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No.0001 늑대인간의 숲 (2)
“형, 저기 보세요. 게이트에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네.”
끄덕끄덕.
50분쯤 왔을까.
저 멀리 붉은 빛을 뿜어 대는 게이트가 보였다.
“울프 길드는 저쪽에 안 붙은 모양이네요.”
“어, 울프랑 레인보우는 우리랑 함께한다고 약속을 했어.”
“그나마 다행이네요.”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게이트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그곳엔 내가 일전에 최영식한테 지시한 대로 안전하게 배를 댈 수 있게 선착장은 물론이고 등대까지 설치가 되어 있었다.
최근에 이세훈과 함께 갔었던 동해 대진항보다 더 크고 깨끗하게 만들어 놓았다.
“근데 저 양반은 아직도 여기 있었던 건가요?”
“그게 압수한 물품들을 처리 못 했다고 저기서 뭉그적거리더라고. 근데 내가 봤을 땐 그건 핑계고 영지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얼렁뚱땅 뭉개고 있는 것 같아. 아예 여기다 헌터들을 상주해 놓고 지부까지 차려 놨더라고.”
김용규와 재난 관리본부 소속 헌터들. 그리고 수백 개의 컨테이너.
한 달 만에 다시 이곳에 왔는데 어째 그때보다 더 컨테이너가 많아진 것 같았다.
“새끼들, 아주 꽁지에 불붙은 거처럼 난리네. 그러니까 사람은 죄를 짓고 살면 안 되는 거야. 이놈들아.”
장지원이 게이트 옆 선착장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저쪽에서도 우리를 봤는지 헌터들이 바삐 움직이는 게 보였다.
보아하니 우릴 맞이할 준비를 하는 듯했다.
장지원의 말처럼 멀리서 사람들의 발걸음만 봐도 저들이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 다 느껴졌다.
내가 분명 한 달 이내에 배를 만들고 오겠다고 했는데 믿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
“성주님, 저쪽을 보세요. 저기에도 섬 아니 대륙이 있는 것 같아요.”
“흠…….”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게이트 뒤 지평선을 바라봤다.
게이트에서 봤을 땐 그저 망망대해인 줄 알았는데 배를 타고 나와서 보니 희미하게나마 땅이 있는 게 보였다.
“부성아?”
“아니에요. 카프리가 알려준 곳은 스카이 캐슬에서 바다를 보고 열두 시 방향이었어요. 저흰 지금 아홉 시 방향으로 왔잖아요.”
이부성이 날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혹시 카프리가 말한 섬인가 싶었는데 그곳은 아닌 듯했다.
“어떻게 할까요?”
“한번 보고 오자.”
“바로요? 저기 사람들 기다리는 것 같은데?”
“좀 기다리라고 해. 나는 헌터들 보내 줄 줄 알고 한 달을 기다렸는데 조금 기다리게 해도 되잖아?”
“네, 알겠어요. 선장한테 가서 얘기하고 올게요.”
이부성이 선착장을 보며 잠시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선장실로 걸어갔다.
어느새 선착장은 수백여 명의 헌터들이 줄과 열을 맞춰 도열해 있었다.
내게 죄지은 것이 있어서 그런지 인사라도 거나하게 해서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
“……?!”
우리가 뱃머리를 돌리니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던 헌터들의 머리가 갸우뚱하는 게 보였다.
많이 당황스러운 듯했다.
“저 그렇게 쉬운 사람 아닙니다. 아저씨.”
씨익.
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저 멀리 있는 대륙을 쳐다봤다.
짐작건대 겉에만 살짝 돌아보면 넉넉잡고 한 시간 정도 걸릴 듯했다.
새로운 땅을 발견했으니 멀리서나마 대충 둘러보고 김용규와 헌터들을 기다리게 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었다.
대대장, 연대장 사열.
군대를 다녀 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저리 정렬해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꽤 곤욕이라는 것을.
나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김용규에 대한 나의 소심한 복수였다.
배를 돌려 십오 분 정도 더 다가가자 또 다른 육지가 보였다.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육지였다.
그런데 그때,
“으! 타란툴라!”
“으! 싫다.”
발키리 길드 헌터들이 부들부들 떨며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해안가를 쳐다봤다.
그곳엔 바위섬에 물개나 바다사자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사람 크기만 한 수백 마리의 거미 몬스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아는 몬스터인가요?”
“네. 아레스가 관리하는 인천 게이트에 레이드를 갔다가 봤던 몬스터들이에요. 레이드 초창기 시절 저놈들에게 수백 명의 헌터가 죽었을 만큼 상대하기 엄청나게 까다로운 놈들이에요. 분류는 3티어로 되어 있지만, 실제론 그것보다 더 위험한 몬스터예요.”
“수백 명이나요?”
“저놈들 양쪽 앞발에 독이 있는데 중독이 되면 B급 아래의 헌터들은 1분이면 사망해요. 게다가 워낙에 이동속도가 빨라서 눈 마주치면 도망가는 건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해요.”
“발키리 헌터들보다 더 빠른가요?”
“네. 저희도 저놈들이랑 만나면 붙어서 싸워야 해요. 나무도 워낙에 잘 타서 움직이면서 싸울 바엔 차라리 앉은 자리에서 화살이라도 한 발 더 날리는 게 그나마 살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럼 저긴 못 내려가 보겠군요.”
“저놈들 한두 마리만 있어도 두세 파티는 있어야 하는데 저 많은 걸 피해 없이 잡으려면 헌터들 수천 명은 있어야 할 거예요. 그리고 그중에 수백 명은 죽을 각오를 해야 하고. 아레스 길드도 던전 탐사를 더 넓히지 못하고 있는 게 저놈들 때문이거든요.”
지윤미 마스터가 타란툴라 무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껏 새로운 땅을 발견했는데 밟아 보지도 못할 듯했다.
일단 독도 독이지만 생긴 게 너무 흉측하게 생겼다.
그런데 그때,
-내가 아는 그놈들이라면 앞발에 생명력을 갉아먹는 독이 있을 거야.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해안가를 지그시 쳐다봤다.
그녀가 아는 몬스터인 듯했다.
-독에 중독되도 엔트 주사를 맞으면 바로 치료가 될 거야. 동충하초 포션을 먹으면서 일 분만 버텨도 죽지는 않을 테고. 그것도 아까우면 물의 정령과 계약한 헌터들을 후방에 두고 아쿠아 워터를 계속 넣어줘도 되고.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타란툴라를 쳐다봤다.
운디네가 치료를 할 수 있다고 하면 치료할 수 있는 거였다.
“……치료할 수 있다고 하네요.”
난 운디네가 공유해 준 정보를 지윤미 마스터에게도 알려주었다.
“혹시 내려가 보고 싶은 건가요?”
“네.”
끄덕끄덕.
난 지윤미 마스터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재난 관리 본부와 헌터 협회에서는 게이트 안을 단순히 몬스터가 사는 던전이 아닌 지구와 같이 또 하나의 세상이 아닐까 하고 오래전부터 조사하고 있었어요. 일본에선 부정하고 있지만, 그쪽에서는 이미 인간과 문명의 흔적을 발견해서 다른 국가들의 눈을 피해 자국에 열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개척을 하고 있다는 소문도 떠돌고 있고요.’
일전에 그녀가 그랬다.
재난 관리 본부와 헌터 협회에서는 이미 이곳을 던전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이 아닐까 하고 의심을 하고 있다고.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난 확신했다.
달이나 금성 같은 행성이나 다른 차원의 지구 같은 곳일 듯했다.
이곳은 던전이라는 지칭보다 이 세계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자연환경을 갖고 있었으니까.
“……일전에 마스터님도 의심하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해치울 수 있는 몬스터를 보고도 피한다면 저흰 영영 이곳의 실체를 알아내지 못하지 않을까요?”
“흠…….”
난 그동안 품었던 의문과 일전에 그녀와 나눈 대화를 언급하며 내 뜻을 밝혔다.
그리고 이내,
“네, 알았어요. 저도 성주님의 생각에 동의해요. 전투 준비를 할게요.”
지윤미 마스터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후다다다다닥!
후다다다다닥!
우리가 해안가로 배를 되자 수백 마리의 타란툴라 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녀가 했던 말처럼 엄청나게 빠른 놈들이었고 순식간에 우리와 거리를 좁혀 왔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발사!”
스르륵!
스르륵!
슈웅!
슈웅!
타란툴라는 화살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계속 달려들었다.
벌레형 몬스터라 그런지 오크와 좀비들보다도 더 무식하고 저돌적이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익.”
“찌이이이이이이이익.”
“엔트 주사 맞지 말고 포션을 먹어. 힐러들은 계속 아쿠아 워터 넣어 주고.”
“네!”
소나기가 내리는 것처럼 수백 발의 화살을 퍼부었지만 그걸 피해서 배로 올라오는 타란툴라들이 있었고 운디네가 얘기했던 것처럼 독에 중독되어 온몸이 시퍼렇게 변하다가도 엔트 주사를 맞으면 바로 치료가 되었다.
허나 치료가 되어도 타란툴라의 공격 속도가 너무 빨라 금세 다시 중독되었고 지윤미 마스터는 동충하초 포션과 아쿠아 워터를 주로 사용하며 방어를 했다.
“11시 나현지 앞에 확인.”
“확인!”
“확인!”
“발사.”
“2시 방향 김현규 앞에 확인.”
“확인!”
“확인”
“발사!”
스르륵!
스르륵!
휘리릭!
휘리릭!
일점사.
타란툴라들은 열 발에서 열두 발정도 화살을 맞으면 움직임을 멈췄고 지윤미는 타겟을 정해 가까이 다가오는 것부터 처치했다.
백전노장.
그녀의 지휘는 군더더기가 없었고 발키리 길드 헌터들 역시 기계처럼 화살을 쏘아 댔다.
“마녀 부대. 마나 떨어졌으면 멍때리고 있지 말고 너희도 화살 쏴”
“네!”
“태백도 바리케이드 서지 말고 그냥 활 드세요.”
“네!”
전투 양상을 지켜보니 이동속도와 독 공격이 치명적일 뿐 물리 공격력과 방어력은 생김새에 비해 허약한 듯했다.
동충하초 포션으로 독을 극복하자 오히려 오크보다도 더 쉬운 상대였다.
“몇 마리 안 남았어. 무턱대고 쏘지 말고 파티장들 지휘하에 조준 사격해.”
“네!”
“네!”
십 분 남짓.
사상자 0명.
걱정을 한 것도 무색하게 발키리 길드 헌터들의 주도하에 커피 한잔 마실 짧은 시간 만에 순식간에 수백 마리의 타란툴라를 해치웠다.
“정말 대단하네요. 이렇게 빨리 해치우다니.”
“다 성주님 덕분이에요. 동충하초 포션이 있으니 너무 쉽네요.”
지윤미 마스터가 약간은 허탈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몬스터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그동안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피해 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는 듯했다.
“민정아, 일단 코어부터 채취해.”
“독은 어떻게 할까? 저것들도 챙기면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독을 담을 용기가 있어?”
“글쎄?”
박민정과 대화를 주고받던 지윤미가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저 멀리서 뛰어오는 이부성을 쳐다봤다.
“부성아! 혹시…….”
“안 그래도 지금 챙겨서 가져가고 있어요.”
역시 내 동생이었다.
헬퍼들과 함께 선실 안에 숨어 있던 이부성이 알아서 독을 담을 만한 가죽 주머니를 손에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스터, 이것 좀 보세요.”
코어를 채취하러 갔던 헌터들이 녹이 잔뜩 슬어 있는 갑옷을 들고 달려왔다.
다들 못 볼 것이라도 봤는지 타란툴라와 전투를 할 때보다 더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아레스…….”
“아레스…….”
갑옷의 왼쪽 위에는 아레스 길드를 상징이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럼, 여기가…….”
“아레스 길드가 관리하는 넘버원 늑대인간의 숲이라는 말이잖아요?”
“…….”
“…….”
문양을 확인한 헌터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해안가 안쪽에 있는 숲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