 있게 시멘트와 벽돌로 어느 정도 도로 작업이 시작된 스카이 캐슬과 달리 오크들이 차지하고 있던 이곳은 아직 길이 뚫리지 않아 애 좀 먹었는지 다들 땀에 등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오키도키. 이것들을 받고 오크들을 시켜 저들을 따라가 주세요. 식량을 가져왔는데 길이 없어서 다 못 들고 온 모양이네요.”
[그래. 알았다.]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오키도키가 오크들을 향해 소리쳤고,
“$%$%$%$%$%%”
“#$#$#$#$#$#”
“#$#$#$#$#[email protected]”
“헐…….”
“헐…….”
후다다다다다다다닥!
후다다다다다다다닥!
수만 마리의 오크들이 미친 소처럼 장지원이 온 방향으로 뛰어갔다.
오크들에게 음식을 공급해 주고 또 제대로 통솔하고 이곳을 지켜 내려면 일단 길부터 뚫어놔야 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