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118화 (118/255)

118화. 헌터의 도시 (4)

“울프 길드 마스터 최영식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레인보우 길드 마스터 최병용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선착장으로 내려가니 울프와 레인보우 길드 소속 헌터들 수백 명이 정렬하고 기다리다 내게 인사를 해 왔다.

“오랜만이에요. 최병용 마스터.”

난 무릎을 꿇고 있는 최영식을 일으키며 최병용과도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했다.

“스카이 캐슬과 함께 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주님.”

“아니에요. 이렇게 와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난 빙그레 웃으며 최병용 뒤쪽에 서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의 뒤엔 천여 명에 이르는 일본인과 미국인들이 서 있었다.

만나서 얘기를 하자고 했는데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하고 헌터들부터 데리고 온 모양이었다.

[인사하세요. 이분이 이곳 스카이 캐슬의 주인이신 S급 헌터 안해용 님이십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일본 헌터 협회 사무총장을 맡은 시미켄이라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미국 헌터 협회 사무총장을 맡은 크리스라고 합니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보자 최영식이 영어로 날 소개했고 대표들이 앞으로 나와 내게 인사를 해 왔다.

“오! 영어도 할 줄 아네?”

“먹고 살려다 보니 하하.”

최영식의 입에서 나오는 능숙한 영어를 보고 내가 신기한 눈을 하고선 쳐다보자 그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약간은 껄렁껄렁한 이미지였는데 외국인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고 통역까지 해 주는 모습을 보니 새삼 그가 다르게 보였다.

“사무총장이면 꽤 높은 사람들 아닌가?”

“네. 맞습니다. 둘 다 협회 서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첫 방문부터 이런 양반들을 데리고 온 거야?”

“말도 마세요. 형님. 일본 협회장이 직접 온다는 거 그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고 다음에 정식으로 초대를 할 테니 그때 와 달라고 설득을 해서 겨우 남겨놓고 온 거예요.”

“협회장이면 일본에 한 명 있다는 그 S급 헌터 말하는 건가?”

“네. 맞아요. 데스나이트를 처치하긴 했지만 일본 국민이 아직 많이 불안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미스릴이랑 엔트 주사를 더 많이 구매하고 싶어 혈안이 되어 있어요.”

최영식이 시미켄과 일본 헌터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보아하니 일본에 갔다가 어지간히 시달리고 온 모양이었다.

[영지 개발을 하는데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기술자들을 함께 데리고 왔습니다.]

“기술자들?”

“괜찮다는 대도 부득불 데리고 오더라고요. 남의 집에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 없다며.”

김용규도 그러더니 일본에서도 헌터들은 물론이고 백여 명의 인재들을 함께 데리고 왔다.

난 고개를 돌려 미국 헌터들을 쳐다봤다.

그곳에도 헌터들과 달리 정갈하게 옷을 차려입은 백여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저 사람들도 기술자인가?”

“네. 맞습니다. 미국도 지금 몬스터 웨이브 때문에 난리가 아닌가 보더라고요. 땅덩어리가 넓어서 그런지 이곳, 저곳에서 몬스터가 뛰쳐나오고 있는데 특히 라미아랑 타란툴라 때문에 엔트 주사가 절실히

필요한 모양이에요.”

“라미아?”

“인간의 상체와 뱀의 하체를 가진 몬스터인데 이놈들의 꼬리 공격을 받으면 독에 중독되는데 타란툴라처럼 하위 헌터들이나 일반인들은 바로 치료를 받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절명한다나 보더라고요.”

최병용도 앓는 표정을 지으며 크리스와 미국 헌터들을 쳐다봤다.

“사정은 딱하지만 스카이 캐슬에도 엔트 주사가 그리 많지 않아서 구매를 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고 분명 얘기를 했는데도 일단 만나만 보게 해 달라고 어찌나 고집을 부리던지 당해낼 재간이 없더라고요.”

그도 최영식처럼 미국에 갔다가 어지간히 시달린 모양이었다.

“다들 정성이 갸륵하네.”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방문객들을 쳐다봤다.

도와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다들 스카이 캐슬의 부흥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려 했다.

“그죠. 양국 헌터 협회 다 형님과 친분을 다지고 싶어서…….”

“반어법 몰라?”

“네?”

“내가 지금 기분이 좋기만 해서 웃는 건 아니라고.”

“아…….”

최영식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국에 이어 미국과 일본까지.

다들 겉으론 웃으며 호의를 베푸는 척 다가오고 있지만 다들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

미스릴과 엔트 주사가 됐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됐든 말이다.

이어진에게도 말했지만, 이 세상에 순수한 마음으로 호의를 베푸는 건 돼지고기까지니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분란을 만든다면 이곳의 법대로 처리한다고 말해.”

“이곳의 법이요?”

“영구 감금.”

난 최영식과 잠시 시선을 마주치고 하늘 다리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성주님께서 여러분의 출입을 허락하신답니다. 단 영지에서 분란을 일으키면 영지 법에 따라 처벌을 하신답니다. 동의하십니까?]

[네.]

[네.]

최영식의 물음에 시미켄과 크리스가 오랜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영지에 입장해 아이템만 사게 해 주면 간이라도 내줄 듯한 기세였다.

“부마스터님.”

“네. 성주님.”

“묵을 곳을 안내해 주고 한국에서 온 공무원들처럼 저들도 상담하여 특기에 맞춰 적당한 현장에 배치해 주세요.”

“저들한테도 바로 일을 맡기시려고요?”

박민정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미국과 일본의 기술자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도와주려고 왔다는 데 도움을 받아야죠? 보아하니 애들한테 영어랑 일본어 가르칠 사람도 필요할 것 같던데 겸사겸사 잘되지 않았나요?”

“그건 그런데…….”

박민정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어느새 이곳저곳 현장에 투입해 일하는 공무원들을 쳐다봤다.

외국인들에게 일을 맡기려니 뭔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부마스터님, 외국에 나가서 가장 조심 해야 할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여행사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그러더군요. 혹시 해외여행 나갈 일이 있으면 웃으며 다가오는 한국 사람을 조심하라고.”

“끙……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지시하신 대로 처리할게요.”

박민정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국인.

일본인.

미국인.

다들 나라는 다르지만 나와 영지를 쳐다보는 눈빛은 다 똑같았다.

굳이 차별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그럼 전 당분간 농사 좀 지어야 할 것 같으니 잘 좀 부탁드려요.”

“네? 농사를 지으신다고요?”

“네.”

“농담이시죠?”

“진심인데요?”

“……?”

농사를 진다는 말에 박민정이 세상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헌터들도 잔뜩 방문했겠다. 기술자들과 사무직원까지 저렇게 자발적으로 파견을 보내 주겠다. 급한 불은 이제 끈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한국 헌터 협회 천여 명.

일본 헌터 협회 천여 명.

미국 헌터 협회 천여 명.

스카이 캐슬 연합 천여 명

.

.

.

울프 길드와 레인보우 길드 헌터들까지 합치면 이제 이래저래 오천여 명에 이르는 헌터들이 이곳에 머물거나 인근 거리에서 언제든 달려 올 수 있게 시스템이 구축되었다.

이제 어지간한 웨이브가 생겨도 어렵지 않게 막아 낼 수 있을 듯했다. 아니 이 정도 전력이면 지구의 웬만한 도시보다 전투력이 더 높았다.

“제가 농사짓는 데 뭐가 문제가 있나요?”

“성주님이 농사를 지으시면 저 사람들 상대는 누가?”

박민정이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영지를 방문한 헌터들의 인솔자들을 쳐다봤다.

난 아무런 말 없이 박민정을 가만히 쳐다봤다.

“저요?”

“부마스터님이 해도 되고. 지윤미 마스터님도 있고. 수정이도 있고…….”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성주님이 계셔야 저들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정도는 지휘부에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예요. 전 여러분들을 믿어요.”

“끙…….”

“그럼 전 이만.”

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박민정을 뒤로 하고 야생 벼가 자랐던 곳으로 걸어갔다.

* * *

“해용아.”

“응?”

“아니지?”

“뭐가?”

“아닐 거야? 그치?”

“뭐가 인마?”

“내가 계산해 보니까 네가 이곳에 들어온 지 언 1년쯤 된 것 같아서……”

야생 벼가 자랐던 곳에 와서 땅을 살펴보고 있는데 이세훈이 세상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1년이라…….’

말하는 본새를 보아하니 또 내 역마살이 도진 줄 알고 걱정을 하는 듯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게 아닌데 왜 네가 직접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건데?”

“이게 원래 내 일이니까.”

“이게 원래 네 일이라고?”

“응.”

끄덕끄덕.

난 이세훈과 눈을 마주치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쩌다 보니 성주까지 되었지만 내 본업은 직접 몸을 움직여서 그 노동력으로 헌터들의 의식주를 책임지는 헬퍼였다.

영지 운영과 레이드는 지휘부와 헌터들의 몫이었고.

난 지금 역마살이 도진 게 아니라 초심을 지키려고 이러는 것이었다.

요리사는 주방에서 일하고, 의사는 병원에서 일해야 영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겠는가.

“오! 저기 온다.”

윙윙윙윙윙윙윙.

윙윙윙윙윙윙윙.

경운기.

트랙터.

두둑기.

이앙기.

콤바인.

.

.

.

이세훈에게 전달을 받았는지 저 멀리서 김용규가 아버지와 영지민을 인솔해서 농기계들을 몰고 다가오는 게 보였다.

“본부장님, 고맙습니다. 이 많은 걸 이리 빨리 준비해 오실 줄은 몰랐네요.”

난 김용규에게 다가가 봉실봉실 미소를 지으며 감사 인사를 했다.

농사를 지을 때 옛날처럼 허리가 ㄱ자 모양이 될 만큼 허리를 숙이고 손으로 하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그 대신 필요한 기계들이 많았다. 그것도 억 소리가 날 만큼 비싼 농기계들이.

특히 제대로 된 콤바인 하나만 해도 웬만한 외제 차 한 대 값인데 반나절 만에 수십 대를 구해 가져다주었다.

콤바인이야 추수를 할 때 필요한 기계라 당장 필요는 없지만 다른 기계들은 고장 날 것도 감안하고 동시에 여러 군데에서 작업을 해야 해서 몇 대씩은 있어야 했는데 그것까지 알아서 생각한 모양이었다.

김용규를 알고 나서 오늘만큼 마음에 들었던 적이 처음인 듯했다.

“성주님이 계셨네요. 안 그래도 뵙고 싶었는데…….”

“저를요?”

“파견 나온 직원들에게 들으니 미국과 일본의 헌터들이 방문한 것은 물론이고 내정을 맡아줄 전문 인력까지 보내 줬다고 하던데 사람이 더 필요하면 저한테 말씀하시지, 그러셨습니까?”

“아, 미안해요. 저도 본부장님께서 이리 도와주실지 모르고 한참 전에 얘기해 놓은 거라. 하하.”

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지금이라도 돌려보내고. 필요한 만큼 제가 인원을 더 파견 보내는 방향으로 해도…….”

“에이. 아니에요. 지금도 과분할 정도로 도움을 받는데 더 신세를 질 수야 있나요. 마음만 받겠습니다. 하하.”

“신세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성주님께서 원하신다면…….”

“우와! 이거 최신식인가 보네요.”

트랙터.

난 김용규를 뒤로 하고 강력한 원동기를 갖춘 자동차에 올라탔다. 농 작업기를 연결하여 땅을 갈아엎는 데 쓰는 기계로 이것만 있으면 소 열 마리가 있는 것보다 나았다.

두둑. 두둑.

윙윙윙윙윙윙.

“뭐야? 트랙터도 운전할 줄 아는 거야?”

“알잖아. 과수원에서 일했던 거.”

내가 트랙터에 시동을 걸고 자세를 잡자 이세훈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과수원에서 트랙터 쓸 일이 있나?”

“과수원에서 일했다고 과일만 따는 게 아니야.”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품앗이.

아직도 농촌에 가면 힘든 일을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고 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리고 마을에서 가장 젊고 힘이 좋았던 난 과수원에 일이 없으면 온 동네 농사에 다 끌려다녀야 했다.

연근밭, 고추밭, 배추밭…….

동네 어르신들이 과수원에 일이 많을 때 도와준 것도 있지만 난 그보다 몇 배는 더 품앗이를 나갔다.

육칠십 대의 어르신들이 가녀린 팔로 허리를 두들기면서 도와 달라는데 차마 거절할 재량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 덕분에 난 웬만한 농기계들은 다 작동시키고 이용할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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