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No.0001 늑대인간의 숲 (4)
“사람들 살기에는 여기가 더 좋을 것 같은데…….”
해안 가에서 한시 방향으로 삼십 분 정도 걸으며 주위를 살펴본 난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입맛을 다셨다.
우리가 자리 잡은 오크의 숲은 말이 숲이지 산 넘어 산, 산 넘어 산이 반복됐는데 이곳은 경사조차 없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게다가,
“포도인가?”
베이스캠프로 가는 길에 보이는 나무와 풀들이 먹어도 될법한 열매들을 가득 품고 있었다.
-독은 없긴 한데. 아직 안 익은 것 같은데?
‘어, 내가 봐도 그래 보여.’
연두색 알갱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열매.
내 짐작이 맞는다면 저 열매는 포도였고 포도나무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숲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생김새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내가 포도 하나만큼은 딱 알아볼 수 있었다.
과수원에서 일했던 경험도 있지만,
충북 옥천.
군 시절 2년 내내 포도밭에 죽어라 대민 지원을 나갔기에.
내가 군 시절을 보낸 곳은 포도를 특산물로 재배하는 지역이었고 홍수나 태풍이 오면 유격 시즌에도 차출되어 포도밭에 가서 쓰러진 나무들과 기둥들을 세우곤 했었다.
‘으, 셔!’
알갱이를 하나를 따서 맛을 본 난 그대로 뱉어냈다.
아직 익지 않았는지 떨떠름하고 마치 레몬을 먹는 것처럼 신맛이 가득했다.
“부성아, 너도 하나 먹어 봐.”
“저도 먹으라고요? 진심이세요?”
이부성에게도 알갱이 하나를 건네자 그가 눈까지 찡그리며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바로 옆에서 먹는 걸 봤는데 나도 그걸 먹으라고?’
직접 말은 하지 않았지만, 왠지 표정이 위와 같이 말을 하고 있었다.
“삼키지 말고 한 입만 씹고 배 터.”
“왜 그래야 하는데요? 혼자 신 거 드신 게 억울하신가요?”
“쩝. 먹기 싫으면 말고.”
난 나름 신경을 써서 먹어 보라고 한 건데 그는 내 마음을 몰라 줬다.
“으. 시다.”
“으.”
부들부들.
부들부들.
나를 따라 포도 맛을 본 나현지와 발키리 헌터들이 손을 움켜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빠. 이거 진짜 셔. 으.”
“시다면서 왜 또 먹는데?”
“신맛에 먹는 거지.”
“흠…….”
이부성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연인을 쳐다봤다.
포도 맛을 본 사람들이 시다면서 한두 번씩 더 씹고 뱉는 게 이해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성태 씨와 상의해서 영지민 일부를 이쪽으로 이동시켜서 농사를 짓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이쪽도 개발하시려고요?”
“네. 지형도 지형이지만 타란툴라의 독을 이겨낼 수 있으니 우리를 위협할 만한 것이 없잖아요. 여기다 성벽을 짓고 방어 시설을 갖추면 던전에 들어오길 겁내는 각성자들도 용기를 내지 않을까요?”
“그렇게만 된다면 정말 베스트이긴 한데…….”
지윤미 마스터가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들 말은 하지 않고 있지만, 해변에서 봤던 유골들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을 것이다.
내 가정이 맞는다는 가정하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차라리 우리가 먼저 여기서 자리를 잡고 각성자들을 모아 몬스터를 해치우는 게 나았다.
지금처럼 어영부영 몬스터 사냥을 한다면 계속해서 웨이브가 생길 테니까.
이러나저러나 몬스터와 싸워야 한다면 내 땅이 아닌 이곳에서 하는 게 나을 듯했다.
그런데 그때,
“형, 그럴 거면 차라리 아카데미를 하나 만드는 건 어때요?”
“아카데미?”
이부성이 다가와 뜻밖의 제안을 해 왔다.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헬퍼들 중에 헌터들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근데 이능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헬퍼로 남아 있긴 하지만 카프리의 무구들과 영지에 있는 버프 음식들만 있으면 일반인들도 충분히 4티어 몬스터까지는 사냥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부성이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헬퍼들을 들먹이며 핑계를 대고 있지만, 본인이 헌터가 되고 싶은 모양이었다.
“제 생각엔 아카데미를 만들어 몬스터에 대한 습성, 특징과 같은 지식을 교육하고 육체적 훈련만 받는다면 일반인들도 충분히…….”
“이 자리에서 결정하긴 그렇고 지휘부 회의 때 정식으로 안건으로 올려. 다 같이 상의해 보고 결정하자.”
“정말요? 그래도 돼요?”
“물론이지.”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가 어떤 마음으로 얘기를 했든 간에 해볼 만한 시도인 듯했다.
템빨.
그의 말처럼 일반인들은 각성하지 않아 마나를 사용할 순 없지만, 아이템빨로 어느 정도까진 커버할 수 있으니까.
데스나이트와 같은 상위 몬스터 레이드때 참가는 하지 못해도 현재로선 오크들과 좀비, 늑대인간과 같은 하위 몬스터들이라도 같이 사냥해 주면 큰 힘이 될 듯했다.
그런데 그때,
“컹! 컹컹! 컹컹!”
“무슨 소리지? 또 몬스터가 나타난 건가?”
저 멀리 앞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몬스터가 아니고 웬 개 한 마리가 나타나서 길을 막고 있대요.”
“개?”
“네. 들개 같은데 겁대가리를 상실했는지 혼자서 길 막고 죽어라 짖어 대네요.”
“그래? 한번 가보자.”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헌터만 이백 명.
어지간한 몬스터들도 우리를 보면 줄행랑을 치는 게 정상인데 개 한 마리가 길을 막고 있다고 하니 절로 호기심이 동했다.
“야, 절로 가라고. 너 그러다 진짜 죽어.”
“하! 진짜 어이가 없네. 개새끼 한 마리 때문에 행군을 멈출 줄이야.”
맨 앞으로 가니 헌터들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손짓을 하는 게 보였다.
“컹! 컹컹! 크르르르르.”
하얀색 개.
허스키 같기도 하고 진돗개 같기도 하고 애매하게 생긴 개 한 마리가 사생결단이라도 내겠다는 듯 이를 갈고 짖고 있는 게 보였다.
“개 맞아? 여우 아니야?”
“여우인가? 늑대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하기엔 덩치가 너무 작고?”
뒤에 있는 헌터들은 개를 보며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내가 봐도 진짜 생김새가 좀 많이 애매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때,
“크으!”
“이 새끼가 정말!”
퍽! 퍽! 퍽!
“깨갱. 깨에에엥.”
길을 막고 있던 개가 앞에 있던 헌터한테 달려들었고 바로 매타작을 당했다.
“크으으으으.”
“다영아, 그냥 죽…….”
“잠시만요.”
활대에 맞아 다리가 부러졌는지 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도 계속 덤비려 했고 참다못해 윤다영이 검을 꺼내는 게 보여 난 앞으로 나가 급히 그녀를 말렸다.
“끼이이잉.”
“끼이이잉.”
“이놈들 때문이었나?”
강아지 네 마리.
자세히 살펴보니 개의 등 뒤 나무 아래 아직 눈도 떼지 못한 강아지들이 있었고 어미의 울음소리를 따라 아장아장 걸어오는 게 보였다.
“크으으응.”
덥석.
“으읔.”
내가 새끼들한테 다가가자 어미 개가 달려들어 내 팔목을 물었다.
“성주님!”
“성주님!”
챙! 챙! 챙!
“괜찮아요.”
헌터들은 당장이라도 죽일 것처럼 검을 뽑아 들었고 난 손을 들어 그녀들을 제지했다.
“새끼들 때문에 그런 거면 말을 하지. 그렇게 무턱대고 덤비면 어떡해. 이놈아.”
쓰담쓰담.
난 왼쪽 팔목을 물린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어미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팔목에서 피가 나고 있었지만 이빨이 그리 깊게 들어가지는 않았다.
1m도 안 되는 작은 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고 이빨 역시 내 팔목에 박히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원하지 않는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어. 내가 느낀 게 맞지?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S급 헌터.
내가 아니 운디네가 마음만 먹었다면 이런 미물이 내 몸에 상처를 낼 수는 없었다.
“이놈들 먹을 것 좀 갖다주세요.”
“성주님…….”
“어서요.”
“네.”
박민정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육포를 가져와 나는 그걸 어미 개 앞에 내려놓았다.
“해치지 않을 테니까 이거 먹고 내 팔은 이제 좀 놔 줄래?”
쓰담쓰담.
부들부들.
부들부들.
어미 개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내 팔을 놓지 않으려 했다.
눈빛을 보아하니 두려움이 가득했다.
이놈 우리에게 덤비면 죽는 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덤비고 내 팔까지 물어 버린 것이다.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 엄만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고 나 버리고 도망갔는데 네가 낫다.’
그래서 지금 이놈이 살아 있는 것이다.
다른 이유로 우리를 향해 으르렁거리고 덤볐다면 바로 베어 버렸을 테니까.
쓰담쓰담.
“모두 먼저 가세요. 전 이놈이 놔 주면 그때 따라갈게요.”
“성주님…….”
“어서요. 여러분들 때문에 이놈이 무서워서 육포를 안 먹잖아요.”
“……네.”
지윤미 마스터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일행들을 출발시켰다.
그리고 그때서야,
“끼이잉.”
내 팔목을 물고 있던 어미 개가 힘을 빼며 작게 울부짖었다.
짐작건대 내가 공격을 해도 반항하지 않으니 조금이나마 경계심이 누그러진 모양이다.
“먹어. 그래야 젖이 나올 거 아니야.”
가슴뼈가 드러날 만큼 앙상한 걸 보니 제대로 먹지도 못했던 것같다. 아니 이런 약하디, 약한 작은 동물이 아직 살아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할짝할짝.
할짝할짝.
한참 동안 내 눈치를 살피던 어미 개가 결국 내 팔목을 놔주고 육포를 입에 물었다.
‘운디네.’
-알았어.
따스하고 포근한.
파란색 빛을 머금은 물방울이 어미 개의 몸을 감쌌다.
가까이서 보니 이래저래 상처가 장난 아니었다.
짐작건대 새끼들을 살리기 위해 근처에 뭔가 다가오면 우리에게 했던 것처럼 죽자고 달려들었던 모양이었다.
쓰담쓰담.
“형이 지켜줄게. 천천히 먹어.”
팔이 풀리고 나서도 난 계속 어미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어미 개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귀엽다.’
육포를 입에 문 어미 개는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나서야 육포를 씹기 시작했고 눈도 뜨지 못하면서 새끼들은 어떻게 아는지 어미 개의 젖을 찾아 입을 갖다 대었다.
‘이대로 두고 가면 얼마 가지 못하고 다 죽을 텐데…….’
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때,
덜커덕, 덜커덕.
“형, 저희 왔어요.”
“……!”
이세훈과 이부성이 리어카를 끌고 다시 돌아오는 게 보였다.
“형, 이거 필요한 거 맞죠?”
“이 앞이 바로 아레스 베이스캠프더라. 필요할 것 같아서 가져왔는데 필요 없으면 그냥 가고?”
씨익.
“자식들.”
난 이세훈과 이부성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말도 하지 않았는데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어미 개와 새끼들이 탈것을 가지고 왔다.
센스쟁이들이었다.
리어카 뒤를 보니 푹신푹신한 이불과 그릇에 우유까지 담겨 있었다.
“조금씩 천천히 와서 이 앞에 대 줘.”
“응.”
이세훈과 이부성은 어미 개가 놀라지 않게 슬그머니 조금씩 리어카를 갖다 댔다.
“이대로 있으면 위험해. 형이랑 같이 가자.”
난 어미 개와 눈을 마주치며 리어카에 손짓했다.
살고 싶으면 타라고.
“싫으면 엉아 그냥 가고?”
난 자리에서 일어나 가는 시늉을 했다.
“끄으응.”
“애들 데리고 타. 엉아 따라가면 친구들도 많고 먹을 것도 배불리 먹게 해 줄게.”
“끄으응.”
어미 개는 계속 나와 새끼들을 보며 눈치를 살폈다.
보아하니 내 의중은 파악이 된 듯했다.
말 못 하는 짐승이라 하지만 지능이 그리 낮지는 않은지 분위기 파악 정도는 하는 듯했다.
그리고 결국,
덥석.
“오!”
“똑똑한데?”
한참을 망설이던 어미 개가 새끼들을 입에 물고 리어카에 올리더니 자기도 올라탔다.
“잘했어.”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어미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걸 공생이라고 하는 거야.’
-어?
‘몬스터들은 이렇게 안 하잖아. 아마 그놈들이었으면 바로 죽여서 잡아먹었을걸?’
-흠…….
‘그러니까 앞으로 몬스터들 따위와 비교하지 말아 줘. 난 다르니까.’
-쯧쯧. 뒤끝 있는 사람이었구나. 난 네 편이라고 말했잖아.
‘됐어. 늦었어.’
덜커덕. 덜커덕.
난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베이스캠프가 있는 곳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루카스와 네로에 이어 새로운 동물 친구가 생기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