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용의 계곡 (1)
“성주 그거 네 것 아니다. 놓고 가라.”
“네?”
“이부성 주려고 만들었다. 이부성이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만들어 준 거다.”
“……네.”
난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파워 글러브랑 오우거의 벨트를 이부성에게 건네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형.”
“진드기도 저런 진드기가 없다. 이부성이 매일 저녁 밤에 찾아와 더 좋은 무구가 필요하다며 노래를 불렀다.
“카프리, 그 얘기는 안 하기로 했잖아요.”
“아차! 미안하다. 깜빡했다. 나 할 일 많다. 정신없어서 그랬다. 바빠서 들어간다.”
긁적긁적.
카프리가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이부성은 얼굴이 잔뜩 붉어져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보아하니 헌터가 되고 싶은 마음에 이부성이 따로 카프리에게 제작 의뢰를 한 듯했다.
아직 아카데미를 만들겠다고 결정도 안 했는데 이미 혼자서 준비하고 있었다.
“……꼭 헌터를 해야겠어?”
“형…….”
“그냥 지금처럼 살면 안 되겠니?”
“네. 싫어요. 저번에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신다고 했잖아요. 갑자기 왜 이러세요.”
“그랬지. 근데, 하아…….”
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지만 이부성을 보고 있자니 부모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막상 그가 헌터가 되려고 이렇게 움직이는 걸 보니 말리고 싶었다.
난 그가 몬스터와 싸우는 위험한 일을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제라도 공부를 해서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한 일을 했으면 싶었다. 그래서 혹여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그가 남아서 이곳을 지켜주길 원했다.
“부성아, 형이 얘기했지. 지금 네가 하는 일들이 허드렛일 같고 보조를 하는 것 같아도 따지고 보면 몬스터 사냥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야. 지금이야 전쟁 아닌 전쟁을 하고 있으니 헌터들 위주로 운영이 되고 있지만, 나중에 영지가 안정되면 네가 더 빛을 발할 날이 있을 거야. 사회생활을 해 봤으니 알겠지만, 우리 영지도 안정이 되면 밖에서처럼 군인들보다는 오히려 내정을 보는 사람들이 더 대우받는 시간이 찾아올 거야.”
“네. 저도 알고 있어요. 저도 이제 헬퍼 일을 하는 게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지금 하는 일이 싫다는 게 아니에요. 그 일도 하면서 전 형이랑 같이 싸우고 싶다는 거예요.”
“위험…….”
“네. 맞아요. 위험하죠. 근데 형은 안 위험한가요?”
“…….”
“형도 위험하잖아요. 그래서 저도 같이 싸우고 싶다는 거예요. 이곳을 지키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몬스터가 출몰하면 다 목숨 바쳐 싸우고 있는데 저만 안전한 곳에 숨어서 기다리는 게 더 힘들거든요.”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형은 제 마음 모르실 거…….”
“아니 알 것 같아.”
“아신다고요?”
“어. 내가 왜 모르겠니.”
난 이부성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그를 걱정하는 것처럼 그 역시 나와 그리고 헌터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에.
몬스터 사냥을 나가는 헌터들도 힘이 들겠지만, 그걸 기다리는 사람들은 더 피가 마르고 애가 탈 테니까.
그래서 이부성이 헌터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느니 차라리 같이 나가서 사냥을 나가면 위험하긴 하더라도 마음은 편할 테니까.
“자, 이거.”
“형…….”
“고작 그것 같고 되겠어? 이 정도는 있어야지.”
난 허리에 차고 있던 데스나이트의 검을 이부성에게 내밀었다.
“나보다 절대 먼저 죽으면 안 된다. 웬만하면 항상 최대한 뒤에 서서 안전한 곳에서 화살만 날리고. 무슨 말인지 알지?”
“형…….”
글썽글썽.
데스나이트의 검을 건네받은 이부성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꼭!
“하고 싶은 거 하라는데 왜 또 울려고 하냐.”
토닥토닥.
난 이부성에게 다가가 그를 꼭 안아주며 등을 토닥거렸다.
어쩌겠나.
그가 원하면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이렇게 뒤에서만 있다가 나나 혹은 나현지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에게 천추의 한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때,
“난 가끔 헷갈려. 해용이 오빠가 정말 날 좋아하는 게 맞는지.”
“언니도 그래? 나도 그래. 내가 좋다며 몇 날 며칠을 그렇게 구구절절 자기 얘기를 하고 노래까지 불러줬지만 부성이 오빠가 나한테 저런 눈빛을 보여 준 적은 없거든.”
등 뒤에서 수정이와 현지가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성아, 우리 최대한 자연스럽게 떨어져 볼까?”
“……네.”
난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뒷걸음질을 치며 이부성과 거리를 벌렸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자꾸 센티 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아니 이제 먹고 살 만해지니 자꾸 옛 생각이 떠올라서 그런 듯했다.
짐꾼으로 이곳에 들어와서 발키리 길드 헬퍼들의 눈치를 보며 이부성과 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그래서 유난히, 여자 친구조차 질투할 만큼 이부성한테 더 애착이 가는 듯했다.
이부성과 떨어진 난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마스터님.”
“네. 성주님.”
“우리 헌터 아카데미 그거 한번 만들어 보죠. 이 정도 무구면 충분히 해 볼 만한 것 같은데.”
10m가 넘는 키.
거대한 나무를 뿌리째 뽑아내는 무시무시한 완력을 가진 오우거.
그레이 기사단이 관리하는 늑대인간의 숲에서 봤던 오우거는 절로 등에 소름이 돋을 만큼 거대하고 흉포한 몬스터였다.
허나 검과 창을 들고 근접 전투를 하는 헌터들이 일대일로 싸우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협적이었지만 다수의 인원으로 멀리서 원거리 공격을 하면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
해골 세트처럼 파워 글러브랑 오우거의 벨트도 양산할 수 있다면 이부성이 얘기했던 것처럼 일반인들도 충분히 헌터가 될 수 있을 듯했다.
“네. 제가 봐도 충분히 해 볼 만한 것 같아요. 근데 파워 글러브랑 오우거의 벨트를 만드는 게 생각만큼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네요.”
“네? 왜죠?”
“오우거가 4티어 몬스터임에도 불구하고 공략이 쉽기는 하지만 개체 수가 그리 많지는 않거든요.”
“아…….”
지윤미 마스터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오우거라면 제가 어디에서 많이 출몰하는지 알아요.”
“그래?”
윤다영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걸어와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어디에 많은데?”
“언데드의 숲이요.”
그녀는 오크성 후방, 세계수가 자리 잡은 산맥을 쳐다봤다.
“저긴 언데드도 많잖아?”
“네. 많아요. 지금도 계속 몰려들고 있고요. 근데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에요.”
“흠…….”
“제 생각엔 이렇게 계속 쳐들어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차라리 우리가 이참에 치고 나가는 건 어떨까 싶어요. 혹시 몰라서 그동안 정찰도 꾸준히 해서 주변 지형도 다 파악해 놨어요.”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오크성 후방을 쳐다봤다.
언데드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해서 성벽을 쌓고 해자까지 파놓은 방향이다.
“지금처럼 언데드 들이 몰리게 놔두면 나중이 돼서는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를 맞이하게 될 거예요.”
윤다영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날 쳐다봤다.
정찰대 팀장 윤다영.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오크들의 매복에 걸려 큰 낭패를 겪더니 이번엔 꼼꼼히 정찰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 놓은 듯했다
보아하니 언데드의 숲을 토벌해서 그때의 치욕스러운 경험을 만회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엔트 주사는 넉넉하게 있나?”
“네. 헬퍼들이 부지런히 제조하고 있어요. 엔트들의 재생 속도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고요.”
“흠…….”
윤다영이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다영이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예요.”
“네. 다신 오크 토벌 때 같은 아픔을 겪고 싶지 않아서 그동안 정말 착실하게 정찰해 놨어요.”
지윤미 마스터도 윤다영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도 있으니까.’
난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며 이어진 마스터를 쳐다봤다.
만약 가게 된다면 최대한 많은 인원을 데리고 가야 했다.
윤다영을 믿기는 하지만 혹여나 우리의 예상보다 언데드 몬스터들이 더 많을 수도 있으니까.
헌데 지금 흑기사 부대는 그레이 기사단에 합류해 있어 가용 병력이 발키리 길드와 마녀 부대밖에 없었다.
혹여나 오크들이 쳐들어올 수 있으니 태백산맥 길드는 이곳을 지켜야 했고.
“같이 갈래?”
“네?”
“같이 레이드 한번 하자고. 밥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지?”
“……?!”
난 빙그레 웃으며 이어진 마스터를 쳐다봤다.
“소고기 스테이크 먹었잖아. 이 세상에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어.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야.”
“끙…….”
이어진 마스터가 앓는 소리를 내며 날 쳐다봤다.
내가 대놓고 밥값을 하라니 거부하기가 난처한 모양이다.
“당연한 거겠지만 너희가 사냥한 부산물은 너희가 챙겨.”
“흠…….”
“오우거도 잡으면 가져와. 만드는 게 어렵지 않다니까 제작해 줄게. 물론 수수료는 좀 내야 할 거야. 이래저래 다른 재료들도 들어가는 것으로 보이고 우리가 공짜로 만들어 줄 사이는 아니니까.”
“흠…….”
이어진 마스터가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파워 글러브와 오우거의 벨트.
그도 같이 두 아이템의 위력을 봐서 그런지 탐이 나는 표정이었다.
게다가,
초롱초롱.
이글이글.
그의 뒤에 서 있는 헌터들은 이어진이 고개만 끄덕거리면 바로 언데드의 숲으로 달려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아니 왠지 이어진이 거부를 하면 단독 행동이라도 할 기세였다.
“저 혼자 결정할 사항은 아닌 것 같고 일행들이랑 상의해 보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근데…….”
“근데 뭐?”
“왜 자꾸 저한테 반말하시는 건지?”
“기분 나빠?”
“그건 아니지만, 저한테 이렇게 함부로 구는 사람이라 처음이라 좀 당황…….”
“함부로?”
“함부로가 아니라 막…….”
“막?”
“아니 그게 아니라 이렇게 초면에 격의 없이 대하는 분이 처음이라 좀 당황스럽네요.”
“이제 와서 마스터님 하기도 웃기잖아. 나도 네가 아까 밥상머리 앞에서 정색했을 때 엄청 당황스러웠어. 네가 자초한 일이니까 정 억울하면 너도 말 놔.”
“아닙니다. 전 이게 편합니다.”
“그건 너 편할 대로 하고. 오래 못 기다리니까 빨리 가서 의견이나 나누고 와.”
“……네.”
이어진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일행들에게 걸어갔다.
허나 이미 대세는 기운 듯했다.
파워 글러브와 오우거의 벨트를 보는 헌터들의 눈에 욕망이 가득 차 들어 있었다.
“성주님, 결정하신 겁니까?”
“네. 가 보죠.”
난 지윤미 마스터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성벽과 해자를 앞에 두고 수비를 하는 게 몬스터를 상대함에 더 유리하게 싸울 수 있지만 윤다영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듯했다. 뻔히 성 후방에 몬스터들이 계속 몰리고 있는데 언제까지 지켜볼 수만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