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용의 계곡 (4)
“11시 방향 좀비 확인.”
“확인!”
“확인!”
“셋, 둘, 하나. 고!”
스르륵.
스르륵.
“12시 방향 늑대인간 확인.”
“확인!”
“확인!”
“셋, 둘, 하나. 고!”
스르륵!
스르륵!
지윤미 마스터의 지휘 아래 헌터가 화살을 날렸다.
좀비, 해골, 스파토이, 늑대인간, 가스트…….
윤다영이 보고했던 것처럼 오크성 후방에는 수많은 언데드 몬스터가 몰려들어 있었다.
하나,
“1시 방향 오우거 확인.”
“확인!”
“확인!”
“셋, 둘, 하나. 고!”
스르륵!
스르륵!
발키리 길드 3백 명.
화랑 연합 5백 명.
헬퍼 백 명.
카프리가 만들어준 크로스보우와 미스릴 화살, 아만티움 화살로 무장을 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전진했다.
카프리의 무구와 버프 아이템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11시 방향 20분 거리에 좀비 30여 마리가 몰려 있어요.”
“오케이, 알았어. 그쪽은 수정이 네가 애들 데리고 가서 정리하고 와.”
“네, 알았어요.”
윤다영이 정찰대 팀장으로서 주변 지형은 물론이고 몬스터들의 분포도까지 거의 완벽에 가깝게 파악하고 있었던 덕분이다.
슬금슬금.
슬금슬금.
비록 이동 속도가 거북이걸음처럼 늦지만, 우리의 토벌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배상우 팀장님, 돌아올 때 챙겨도 되니까 몬스터가 확실히 죽었는지 확인하고 해체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후방에서 보급 물품을 들고 따라오는 헬퍼들이 여유롭게 몬스터 해체를 하며 이동을 할 만큼 우리의 사냥은 안정적이었다.
“일반인들을 헌터로 육성시킨다고 해서 뭔 소리인가 했는데 저 사람들을 보니까 이해가 되네.”
“저도요. 저 사람들 말이 헬퍼지, 저보다 칼을 더 잘 쓰는 것 같아요.”
늑대인간을 해체하는 헬퍼들의 손놀림을 보며 화랑 연합 소속 헌터들이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오크 부락을 하나씩 없앨 때마다 기본 수천 단위의 몬스터들을 해체했던 헬퍼들인지라 이제는 해체하는 칼 놀림이 아름다워 보일 경지까지 다다른 것이다.
오크와 늑대인간의 신체 구조에 대해서 저들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듯했다.
그런데 그때,
“성주님, 이것 좀 잠깐 보셔야겠습니다.”
늑대인간을 해체하던 배상우 팀장이 슬며시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네왔다.
“무슨 일이에요?”
“이것들, 오크들이 전염 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네?”
“좀비도 그렇고, 늑대인간도 그렇고 뼈의 모양이 인간의 것과 똑같습니다.”
“흠…….”
난 굳은 표정으로 배상우가 가져온 늑대인간의 사체를 살펴봤다.
‘이곳에도 사람이 살았던 건가?’
사냥을 할수록 이 세상에, 아니, 이 대륙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계속 발견이 되었다.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정찰대한테 얘기해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라고 해 주세요.”
난 지윤미 마스터를 불러 다시 한번 경각심을 심어 주었다.
“안 그래도 이제부터 오우거 지대라고 하네요. 오우거는 맷집이 좋아서 언데드 몬스터랑 동시에 출몰하면 지금보다 더 긴장감을 가지고 토벌을 해야 할 것 같으니 잠시 요기도 할 겸 쉬어갔으면 합니다.”
“네, 그렇게 하죠. 안 그래도 저도 배가 좀 고프긴 하네요.”
난 지윤미 마스터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른 아침에 출발했는데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올라 있었고, 우린 수천여 마리의 언데드 몬스터를 해치웠다.
“네, 알겠어요. 그럼 헬퍼들한테 얘기해서 배급하라고 할게요.”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 헬퍼들은 두 손 가득 주먹밥을 들고 돌아다니며 헌터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옐로 아이 주먹밥.
헌터들의 활력도 올려주고 야전에서 먹기도 편한 메뉴였다.
“저 그쪽은 제가 갖다 줄게요.”
“제가 해도 괜찮은데…….”
“저분한테 볼일이 있어서 그래요.”
“아, 네, 그럼.”
난 요리 팀 헬퍼한테 주먹밥 두 개를 받아 김종관 마스터한테 걸어갔다.
“자, 여기요.”
“잘 먹겠…… 성주님! 어떻게 성주님께서 직접…….”
“앉아 계세요. 힘들었을 텐데.”
앉아서 주먹밥을 기다리던 김종관은 내 얼굴을 보고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고, 난 그의 어깨를 잡으며 자리에 앉혔다.
불과 얼마 전까지 주먹밥을 만들고 헌터들한테 나누어 주는 게 내 본업이었는데 이제는 한 길드의 마스터마저 내가 주먹밥을 주면 절로 자리에서 일어날 만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위치가 올라가 있었다.
“어떻게, 할 만한가요?”
“저희가 뭐한 게 있나요. 그저 뒤에서 뒤따라오면서 화살 쏘라고 하면 쏜 게 전부인데요. 돈만 좀 된다면야 이런 식의 사냥은 평생 할 것 같네요.”
냠냠.
고양이 덕분에 이제 좀 내가 편안해졌는지 김종관의 대답이 조금 길어진 기분이다.
냐앙.
“응. 자, 같이 먹자.”
나와 얘기를 하면서도 그는 고양이를 알뜰하게 챙겼다.
퍽!
냐앙!
퍽!
냐앙!
“알았어, 자!”
김종관의 모습을 지켜보던 네로가 나한테 또 냥냥 펀치를 했고 나도 그를 따라 주먹밥을 나눠 주었다.
“하하.”
“하하.”
씨익.
서로 고양이에게 음식을 나눠 주고 나서 우린 서로 눈이 마주쳐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처음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네로가 좀 까칠한 구석이 있었다.
‘귀여워서 봐주는 거야!’
굳이 냥냥 펀치를 안 해도 어련히 알아서 잘 챙겨줬을 텐데 말이다.
“성주님은 참 좋으신 분 같아요. 이곳에 계신 다른 마스터님들도 그렇고요.”
“고마워요, 좋게 봐주셔서.”
“사실 이어진 마스터를 대하는 걸 보고 처음엔 오해했습니다. 성격이 좀 괴팍하신 줄 알고.”
“아…… 그건 위치가 위치다 보니…….”
“네, 알고 있습니다. 저도 대충은 얘기를 듣고 왔으니까요. 그래서 사과드리고 싶었습니다. 속으로 혼자 오해한 거지만 그래도 그게 마음에 걸려서.”
“지금이라도 오해가 풀렸으면 됐죠. 뭐, 저도 사실 헬퍼 출신이고 또 중소 길드에 소속되어 있어서 그런지, 대형 길드 마스터들을 보면 이상하게 더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일종의 자격지심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이상하게 대형 길드 사람들보다는 중소 길드 사람들이 더 신경 쓰이고 그러네요.”
“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사실 대형 길드를 상대할 때면 주눅 든 거 티 내기 싫어서 더 어깨를 펴고 목소리를 높이곤 하거든요.”
김종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어진에게 화를 냈던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지만, 위와 같은 이유도 없잖아 있었던 것 같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나이를 물어봐도 될까요? 보아하니 저랑 비슷한 연배 같은데?”
“하하. 그런 소리는 처음 듣네요. 저 나이 많습니다.”
“몇 살이신데요?”
“이번에 해 지나서 서른아홉 됐습니다.”
“81년생? 닭띠?”
“네, 맞습니다. 좀 많죠? 하하.”
김종관이 자신의 나이를 말하며 부끄러운지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네요. 성주님이 동년배로 봐주시니.”
“저랑 동갑이시네요. 괜찮으면 우리 말 놓고 친구 할래요?”
“네?”
김종관이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아니, 얼굴이 불그스름해진 걸 보니 왠지 살짝 불쾌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도 날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고 나도 더 빨리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건데 내가 너무 섣불렀던 모양이다.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왠지 더 정이 가는 사람들이.
난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인 줄 알았다.
“아, 미안해요. 저는 그쪽이 마음에 들어서 그랬는데 싫으면…….”
“아니, 그게 아니라 서른아홉 살이 진짜 맞나요? 절 놀리시려는 게 아니고?”
“그럴 리가 있나요.”
난 갑옷 안에 입은 옷 주머니를 찾아 지갑을 꺼내 주민등록증을 찾아 보여줬다.
810705-1******
안해용(安海鏞).
“헐… 진짜 동갑이네?”
“말이 짧아졌네?”
“친구 하자며?”
“어, 그랬지?”
“와우! 반갑다, 친구야!”
내 신분증을 보고 놀랐던 것도 잠시 김종관이 방긋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우! 정말 81년생 맞네? 너도 그거 봤지?”
“그럼.”
난 김종관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반갑다, 친구야!’
‘……처음 뵙겠습니다.’
10년 전이었던가.
연예인들이 동창을 찾는 예능프로그램에 나와서 자주 하는 멘트였다.
하도 데면데면 굴기에 소심한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아주 쾌활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근데 너 나한테 왜 그러냐? 나 꼬시려고?”
“꼬시면 넘어오나?”
“흠…… 솔직히 잘 모르겠어. 지금처럼 화랑 길드랑 같이 지역에 있는 게이트에 들어가서 사냥하는 것도 나쁘지 않거든. 근데 너도 그렇고 여기 와서 사냥해 보니까, 이쪽으로 옮겨도 좋을 것 같기는 해.”
“돈 벌려고 헌터 된 거 아니야? 그리고 이왕이면 더 안전한 곳이 낫잖아? 지금 여기가 사방에 오크랑 언데드가 득실거리긴 해도 제법 괜찮지 않아?”
“그치, 괜찮지.”
김종관이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니, 그의 시선은 이어진과 화랑 연합 마스터들에게 가 있었다.
내가 보기엔 나와 이곳을 제법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은데 오랜 시간 함께했던 사람들한테 등을 돌리는 것이 망설여지는 듯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
얼굴을 보아하니 여기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을 듯했지만, 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괜히 한 번에 너무 몰아치면 그가 뒷걸음질을 칠 수도 있으니까.
“강요하지 않을게. 근데 긍정적으로 한번 생각해 줘. 네가 우리 영지를 연고지로 삼는다면 나도 최선을 다해 지원해 줄게.”
“응, 알았어. 길드원들이랑 상의해 보고 연락해줄게.”
끄덕끄덕.
얼굴 가득 근심과 고민이 가득했던 것도 잠시 내가 한 발자국 물러나자 김종관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야 서비스직을 전전하며 이래저래 사람들과 많이 부딪치다 보니 그렇다 치고, 이 나이에 동갑이라고 선뜻 말을 놓는 게 쉬운 게 아닌데 그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날 대했다.
‘흠…….’
주먹밥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주위도 둘러볼 겸, 산책하고 있는데 버섯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주먹만 한 크기에 노란색 빛깔을 뽐내고 있는 버섯.
과수원에서 일할 때 심마니들이 생김새가 화려한 버섯들은 독이 있을 확률이 높다고 했는데, 왠지 지금 눈앞에 있는 버섯은 이상하게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오! 펑거스네.
‘펑거스?’
노움이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나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전에 소환됐던 차원에선 그렇게 불렸는데, 이곳에선 어떻게 불리는지 모르겠네.
‘버섯이 맞긴 하지?’
-응. 맞아, 그것도 자연의 기운을 아주 듬뿍 담고 있는 놈이야. 요리할 때 첨가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이능을 창출시킬 수 있을 거야.
‘오, 그래? 그럼 바로 캐야지! 크크.’
난 빙그레 웃으며 펑거스를 채취해 자루에 담았다.
-언데드가 이렇게 많은데 이곳 지력이 제법 좋은 것 같아. 펑거스가 있는 걸 보면.
노움이 쭈그리고 앉아 흙을 매만지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