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귀환 마법진(1)
“천구백팔십일 명 모두 안전하게 광산에 인계하고 왔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럼 전 이만.”
“네? 그냥 바로 가시겠다고요?”
“그럼?”
김용규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사람이 참 눈치가 없었다.
동네 체육 대회를 하고도 뒤풀이를 하기 마련인데 그는 이렇게 큰일을 겪어놓고도 차 한 잔 같이 마시지 않고 이곳을 떠나려 했다.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만 너무 앞섰나 보네요. 미국과 일본 쪽은 저희 팀원들을 모아 용의 계곡 레이드에 갔다가 전멸을 당했다고 했을 때 어떻게 나올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바로 성주님께 전달을 드리겠습니다.”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위해 바로 가시겠다?”
“네?”
“급한 건 알겠는데 당장 숨넘어갈 정도는 아니잖아요. 밥 먹고 가세요.”
“흠…….”
“밥 먹고 가라는데 뭘 그리 빤히 쳐다보세요. 사람 민망하게…….”
그대로 두면 헌터들과 함께 바로 지구로 떠날 것 같아 붙잡았더니 김용규가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꼭 먹고 가야 하나요?”
“네?”
“이아영 마스터도 그렇고 이어진 마스터도 그렇고 스카이 캐슬에 와서 밥 먹다가 다들 봉변을 당했다고 하던데?”
“끙…….”
난 앓는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를 쳐다봤다.
난 그가 고마웠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래서 화해도 하고 앞으로 관계도 개선할 겸 다가가려 하는데 그가 지나간 일을 꺼내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보아하니 그도 내가 심경의 변화가 있는 걸 알고 사과를 받길 원하는 듯했다
.
“그동안 속 좁게 굴었습니다. 평생을 없이 살다가 손안에 커다란 재물과 권력이 들어오니 앞뒤 분간이 안 되더라고요. 가지고 있는 걸 지키려면 조금 더 계산적으로 생각하고 강해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제멋대로 막무가내로 굴었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난 김용규를 향해 깊게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죄. 송. 합. 니. 다.
없이 살고 힘이 없을 때는 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제는 이 말이 참 어렵게 나왔다.
아무래도 내가 변했었던 게 맞는 듯했다. 그것도 꽤 안 좋은 쪽으로.
더 늦지 않게 이제라도 정신을 차려서 다행인 듯했다. 그런데 그때,
“죄송합니다. 저도 사과드릴게요. 그리고 이아영 마스터한테 무례를 범한 것도 직접 만나서 사죄를 할 테니 식사하시고 가세요.”
“저도 죄송했어요. 뻔히 본부장님의 입장을 알면서도 옹졸하게 굴었어요.”
지윤미와 박민정도 슬며시 다가와 김용규에게 허리를 깊게 숙이며 사과를 했다.
“허허. 다들 왜 이러십니까? 전 그저 식사하자고 하기에 제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물어본 건데…….”
김용규가 얼굴이 잔뜩 붉어져 손사래를 쳤다.
보아하니 내가 오해를 한 모양이다.
그는 지난 일을 들춰내려고 했던 게 아니라 정말 밥을 함께 먹는 게 부담스러웠던 듯했다.
내 잘못 아니 우리 잘못이었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이아영, 이어진 마스터한테 몹쓸 짓을 했으니까.
사실 내색은 안 했지만 그 일이 계속 마음에 걸리기는 했었다.
내로남불도 아니고 있는 자들의 갑질을 그렇게 경멸하고 증오했으면서 정작 내가 그와 비슷한 행동을 했기에.
아마 그때 난 차라리 김용규와 이아영 같은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없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에 버팔로와 강태훈 같은 자들만 있었으면 난 그걸 핑계로 대한민국을 도모하려 했거나 아니면 독립을 선언하는데 명분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국가 선포.
이세훈이 지나가듯 말 한 한마디가 내 무의식 깊은 곳에 숨어서 계속 날 유혹한 듯했다.
성주님 소리를 들으며 권력에 취한 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에 이끌렸었고.
밥 한 끼 먹자고 하는 말에 김용규가 저리 경계를 하니 다시 한번 내 지난날의 과오를 반성하게 됐다.
“다시 한번 사과…….”
“하하. 이곳의 막걸리가 그렇게 별미라고 하던데 그럼 그거 한잔 얻어 마실 수 있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제가 안내할게요. 식당에 가셔서 잠시 기다리시면 제가 갖다 드릴게요.”
데면데면하게 지냈던 우리가 갑자기 사과한 것도 모자라 내가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려고 하자 김용규는 막걸리가 먹고 싶다며 능청을 떨었고, 지윤미와 박민정은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안내해 갔다.
‘고마워요.’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따라갔다.
지윤미와 박민정.
사실 그녀들도 그리 성격이 고약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내가 태백산맥의 일개 헬퍼일 때도 그녀들은 좋은 상급자였으니까.
근데 그녀들도 나와 같은 이유로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숨기지 않기 위해 더 까칠하게 굴었었던 것 같았다.
* * *
“이것도 드셔보세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야생 닭으로 만든 건데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될 거예요.”
“하하. 감사합니다. 근데 그냥 예전처럼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거 갑자기 너무 잘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닭백숙.
영지 내에 계속 큰 공사가 진행되니 요리 팀에서는 원기 회복에 도움이 되는 음식을 계속 준비했고 지윤미 마스터가 닭 다리 하나를 집어서 건네주자 김용규가 어찌할 바를 모르며 계속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을 할 수 있다.
허나 그걸 인정하며 사과하고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건 어려운 법인데 우리가 너무 급작스럽게 태도가 돌변해 훅하고 들어오니 많이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네?”
“김용규 본부장님과 그리고 대한민국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는데 애써 밀어냈었거든요. 근데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이상 밀어내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아…… 제가 그 말을 한지 모르겠지만 성주님은 좋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저도 시간을 갖고 대화를 하며 관계가 개선되길 원했던 거고요. 만약 성주님이 좋은 분이 아니었더라면 미스릴이고 엔트의 줄기고 뭐고 군대를 이끌고서라도 이곳을 차지하려고 했을 겁니다.”
김용규가 날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국민을 위해 지인들의 구출을 포기한 김용규와 이아영 마스터.
그런 그들이 서운해 수천만이 죽든 내 사람이 중요하다고 했던 나.
둘 다 틀리지 않았고 잘못되지 않았다.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원망스러워해야지.
애초에 정답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오우! 대머리 네가 징징이들 다 광산으로 보냈다며?”
“…….”
“…….”
카프리가 공방 헬퍼들과 함께 걸어와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 본부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런 상황에 식사하고 있던 사람들은 다들 말문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넋을 잃은 표정으로 카프리를 쳐다봤다.
“카프리 손 내려놓으세요. 실례에요.”
“실례? 그게 뭔데? 성주 말 어렵다. 멍청이가 예쁜 짓 하면 이렇게 머리 쓰담쓰담해 주는 거라고 했다.”
“그건 한참 윗사람이 어린아이들한테나 그러는 거예요.”
“흠…….”
내 설명을 듣고 나서야 카프리는 김용규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치웠고 점점 얼굴이 찡그려지기 시작했다.
장지원은 마치 나쁜 짓이라도 한 것처럼 얼굴이 빨개졌고.
보아하니 장지원이 카프리를 속여 저렇게 머리를 쓰다듬었던 모양이었다.
“멍청이 죽고 싶나? 네가 내 윗사람인가?”
“하하. 카프리 오해야. 오해.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하는 것도 맞지만 정말 친한 친구 사이끼리는 그래도 되는 거야.”
“친한 친구? 저 말이 사실인가. 성주?”
카프리가 세상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저 도끼는 왜 항상 들고 다니는 거야!’
왠지 아니라고 하면 손에 있는 도끼를 당장 장지원에게 던질 것만 같았다.
“네. 맞아요. 정말 친한 친구끼리는 그러는 경우도 있어요.”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무리 친해도 웬만하면 머리를 안 건드리는 것이 좋았다. 게다가 머리카락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헌데 난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눈앞에서 장지원이 죽는 걸 볼 순 없는 노릇이니.
“미안하다. 대머리. 내가 아직 인간문화 다 이해 못 한다.”
“아, 아니에요. 근데…….”
김용규가 얼굴이 잔뜩 붉어져 나와 카프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뭔가 할 말이 있는데 애써 삼키고 있는 듯했다.
허나,
“카프리, 대머리라는 표현도 쓰지 마세요.”
난 김용규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었다.
윗머리가 빠진 김용규는 옆머리와 뒷머리만 있었다.
대머리 맞았다. 헌데 대머리한테 대머리라고 하는 건 실례였다.
정말 친한 사이여도 말이다.
“표현? 그건 또 뭔가?”
“이분 이름은 김용규이고 대한민국 재난 관리 본부장을 맡고 있어요. 그러니 본부장이라는 호칭을 써야 해요.”
“아…… 미안하다. 멍청이가 계속 대머리라고 부르기에 대머리가 대머리 이름인 줄 알았다.”
“끙…….”
“…….”
“…….”
“아, 맞다. 광산 근무 교대해 줘야 하는데 제가 깜빡했네요. 전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후다다다다다닥.
카프리의 계속된 실수에 장지원은 밥을 먹다 말고 일어나 도망치듯 하늘 다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보아하니 김용규가 없는 데서 계속 대머리라고 부른 모양이다.
이제 좀 친해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데 카프리 아니 장지원 때문에 산통이 다 깨져버렸다.
“본부장님, 죄송합니다. 종족이 달라 아직 인간 문화와 언어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선생님을 붙여 줬어야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장지원 마스터한테 맡겼더니…….”
“하하. 아닙니다. 눈을 마주치고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없지만, 저 대머리 맞는데요. 하하하”
내가 다시 사과하자 김용규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보아하니 살짝 불쾌한 모양인데 괜히 화를 내서 지금의 좋은 분위기를 깨기 싫어 일부러 더 크게 웃음을 짓는 듯했다.
헌데 난 왠지 그의 웃음이 슬퍼 보였다.
“미안하다. 대머리. 머리 없는 거 슬퍼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내가 치료해 준다. 머리 나게 하는 법 안다.”
“네?”
“예전에 우리 부족에도 털이 없는 드워프가 있었다. 털 없으면 겨울에 춥다. 내가 털 나게 하는 음식을 만들지 아니 해결해 준다.”
“저, 정말입니까?”
“우리 드워프 거짓말 안 한다. 그리고 갖고 싶은 거 있으면 하나만 말해라. 일본과 미국놈들 매일 아이템 만들어달라고 앵앵거려서 짜증 났다. 대머리가 다 치워줘서 고맙다. 그래서 선물해 주고 싶다. 그 말 하려고 온 거다.”
“흠…….”
얼굴이 붉어졌던 것도 잠시 김용규가 세상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카프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도 알고 있으니까.
이곳에 있는 이능 아이템을 모두 카프리가 만들었다는 것을.
처음이었다. 카프리가 함께 지냈던 이들이 아닌 외부인에게 아이템을 만들어 준다고 한 것이.
해골 세트를 공급하기 위해 진짜 힘이 많이 들긴 들었던 모양이었다.
우리에게 무언가 만들어 줄 때는 제약을 걸기 일쑤였는데 김용규한테는 만들어 달라는 대로 다 만들어 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제가 선물이 받을 자격이 있다면 전 던전 탐사를 나간 헌터들이 조금이나마 더 위험에 빠지지 않고 안전하게 생환할 수 있게 도움이 되는 아이템을 만들어 줬으면 합니다.”
김용규는 카프리가 베푼 호의를 자신이 아닌 헌터들을 위한 아이템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