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용의 계곡 (7)
“오늘은 오랜만에 형이랑 같이 잘 수 있겠네요. 히히.”
숲 공터에 처진 간이 천막들을 보면서 이부성이 봉실봉실 미소를 지었다.
뚜루뚜루뚜루뚜뚜뚜뚜.
뚜루뚜루뚜루뚜뚜뚜뚜.
밤의 숲 소리.
귓가를 간질이는 풀벌레 울음소리와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달빛이 종일 언데드 몬스터와 싸우느라 생겼던 긴장감을 풀어준 모양이다.
혼자 왔으면 왠지 무서울 것 같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숲의 밤도 제법 운치가 있었다.
특히 숨을 들이실 때마다 느껴지는 피톤치드는 상쾌함까지 전해 주었다.
“청방 새끼들도 더 손 좀 봐주고 왔어야 했는데.”
산 좋고, 물 좋고, 강 좋은 곳에 있다 보니 문득 잠깐 지구에 나가서 생활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도로는 물론이고 인도까지 빽빽하게 자리를 잡은 자동차들.
눈과 코가 따가울 정도로 탁한 공기.
시끄럽고 요란한 소음들.
.
.
.
지구가 아무리 편의 시설이 잘되어 있다고 해도 이제 거기서는 못 살 것 같았다.
가뜩이나 자동차와 같은 것들이 매연을 잔뜩 뿜어 대는데 중국산 미세 먼지까지 합세해 숨 쉬는 것조차 불편한 곳에서 사는 대한민국 국민이 되레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였으니까.
“저도 그게 아쉽긴 해요. 버팔로 놈들도 나쁜 놈들이긴 하지만 진짜 나쁜 놈들은 그놈들이니까요.”
“그러니까.”
난 이부성의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제 강점기. 무려 삼십 년이 넘게 우리나라를 강제 찬탈했던 시간 때문에 대부분 사람이 일본에 대해 근원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중국도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한 국가는 아니었다.
식민지화 시키지 않았을 뿐 중국은 무려 수백 년 동안 우리나라를 수백 번이나 쳐들어왔고 또 속국으로 만들어 더 오랜 시간 많이 괴롭혀 왔으니까.
청방 놈들을 보아하니 아마 지금도 빈틈만 보이면 언제든 같은 짓을 반복할 수 있는 세력일 듯했다.
“우리 씁쓸한 얘기는 그만하고 이거 몰래 가서 구워 먹고 올까?”
“오! 정말요?”
꿀꺽.
내가 가방에서 펑거스 하나를 꺼내자 이부성이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군침을 삼켰다.
점심과 저녁 모두 대충 주먹밥으로 때워서 그런지 출출했던 모양이었다.
“따라와. 내가 봐 둔 곳이 있어.”
“네. 히히.”
난 이부성을 데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슬금슬금 숲 외곽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불똥 튀면 위험하니까 조심하자.”
“네, 알았어요.”
이부성과 난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눈을 마주치고 이내 장작불을 피었다.
혹여나 불똥이 튀어서 산불이라도 나면 언데드 몬스터가 아니라 세계수한테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 최대한 나무와 풀이 없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때,
-가끔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넌 내가 있는지 인지하고 있는 거지?
수정이와 닮은. 20대 후반 여인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실프가 나타나 못마땅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아, 미안 깜빡했어.’
-이그. 왠지 그런 것 같더라.
난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실프에게 사과를 했다.
솔직히 까먹고 있었다.
그녀가 있으니 불똥이 날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군 시절, 기동 중대 애들이 사격 훈련을 하다가 산에 불을 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산불 진압을 하러 갔던 기억 때문인지 머리보다 몸이 앞섰던 듯했다.
만약 내게 유격 훈련 세 번과 산불 진압 한 번 중 선택을 하라고 하면 무조건 전자를 선택할 정도로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 땀이 찰 정도로 힘든 경험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기억이 아예 몸에 밴듯했다.
오백 고지 정도 되려나.
기껏 뛰어가서 불씨를 제압하면 반대쪽 산에 불씨가 피어오르고, 다시 가서 제압하면 또 반대쪽 산에 피어오르고.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개발되지 않은 산들이기에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한정되어 있어 우리는 개 발에 땀 차듯 뛰어다녀야 했다.
다행히 소방 헬기까지 출동해 큰불이 나기 전에 불을 죽이고 우리가 가서 마무리했기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바람을 타고 계속 날아다니는 불똥들로 인해 결국 소식을 들은 방송국에서 찾아왔는데 하필 우리 중대가 담당했던 산으로 대대장과 함께 촬영을 왔었다.
이미 삼백에서 오백 고지 정도 되는 다섯 개의 산에 올라가서 불을 제압하느라 다리가 휘청거려 걷기도 힘든데 방송국 기자가 카메라를 보면서,
‘자랑스러운 국군 장병들은 오늘도 국민의 안전과…….’
군인들에 대한 칭찬과 격려의 멘트를 하며 따라와서 당장 여기서 죽어도 뛰긴 뛰어야 할 것 같은데 몸은 말을 듣지 않고 대대장의 얼굴은 점점 똥 씹은 거처럼 찡그려지고 그때만 생각만 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원래 난 야간 경계 훈련 같은 것을 하면 진지 안에 들어가 헬멧을 장애물 삼아 간부들 눈을 피해 가끔 연초를 피우곤 했었지만, 그때 이후로 산이나 숲에선 아예 쳐다보지 않을 만큼 불을 경계했다.
-쯧쯧. 그런 기억이 있었구나. 알았어. 이번엔 봐줄게.
나의 지식과 생각은 물론이고 감정마저 공유해서 그런지 실프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사라졌다.
“다 익은 것 같은데? 부성아, 먼저 먹어 봐.”
“아니에요.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데 형부터 드세요.”
“그럼 동시에 같이 먹어 보자.”
“네. 히히.”
오물오물.
냠냠.
노릇노릇해진 게 적당히 익은 것 같아 난 이부성과 사이좋게 펑거스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맛있는데?”
“네. 엄청 맛있어요. 버섯이 아니라 닭고기 먹는 것 같아요.”
“그러게.”
맛있었다. 펑거스는 마치 닭백숙과 같은 식감과 맛을 품고 있었다.
불에 구워지면서 나오는 즙까지 마치 닭고기를 우려낸 국물처럼 구수하고 달콤했다.
그런데 그때,
“형, 저 사람들 계속 기웃거리는데요?”
저 멀리 숲에서 그림자 두 개가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화랑 길드 마스터 이어진과 청풍 길드 마스터 김종관이었다.
보아하니 펑거스 냄새를 맡고 찾아왔다가 우리 얼굴을 보고 올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와서들 먹어.”
“그래도 돼?”
“밥 값하라고 안 할 테니까 와서 같이 먹어.”
“괜찮은데…….”
내가 두세 번 오라고 하고 나서야 김종관과 이어진이 장작불로 다가왔다.
“괜찮기는. 냄새 맡고 온 거 아니야?”
“그치. 고소한 향이 나기에…….”
“자! 여기.”
“그럼 맛만 볼게.”
“저도.”
난 두 사내에게 펑거스를 나누어 주었고 그들은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입으로 집어넣었다.
눈은 먹고 싶어 죽을 것 같은 눈빛인데 내가 계속 권하니 억지로 먹는 척 시늉하면서.
“먹을 만하지?”
“어. 죽이네. 근데 왜 여기 와서 몰래 먹고 있는 거야?”
“사람은 수백 명인데 백 개밖에 없거든.”
“헐…… 그래서 몰래 먹는 거라고? 너 성주잖아?”
“왜? 성주는 몰래 숨어서 먹을 것 좀 먹으면 안 되나?”
“아니 안 될 거야 없는데. 조금 그렇기는 하네. 그리고 보통 이렇게 맛있는 게 있으면 여자 친구랑 몰래 먹고 그러지 않나? 들어보니 발키리 부마스터랑 너랑…….”
“죽어.”
“응?”
“말하면 죽는다고.”
“……그래.”
“너도.”
“……네.”
김종관과 이어진이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화랑 연합 특성인지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또 먹을 거 앞에서 정색하게 했다.
“수정이 누나한테 얘기했으면 아마 이렇게 먹지 못했을 거예요.”
“……?”
“원래 발키리 식구들이 좀 고지식하거든요. 다 같이 먹지 못할 것 같으면 그냥 뒀다가 나중에 먹자고 할 거예요. 그래서 해용이 형도 저한테만 살짝 얘기한 것 같고요.”
“아…….”
“아…….”
이부성의 설명에 김종관과 이어진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부성이 말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고 여자 친구와 있는 것도 행복하지만 때론 이렇게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재미가 있었다.
헌데 뭐 그런 것까지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난 말을 아꼈다.
“그 말을 들으니 긴장이 되기는 하는데 더 맛있는 것 같기는 하네. 재미있기도 하고.”
“재미있다고요?”
“네. 왠지 학교 땡땡이치고 친구들이랑 분식집에 와서 라면 먹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김종관이 이부성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원래 곶감도 몰래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하잖아.”
“그치.”
짝.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김종관을 쳐다봤고 그도 박수를 치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런데,
“흠…….”
혹시 수정이나 다른 헌터들에게 걸릴까 긴장해서인지 평소보다 더 감이 예민해져 있었고 왠지 숲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형 왜 그러세요?”
“너무 조용해서.”
“네?”
“벌레 소리가 끊겼어. 그리고 이렇게 밤이 깊어지면 늑대 소리도 한번 들릴 법하고 야행성 동물들 한두 마리쯤은 보일만 한데 보이지 않잖아.”
“흠…….”
난 굳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이내,
퍽.
“냐아앙.”
퍽.
“냐아앙.”
네로와 고양이들이 모두 다가와 구슬프게 울음소리를 내었고 발끝에서부터 안개가 서리기 시작했다.
네로와 친구들은 위협을 느끼면 안개를 펼친다.
“저 아니에요.”
그 모습을 지켜본 수정이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근데 왜 그러지?”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히이잉.”
쾅!
“히이잉!”
쾅!
루카스마저 다가와 앞발을 구르며 비명을 지르듯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싸늘하다.
무언가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네로와 루카스가 위험하다고 경고를 하는 듯했다.
“지금 바로 퇴각해야 하나?”
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둠이 짙게 내려와 있는 숲을 쳐다봤다.
-이쪽은 아니야. 우리가 지나온 길에 이 아이들이 이렇게 불안함에 떨 만큼 강한 존재가 있었으면 우리가 느꼈을 거야.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날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래도 저쪽에서 뭔가 다가오는 것 같아. 저 협곡은 마기 때문에 우리도 쉽게 탐지가 안 되니까.
‘안 온다며?’
-아까 얘기했던 놈들은 아닐 거야.
“흠…….”
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협곡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때,
-오천에서 만.
‘응?’
-협곡 방향 한 시간 안쪽에 대지가 흔들리고 있어. 이 정도 흔들림이면 만 마리 이상의 무언가가 이동을 하고 있다는 얘기야.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노움이 나타나 협곡을 보며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언데드인가?’
-그런 것 같아. 마물이라고 하기엔 그리 덩치가 크지는 않은 것 같으니.
이제야 확인되었다.
네로와 루카스와 왜 이렇게 두려워했는지.
그리고 그 순간,
슈우웅 펑!
슈우웅 펑!
후방에 세워 뒀던 초소 열 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붉은색 폭죽을 쏘아 올렸다.
“마스터 큰일 났어요. 후방에서 천여 마리의 언데드 몬스터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천여 마리나? 아까 분명 싹 훑어보고 왔잖아. 그렇게 많은 놈들이 숨어 있을 법한 곳이 없었는데…….”
“근무자 말로는 땅에서 솟아올랐대요.”
“끙…… 어서 전투 준비하라고 해.”
“네, 알겠어요.”
지윤미 마스터가 앓는 소리를 내며 전투 준비를 지시했고 헌터들이 부랴부랴 무구와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 새끼들 야행성이었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