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하프 오크 (1)
“그렇게 위험한 곳인가요?”
단호하게 뒤돌아서 걸어가는 카프리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용규가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이어진 마스터한테 얘기 못 들었나요?”
“듣기는 했습니다. 언데드의 숲 곳곳에 천 단위 이상의 언데드 몬스터가 숨어 있고 용의 계곡에선 만 마리 이상의 몬스터들이 뒤를 쫓아왔었다고.”
“네. 맞아요. 우리가 용의 계곡 입구에 도착하고 딱 반나절 만에 만 마리 규모의 언데드 몬스터가 계곡을 내려오더라고요.”
“반나절이요?”
“네. 반나절이요. 아니 여섯 시나 일곱 시쯤에 도착해서 열두 시쯤에 내려왔으니까 반나절도 되지 않겠네요.”
“그렇다면 그 말은 용의 계곡에 그보다 더 많은 언데드 몬스터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네요?”
김용규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오크성 후방을 쳐다봤다.
여섯 시간 만에 그 많은 언데드 몬스터들이 몰려왔으니 짐작건대 용의 계곡엔 그보다 최하 서너 배 많게는 열 배까지 서식을 하고 있을 듯했다.
게다가 그중에는 꽤 강력한 마기를 품고 있는 상위 몬스터가 섞여 있을 가능성도 다분했고.
“네. 맞아요. 그나마 이곳엔 성벽도 있고 해자 같은 방어 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싸울 만하지만, 우리가 들어가서 싸우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 거예요.”
“제법 강단이 있어 보였는데…… 카프리가 저러는 이유가 있었군요.”
김용규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아무래도 당장 귀환 마법진을 만드는 건 힘들 것 같네요.”
“당장은 힘들 거 라고 하셨습니까? 그럼 귀환 마법진을 만들 의지가 있다는 건가요?”
“네. 물론이죠. 귀환 마법진만 생기면 레이드를 나간 헌터들의 생존 확률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더불어 스카이 캐슬을 방어하기도 용이한데 당연히 만들어야죠.”
난 김용규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만 마리의 언데드 몬스터.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상위 몬스터. 그리고 드래곤까지.
용의 계곡이 위험한 곳이긴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여기서 대륙 탐사를 멈추면 언젠가 이곳은 다시 몬스터에게 휩쓸리거나 그도 아니면 미국과 일본에게 잠식당할 수도 있을 테니까.
힘들고 위험하긴 하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할 듯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사람.”
“네?”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난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를 지그시 쳐다봤다.
용의 계곡에서 내려올 수 있는 두 군데 길목.
짐작건대 그 두 곳만 틀어막으면.
오크의 숲, 정령의 숲(세계수), 언데드의 숲…….
거기서부터 게이트까지 펼쳐져 있는 이 드넓은 땅을 우리가 모두 차지할 수 있을 듯했다.
“……노상에서 싸우면 우리도 피해가 클 테니 언데드의 숲을 정리하며 진군해서 용의 계곡 앞에다가 성벽을 쌓고 해자를 파서 전쟁을 치렀으면 합니다.”
호랑이를 잡아야 한다고 꼭 호랑이 굴에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짐작건대 굳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언데드 몬스터는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한 거부감과 공격성이 심해 우리가 눈앞에서 살림을 차리고 있으면 알아서 쳐들어올 듯했다.
“성벽과 해자라…….”
“이곳과 달리 거기에다가 성을 구축하려면 꽤 크고 넓게 지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인부와 헌터들이 필요할 테고요.”
“흠…….”
김용규가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손을 올려 턱을 쓰다듬었다.
수만의 언데드를 상대하기 위해선 우리도 그 못지않은 많은 헌터들이 필요했다. 게다가 그 와중에 성벽을 만들고 해자까지 팔려면 인부들은 그보다 배는 더 많아야 했고.
짐작건대 그 정도 숫자면 헌터 협회에 소속된 모든 헌터들을 다 이곳으로 불러 모아야 할 듯했다.
“하늘시가 괜찮겠네요.”
“네?”
“이곳의 도시 명을 정해봤는데 별로인가요?”
“그 말은?”
고민스러운 얼굴을 했던 것도 잠시 김용규가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알아보니 홍콩이…….”
“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대한민국에 소속되어 있되 자치권과 최대한의 많은 세금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서 자유 경제 도시로 성장할 수 있게끔 추진해 보겠습니다. 그럼 되겠습니까?”
“기대해 보죠. 헌터들을 보내주시겠습니까?”
“네. 밖으로 나가는 데로 바로 긴급 소집령을 내리겠습니다. 그 대신…….”
“대한민국에 웨이브가 생기면 제가 바로 상위 헌터들을 데리고 출동하죠.”
“감사합니다.”
김용규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한민국 하늘시.
난 이곳이 대한민국의 땅이라 인정했고. 김용규는 그 보답으로 최대한 이곳이 독립된 곳으로 운영할 수 있게 편의를 약속했다.
서로에 대해 조금씩 이해를 하고 한 발자국씩 양보하니 둘 다 만족할만한 거래가 성립됐다. 디테일한 것들은 서로의 수뇌부가 또 조율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군대 투입까지는 어렵겠지요?”
“군대요?”
“언데드랑 싸우기 전에 저놈들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난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게이트가 있는 하늘을 쳐다봤다.
오크 부락1. 2만 추정.
오크 부락2. 1만 추정.
.
.
.
오크 부락10. 1만 추정.
언데드도 언데드지만 지금 우리 주위엔 수십만의 오크들도 존재했다. 허나 언데드 몬스터는 총을 맞아 뼈가 으스러져도 다시 살아나지만, 오크는 총 맞으면 죽는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군대까지는 힘들 것 같습니다. 총동원령을 내려 헌터들을 이곳에 모두 보내는 와중에 군대까지 투입하면 정부의 반발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겠네요. 저도 혹시나 하고 한번 해 본말입니다. 오크는 저희가 알아서 하도록 하죠.”
“그리고 인부들도 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헌터들이야 이미 던전에 들어와서 생활하는 게 익숙한 사람들이지만 일반인들은 아직 던전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많으니까요.”
김용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나도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부들 섭외와 군대를 지원받지 못하는 게 아쉽긴 했지만 일단 당장 헌터들만 투입해 줘도 오크들은 충분해 몰아낼 수 있을 듯했다.
수십만에 이르는 쪽수가 무서운 거지. 우리도 인원이 보충되면 그리 위협적인 몬스터는 아니었기에.
“그럼 헌터들이라도 일단 부탁합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 많은 인원이 한 번에 들어오면 저희 자체적으론 아직 받아들일 만한 인원이랑 시설이…….”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스카이 캐슬의 운영에 지장이 가지 않게 만반의 준비를 하여 투입하겠습니다.”
김용규가 자신만 믿으라는 듯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이 새끼들 드디어 해치울 수 있겠구나.”
오크들이 지은 아홉 개의 오크성.
그중에 난 우리 오크성 바로 옆에 위치한 곳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헬퍼로 이곳에 처음 들어와 오크들에게 고립됐던 9개월 동안 고생했던 기억으로 인해 난 자다가도 오크 소리를 들으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다.
“형, 이동이 가능한 투석기 100대랑 발리스타도 추가로 만들었어요.”
“벌써?”
“네. 오크들 치러 간다니까 헬퍼들이 잠도 안 자고 투석기랑 발리스타부터 만들더라고요.”
“무리하지 말라니까…….”
“저도 쉬엄쉬엄하라고 했죠. 근데 다들 고집을 부리더라고요. 형도 알다시피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오크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긴 사람들이잖아요. 그래서 오크들을 공략한다는 말에 젖 먹던 힘까지 뽑아 쓰는 것 같더라고요.”
“아…….”
난 이부성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헬퍼들도 나만큼이나 오크들이라면 진절머리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
“성주님, 저 왔습니다.”
“어서 오세요. 근데 그것들은 뭐죠?”
“하하. 군인들은 투입하지 못했지만, 이것들이라도 있으면 도움이 될까 해서 가져왔습니다.”
“오!”
지구로 갔던 김용규가 수백 개의 박스를 들고 찾아왔다.
M16A1 소총.
M203 유탄 발사기.
M60 기관총.
81mm, 60mm 박격포.
.
.
.
박스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현대식 무기와 총알들이 들어있었다.
“마음 같아선 탱크도 몇 대 끌고 오고 싶었는데 아시다시피 길이 없어서…….”
“아니에요. 이 정도만 해도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난 김용규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비록 군인들을 보내주지 않았지만 이렇게 무기만 있으면 대한민국 성인 남자들은 바로 군인으로 변신시킬 수 있기에.
내가 5학년 때였나.
미국에서 인종 차별로 인한 흑인 폭동이 생겼고 그로 인해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꽤 큰 피해를 받아야 했던 슬픈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그 폭동이 진압되는 며칠 동안 우리 한인을 지켜 준 건 미국 정부가 아니라 스스로 방어에 나선 대한민국에서 군 생활을 했던 예비군들이었다.
M60 기관총 사수.
나 역시 군대를 제대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M60 기관총의 작동 방법은 물론이고 완전 분해를 했다가 다시 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나도 쌍욕 먹고 맞으면서 몸으로 배운 것은 잘 잊히지 않는 법이었기에.
“부성아, 이것들 영지민한테 나눠주고 헌터들 뒤에 서 있으라고 해.”
“영지민도 전투에 참여시키게요?”
“최대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지. 혹시 투석기와 헌터들의 공격을 이겨내고 돌진하거나 도망가는 놈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아…… 네, 알겠어요.”
이부성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린 후 무기를 든 사람들을 인솔해서 영지민에게 걸어갔다.
김용규 덕분에 천여 명의 인원이 추가로 전투력을 갖게 됐다.
“저희는 준비가 끝났는데 헌터들은 어떤가요?”
“헌터들도 준비가 다 된 것 같습니다. 성주님께서 명령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도 전투에 참여시킬 수 있습니다.”
“그럼 바로 불러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김용규도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의 뒤를 따라갔다.
김용규의 소집령에 대한 헌터 협회에 소속된 만여 명의 헌터들이 소집됐고 모두 스카이 캐슬에 모여 개인 정비를 하고 있었다.
스카이 캐슬 단독으로 헌터들을 불러들였을 땐 고작 삼천여 명만 와도 영지가 혼란에 빠졌지만, 지금은 김용규와 대한민국의 도움을 받아 큰 무리 없이 운영되었다.
그런데 그때,
펄럭펄럭!
펄럭펄럭!
“성주님 저기 좀 보세요!”
“엥?”
오크성 성문이 열리며 십여 마리의 오크가 걸어 나왔고 선두에 선 오크의 손엔 하얀색 깃발이 걸려 있는 깃대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이내,
털썩.
“$$%$%@#$$칙칙.”
“#$$$#$$#[email protected]취익.”
우리에게 한참을 다가오던 오크들은 손에 들고 있던 상자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갖다 댔다.
“설마 저놈들 지금 항복하겠다는 건 아니겠죠?”
“글쎄요. 하는 행동을 봐선 그런 것 같긴 한데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오크들이 이런 식으로 나온 건 보지도 들어 보지도 못했거든요.”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 모습을 쳐다봤고 박민정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지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카프리!”
“#$#$#$#$#카프리!”
“카프리?”
오크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계속 대화를 시도했고 난 그중에 한 단어를 캐치해 내었다.
카프리.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오크들은 카프리를 불러 달라고 하는 듯했다.
“지현아, 카프리를 불러와.”
“네, 알겠어요.”
박민정도 카프리라는 단어를 알아들었는지 옆에 서 있던 참모 서지현을 바라봤고 그녀는 바로 카프리가 있는 영지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