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SSS급 정령사 (2)
“……그러니까 성주님 말씀은 지구에 열린 게이트가 이곳 세상과 다 연결되어 있고 의식이 없는 동안 미국과 연결된 곳에 가서 해일을 만들고 또 일본에 가서는 지진을 만들어 몬스터들을 매장했다는 거죠?”
“네. 맞아요. 지금 세 번째 대답하는 것 같은데?”
“그게 제가 알아본 바로는 미국과 일본에서 생긴 자연재해가 만약 지구에서 발생했으면 거의 도시 하나를 붕괴시킬 만큼 엄청났다고 들었거든요. 근데 그걸 성주님이 하셨다고 하니…….”
이부성과 함께 달려온 최유라 팀장이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계속 두세 번 되물었다.
마치 꿈을 꾼 것처럼 몽환적이어서 나도 사실 헷갈리긴 했지만, 정황상 내가 한 게 맞는 것 같은데 믿기 힘든 모양이었다.
“성주님 혹시 PTSD라고 들어보셨어요?”
“PTSD요?”
“그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큰 재해나 전쟁 등 강력한 공포를 수반하는 체험 뒤에 일어나는 정신적인 혼란 상태로 요즘 헌터들 사이에서 많이 생기는 장애거든요.”
“…….”
“PTSD 장애가 생기면 성주님처럼 마나 폭주를 일으키거나 환각이나 환청을 보고 듣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끙…….”
“의사의 소견으로 봤을 때 성주님께선 PTSD 장애를 앓고 있는 것 같아요.”
최유라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날 물끄러미 쳐다봤다.
“오크들도 그렇고 언데드 몬스터도 그렇고 최근 들어 계속 성주님께서 큰일을 겪으셨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 같으니 당분간은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 건 어떨까 싶어요.”
“그러니까 지금 제가 정신병에 걸렸다?”
“정신병이라고 하니 어감이 좀 그렇긴 한데 불쾌해하실 일은 아니에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팔과 다리를 다치거나 아프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처럼 머리도 마찬가지일 뿐이에요.”
“흠…….”
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최유라 팀장을 쳐다봤다.
처음엔 긴가민가한 얼굴이더니 어느샌가 지금은 내가 착각을 하는 거라고 확신을 하고 있었다.
‘몬스터도 없는데 괜히 지진을 일으킬 수도 없고…….’
지금도 마음을 먹으면 그녀가 납득할 만한 위력을 선보일 수 있을 듯했다.
근데 그래서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었다. 아니 왠지 그러면 지금보다 더 피곤해 질 듯했다.
나의 능력이 향상된 걸 알리면 당장 미친놈 소리는 안 들을지 몰라도 김용규를 비롯한 사람들이 나를 더 귀찮게 할 것 같았다.
지금도 마치 곶감 보따리라도 맡겨 놓은 것같이 뭐 빼먹을 것 없는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내가 대정령사로 상승했다고 하면 그가 어떻게 나올지는 안 봐도 비디오였다.
‘휴식이라…….’
헌데 그냥 지금 수긍을 하면 합법적으로 땡땡이를 칠 수 있을 듯했다.
의사가 직접 장애를 진단했는데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내게 계속 일을 맡기지는 않을 테니까.
이참에 핑계 삼아 좀 쉬면서 슬슬 농사를 지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럼 입원할까요?”
“네? 입원이요. 그 정도는 아니고 제가 밖에 나가서 전문의를 섭외해 볼게요. 그럼 약 먹으면서 통원치료를 받으면…….”
“아시다시피 제가 위치가 위치다 보니 환자복이라도 입어야 좀 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럼 입원하는 거로 해요.”
“감사합니다.”
권수정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고 나도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쳐다봤다.
* * *
“동충하초를 재배하는 게 일단 제일 급하겠지?”
병원에 입원한 난 병원 뒤 공터에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동충하초 재배 준비를 시작했다.
엔트의 줄기는 세계수가 있으니 알아서 관리가 될 테지만 동충하초는 알아서 계속 자란다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동충하초 포션은 현재 영지에서 판매하는 아이템 중에 가장 효자 상품이기도 했거니와 헌터들의 목숨을 지키는데도 반드시 필요할 만큼 중요했다.
“공기가 아주 깨끗했고. 습도는 제법 높았던 것 같았어요. 그리고 나무들로 인해 적당히 그늘도 졌었던 것 같고요”
난 기술자들을 불러 처음 동충하초를 발견했을 때 날씨와 환경을 떠올리며 비닐하우스의 밝기와 습도, 온도를 조절할 시설을 갖췄다.
원래 보통의 버섯들은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에서 자라는데 동충하초는 약간 다른 환경을 필요하는 것 같았다.
“저…….”
“네?”
“혹시 농협에서 직책이 있으십니까?”
“그건 왜?”
“그게 저보다 연배도 한참 높으신 것 같은데 근학 씨라고 하기가 좀 뭐해서…….”
동충하초 재배 시설 설치를 돕기 위해 온 이근학을 보며 난 머리를 긁적였다.
40대 초중반.
그는 나보다 대여섯 살 정도 많아 보였고 근학 씨라고 부르는 게 잘못된 호칭은 아니었는데 왠지 입에서 선뜻 나오질 않았다.
“그냥 편하게 이 씨라고 부르세요. 다들 그렇게 부릅니다.”
“그건 더 이상한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형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형님이요? 저야 뭐 상관없긴 한데…….”
“그럼 형님이라고 부를 테니 형님도 동생처럼 편하게 대해 주셨으면 합니다.”
난 이근학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는 성주인 내가 편하게 말을 하라고 해서 어려운 듯싶었지만 내 생각엔 이게 맞는 듯했다.
꼭 공부를 가르쳐줘야 선생이고 스승이 아니듯이 이제 그에게 농사짓는 것을 도움받고 정보를 얻어야 하니 그는 내 농사 스승과 다름이 없었으니까.
“……어, 그래.”
내가 잠시 손을 멈추고 미소 지은 얼굴로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이근학이 그때야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형님, 제가 알기로는 지구에서도 동충하초를 키우는 분들이 있는 거로 아는데, 균 작업하는 분들을 좀 섭외해 주실 수 있을까요? 형님도 이곳에 온 지 열흘 정도 되셨으니 알겠지만 제가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입장이라 서요.”
“그래. 알았어. 그럼 원균이 있어서 균을 인공 배양을 한다 치고 기주는 어떻게 할 거야?”
“흠…… 그건 누에나 번데기, 굼벵이까지 해서 다양하게 시도를 해봤으면 해요. 동충하초를 채취하고 나서 봤을 때 기주들은 제각각이었거든요. 그래서 크게 중요하진 않을 것 같은데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렇지. 그럼 이번엔 밖에서 사 오는 걸로 하고 이곳의 누에랑 굼벵이를 잡아서 직접 키워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아. 지금 가진 포션의 효과를 다시 발휘하려면 최대한 똑같은 환경을 만드는 게 좋을 테니까.”
“네. 그렇죠.”
난 이근학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동충하초 농사는 말이 농사지. 막상 시작하니 연구소나 실험실과 같은 설비를 요구했다.
게다가 직접 곤충의 유충까지 키워야 할 듯했다.
동충하초는 풀처럼 보이지만 버섯이었고 살아있는 곤충의 몸에 들어가 기생했고 숙주가 된 곤충은 죽어서도 썩지 않고 마치 미라처럼 유지가 되었다.
지구에 있는 동충하초처럼 성충이 아니라 애벌레의 모양을 한 유충 시절에 동충하초 균이 침투하지 않았을까 짐작되었다.
두둑을 만들고 검은색 비닐을 덮고 모종을 심으면 되는 일반 밭농사와 달리 훨씬 더 까다롭고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형님,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막걸리 한잔할까요?”
“좋지. 우리 아우가 농사지을 줄 아는구먼.”
“하하.”
비닐하우스를 올리고 1차로 설비를 설치한 난 이근학과 함박웃음을 지으며 병원 앞으로 걸어갔다.
“크! 좋다.”
“내가 이 맛을 못 잊어서 농사를 못 끊는다니까.”
새벽 일찍 일어나 땀을 흘리고 나서 병원 앞 평상에 앉아 막걸리 한잔 쭉 들이켜고 안주로 고추장에 오이 한입을 먹고 있자니 천국이 따로 없을 만큼 행복함이 감돌았다.
“형님, 한잔 더 받으세요. 저도 이제야 사람 사는 것처럼 사는 것 같네요.”
“그러세. 아우.”
꿀꺽꿀꺽.
난 봉실봉실 미소를 지으며 이근학의 잔에 막걸리를 채워주고 나도 한 모금 쭉 들이켜고 하늘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그동안 너무 숨 가쁘게 달려오다 보니 많이 지쳤던 모양이다.
옐로 아이 덕분에 육체적인 활력은 충당했을지도 몰라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진짜 권태기가 찾아왔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성주가 되고 큰 재물이 생겼다 하나 사람 상대하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었으니까.
대정령사로 각성해 짐작조차 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힘을 얻고 이렇게 평상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이제야 마음의 평화가 찾아와 하늘을 쳐다보는 여유가 생겼다.
고개만 이렇게 들면 볼 수 있는 것을 한동안 난 저 청명하고 파란 하늘이 있었는지도 잊은 채 정말 바쁜 나날을 보낸 듯했다.
“성주 동생. 자네가 농사짓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긴 한데 이렇게 여기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거 맞지?”
막걸리와 오이가 입에 맞는지 행복했던 것도 잠시 이근학이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근데 하나 확실한 건 좀 휴식이 필요할 것 같다는 거예요. 이렇게 땅을 벗 삼아 살면 얼굴 붉힐 일도 화낼 일도 없는데 성주라는 자리에 오르니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하루하루가 너무 바빴거든요.”
꿀꺽꿀꺽.
아그작.
막걸리 한잔을 또 들이켠 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영지를 쳐다봤다.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잠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불안함과 조바심을 내고 아등바등 살았는데 정작 내가 이렇게 병원에 입원해 농사를 짓고 있는데도 영지는 아무런 사고 없이 평온하게 계속 발전해 나가는 듯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군대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이등병 시절, 동기들과 함께 톱니바퀴가 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쉼 없이 작업에 불려 나가고 일과가 끝난 후에 내무실 정리를 하며 하루하루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때 난 동기들마저 없었으면 이 험난한 군 생활을 어떻게 버텨낼까 싶었는데 막상 허리 디스크와 요로 결석으로 동기 두 명이 입원했는데도 내 일과에는 큰 변화 없이 잘 돌아가더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씹으면 된다고 부족한 일손은 일병과 상병들이 알아서 부담해서 도와주었다.
이렇게 한 발자국 물러나서 지켜보니 성주라는 직위에 취해 나도 모르게 스스로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후다다다다닥!
“해용아!”
저 멀리 영지에서 이세훈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해용아, 빨리 도망쳐.”
“도망치라고? 왜?”
“카프리가 너 죽인다며 도끼 들고 이곳으로 오고 있어.”
“카프리가 날 죽인다고 했다고? 왜?”
내게 다가온 이세훈이 숨을 헐떡거리며 계속 날 산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
“네가 한국 사람도 모자라 미국과 일본 사람까지 잔뜩 끌어와서 열흘째 카프리랑 공방 사람들이 하루에 열여덟 시간씩 작업하고 있는데도 해골 세트를 구매하지 못한 미국인과 일본인들이 계속 칭얼거리니까 카프리가 결국 터진 것 같아.”
“끙…….”
“근데 그 와중에 자기는 휴식시간은커녕 잠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일하고 있는데 네가 여기서 한량처럼 지낸다는 얘기까지 들었거든.”
“헐…….”
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이세훈을 쳐다봤다.
내가 없어도 어련히 잘하고 있을 거라 여겼는데, 뜻하지 않게 카프리가 꽤 고충을 겪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휘리릭.
쾅!
“성주! 거기 딱 기다려. 나랑 얘기 좀 하자.”
내 왼쪽 발밑 땅에 커다란 도끼가 박혔다.
‘얘기 좀 하자며? 도끼는 왜 던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