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126화 (126/255)

126화. 귀환 마법진 (2)

“방어구를 만들어 달라는 건가? 그렇게 말하면 난 모른다. 구체적으로 원하는 것을 말해라. 대머리!”

카프리가 김용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대답이 모호했던 모양이었다.

허나,

“흠…….”

김용규도 딱히 무언가를 하나 선택하기는 어려워하는 듯했다.

이리저리 계산하는지 그의 눈동자가 깊어져 있었다.

“좀 애매모호 하긴 하네요. 대미지가 좋은 무기가 있어도 생환 확률이 높아지고 방어력이 좋은 갑옷을 입어도 생환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아…… 제가 너무 두루뭉술하게 얘기를 했나 보네요. 사실 지금 뭐가 딱 필요한지 선택하기가 어렵긴 합니다. 성주님께서도 이미 확인을 하셨겠지만, 각국에 있는 게이트는 모두 이곳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미국과 일본의 만행을 봤을 때 그들도 이미 확인을 한 거로 사료되는데…….”

“네? 제가 그런 말을 했었던가요?”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를 쳐다봤다.

‘역시 김택진인가? 아님, 김미진?’

인천 게이트와 연결된 늑대인간의 숲과 이곳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을 한 적이 없었기에.

“아…… 죄송합니다. 이곳의 사정을 알기 위해 저희 사람을 몇 명 보내 놨었습니다.”

“몇 명이나요? 그 말은 한두 명이 아니라는 얘기인가요?”

“그게…….”

김용규가 말끝을 흐리며 임풍훈을 쳐다봤다.

보아하니 그도 몇 명이나 이곳에 보낸 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백 명입니다. 헌데 그들은 본인이 스파이 행동을 하는지 모를 겁니다. 전문 인력을 보낸 게 아니라 그저 이곳의 안전과 동태를 살피기 위해 그런 것이니 협조를 요청하고…….”

임풍훈이 대신 대답을 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얘기하면서도 염치가 없는 모양이었다.

‘대단하네.’

김택진과 김미진. 그리고 서너 명 정도 더 있겠거니 했는데 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 스파이로 들어와 있을 줄은 진짜 상상도 하지 못했다.

“괜찮아요.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으니. 하던 얘기부터 마저 듣죠. 미국과 일본에서도 이곳이 하나의 대륙이란 걸 확인했다. 이거죠?”

난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궁금한 것을 먼저 물었다.

“저희 정보부에서 분석하기론 그렇습니다. 지금 현재 세계 각국은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골머리를 썩이고 있고 도시 전체가 혹은 나라 전체가 멸망 직전까지 간 곳도 많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속을 썩이는 몬스터는 뱀파이어와 언데드, 그리고 독을 뿜는 것들이고요.”

“흠…….”

“그래서 지금 각국의 헌터 협회는 중국의 성수와 스카이 캐슬의 엔트 줄기같은 치료제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던전 탐사 범위를 넓히는 중이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던전이 아닌 하나의 대륙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거라 판단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미국과 일본은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던전의 탐사를 하는 게 어려우니 스카이 캐슬을 차지하는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아…… 그래서 오랜 망설임 없이 크리스와 시미켄을 죽인 거군요?”

“네. 맞습니다. 만약 그 둘에 의해 이곳이 점거됐다면 미국과 일본은 어떡해서든 이곳을 자기네 걸로 만들려고 했을 테니까요.”

김용규가 세상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카이 캐슬에서만 생활을 해서 지구와는 조금 단절되어 있어서 몰랐는데 밖의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한 모양이었다.

“국민들이 불안해 할 것이 염려되고 혼란 상황이 발생할 것 같아 TV와 인터넷에 올라오는 걸 막고 있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세계적으로 지금 몬스터 웨이브의 발생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고 중국과 우리 대한민국을 제외하곤 각국의 재난 관리 본부와 헌터 협회는 지금 궁지에 몰려 있는 상황입니다.”

“흠…….”

난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를 쳐다봤다.

미국의 해안 지대와 일본의 사막 지대에서 본 검은색 마법진.

짐작건대 이곳 세상이 몬스터 천지가 된 이유가 그것 때문인 듯했다.

그런데 그때,

-맞아. 그것 때문이야.

‘그게 뭔지 아는 거야?’

-게이트. 이곳 대륙과 너희 지구에 차원의 문이 열린 것처럼 이곳 대륙과 마계의 문이 열려 있는 거야.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고개를 끄덕거렸다.

‘게이트라고?’

-세 개의 차원이 연결된 것은 처음 봐서 나도 긴가민가했는데 아마 맞을 거야.

‘그럼 어떻게? 저대로 두면 저곳 대륙에 계속 몬스터들이 들어오고 이곳에서 번식하고 성장한 몬스터들은 다시 지구로 계속 쳐들어오는 거잖아?’

-내가 문이라고 해서 착각을 하는 것 같은데 게이트는 차원과 차원에서 균열이 생긴 거야. 그건 인간 아니 드래곤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어. 차원 스스로 회복을 해서 균열이 메꿔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회복하면 닫힌다고? 얼마나 걸리는데?’

-백 년이 될 수도 있고. 천 년이 될 수도 있고. 그건 나도 몰라.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며 운디네를 쳐다봤다.

어째 그녀의 설명을 들었더니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기분이다.

-전에 소환됐던 차원에서는 마계의 문 위에 탑을 쌓고 그 주위에 성벽을 둘렀어.

‘탑과 성벽?’

-어. 마물들과 몬스터들이 대륙으로 흩어지면 금세 번식을 하고 생명을 해치니까 나름대로 봉인 아닌 봉인을 한 거지.

“아…….”

난 운디네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탑과 성벽만 없을 뿐. 지금 지구가 현대식 무기를 가지고 게이트를 그렇게 지키고 관리하고 있으니까.

‘그럼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니 해야 하는 건 하나밖에 없네. 마계의 문을 모두 찾아 탑을 올리고 성벽을 둘러 바리케이드를 세운 다음에 이곳 대륙에 퍼진 몬스터를 토벌해야 그나마 지구가 안전해지겠네.’

-그렇지. 현재로선 그게 최선일 것 같아.

운디네가 날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래도 스카이 캐슬에서 호위호식하며 살 팔자는 아닌 듯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지구도 이곳 대륙처럼 몬스터 월드가 될 수도 있었기에.

“……마계의 문을 봉인해야 한다네요.”

난 운디네가 공유해준 정보를 사람들에게 모두 알려 주었다.

“당장 지켜내기만 하는 것도 힘든데 몬스터 숲을 뚫고 마계의 문을 찾아야 한다니. 정말 어려운 일이네요.”

“그래도 해야죠. 어차피 싸워야 할 거면 지구가 아닌 이곳에서 하는 게 나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카프리에게 헌터들의 생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 달라고 한 거고요.”

내 설명을 들은 김용규가 세상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날 지그시 쳐다봤다.

그리고 그때,

“귀환 마법진이라는 게 있다.”

“귀환 마법진이요?”

한참을 말없이 듣기만 하던 카프리가 입을 열었다.

“귀환 마법진을 만들어 놓으면 그 어디에 있든 한순간에 공간을 가르고 텔레포트를 해서 돌아올 수 있다.”

“공간을 가른다고요? 순간 이동을 말하는 건가요?”

“그런 느낌이다. 대륙 끝에 있어도 0.1초면 텔레포트 할 수 있으니까.”

“와우!”

“대박!”

“그런 게 있었으면 진즉에 말해 주지. 왜 이제야 알려 주는 거예요?”

난 세상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두근두근.

쿵덕쿵덕.

그의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 가슴이 세차게 요동쳤다.

“그런 게 있다고 했지. 만들 수 있다고 한 적 없다. 아만티움과 미스릴, 마나 석이 있으니 귀환 마법진은 만들 수 있지만 마법진을 구동시킬 마법사와 강력한 마나를 머금은 물건이 필요하다.”

카프리가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우리가 필요로 한 게 무엇인지 캐치를 했지만 당장 만들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한번 활성화를 시키면 그때부턴 마나석만 있으면 되지만 첫 구동 때는 7서클 이상, 현자 급의 마법사와 마법진으로 돌아올 때 공간을 열 스크롤이 필요하다.”

“7서클 이상의 마법사는 중국에 있다고 한 것 같은데…….”

“그런 쓰레기들 말고 진짜 마법사가 필요하다. 마법진의 술식과 룬어를 이해하는 진짜 마법사가. 너희 세계 마법사들 다 가짜다.”

“…….”

“…….”

카프리가 최은빈을 보고선 세상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가 왜 가짜라는 거죠? 불 속성 마법뿐이긴 하지만 저도 던전에서 발견한 마법서를 연구하고 공부해서…….”

“너흰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제대로 된 마법사는 너희보다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마법을 사용한다. 제대로 된 7서클 마법사 한 명만 있어도 오크 수만 마리는 혼자서 해치운다.”

“…….”

카프리의 타박에 최은빈은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카프리의 말이 일리가 있는 듯했다.

마법진과 룬어.

카프리의 설명을 듣고 배웠는데도 똑같이 그리는 것도 힘든데 설명도 없이 그걸 이해하고 응용하는 건 어려운 듯했다. 아니 제대로 된 이해도 없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그럼 못 만드는…….”

“살아 있다.”

“네?”

“인간은 모르지만, 아직 엘프들은 살아 있다.”

“엘프들이요?”

카프리가 세상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용의 계곡이 있는 하늘을 쳐다봤다.

-인간과 가장 근접한 외형을 가진 이종족이야.

‘이종족이면…….’

-뭐라고 단언할 수는 없어. 인간과 교류하는 차원도 있었지만 타종족과의 교류를 거부하며 폐쇄적으로 사는 차원도 많았거든.

“근데 왜 하필 저기냐…….”

운디네의 추가 설명을 들은 난 앓는 소리를 내며 카프리의 시선을 따라갔다.

“저기 마족이랑 용도 있다고 한 것 같은데…….”

“귀환 마법진을 구동시키려면 아주 강력한 마나가 필요하다. 용의 심장도 필요하다.”

“…….”

나한테 아직 앙금이 남아 있는 건가?

‘용 엄청 세다고 하지 않았어?’

-엄청 센 정도가 아니라 천 년 이상 산 드래곤만 해도 거의 반 신급이야. 최하 삼십 명은 필요해.

‘삼십 명?’

-어. 그랜드 마스터 삼십 명 정도는 있어야 드래곤을 상대할 수 있어. 그리고 그중에 90%는 죽어서 나온다고 생각하면 되고.

운디네가 나와 카프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삼십 명 중에 90%가 죽으면 설사 드래곤을 무찌른다. 쳐도 세 명 빼고는 다 죽는다는 얘기였다.

“드래곤 성격 엄청 고약하다. 마족과 언데드가 레어 주변을 저리 돌아다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드래곤 죽었다.”

카프리가 확신에 찬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죽어서 기운이 희미했던 건가?

운디네 역시 카프리의 말에 동의하는 듯했고.

“엘프들도 성격 까칠하다. 어쩌면 다짜고짜 공격할 수도 있다.”

“……카프리도 같이 가는 거 아니었나요? 그래야 말이 통할 텐데?”

“난 오래 살고 싶다.”

“엥?”

“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 거다. 아직 못 먹어본 술과 음식이 너무 많다. 성주 너한테 가라고 한 적 없다. 귀환 마법진이 필요하다고 해서 필요 인력과 재료를 알려 준 거다. 재료 가져오면 만들어 준다. 하지만 나는 안 간다. 선택은 성주 너의 몫이다.”

“헐…….”

카프리가 자신의 할 말만 하고 홱! 하고 뒤돌아 걸어갔다.

단호박도 저런 단호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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