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SSS급 정령사 (4)
발키리 길드 삼백여 명.
일본 헌터 협회 천여 명.
“그레이 기사단은 자기네 영지로 돌아갔나?”
“……영지로 돌아갔어. 태백산맥이랑 마녀 부대는 작업 현장에 투입되어 있거나 경계를 서고 있고.”
“울프랑 레인보우는?”
“울프는 오크 항구 공사가 마무리 안 돼서 돌아갔고, 레인보우도 부산에 웨이브 증세가 보여서 급히 돌아갔어.”
이세훈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땅에서 마찰이 생겼는데 어떻게 상대가 사람이 더 많았다.
아무래도 상황이 더 악화하기 전에 내가 나서야 할 것 같았다.
“모두 진정들 하시고 일단 무기부터 내려놓으시죠.”
난 손을 저으며 발키리 길드와 일본 헌터 협회 사이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내,
“미스릴 광산 주위로 일본인 열여섯 명이 들어왔었습니다. 열 명은 제거했지만 여섯 명이 도주했습니다. 아직 숲 안에 있거나 저들에게 합류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광산에서 본 걸 알리기 전에 색출해야 합니다.”
박민정이 내게 다가와 귓속말로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왜 이렇게 극단적으로 일을 처리했나 했더니 일본 헌터들이 광산 안까지 들어왔던 모양이다.
광산 노예.
김용규와의 합의하에 잡아들였지만 다른 나라에서 알게 되면 국제적으로 지탄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걸 핑계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명분을 제공할 수도 있었고.
“시미켄 씨. 이곳에 입장할 때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이곳의 법을 따르겠다고?”
“약속했죠. 하지만 몬스터 토벌을 도우면 아이템을 판매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어긴 건 스카이 캐슬이 먼저입니다. 게다가 이곳의 법을 따르겠다고 했지. 재판도 없이 아군을 살해해도 된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하아…….”
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시미켄을 쳐다봤다.
이미 사건은 터졌고 서로 더 이상 다치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을 하고 싶은데 시미켄이 어지간히 화가 났는지 대화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오다 확인해 보니 지금 저희 쪽 인원이 여섯 명이 더 빕니다. 보아하니 그들도 실수로 금지구역에 들어간 모양인데 그들의 생사 여부를 직접 저희가 확인을 해야겠습니다.”
“실수 맞습니까?”
“뭐라고요?”
[관계자 외 출입금지!]
“뻔히 저렇게 크게 팻말을 세워 뒀는데 열여섯 명이나 되는 인원이 실수로 저곳에 들어간 게 맞는지 물어보는 겁니다.”
“지금 저흴 의심하는 겁니까?”
찌릿.
내가 앞에 나서자 얼굴이 조금 풀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시 시미켄의 얼굴이 구겨졌다.
‘S급이었나?’
난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며 시미켄을 쳐다봤다.
동료들의 죽음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동료들에 걱정 때문인지 그는 마나를 개방했고 꽤 큰 힘이 느껴졌다.
대외적으론 씨블레이드 길드의 겐지만 일본의 유일한 S급 헌터로 알려져 있었는데 숨은 실력자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A급 헌터도 열 명이나 되네?’
지금 보니 일본 헌터 무리에 꽤 강한 헌터들이 많았다.
‘이 새끼들 설마?’
불현듯 등골이 싸늘한 정도로 불안함이 몰려왔다.
S급 헌터는 국가의 안위를 책임질 귀한 인재였다.
그런데 고작 아이템을 사기 위해 타국에 있는 게이트 안 몬스터를 토벌하기 위해 고국을 비우고 이곳에 왔다는 사실에 의문이 들었다. 그것도 정체마저 숨기면서까지.
그리고 그 순간,
후다다다다다닥.
후다다다다다닥.
[이게 어찌 된 일이죠? 왜 발키리 길드에서 일본 헌터들을 살해한 겁니까?]
상점 앞에 있던 사람들에게 들었는지 미국 헌터 협회 소속 천여 명도 우리에게 달려왔다.
그런데,
“이 새끼들이 아주 작정하고 왔구나!”
미국 헌터들의 칼끝이 우리를 겨누었다.
S급 헌터 1명. A급 헌터 20명.
미국에서 온 사람들 역시 꽤 강력한 상위 헌터들이 많았다.
S급일 때는 마음 먹고 자세히 살펴봐야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저 한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헌터들의 마나 크기와 농도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저희 헌터들이 실수로 금지 구역에 들어간 모양인데 발키리 길드에서 반항한다는 이유로 살해를 했습니다.}
{이런! 아무리 금지 구역이라도 그렇지. 타국의 헌터를 절차도 없이 이렇게 해치다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아직 여섯 명의 인원의 생사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는데 그것조차 확인시켜 주지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그나마 아직 생존자가 있어서!}
미국 헌터 협회 사무장 크리스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것도 잠시 미소를 지으며 하늘 목장을 쳐다봤다.
‘영화배우 해도 되겠군.’
어째 한 편의 재밌는 연극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다 알고 온 건가?’
크리스와 시미켄이 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이미 이곳에 광산이 있고 죄인들을 데리고 와 일을 시키고 있는 걸 알고 온 듯했다.
그리고 그걸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이 사달이 난 듯싶고.
{성주님, 저곳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양보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 열 명이나 죽었는데 이대로 지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네요.}
크리스가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마치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우리와 일본을 중재하기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굴었다.
그리고 그때,
후다다다다다닥.
후다다다다다닥.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발키리 길드에 검을 겨누고 있는 거죠?”
김용규가 천여 명의 헌터들을 데리고 부랴부랴 뛰어왔다.
“……발키리에서 살해했습니다.”
“끙.”
시미켄은 크리스한테 얘기한 것 그대로 김용규한테 다시 한번 설명했고 김용규가 앓는 소리를 내며 얼굴이 급격하게 찡그려졌다.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 무기들 내려놓으시고 말로 하시죠. 말로.”
“그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저희는 저곳에 들어가 저희 헌터들의 안위를 확인해야겠습니다.”
“저곳은 금지 구역입니다. 사정은 알겠으니 일단 돌아가시면 제가 저희 헌터들을 투입해서 무사히 데려오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같은 한국 사람이라 이건가? 타국의 헌터를 무참히 살해해 놓고 우린 일단 돌아가 있어라?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저들은 우리 헌터들이 반항을 했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꾸며낸 얘기일 수도 있는데?”
찌릿찌릿.
찌릿찌릿.
김용규는 최대한 저 자세로 얘기를 하는데 시미켄은 되려 더 화를 내고 언성을 높였다.
게다가,
{김용규 본부장님 입장을 확실히 해 주십쇼. 지금 이 일은 말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말로 해결할 일이 아니라니요?}
{일본 헌터들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여섯 명이나 되는 헌터의 신변을 감금하고 있을 수도 있고요.}
{이 새끼들이 정말! 그래서 지금 한번 해 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뭐야!}
챙! 챙! 챙!
챙챙! 챙챙! 챙챙!
김용규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걸 느꼈는지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고 그와 동시에 대한민국 헌터 협회 소속 헌터들도 무기를 꺼내 일본인들을 향해 겨누었다.
‘어라? 우리 때문에 같이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일본과 미국이랑?’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김용규를 쳐다봤다.
보아하니 이미 미국과 일본은 뭔가 입을 맞추고 온 듯한데 다행히 한국은 이들과 무관한 것도 모자라 여차하면 우리를 도와주기까지 할 모양이었다.
“성주님…….”
“…….”
“…….
험악한 분위기에 내가 너무 해맑게 웃어서일까.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지금 분위기 파악이 안 됩니까? 정신이 나갔다고 하더니 아직 제정신으로 못 돌아온 건가?”
시미켄이 이죽거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럴 수도 있고. 근데 뭐가 그리 궁금한 거야. 미스릴을 톤 단위로 생산을 하는데 당연히 광산이 있는 건 짐작했을 텐데? 매장량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한 건가? 그래서 확인하고 많으면 이곳을 차지라도 해 보려고?”
“…….”
“상위 헌터들까지 숨겨서 데리고 와서 이래저래 우리 쪽 헌터들이 빠지기만을 기다렸나 봐?
“…….”
“왜 둘 다 갑자기 말이 없지? 내가 너무 정곡을 찔렀나?”
난 시미켄과 크리스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고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지그시 쳐다봤다.
짐작건대 어떻게 할 건지 의견을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휘이익.
휘이익.
휘이익.
“헙.”
“컥.”
“헙.”
“컥.”
“헙.”
“컥.”
시미켄과 크리스가 동시에 내게 달려들었다.
가슴에 두 번.
등에 한 번.
그들의 검은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몸을 베고 지나갔다.
“방심은 언제나 화를 부르는 법이지.”
{미안합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느새 다시 검집에 검을 넣고 자리로 돌아간 시미켄과 크리스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S급 헌터라 그런지 둘 다 움직임이 남달랐다.
{저흰 더 이상 피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발키리도 좋은 말로 할 때 무기를…….}
“아, 시발 되게 아프네.”
“어떻게?”
[분명 제대로 베었는데?]
내가 손으로 검에 베인 곳을 비비자 시미켄과 크리스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보아하니 피라도 솟구쳤다가 내가 쓰러지길 기대한 모양이었다.
“다한 거 맞지? 너네 세 번 때렸으니까 나도 세 번 때린다.”
-죽여?
‘죽이진 말고 일단 팔만 잘라 줘.’
-알았어.
‘일본 놈은 다리도 부탁해. 저 새끼 크리스가 때린 데 또 때렸으니까.’
-오케이.
윈드 블레이드.
살랑살랑.
시원하고 차가운 봄바람이 시미켄과 크리스에게 다가갔고,
서걱.
서걱서걱.
“으읔.”
“으읔.”
이내 그들의 양팔이 모두 잘려나갔다.
“으아악.”
내게 검질을 두 번 한 시미켄은 양발마저 잘려나갔고.
‘운디네.’
-응. 알았어.
아쿠아 워터.
따스하고 포근한. 파란색 빛을 머금은 물방울 들이 그들의 상처를 감쌌다.
혹시 출혈이 심해 죽을지도 모르기에. 팔과 다리가 잘린 상태 그대로 치료해 주었다.
기껏 생각해서 아이템을 판매하고 영지까지 초대했는데……. 이대로 죽이기엔 다들 너무 괘씸했다.
터벅터벅.
터벅터벅.
“으읔.”
부들부들.
부들부들.
난 산책이라도 하는 듯 천천히 시미켄에게 다가가 그의 상처를 밟았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양국의 헌터들을 쳐다봤다.
“셋 셀게. 그 전에 모두 무기 내려놓는 게 좋을 거야.”
“…….
“하나…….”
드드드드드드.
쿠드드드드드.
-이놈들도 묻어 버리면 되지?
저 먼 곳에서부터 흔들림이 느껴지기 시작하고 곧 몸이 먼저 떨렸다.
소리는 나중이었다.
사막에서 봤던 것처럼 대지가 흔들리며 조금씩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둘…….”
“…….”
일본인과 미국인들이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서로 시선을 마주쳤다.
시미켄과 크리스.
믿었던 S급 헌터 두 명이 어떻게 당한 지도 모른 체 팔과 다리가 잘려 땅바닥을 헤엄치고 있으니 어떻게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는 모양이었다.
“죽는 게 소원이라면 어쩔 수가 없네요.”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수천만의 몬스터를 죽였지만, 아직 사람을 해친 적은 없었는데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을 듯했다.
그런데 그때,
“세에…….”
{모두 검 내려놔!}
{어서 내려놔!}
챙! 챙! 챙!
시미켄과 크리스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를 질렀고 그제야 헌터들이 모두 들고 있던 무기를 땅에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