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화. 용의 계곡 (6)
“11시 방향 오우거 확인!”
“확인.”
“확인!”
“셋, 둘, 하나. 고!”
스르륵.
스르륵.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1시 방향 오우거 확인!”
“확인.”
“확인.”
“셋, 둘, 하나. 고!”
스르륵.
스르륵.
점심 식사를 마치고 토벌을 재개한 우린 수십 마리의 오우거를 사냥하는 데 성공했다.
허나,
“미스릴 화살로도 오우거한테 충분히 데미지를 줄 수 있어요. 굳이 일부러 좀비들만 조준하시지 않아도 돼요.”
“네, 알고 있습니다. 일부러 하지 않은 게 아니라 좀비들이 더 인근까지 다가와서 먼저 해치운 겁니다.”
“……네.”
그중에 화랑 연합 헌터들이 사냥을 한 건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이곳에 남아도 된다는 이어진 마스터의 말에 화랑 연합 마스터들은 되레 모두 미스릴 화살통을 다시 들었고 언데드 몬스터를 잡는 데만 집중했다.
지윤미 마스터가 일점사 지휘를 하며 은근슬쩍 한 마리씩 화랑 연합 쪽으로 오우거를 흘리는 것 같은데도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눈빛엔 더 이상 아이템에 대한 욕심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안에 기름 들어 있는 거 아니야?”
“네? 어?”
“아니 너무 기계처럼 대답해서 로봇인가 했지?”
“끙…….”
내가 농을 건네자 김종관이 앓는 소리를 내며 시선을 피했다. 제법 내게 마음을 열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아예 몰랐던 사이였을 때보다 눈빛이 더 냉랭했다.
“오는 건 잡아. 아이템 몇 개 제작해 주고 보답하라고 구질구질하게 굴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코앞까지 오는 것도 모른 체하다가 다치면 너희만 손해야.”
난 데면데면하게 구는 김종관한테 쓴소리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괜히 오우거를 잡으면 또 욕심이 생길까 봐 그러는 건 알겠는데 저런 식으로 하다간 잘못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었기에.
“죄송해요. 성주님. 제가 괜한 일을 했나 보네요.”
“아니에요. 그 정도 호의는 충분히 부려도 될 만했어요.”
자신 때문에 일이 틀어진 걸 느꼈는지 지윤미 마스터가 죄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사과해 왔다.
“상대가 좋지 못했어요. 집주인이라고 다 못된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네?”
“이어진 마스터 말하는 거예요. 저 양반도 지윤미 마스터님처럼 제법 좋은 집주인이었던 모양이네요.”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조금 허탈하기는 하지만 난 화랑 연합 마스터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태백산맥에 소속되어 헬퍼 일을 시작했을 때 우리의 집 주인이었던 지윤미 마스터도 제법 좋은 사람이었기에.
아마 그때 장지원 마스터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생기면 지윤미 마스터에게 쉽게 등을 돌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 네. 제가 좋은 사람인 건 모르겠지만 이어진 마스터는 좋은 사람 맞아요. 저도 몇 번 본 적은 없지만 이래저래 들려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미담도 많고 충청도 쪽에서 제법 신망도 두텁고 인망도 좋다고 들었어요.”
지윤미 마스터가 이어진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발키리와 태백산맥.
화랑 연합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단지 돈으로만 엮인 사이는 아니었다. 아니 정상적인 인성을 가진 마스터라면 동맹 길드 헌터들과 친해지는 게 당연하였다.
이렇게 토벌하고 레이드를 할 때마다 서로에게 등을 맡기고 함께 해야 하는데 신뢰와 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만약 돈으로만 엮인 사이였다면 애초에 지금까지 함께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성주님, 저희가 정찰은 한 곳은 여기까지입니다. 저기서부턴 아직 정찰되지 않은 지역입니다.”
몬스터를 잡느라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우린 오크성 후방 숲을 토벌하는 데 성공했다.
“흠…….”
“저곳에서 언데드 몬스터들이 내려오는 것 같은데 숨을 데도 없고 자칫했다간 퇴로까지 막힐 수 있는 지형이라…….”
“잘했네. 저길 들어갔으면 아마 나한테 혼이 났을 거야.”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황량한 사막 아니 협곡.
윤다영이 가리킨 방향을 쳐다보니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숲이 사라지고 메마른 계곡과 협곡이 즐비했다.
보이는 건 오직 황토색 흙뿐이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았다.
짐작건대 만약 저곳까지 정찰갔다면 누구 하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환경이었다.
“몬스터들이 내려오는 곳은 저 협곡 하나뿐이야?”
“아니요. 위에도 한 군데 더 있어요.”
“흠! 그럼 일단 저 두 곳만 틀어막고 후방을 정리하면 될 것 같은데…….”
“네? 저 두 곳을 틀어막는다고요? 진군하는 게 아니라?”
“정찰도 없이 들어가기엔 너무 위험해 보이네.”
난 메말라 있는 협곡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길이 있기는 하지만 정찰도 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만약 협곡 위에 몬스터가 있다면 큰 낭패를 겪을 것 같았다.
“보시다시피 몬스터들이 딱히 숨을 곳이 없는데…….”
“그건 모르는 일이지. 여기서 보기엔 그래도 저 위쪽이 어떻게 생겨 있을지 모르니까.”
“그래도 이 정도 인원이면…….”
“어지간한 규모의 몬스터라면 나타나면 물리칠 수는 있겠지. 근데 우리 중에 누군가 한두 명쯤은 죽을 것 같지 않아?”
“끙……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윤다영이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내 말대로 백 프로 안전을 확신할 순 없어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잘 생각했어. 이대로 들어가기엔 너무 위험한 곳 같네. 마기가 진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한두 마리가 숨어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마기?’
-마족이 있는 것 같아.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제법 여러 마리가 있는 것 같아. 보아하니까 세계수의 영향력도 지금 있는 곳까지 밖에 미치지 않는 것 같고.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협곡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해골들이 이리 많은 걸 보니 리치 아니면 네크로맨서들이 있을 확률이 높겠네.
-그렇긴 한데…… 어째 드래곤의 향기도 조금 있는 것 같은데?
-드래곤?
카샤, 노움, 실프까지 형상화되어 나타나 갑론을박을 벌였다.
‘드래곤? 용 말하는 거야?’
-어, 너무 희미해서 긴가민가하긴 한데 굳이 일부러 들어가서 확인해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치. 드래곤이든. 네크로맨서든. 뭐가 됐든 간에 저기로 들어갔다가 둘 중의 하나만 있어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죽을 테니까.
‘그렇게 센 놈들이야? 그러면 여기 있어도 위험한 거 아니야? 그냥 뒀다가 우리한테 쳐들어오면 어떡해?’
-지구로 도망가야지. 근데 그러진 못할 거야. 그놈들이 미치지 않는 이상 세계수가 있는 숲을 무턱대고 침범하지는 않을 테니까. 지금이야 하급 언데드들이 깐죽대니 가만히 있지만, 그놈들이 직접 쳐들어오면 세계수도 소멸하는 한이 있더라도 사생결단을 내려고 할 테니까.
운디네와 노움이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반신이라고 하더니 세계수의 힘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헌데 저 협곡에 무언가 위험한 놈들이 도사리고 있는 건 확실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이번 토벌은 여기까지만 하는 게 현명할 듯했다.
지금까지 확보한 숲만 해도 어마어마하게 넓었고 이곳을 사수하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군대에 있을 때 어차피 공군 전투기로 다 때려 부수면 될 텐데 왜 이렇게 육군이 많나 싶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인 듯싶었다.
길을 열어도 상주할 병력이 없으면 영토를 차지하려는 입장에선 무의미한 전투가 될 테니까.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해가 뜨면 돌아가는 걸로 하죠.”
“네, 알겠어요.”
“네, 알겠어요.”
난 지휘관들을 보며 토벌 완료를 알렸고 헌터와 헬퍼들이 야영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정말 여기서 토벌을 끝내시는 겁니까?”
이어진 마스터가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네 왔다.
“왜? 싫어? 더 하고 싶어?”
“아니 그게 아니라 이 정도 인원이면 충분히 조금 더 들어가 봐도 될 것 같은데 중단을 한다고 하니 의아해서요.”
같이 토벌하면서도 시선조차 주지 않다가 말을 건네 와서 나름 긴장을 했는데 윤다영에게 했던 말을 또 하게 만들었다.
“사람 많으면 안 죽나?”
“네?”
“사람이 많으니 어지간한 전투는 다 승리를 할 수 있겠지. 근데 무리하다 보면 분명 죽는 사람이 생길 거 아니야. 그럼 그때가 돼서 후회하겠지. ‘젠장! 아까 멈췄어야 했는데.’ 이러면서 말이야.”
말이 토벌이지. 우린 지금 몬스터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전쟁은 항상 인명의 피해가 동반된다.
헌데 난 그걸 인정하기 싫었다.
아무리 토벌이 중요하고 이곳을 개발하는 것도 좋지만 단 한 사람의 사상자라도 생길 우려가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너흰 몬스터 사냥을 해서 그 부산물로 이익을 취하지만 난 스카이 캐슬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거고 여기까지 영토를 확장한 것만으로도 만족하거든.”
“아…….”
“너한텐 처음 하는 말이지만 내 주위 사람들한테 내가 누누이 얘기했거든.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죽으면 무슨 소용이야. 요단강에 싸 갈 것도 아닌데.”
“……그렇죠.”
이어진 마스터가 씁쓸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니 자세히 보니 살짝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럼 혹시 헌터들이 많이 필요한 이유가?”
“그치. 잘 먹고 잘살려고 그러는 것도 맞는데 안 죽으려고 그러는 거야. 헌터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살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그래서 내가 전투를 하고 토벌을 할 때마다 인원을 최대한 모아서 하는 거기도 하고.”
호랑이는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할 때도 사력을 다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오크 한 마리를 상대하더라도 난 열 명이 됐든, 백 명이 됐든 최대한 유리한 상태에서 싸우고 싶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상황을 만들어서 전투를 치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좋은 가르침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응?”
이어진 마스터가 별안간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였다.
“적극적으로 정찰대를 운용하는 것도 그렇고 단 한 사람의 목숨도 귀히 여기는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전 그동안 던전을 탐사하면서 그러지 못했거든요. 때론 누군가 한 명은 죽을 줄 알면서도 탐사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강행한 적이 많거든요.”
“그래서 나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네?”
“너희처럼 게이트가 생기고 초반에 목숨을 걸고 탐사를 해줘서 우리가 이렇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몬스터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고.”
“하아……”
이어진이 날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 왜 이러십니까?”
“내가 뭘?”
“자꾸 감동을 주시니까 성주님한테 반할 것 같네요. 성주님한테 반하면 안 되니까 전 이만 일행들에게 돌아가 보겠습니다.”
“…….”
한참 얘기를 하다가 이어진이 도망치듯 일행들에게 걸어갔다.
후다닥.
아니 걸어갔다고 하기엔 너무 걸음걸이가 빠르니 속보로 갔다는 게 맞을 것이다.
참 이상한 놈이었다.
내 목숨 귀한 줄 알아서 남의 목숨 귀한 줄도 안다는데 당연한 일을 갖고 감동이라도 받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