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용의 계곡 (3)
지윤미, 장지원, 최은빈.
초롱초롱.
각 길드의 마스터들이 눈을 빛내며 내게 걸어오는 게 보였다.
보아하니 다들 야생마가 탐이 나는 모양이었다.
“성주님…….”
“성주님…….”
“성주님…….”
“준비가 다 된 건가요?”
내게 다가온 세 명의 마스터들은 찌찌뽕을 하고 싶을 만큼 동시에 입을 열었고 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선을 피하며 전투 세팅하는 걸 둘러봤다.
“아직 헬퍼들이 안 왔어요.”
“그럼 조금 더 기다려야겠군요.”
“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그럼 기다리는 동안 저 말들을 어떻게 하실 의향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지윤미 마스터가 세상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타고 저 멀리 사라지고 있는 변지섭과 헬퍼들을 쳐다봤다.
“글쎄요. 저도 너무 급작스러워서 어떻게 할지 좀 생각해 봐야겠네요.”
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뒤로 밀었다.
변지섭 헬퍼.
경향이 없어 제대로 된 격려의 말 한마디 하지 못했지만 숨은 능력자가 또 있었다.
루카스와 말들의 안전을 위해서 데리고는 왔지만 길들이는 건 나 역시 반쯤 포기 하고 있었으니까.
블랙앵거스, 염소, 양…….
가축들을 돌보는 것만도 힘들 텐데 이렇게 야생마까지 길들일 줄은 진짜 예상하지 못했다.
“그럼 성주님께서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게 제가 몇 마디 올려도 될까요?”
끄덕끄덕.
“성주님도 아시다시피 저희 발키리 길드 정찰과 산악 전투에 특화되어 있어요. 만약 저 말들을 저희에게 배속해 주시면 앞으로 하게 될 토벌과 개척에…….”
“에이! 그건 아니죠. 발키리는 지금도 충분히 기동력이 압도적으로 높잖아요. 저희 태백산맥에 배속이 되어야죠. 아시다시피 저흰 이능이 근력에 특화되어 부족한 이동 속도를 말들이 커버해 준다면 그 시너지가…….”
“그런 이유라면 저희 마녀 부대에 배속이 되는 게 맞는 것 같네요. 다들 아시다시피 저흰 강력한 마법 공격을 할 수 있지만 그에 반해 육체 능력이 낮아 마나가 소모되면 적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말과 함께한다면…….”
“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 우리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희를 지켜 줄 테니까.”
“네. 맞습니다. 태백산맥보다 마녀 부대가 먼저 죽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돼요.”
“끙…….”
세 명의 마스터 모두 왜 자신의 길드에 말이 배속되어야 하는지 얘기했고 이내 지윤미와 장지원이 편을 먹고 최은빈을 떨어뜨리려 했다.
최은빈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가 지윤미 마스터를 째려봤다.
“윤미 언니? 이런 식으로 나올 거야?”
표정을 보아하니 많이 당황스럽고 화도 난 모양이다.
“저…….”
“네. 성주님, 말씀하세요.”
“그래. 해용아. 네가 얘기해 봐.”
“전 성주님이 현명한 판단을 할 거라고 믿어요. 솔직히 제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지만, 만약 저 배신자들의 주장대로 저흴 배제한다면 많이 섭섭할 것 같아요.”
찌릿찌릿.
이글이글.
장지원과 지윤미의 말이 서운했는지 최은빈이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날 쳐다봤다.
“태백산맥은 성주님이 소속되어 있는 길드고 발키리는 여자 친구가 있는 길드잖아요. 그래서 저도 저지만 성태 오빠도 이래저래 소외감을 느낀 적이 많았어요. 저희가 아무리 영지를 위해 노력하고 성주님을 따라도 왠지 뒷전 취급을 받는 것 같았거든요.”
“네? 전 단 한 번도…….”
“저희가 느낀 게 오해라면 이번에 증명을 해 주셨으면 해요.”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며 최은빈과 그리고 장지원, 지윤미를 쳐다봤다.
이글이글.
이글이글.
평소 땐 서로를 배려하고 양보를 하며 맞춰가더니 지금은 여차하면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서로 신경전을 벌였다.
‘길드원들 때문인가?’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군 시절이 떠올랐다.
분대장 시절 나도 매일 아침 일과 회의를 할 때 다른 중대 분대장들이랑 이렇게 신경전을 벌이곤 했었다.
중대가 다르고 내무실도 따로 쓰지만, 훈련소 동기들이라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었는데 다들 자신의 중대원들을 위해 그때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최대한 편한 작업장으로 가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었다.
이들도 그래서 그런 듯했다.
내가 그동안 지켜본 마스터들은 개인의 전투력을 올리겠다고 이렇게 얼굴을 붉힐 사람들이 아니었으니까.
“헬퍼들.”
“네?”
“만약 제게 말들의 친구를 정해 줄 결정권이 있다면 전 헬퍼들과 함께 할 수 있게 해 주고 싶네요.”
난 빙그레 웃으며 이부성과 토벌에 참여하기 위해 오고 있는 헬퍼들을 쳐다봤다.
‘사냥해서 부산물을 노릴 게 아니라 길들여서 짐을 나르면 아주 효율이…….’
내가 처음 루카스를 만났을 때 난 헬퍼였다.
그리고 헬퍼인 나와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수박을 주며 친화력을 높였던 거고.
지금도 내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헌터들에게 말을 배속하면 마스터들이 한 말처럼 전투력이 상승하는 건 맞지만 그건 헬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각성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까지 만들어 레이드에 참여하려는 헬퍼들에게 말이 배속된다면 그들의 안전성이 더 높아질 테니까.
“……제 생각은 이렇지만, 마스터님들께서 동의하지 않으면 강행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다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할 시간을 가진 후에 회의하고 나서 결정을 하는 방향으로 하죠.”
“끙…….”
“끙…….”
“끙…….”
지윤미, 장지원. 최은빈.
한참 열을 내며 신경전을 벌이던 세 명의 마스터들이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부성과 헬퍼들을 쳐다봤다.
어째 표정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것 같았다.
“얼어 죽을 회의는 무슨 회의야. 이미 결정됐고만. 헬퍼들한테 주겠다는데 우리가 어떻게 더 고집을 부리냐.”
“그러게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했는데 김칫국부터 마셨네요.”
“그런 생각 하고 계셨으면 진즉에 말씀해 주시지. 발키리랑 태백산맥이랑 싸우는 건 두렵지 않은데 헬퍼분들 눈 밖에 나는 건 무섭네요.”
세 명의 마스터들이 세상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전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 헌터들에게도 배속될 날이 있을 거예요.’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쳐다봤다.
내가 그동안 봐왔던 힘 있고 돈 있는 것들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눈에 불을 켰는데 헬퍼들을 주고 싶다는 말에 두말없이 포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멋있다.”
“와아…….”
왼쪽 볼이 따가워질 만큼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엔 화랑 연합 마스터들이 서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스카이 캐슬의 마스터들 모습을 보고 감동받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내,
“냐아앙.”
“냐아앙.”
“해용이 형님, 저 왔습니다.”
이번엔 김성준과 함께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이 우릴 찾아왔다.
“네로!”
“냐아앙.”
퍽!
“아야.”
퍽!
“아야. 미안. 형이 그동안 소홀했지.”
“냐앙.”
퍽!
오랜만에 만난 네로가 심술이 났는지 내게 다가와 계속 냥냥 펀치를 날렸다.
비비적비비적.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동안 잘 지냈어?”
“냐앙.”
퍽!
“하하. 네로가 많이 삐졌나 보네요. 형님이 안 와서 밤마다 어찌나 울어 대던지 제가 참다못해 이렇게 데리고 왔습니다.”
“안 그래도 네로가 있으면 힘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침 잘 데리고 왔네요.”
네로를 품에 안은 난 김성준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고양이가 많아졌는데 이놈들도…….”
“네로가 다 데려왔습니다.”
“역시 그랬군요.”
“냐아앙.”
“냐아앙.”
난 주변에 산개해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작고 귀여운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놈들이 펼치는 안개는 전략적으로 사용하면 제법 훌륭한 무기가 되었기에.
그런데 그때,
“냐앙.”
비비적비비적.
비비적비비적.
할짝할짝.
할짝할짝.
“고양이? 귀엽네. 넌 이름이 뭐야?”
“냐앙.”
고양이 한 마리가 화랑 연합 소속 마스터에게 다가가 발목에 몸을 비비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이제 절로 가. 네 집사들 저기 있잖아.”
“냐앙.”
퍽!
“나는 여기 사람 아니야.”
“냐앙.”
“간택된 모양이네요.”
씨익.
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양이와 실랑이를 하는 화랑 연합 소속 청풍 길드 마스터에게 걸어갔다.
아까 날 보며 멋있다고 한 사람이었다.
“안해용 이라고 합니다.”
“네? 네. 전 청풍 길드 마스터 김종관입니다.”
“고양이를 키우시나요?”
“네. 그렇긴 한데…….”
“냐아앙.”
내가 다가와서 인사를 하자 김종관은 어쩔 줄 몰라 하며 계속 고양이를 떨쳐내려 했다.
허나 고양이는 그러면 그럴수록 계속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더 달려들었다.
“아직은 새끼라서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드워프 카프리처럼 이종족이라고 하더군요.”
“아…….”
“마스터님이 마음에 들어서 놀아 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너무 억지로 밀어내지 말고 친하게 지내보세요.”
“네? 제가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이놈들은 저희가 키우는 게 아니에요. 이곳을 마음에 들어 해서 함께 지내는 거예요.”
“아…….”
쓰담쓰담.
김종관은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거리며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냐앙.”
고양이는 그 손길이 좋은지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배를 뒤집었다.
“근데 조금 서운하기는 하네요. 전 이놈들이랑 친해지려고 없는 살림에 물고기를 잔뜩 뺏겼었는데 말이죠.”
“……그게 저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고양이들이 절 이상하게 좋아하더라고요. 처음엔 그냥 길냥이들이 너무 가여워 음식을 좀 나눠주는 게 전부였는데 어느샌가 정신을 차려보니 길냥이들이 다 저희 집에 살고 있더라고요.”
농담을 한 것인데 김종관이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좋은 사람 같았다.
자고로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치곤 못된 사람은 드물었으니까.
게다가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드러나기도 했고.
헌터가 아니라 마치 시골에 가면 볼 수 있는 동네 아저씨와 같은 느낌이 드는 사내였다.
그는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난 왜 고양이들이 좋아하는지 짐작이 되었다.
그는 별거 아닌 것처럼 얘기했지만 길냥이들한테 음식을 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몇 번 해 보기는 했는데 편의점에 가서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캔 몇 개만 사도 만 원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마음이 있어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마스터님은 싫으십니까? 근데 어쩔 수 없이?”
“아니요. 그럴 리가 있나요. 저도 좋아하니까 집사 노릇을 하는 거죠.”
“그럼 이번에도 한 번 잘해 보세요. 혹시 아나요? 이번에도 진짜 집사로 간택이 되어 저놈이 따라가려고 할지.”
“네?”
김종관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 말은?”
“들은 그대로예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놈들은 저희가 키우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가둬 놓지도 않고요.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떠날 수 있어요.”
“…….”
“귀엽기도 귀엽지만, 간택이 되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놈들 무시하지 못할 꽤 큰 이능도 부리거든요.”
“헐…… 그런데 왜 제게…….”
“그건 저놈한테 물어봐야죠. 똑같은 얘기를 또 해야 하나요?”
“아, 아닙니다.”
김종관이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손사래를 치며 나와 고양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눈빛이 뜨겁다.
보아하니 이 사람 아무래도 나한테 반한 모양이다.
“준비됐으면 출발하죠.”
“네. 출발!”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김종관의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윽해 난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보며 부랴부랴 레이드 출발을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