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No.0001 늑대인간의 숲 (3)
“윤미 언니 여기 늑대인간 숲 맞는 것 같죠?”
“어. 맞는 것 같아. 이 유골들 다 아레스 길드 사람들이야.”
아레스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본 지윤미 마스터는 바로 해변을 뛰어다니며 주위를 더 살폈고 금세 모래 속에 묻혀 있는 백여 개의 갑옷과 유골들을 찾아냈다.
보아하니 일부러 땅속에 묻은 건 아닌 것 같고 모래바람으로 인해 덮인 듯했다.
부들부들.
부들부들.
유골들을 확인한 지윤미 마스터의 몸이 잘게 떨리는 게 보였다.
보아하니 이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괜찮으세요?”
“아레스 길드의 요청을 받고 처음 이곳에 지원을 왔을 때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근데 그때 우리를 제일 힘들게 했던 건 동료의 죽음보다 눈앞에서 숨이 멈춘 동료의 시체를 타란툴라들이 들고 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거였어요.”
“…….”
“아니 그때 전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그대로 있으면 우리 아이들조차 생명을 장담할 수 없을 만큼 타란툴라들이 수없이 많았거든요.”
“아…….”
지윤미가 마치 고해성사라도 하는 것처럼 내게 지난 시간에 있었던 전투를 설명해 주었다.
No. 2 늑대인간의 숲.
재난 관리 본부에선 인천에 있는 게이트를 위와 같이 명명했다.
No. 3 오크의 숲.
우리가 자리를 잡은 오크의 숲처럼 이곳은 초반에 늑대인간들이 어마어마하게 출몰했기 때문이었다.
2티어급 몬스터.
늑대인간도 좀비처럼 물리거나 할퀴면 전염성 있었지만, 무장만 잘 갖추면 비교적 사냥하기 쉬웠고 오크보다 코어 값어치가 높아 대규모로 레이드를 하러 왔던 것 같은데 타란툴라들의 기습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때 등급이 낮았던 헌터들은 대부분 타란툴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헌터계를 떠났어요.”
“……?”
“돈 벌려고 들어 온 곳이잖아요. 근데 돈을 아무리 많이 벌면 뭐 하겠어요. 사냥하다가 타란툴라를 만나면 바로 죽는데요.”
“아…….”
난 지윤미 마스터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사냥에 성공해 코어와 부산물을 채취해서 수천, 수억 원을 벌면 뭐 하는가.
어차피 죽으며 써보지도 못할 것들인데.
발키리와 태백산맥.
그래서 내가 처음 지금의 일행들을 봤을 때 다들 사연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던 모양이다.
내가 돈 때문에 목숨을 걸고 헬퍼가 됐던 것처럼 이들도 그 처참한 전투를 계속 경험하면서도 돈이 절실해 계속해서 헌터 생활을 하고 있었던 듯했다.
“천 명당 한 명.”
“네?”
“재난 관리 본부와 각국의 헌터 협회에서 마나를 느끼고 인지했을 거라고 예상하는 퍼센티지에요.”
“그렇게나 많이요?”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천 명당 한 명이면 우리나라 인구가 사천만 명이 넘으니까 최하 사십만 명 이상의 각성자가 있다는 얘기였다.
“다들 마나를 느끼고 사용할 수 있게 됨에도 숨기고 있는 거예요. 각성하고 헌터 협회에 등록되면 굳이 헌터 일을 하지 않아도 나름 세금 감면과 이래저래 실생활을 하는 데 있어 혜택을 주고는 있지만, 그 대신 재난 관리 본부에서 소집령이 떨어지면 무조건 모여서 몬스터 웨이브를 막는 걸 돕거나 원하지 않아도 레이드에 참여해야 하거든요.”
“아…….”
“그래서 그냥 혜택 안 받고 평소 살던 대로 일상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인가 봐요. 굳이 헌터 일을 안 해도 각성했으니 얼마든지 큰돈을 벌 수 있으니까.”
“저 같아도 그러겠네요.”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동원 예비군.
이제 난 나이가 차서 민방위가 되었지만 어쨌든 대한민국의 성인 남성 대부분은 전쟁이 나면 국가의 부름을 받고 모여 전쟁에 참여하게 시스템이 되어 있고 나름대로 일 년에 서너 번씩 불려가며 훈련을 받고 있었다.
‘50%는 되려나?’
근데 과연 진짜 전쟁이 나면 그중에 몇이나 소집에 응할지는 의문이었다.
조건 없이 해야 하는 국방의 의무도 이 지경인데 나 같아도 그 혜택 조금 받자고 헌터 협회에 각성자 등록을 하지는 않을 듯했다.
김용규와 이아영 같은 별종들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은 나라보다 내 가족과 내 목숨이 더 소중할 테니까.
그런데 그때,
“성주님!”
“성주님! 이리로 와서 이것 좀 보세요.”
“윤미 언니!”
“윤미 언니. 이쪽으로 빨리 와 봐.”
유골들을 찾아다니던 헌터들이 호들갑을 떨며 나와 지윤미 마스터를 불렀다.
헌터들은 아레스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봤을 때보다 더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이게 다 유골들인가요?”
“여기뿐만이 아니에요. 이 모래 해변과 저 위 숲 입구까지 모래와 흙을 조금만 걷어 내면 유골들이 가득해요.”
“……?!”
“……?!”
나 역시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수백, 아니 수천 구 아니 어쩌면 만 단위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유골들이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수백 명이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 맞아요. 많아야 천 명은 되지 않을 거예요.”
“근데 이 유골들은 다 뭐죠?”
“모르겠어요. 제가 알기로 인천 게이트에 이 많은 헌터들이 들어온 적은 없어요.”
“…….”
“…….”
우리는 넋이 나가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누군가라도 이 상황을 설명해 주길 바라는 얼굴이었다.
“아, 맞다! 이 사람들 군인들 아니에요? 3년 전에 처음 게이트가 열렸을 때 연대 규모의 병력이 들어갔다가 실종된 적이 있잖아요? 다들 생각 안 나세요?”
“……그 사람들은 아닐 겁니다.”
난 나름 추론을 해서 얘기를 한 헌터를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체야 타란툴라와 들짐승들에게 먹혔다고 해도 유골 주위 어디에도 군인들의 물건이라 추정되는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총과 방탄 헬멧 같은 개인 화기는 다른 곳에서 전투가 벌어져 몸만 가져왔다 쳐도 타란툴라가 금속까지 먹지 않는 이상에야 반드시 있어야 할 군번줄이 보이지 않았다.
옷까지는 어떻게 타란툴라의 독에 의해 부식이 됐다 가정한다 해도 말이다.
“그 사람들도 아니라면 이 유골들은 도대체…….”
“이제 남은 답은 하나네요.”
“……?”
“지구에서 온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면 원래 이곳에 있던 사람들이겠죠.”
“원래 이곳에 있던 사람들이요? 근데 왜 유골만 있고 3년 동안 살아있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을까요?”
“이들처럼 타란툴라에게 잡아 먹혔거나 그도 아니면 늑대인간이나 언데드가 되었던 것 같네요.”
“…….”
“…….”
난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해변 안 숲을 쳐다봤다.
3년 동안 토벌을 했는데도 끊임없이 나타나는 늑대인간들.
오크의 숲이야 오크들이 전염했다고 쳐도 이곳은 오크의 개체가 그리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게다가 인천의 게이트가 연결된 곳이 맞는다면 이곳에서 그 많은 좀비가 뛰쳐나오지 않았는가.
몬스터에 의한 인류 멸망.
이곳에 사람이 산 게 맞았다면 지금으로선 내 추론이 가장 합리적일 듯싶었다.
‘일본에선 부정하고 있지만, 그쪽에서는 이미 인간과 문명의 흔적을 발견해서…….’
지윤미 마스터도 그러지 않았는가. 증거가 없을 뿐 이미 일본에서 인류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꽤 훌륭한 가정이야. 너희처럼 과학이 발전된 차원이 아닌 이상에야 마계와의 문이 열리면 굳이 마족들이 아니더라도 마물들만으로도 무너질 수 있으니까.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날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실제로 내가 소환된 차원 중에서도 적지 않은 곳들이 그렇게 몬스터의 세상으로 변하기도 했어.
‘왜? 이유가 뭔데?’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거야? 너희 인간처럼 몬스터들도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와 자리를 잡은 거지. 너희도 더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기 위해서 지구에 있는 수많은 숲을 파괴하고 동물들을 멸종시키며 지구를 차지하고 있잖아.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야. 저들도 배가 고프니 먹을 만한 것을 찾아 사냥하는 것뿐이야.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며 운디네를 쳐다봤다.
뭔가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딱히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네 말대로라면 지구도…….’
-어, 맞아. 지금처럼 안일하게 대처한다면 지구도 인간이 아닌 몬스터가 주인이 될 수도 있을 거야.
운디네가 날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 어디에도 걱정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평온한 얼굴로 얘기하는 거 아니야?’
-그게 자연의 이치야. 약하면 잡아먹히는 거지. 너도 다른 사람들이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잡아먹는 걸 보면서 슬퍼하지는 않잖아?
‘그거랑 이거랑 같아?’
-아직 난 모르겠어. 네가 지금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건 느껴지지만 다른 감정들은 아직 내가 이해하기 어려워. 시간을 조금 더 주면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
‘……그래.’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운디네는 다 좋은 데 가끔 이렇게 정떨어지게 말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간의 관점이 아닌 다른 생명체의 관점으로 봤을 때 그녀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래서 재수가 없었다.
원래 맞는 말만 하면 재수가 없지 않은가.
아무리 지금 그녀가 말하는 게 사실이고 팩트라 하더라도 내가 들어서 아플 것 같으면 좀 에둘러 말하거나 듣기 좋게 포장해도 좋으련만 운디네는 그런 융통성이 없었다.
-……난 네 편이야.
‘됐어. 늦었어.’
난 뾰로통한 표정으로 잠시 운디네를 노려보고 이내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시죠.”
“네?”
“여기서 넋 놓고 있으면 뭐가 해결되나요? 일단 안쪽으로 들어가서 아레스 길드부터 만나죠.”
“……네.”
“……네.”
사람들이 부랴부랴 정리하고 내 뒤를 따랐다.
어차피 여기서 이러고 있어 봤자 의미가 없었다.
내 가정이 정확한 것도 아니었고. 어쩌면 아직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괜히 지레짐작해서 하지 않아도 될 고민을 하는 것만큼 멍청한 것도 없었다.
* * *
난쟁이, 고블린, 오크.
늑대인간.
타란툴라.
오우거.
숲 안쪽으로 들어오니 1티어에서 4티어까지 다양한 몬스터들이 출몰했고,
스르륵!
스르륵!
“꾸웩.”
“켁.”
“아우우우.”
“끼이이이이이익!”
헌터들에 의해 순식간에 제압이 되었다.
“……이쪽은 타란툴라만 아니면 다 비교적 쉽게 사냥을 할 수 있는 몬스터들이에요. 그중에서도 오우거는 4티어임에도 불구하고 이동속도가 느리고 단독으로 생활을 하는 몬스터라 아레스의 훌륭한 자금줄 역할을 해 주고 있고요.”
오우거.
오크의 업그레이드판이라고 해야 하나?
얼핏 봐도 10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녹색 괴물을 해치우고 나서 내게 다가온 지윤미가 이곳을 설명해 주었다.
베이스캠프를 중심으로,
동쪽. 언데드의 숲.
서쪽. 늑대인간의 숲.
남쪽. 오우거의 숲.
북쪽. 난쟁이족의 숲.
주로 출몰하는 몬스터의 종류에 따라 이름을 정해 놓고 부르고 있었다.
“……그동안은 타란툴라와 언데드 몬스터들 때문에 베이스캠프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답보상태였는데 동충하초 포션과 엔트 주사를 공급해 주면 아레스도 지금보다 더 사냥 범위를 넓힐 수 있을 거예요.”
끄덕끄덕.
난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가 자리 잡은 곳에는 오크 한 마리만 잘못 건드려도 마치 벌집을 건드린 것같이 수백, 수천 마리의 오크들이 달려들고 그 뒤에 얼마가 될지 모르는 언데드 몬스터들이 도사리고 있어 방어에만 급급하고 있는데 이곳은 등급만 높을 뿐 비교적 몬스터들의 개체 수가 그리 많지 않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