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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106화 (106/255)

106화. 포도, 늑대, 무지개…… (4)

“형 설마…….”

“응?”

“김용규 본부장을…….”

“끙…….”

이부성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리고 나 역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방금 그러셨잖아요. 뒤에서 영지에 해가 되는 수작을 부리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죽인다고. 형은 밖으로 내뱉은 말은 지키시는 분이니…….”

“영식이한테 얘기한 거잖아.”

“김용규 본부장은 해당 사항 없는 건가요?”

“그자도 해를 끼치면 응징을 해야겠지. 근데 지금 해를 끼치는 건 아니잖아.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 영지에 헌터들이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려는 거지.”

“전 또…… 후…….”

이부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날 쳐다봤다.

“부성아, 김용규 본부장이 지금 방해하는 것 같아도 그 사람이 없으면 우리도 같이 망하거나 지금보다 더 힘들어질 수도 있어.”

“네? 왜요?”

“그 양반 나름 대한민국의 질서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잖아. 만약 그 사람마저 없었으면 지금 대한민국은 버팔로 애들 손아귀에 들어갔을지도 몰라. 아니면 그와 비슷한 놈들한테 이리저리 뜯겨서 공중분해 됐을 거야.”

“흠…….”

“그렇게 되면 우린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미국이랑도 싸워야 할 거야.”

“엥? 미국이요?”

이부성이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갑자기 미국이 등장하니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허나 김용규가 사라지면 꽤 높은 확률로 미국과도 싸우게 될 가능성이 컸다.

지금이야 김용규와 플로라, 화랑 길드처럼 애국심을 가진 자들이 나라를 위해 우릴 견제하는 거니 참고 있지만, 만약 버팔로 같은 놈들이 그랬으면 바로 엎어버렸을 테니까.

그럼 바로 내전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내전이 생기면 미국은 자동으로 참여를 하게 되어 있고.

“형이 저번에 얘기했지. 형 군대 있을 때 전쟁 나면 부산으로 들어온 미군이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도로 확보하는 훈련을 했다고.”

“아…….”

내 설명을 들은 이부성이 이해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영식아.”

“네. 형님.”

“너도 새겨들어. 이래서 내가 일본이랑 미국 헌터들도 이곳에 방문하게 하려 하는 거니까.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이 막중해.”

난 세상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최영식을 쳐다봤다.

지금이야 김용규와 우호 관계로 지내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사이가 변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처럼 김용규와 긴밀하게 지내면 좋겠지만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 미국과 일본, 중국 길드와도 어느 정도 유대 관계를 갖춰 놔야 했다.

그래야 김용규한테 압박이 될 테니까.

우리가 다른 나라 길드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그한테는 꽤 부담으로 작용 될 것이다.

게다가 No.0001 늑대인간의 숲처럼 다른 나라에 뚫린 게이트 역시 다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니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준비를 해 놔야 했다.

지금이야 김용규하고만 신경전을 벌이고 있지만, 만약 다른 나라에 있는 게이트마저 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면 언젠간 어떤 식으로든 부딪히게 될 테니까.

“현재 있는 인원으로 어려우면 외교관이나 외교관 출신들을 섭외해서 길드에 가입시켜. 아까도 얘기했지만 일본 쪽과의 교류는 울프 길드한테 맡길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형님.”

최영식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전 형님이 저흴 이렇게 귀히 써 주실 줄은 진짜 생각도 못 했습니다. 인간 최영식 앞으로 죽을 때까지 아니 죽는 한이 있더라도 형님을 위해 충성을 다 바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울프 길드 최영식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하지 마.”

지난번 강태훈을 처치하러 갈 때 같이 갔던 최영식은 그새 배웠는지 무릎을 꿇으려 했고 난 부랴부랴 다가가 팔을 잡아 일으켰다.

“나 이거 별로 안 좋아해. 네 마음은 알겠으니까 이런 거 말고 최병용 마스터랑 만나보고 얘기가 통한다 싶으면 같이 동맹식이나 하자.”

“……네.”

최영식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굴을 보아하니 한 번쯤 해 보고 싶었던 모양인데 못 하게 하니 서운해하는 표정이었다.

이세훈, 이부성, 최영식. 친구와 동생들과 한참 얘기를 하며 걷고 있는데 저 멀리 발키리 길드 헌터 한 명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성주님. 지윤미 마스터가 저녁 식사를 하며 얘기를 하자는데 괜찮겠습니까?”

“네. 그러라고 하세요.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죠. 뭐.”

“네? 떡이요?”

“아니요. 같이 밥 먹는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리 전하겠습니다.”

난 마땅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식당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꼬셔도 넘어 오지도 않을 이어진 과는 밥을 먹는 시간조차 아까웠지만 그래도 손님이니 한 끼 정도는 함께 해야 할 듯했다.

* * *

“이런 귀한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스터.”

“아니에요. 자리를 빛내 주시니 저희가 영광이죠.”

이어진과 화랑 길드 헌터들이 도착하자 지윤미가 밝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블랙앵거스 안심 스테이크.

닭꼬치 구이.

잔치국수.

그린 피쉬 찜.

바이올렛 피쉬 찜.

이아영 마스터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식탁에 한 상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차린 건 없지만 맛있게 되세요.”

“차린 게 없다니요. 보기만 해도 배부를 정도로 많은데요. 이것들이 이능이 담긴 음식들인가 보네요?”

“네. 맞아요. 돌아가실 때 인원수에 맞춰서 가지고 갈 수 있게 해 드릴게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지윤미가 친절한 미소로 대하자 이어진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내심 우리가 냉랭하게 대할 줄 알았는데 분에 넘칠 정도로 잘해 주니 고맙고 송구한 모양이다.

“마스터님께서는 저희가 원하는 게 뭔지 아시잖아요.”

“……?”

“저흰 헌터들이 이곳에 자유롭게 방문해서 머물며 사냥도 하고 낚시도 하면서 함께 하길 원하고 있어요.”

“네. 안 그래도 김용규 본부장님한테 들었습니다. 사실 이곳에 헌터들이 몰리고 너무 오랜 시간 머물게 되면 대한민국의 안전에 영향을 끼치는 걸 우려하고 계시고 저 역시 같은 마음이지만 밖으로 나가게 되면 제가 다시 한번 얘기를 해 보겠습니다.”

“그래 주시겠어요?”

“네. 물론이죠.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는 데 당연히 도와야죠. 이제 배가 생겨서 혹시 웨이브가 생겨도 한 시간이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됐으니 한결 부담도 덜었고요.”

“감사합니다. 마스터님께서 김용규 본부장 좀 잘 설득해 주세요. 무슨 말을 어떻게 듣고 플로라 길드하고 동맹을 맺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흰 대한민국과도 좋은 관계로 지내고 싶거든요.”

“지금 대한민국이라고 하셨습니까?”

“네? 네.”

“왠지 그렇게 말씀 하시니 이아영 마스터님께서는 대한민국과 이곳을 따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착각을 하는 거겠죠?”

지윤미 마스터와 기분 좋게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하던 이어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지윤미 마스터 역시 마찬가지였고.

김용규한테 미션이라도 받은 건지. 아니면 A급 헌터라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건지 참 예의가 없었다.

“야.”

“…….”

“적당히 처먹었으면 아이템 챙겨서 가. 까불지 말고.”

“지금 저한테 하신 말입니까?”

“그래 너한테 했다. 어쩔래? 싸가지없는 새끼가 밥상머리 앞에서 정색하고 지랄이야. 누군 성격이 없어서 가만히 있는 것 같아?”

웬만하면 진짜 좋게, 좋게 지내려 하는데 자꾸 선을 넘는다.

아까 항구에서 인정했으면 됐지. 자꾸 두세 번 확인하려 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참을 수가 없었다.

-죽여?

“성주님…….”

“성주님…….”

“오빠…….”

내가 마나를 개방하자 지윤미, 박민정, 수정이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부랴부랴 달려와 내 품에 안겨 왔다.

“야.”

“…….”

“야.”

“…….”

“대답 안 하지?”

“……네.”

“가서 김용규한테 똑바로 전해. 자꾸 은근슬쩍 들이대는데 한 번만 더 선 넘으면…….”

“오빠, 참으세요.”

덥석.

“잠깐만. 할 말이 있어서 그래.”

“오빠, 이런 분 아니잖아요. 심호흡하고 우리 이성적으로 얘기해요. 자 후우 해 보세요. 후우-”

“…….”

글썽글썽.

나 때문에 수정이가 많이 놀랐는지 어느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마음 같아선 이어진을 꿀밤이라도 한 대 때려 줘야 속이 풀릴 것 같은데 그녀를 봐서 이쯤 해야 할 듯했다.

이 정도 화를 냈으면 이어진도 알아들었을 듯했고.

“후우-.”

난 수정이가 시키는 대로 심호흡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사과.”

“네?”

“사과하라고 새끼야.”

“죄송합니다.”

“나 말고 지윤미 마스터한테 해야지. 그래도 손님이라고 이렇게 음식까지 준비해 놓고 대접을 하면 조금 불편하고 거슬려도 참아야지. 남의 집에 와서 정색해서야 쓰겠냐?”

“…….”

“내 말이 틀렸어?”

“아닙니다. 맞습니다. 지윤미 마스터님.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전 그냥 가볍게 물어본 건데 정색한 거로 보였나 보네요. 제 불찰입니다.”

“아, 아니에요.”

내가 성질을 부리고 나서야 이어진은 정색했던 얼굴을 풀고 지윤미 마스터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언제까지 있을 거야?”

“네?”

“언제까지 있을 거냐고? 김용규랑 다 입 맞추고 왔잖아. 아니야?”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 나갔으면 합니다.”

“더 있는 건 안 되고?”

“그건…… 죄송하지만…… 곤란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 딱히 할 것도 없고.”

이어진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그때,

“해용이 형, 식사 다하셨으면 잠깐 대장간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이부성이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하얗게 창백해져 달려왔다.

“왜? 무슨 일인데?”

“카프리가 엄청난 걸 만들어냈어요. 가서 직접 보세요.”

“그래?”

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뭘 만들었기에 저리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지금 여기 있는 게 불편하니 바로 이부성을 따라가면 두 문제다 해결될 듯했다.

* * *

대장간에 도착하니 영지민이 잔뜩 모여 있었다.

카프리의 제작 능력이 뛰어난 건 이미 영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기에 소문을 듣고 몰려온 모양이다.

‘이 새끼는 왜 따라온 거야?’

그리고 어영부영 이어진과 이번에 들어온 헌터들 역시 자리해 있었다.

“으차!”

꽈당!

“마나를 봉인한 건가?”

“아니에요. 제약 없이 하는 거예요.”

“마나를 쓰고도 헌터가 헬퍼한테 팔씨름을 진다고?”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대장간 중앙을 바라봤다.

그곳엔 카프리의 제자 헬퍼 이성민을 상대로 태백산맥 길드 헌터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팔씨름을 하고 있었다.

“지금 E급까지 이겼어요. 이제 D급 차례에요.”

“성민 씨가 착용하고 있는 장갑이 새로 만들었다는 아이템이야?”

“네. 장갑이랑 벨트가 세트예요. 이번에 늑대인간의 숲에서 잡은 오우거의 코어와 가죽을 갖다줬더니 저걸 만들어 내더라고요.”

이부성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이성민이 착용하고 있는 장갑과 벨트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으차!”

“으윽.”

꽈당!

또 한명의 헌터가 팔씨름에 지며 나가떨어졌다.

“으차!”

“으윽.”

꽈당!

“으차!”

“으윽.”

꽈당!

D, C, B급까지.

놀랍게도 이성민은 일반인인데도 불구하고 무려 B급의 헌터까지 팔씨름을 이겼다.

“제가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네. 물론이죠. 성주님.”

놀란 얼굴로 팔씨름을 지켜본 난 이성민에게 다가가 장갑과 벨트를 넘겨받았다.

「파워 글러브 (레어)

힘+20」

「오우거의 벨트 (레어)

힘+20」

-오우거 코어까지 들어가서인지 이번엔 제법 쓸 만하게 만들었네.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장갑과 벨트를 쳐다봤다.

‘쓸 만한 정도가 아닌데?’

찌릿찌릿.

장갑과 벨트를 착용하자 팔과 척추가 찌릿할 정도로 힘이 느껴졌다.

지금 마음 같아선 나무를 뿌리째 뽑으라고 해도 할 수 있을 듯했다.

“성주 왔네. 어때? 마음에 들어? 헬퍼들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솜씨 좀 부려봤다.”

“헬퍼들이요? 헌터용이 아니고?”

끄덕끄덕.

난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카프리를 쳐다봤다.

비록 무기를 들고 싸우면 지겠지만 일반인이 B급 헌터와 힘으로 견줄 만큼 이능이 깃들어 있는데 카프리는 또 대수롭지 않은 듯이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혹시 이거 더 만들어 줄 수 있나요?”

“재료 다 썼다. 오우거 코어랑 가죽 가져와라. 그럼 만들어 준다. 재료 있으면 금방 만든다.”

“네, 알겠어요. 역시 카프리가 최고네요!”

비비적비비적.

쪽.

“나 잘한 거 아니었나? 왜 벌을 받아야 하는 거지?”

“미안해요. 너무 기뻐서 저도 모르게 그만…….”

카프리를 껴안고 얼굴에 볼을 비비며 입까지 맞춘 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사과를 했다.

나도 모르게 너무 흥분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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