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헌터의 도시 (1)
“……또 다른 차원의 세계인 것 같다.”
인간이 감염됐을 거라 짐작되는 늑대인간과 좀비들.
늑대인간의 숲 해변에서 보았던 수많은 유골이 있는 그곳과 이곳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까지.
난 그동안 우리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유추하고 있는 것까지 이어진 마스터에게 모두 알려 주었다.
“역시 그랬군요.”
“알고 있었던 거야?”
“알고 있었던 건 아니고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이어진 마스터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A급 헌터이자 한 지역을 총괄하는 길드를 운영하고 있어서 그런지 지윤미와 조성태처럼 이미 어느 정도 정보를 접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게이트가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 모르는데 던전 안을 개척하고 개발하고 있어 의아했는데 스카이 캐슬에선 이미 눈으로 직접 확인을 했군요. 혹시라도 이곳으로 오는 게이트가 닫혀도 인천 쪽으로 귀환을 하면 되니까.”
“확인하고 개척을 마음먹은 건 아니지만 네 말처럼 이제 보험이 생기기는 했지. 그래서 한결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고. 비록 우리가 여기서 정착해서 자리를 잡고 있지만, 나중에라도 지구로 돌아가고 싶어질 때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난 이어진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구로 통하는 두 가지의 귀환로.
내색은 안 하지만 아마 다들 속으론 그로 인해 꽤 안심하고 있을 테니까.
“성주님.”
대화를 주고받던 이어진 마스터가 별안간 자세를 바로잡으며 세상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
“마지막으로 일전에 듣지 못했던 대답을 지금 들을 수 있겠습니까?”
“……?”
“성주님은 이곳과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 대한민국을 별개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며 이어진 마스터를 쳐다봤다.
분위기가 좀 훈훈해지는가 싶더니 그는 또 예민한 문제를 건드렸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네, 그렇습니다.”
이어진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날 쳐다봤다. 아까 후방에 남아 협곡에서 내려오는 언데드들을 막겠다고 할 때와 눈빛이 똑같았다.
이미 함께했다고 약속을 해 놓고선 내 대답의 여하에 따라 결사 항전(決死抗戰)이라도 할 얼굴이었다. 아니 성품을 보아하니 항전까지는 안 하더라도 죽음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죄를 할 듯한 표정이었다.
“흠…….”
국가는 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헌데 우리가 이곳에 고립됐을 때 재난 관리 본부는 우리를 포기했다. 그 와중에 우리는 큰돈이 되고 몬스터 웨이브를 이겨낼 수 있는 수많은 아이템을 발견하고 또 개발했지만, 지금처럼 어영부영 처신하면 언젠가 이곳은 대한민국에 귀속될 가능성이 컸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나는 그게 너무너무 싫었다.
대학교를 나오고 유학을 갖다온 사람만이 높은 자리에 올라 정치를 하는 세상이 아닌 나처럼 배우지 못하고 없는 사람들도 높은 자리에 오르고 배부르고 따사롭게 살 수 있는 세상.
난 내 힘으로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곳을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광산을 개발해 그걸로 이익을 창출하고 지켜내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만이라도 돈 걱정 없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을 듯했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에 대한민국은 포함되어 있지 않아.”
“그렇다면 결국은…….”
난 내 속에 있는 마음을 솔직하게 밝혔고 이어진이 세상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끝까지 들어 인마.”
“네?”
“I’m Korean.”
“……?”
“마음이 그렇다는 거고 난 한국 사람이라고.”
난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으며 이어진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저들도 마찬가지고.”
고개를 돌려 내 곁을 지켜주고 함께 뜻을 펼치고 있는 헌터들과 헬퍼들, 영지민을 쳐다봤다.
고향.
지금은 애써 외면을 하고 있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동구 화수동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영지의 모습과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어 지금은 정신이 없지만 만약에 영지가 안정되고 오 년, 십 년이 지나면 지구가 그리워질 수도 있었다.
그건 다른 헌터들과 헬퍼들, 영지민도 마찬가지일 테고.
향수병(鄕愁病)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충북 옥천군.
나 역시 지금 화랑 연합에서 관장하고 있는 충청도에서 2년 2개월 동안 군 생활을 했고 가끔 훈련이나 대민 지원을 하러 부대 밖으로 나왔다가 인천 넘버가 찍힌 차를 보고 그리워하고 행복했던 경험이 있었다.
인천 인구가 삼백만 명이 다 되어 간다는데도 혹시 저 차 안에 내가 아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괜히 기대감도 생기고 가끔은 눈시울마저 붉어졌었다.
잘 먹고 잘살겠다고 떠나도 언젠가 때가 되면 그립고 찾아가고 싶은 곳.
타지에서 떠올리면 괜스레 눈물이 나게 하는 곳.
고향이란 그런 곳이었다.
“넌 인마. 강한 사람이라 마음먹고 결심하면 그걸 다 지키고 행동하며 살지 몰라도 난 아니야. 그리고 대부분에 사람들이 나와 마찬가지고.”
“…….”
“6개월짜리 헬스장 끊고 일주일도 다니지 못하는 사람한테 왜 자꾸 대답을 강요하는 거야.”
“…….”
“지금 마음은 이래도 상황에 따라 환경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게 사람 마음 아니냐? 근데 그걸 꼭 매번 얼굴 붉히면서 이런 식으로 나와야겠어? 나도 내 마음을 아직 잘 모르겠는데? 어제는 차라리 대한민국에 귀속시키고 적당히 편하게 살까 싶다가도 오늘은 또 하루라도 빨리 영지를 개발시켜 그 누구도 함부로 도발하지 못할 강한 곳으로 키워 보고 싶기도 하고 나도 오락가락한다고.”
“끙…….”
이어진이 앓는 소리를 내며 날 쳐다봤다.
그는 내게 질문을 했고 O, X를 강요했지만 난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푸하하하. 우문현답이네. 역시 내 친구야.”
김종관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걸어왔다.
“해용아, 발키리 길드 사람들이 좀 고지식하다고 그랬지.”
“어?”
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김종관을 쳐다봤다.
‘이 새끼가 그 얘길 여기서 하면 어떡하자는 거야?’
표정을 보아하니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인데 그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꺼내었다.
찌릿찌릿.
찌릿찌릿.
고지식하다는 게 나쁜 말은 아니지만 듣는 입장에선 그리 유쾌하지 않은지 발키리 길드 헌터들이 서 있는 방향에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우리 어진이도 좀 그렇거든. 그래서 우리도 가끔 답답하고 곤란할 때가 많아,”
“종관이형…….”
“어진아, 형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고집 한 번 부리자. 네가 재난 관리 본부랑 플로라랑 어떤 마음을 갖고 함께 하기로 한 줄 아는데 난 그쪽보다 해용이가 더 마음에 드네. 다른 마스터들도 마찬가지고.”
“끙…….”
이어진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화랑 연합 마스터들을 쳐다봤다.
“그래. 우리 그동안 네 말 잘 들었잖아. 이번 한 번만 우리 의견을 좀 따라줘라. 어진아.”
“부탁할게. 다른 건 다 접어 두고 이번에 생긴 부상자들 안해용 성주님 아니었으면 다 죽었어. 알지?”
“……네.”
이어진 마스터가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짐작대로 화랑 연합 길드들과 단순한 동맹 관계가 아닌 형, 동생 사이로 지내고 있었나 보다.
A급 헌터.
대외적으론 이어진이 화랑 연합을 이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우리처럼 서로 상의하에 연합을 운영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터벅터벅.
터벅터벅.
“……?”
연합 마스터들의 간절한 부탁을 들은 이어진이 세상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이내,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화랑 길드 마스터 이어진이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청풍 길드 마스터 김종관이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해미 길드 마스터…….”
“수암 길드 마스터…….”
“청남 길드 마스터…….”
“무창 길드 마스터…….
이어진을 시작으로 화랑 연합 마스터들이 내게 무릎을 꿇으며 그레이 기사단이 하는 군례를 취했다.
조성태, 최은빈, 최영식에 이어 또 다른 A급 헌터와 그 세력이 스카이 캐슬의 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 * *
“해용아, 나 왔다.”
오후 열두 시.
잠으로 지친 몸을 달래고 막 일어났는데 김종관이 숙소에 찾아왔다.
“이 시간에 웬일이야? 더 자지 않고?”
“잘 만큼 잤어. 우리 조금 있으면 나가야 해서 그 전에 막걸리 한잔하려고 찾아왔지.”
“지금?”
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김종관의 손과 숙소 밖 하늘을 쳐다봤다.
토벌을 끝나고 술 한잔하기로 했지만, 술을 먹기엔 적당치 못한 시간인 듯했다.
“싫어? 싫으면 그냥 가고. 할 얘기도 있고 해서 왔는데…….”
“내가 언제 싫다고 했냐. 앉아.”
난 침대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술은 그다지 땡기지 않았지만, 김종관의 다른 손에 들려 있는 고소한 파전 냄새가 코끝을 간질였다.
“할 얘기가 있다고?”
“응. 너도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지금 용산 쪽 게이트를 김용규 본부장이 통제하고 있어. 헌터 협회의 공문을 보고 이곳에 와 보고 싶어 하는 헌터들이 많은데 재난 관리 본부에서 은연중에 압박을 줘서 분위기를 보며 눈치를 살피고 있다네.”
“역시 그랬었군.”
꿀꺽.
김종관의 설명을 들은 난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근데 아마 우리가 밖에 나가면 재난 관리 본부장도 지금처럼은 하지 못할 거야. 우리 어진이가 나이가 어리긴 해도 나름 헌터들 사이에서 영향이 있거든.”
“그래?”
“어. 기대해도 좋을 거야. 근데 그 전에 너한테 제안을 하나 하고 싶어서 찾아왔어.”
“제안?”
“응. 지금처럼 이곳에 찾아오는 헌터들한테 아이템을 싸게 파는 건 영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내가 중소 길드를 운영하는 마스터로서 고민해 봤는데 그것보다는 차라리 해골과 오우거와 같은 몬스터를 직접 사냥해 오면 싸게 아이템을 제작해 주는 방식으로 해서 헌터들을 이곳에 머물게 하면 좋을 것 같아.”
“아…….”
난 동감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 역시 생각을 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기존처럼 아이템을 미끼로 이곳으로 오게 하면 아이템만 홀라당 사고 떠나 버리면 그만이었기에.
“내가 얘기한 것처럼 하면 자연스레 헌터들이 필드에 나가 사냥을 하게 되고 이곳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질 거야.”
“그치. 고마워. 지휘부랑 상의해서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 볼게. 언데드도 문제긴 하지만 오크들도 문제거든. 지금이야 서로의 구역을 인정하고 도발하지 않지만, 지금처럼 가만히 놔두면 금세 또 세력을 키워서 어떻게 돌변할지도 모르니까.”
난 근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오크들이 자리 잡은 숲을 쳐다봤다.
오크는 다산(多産)을 하고 6개월이면 전사가 될 만큼 성장도 빠르다.
이대로 두면 언제 다시 우리에게 위협을 가할지 몰랐다.
“일단 오크 한 마리에 십만 원 정도씩 포상금을 걸어 놓을까 하는 데 효과가 있을까?”
“십만 원?”
“어. 오크 코어랑 부산물도 우리가 매입하고 그와 별개로 이곳 오크 한 마리를 사냥하면 십만 원 정도씩 추가로 돈을 더 주는 거지.”
“오. 정말? 그럼 헌터들이 물밀듯이 달려들겠는데?”
“그래?”
“그치. 말이 십만 원이지. 열 마리만 잡아도 다른 게이트에서 사냥하는 것보다 백만 원을 더 벌 수 있잖아. 당장 나 같아도 이곳에 와서 사냥하고 싶어질 정도야.”
김종관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