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99화 (99/255)

99화. No.0001 늑대인간의 숲 (1)

김택진에게 아만티움 광산 개발을 지시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이세훈은,

“선생님 언제까지 저렇게 두고 있을 거야?”

한 달 내내 하루가 멀다고 찾아와 날 들들 볶았다.

“왜 김미진이 또 뭐라 그러디?”

“미진이가 뭐라 그래서 그러는 게 아니고 계속 저렇게 두면 선생님이 죄수들이랑 다를 게 뭐가 있냐. 그리고 선생님은 그렇다 치고 같이 간 기술자들이랑 인부들은 뭔 죄냐고.”

“그 사람들도 알아야지. 줄 잘 못 서면 어떻게 되는지.”

난 이세훈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난 지금 이 상황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일석삼조.

꼴 보기 싫은 사람 안 보이는 데로 보내 놔서 좋았고.

하루에 100kg.

덕분에 광산이 개발되어 기존보다 거의 열 배가 넘는 아만티움이 채취되었다.

게다가 은근히 김택진을 따르고 있던 기술자들을 그와 자연스레 멀리 떨어뜨려 놓을 수 있었다.

자고로 정치인들은 사람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슬며시 영지민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있던 그를 견제한 것이다.

그 후로도 난 김택진과 친하거나 가깝게 지내면 다 광산으로 발령을 보냈다.

“하아…… 난 도무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한테는 그렇게 자상하게 굴면서 왜 미진이랑 선생님은 못 잡아먹어서 난리인지.”

“너 때문에 그래.”

“내가 뭘?”

“3년 내내 미진이 때문에 그 마음고생을 하고 결국 대학교 안 들어갔다고 모임 나가서 투명 인간 취급까지 받아 놓고선 지금 미진이 때문에 나한테 성질부리고 있잖아.”

“그거야 이제 미진이도 나이를 먹어서 철도 들었고 나름 착하게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 네가 눈에 색안경을 끼고 보니까 그러는 거잖아.”

“색안경이 아니고 내가 보는 게 팩트야. 넌 또 저 여우 같은 애한테 홀리고 있는 거야.”

난 잔뜩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과 저 멀리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을 하는 김미진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가 그녀를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광산에 보낸 게 싫으면 나한테 직접 와서 따지면 될 것을 그녀는 이세훈을 비롯한 수정이 그리고 은솔이까지 자기 편으로 만들어서 날 압박했다.

겉으론 보기엔 착하고 상냥하기에 금세 다 미진이와 언니, 동생까지 하며 말이다.

“한 번만 더 이걸로 나한테 얼굴 붉히면 김택진 선생이랑 미진이 둘 다 영지에서 추방할 거야.”

“끙…….”

난 정색을 하며 이세훈에게 엄포를 놓았다.

트러블 메이커.

그녀는 존재 자체가 민폐였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그 고생을 하고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는데 가장 친한 친구인 이세훈과 이렇게 푸닥거리를 해야 하니 말이다.

“어휴. 알았다.”

이세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 강, 최.

이십 년 지기 친구인 그는 누구보다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육개장이 먹고 싶어도 일행들 모두가 짜장면을 먹자고 하면 싫어도 그냥 중국집에 따라갈 만큼 두루뭉술한 성격을 가졌지만 어쩌다 한번 필이 꽂히면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무엇이 됐든 간에.

남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끼는 법이다.

지금 모습이 어찌 됐든 간에 김미진은 나와 이세훈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었다.

이부성을 필두로 영지 사람들은 다 날 세상 좋은 사람으로 보고 있지만 나 트리플 A형이다.

19년 전, 모임이 끝나고 내가 뻔히 한동네에 사는 줄 알면서 다른 친구의 차를 타고 둘이서만 홀랑 집에 간 것도 기억하고 있었고.

심지어 한번은 둘이서 같이 택시를 타고 집에 가다가 멀미가 나서 속을 게워 내려고 잠깐 내렸는데 혼자서 홀랑 가 버린 것도 다 기억하고 있었다.

진짜 내가 그때도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래저래 김미진한테 더러운 꼴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훈아, 배가 완성되고 지구와 교류가 더 활발해지면 얼마든지 더 좋은 여자 만날 수 있다. 그러니까 엄한 애한테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영지 개발에 몰두하자.”

“새끼야. 그런 거 아니라니까. 진짜.”

“그래. 아니야. 됐지. 그러니까 우리 이제 걔 얘기는 그만하자.”

난 이세훈의 등을 토닥거리며 저 멀리 땅굴 쪽을 바라봤다.

4차로 인원을 데리고 나갔던 장지원이 돌아와 내게 걸어오고 있었다.

“해용아, 김용규 이 작자 아무래도 딴마음을 품은 것 같다.”

“이번에도 헌터들을 못 데리고 온 거예요?”

“어, 이미 협회에서 공문도 내려가고 헌터들 사이에 우리 영지에서 아이템을 싸게 판다고 소문이 난 것 같은데 김용규 이 자가 계속 뭉그적거리면서 시간을 끌더라고. 그래서 짜증이 나서 일단 그냥 복귀했어.”

“쯧쯧.”

난 혀를 차며 게이트가 있는 하늘을 바라봤다.

이아영 마스터한테 알아듣게 잘 얘기를 하고 보낸 것 같은데 김용규가 계속 늦장을 부리고 있었다.

“무슨 핑계를 대면서 버팅기는 거예요? 이유는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게 플로라 길드랑 화랑 길드랑 동맹식을 한다고 하더라고.”

“또요? 지난번에 지윤미 마스터 갔다 왔을 때 무절 길드랑 동맹식 했다고 했잖아요?”

“어, 맞아. 우리 쪽 말고 이제 십 대 길드에 속해 있던 길드는 다 플로라랑 동맹을 맺었어. 그리고 중소 연합 길드까지 합치면 수만 명은 될 거야.”

“수만 명이나요? 그 정도면 헌터 협회에 가입된 어지간한 길드는 다 동맹을 맺은 거 아니에요?”

“그치. 그래서 내가 김용규 그 작자가 딴마음을 품은 것 같다는 거야. 아무래도 우릴 견제하려는 것 같아. 그리고 내가 은밀히 알아보니까 김용규 와이프 여동생이랑 김택진 와이프랑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하더라. 지금도 정기적으로 만날 만큼 학교 다닐 때 꽤 절친이었다고 하더라고.”

“푸하하하.”

난 너무 어이가 없어, 되레 웃음이 나왔다.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눈앞에 있을 땐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처럼 굴더니 뒤에선 이렇게 수작을 부리고 있었다.

“끙! 네 말이 맞았네.”

“거봐. 내가 그냥 들어 올 인간들이 아니라고 했잖아.”

장지원의 설명을 들은 이세훈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저 멀리 김미진을 쳐다봤다.

스파이.

내 예상대로 김택진과 김미진은 김용규가 심어 놓은 첩자였던 것이었다.

“어떻게 할까?”

장지원이 눈을 스산하게 빛내며 김미진을 쳐다봤다.

내가 지시를 하면 바로 체포하려는 기세였다.

“그냥 두세요.”

“……왜?”

“김용규 그 양반도 우리랑 해 보겠다고 이러는 건 아닐 거예요. 청방 일도 그렇고 우리같이 컨트롤 되지 않는 거대 세력이 턱밑에서 세를 확장하려 하고 있으니 불안했겠죠.”

난 장지원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살짝 괘씸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그리고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사정상 이곳에 들어와 살고는 있지만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그 위에 조상들까지 태어나고 살았던 내 조국은 대한민국이었으니까.

김용규와 이아영 때문에 대한민국의 앞날이 그리 어둡지는 않을 것 같았다.

버팔로 길드를 처리하며 쓰레기들을 청소까지 해 주었는데 이 정도도 해내지 못하면 오히려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네 말이 맞긴 하는데 그렇다고 이대로 넘기기엔…….”

“얼굴 보고 경고 정도는 해 줘야죠. 애써 모은 힘을 우리한테 겨누지는 말라고.”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선착장으로 걸어갔다.

“설마 저거 프로펠러야?”

“네. 맞아요. 그렇게 기계들을 다 뜯어내더니 결국 저걸 만들어 내더라고요.”

잔뜩 화가 나 있던 것도 잠시 장지원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선착장을 바라봤다.

아만티움으로 만든 거대한 프로펠러.

카프리와 헬퍼들이 아만티움으로 도색한 검은 색 목선 4대에 프로펠러를 연결하고 있었다.

“근데 저거 저렇게 연결한다고 작동이 될까?”

“네. 될 거예요. 카프리가 만들었으니까.”

난 의심스러운 눈빛을 하는 장지원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검은색 목선과 프로펠러에 그려진 수십 개의 마법진들.

카프리가 만든 프로펠러는 증기 기관도 전기도 아닌 마나의 힘으로 작동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오셨어요. 성주님. 드디어 배가 완성됐다네요. 축하드려요.”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짝짝짝!

“이게 어디 제가 축하받을 일인가요. 다 같이 축하받을 일이죠. 그동안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이세훈, 장지원과 함께 선착장으로 걸어간 나는 유거성과 헬퍼들 그리고 베트남 기술자와 인부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내지르며 같이 기쁨을 만끽했다.

그렇게 바라고 기다렸던 배를 결국 만들어 내었다.

* * *

“시동 걸고 액셀 밟으면 출발한다. 핸들 왼쪽으로 돌리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으로 간다. 경운기 참고해서 만들었다.”

카프리가 운전대를 잡은 선장에게 다시 한번 배의 조작 방법을 알려주었다.

베트남 기술자들은 이미 십수 년 동안 배를 만들고 항해를 했던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지만 아만티움 도색과 카프리가 만든 마법진이 가미 된 프로펠러로 인해 최신식 배 못지않은 편리함과 우수성을 갖게 되었다.

“성주님, 출발할까요?”

“네. 출발하죠.”

헌터들과 함께 4대의 배에 나눠 탄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와우! 형 속도 장난 아닌데요? 지금 우리 빠르게 가는 거 맞죠?”

배가 출발한 지 오 분도 되지 않아 옆에서 서 있던 이부성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워낙에 배가 커서 직접적으로 빨리 가는 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몸이 휘청거릴 정도의 바람과 배 양옆으로 생기는 거친 포말이 그 속도를 대신 증명해 주었다.

“죽이네.”

난 시원한 바닷바람과 포말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최고였다.

고생한 끝에 낙이 온다고 하더니 카프리와 헬퍼들 그리고 베트남 기술자들이 만든 배는 절로 미소가 그려질 만큼 안정적이고 빠르게 바다를 질주했다.

“해용아, 선장이 그러는데 이 속도면 한 시간 내에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는데?”

“그렇겠죠. 이 정도 속도면 지구에 있는 쾌속선 못지않게 스피드를 내고 있는 거니까.”

“크크. 김용규 본부장 빨리 보고 싶다. 그동안 이동이 불편해서 배짱을 부렸던 것 같은데 우리가 아니 네가 직접 배까지 만들어서 타고 나타났을 때 그 양반이 질 표정을 생각하니 벌써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앉는 기분이야. 하하.”

장지원 마스터가 다가와 게이트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지구에 잠깐 다녀오는 동안 김용규한테 꽤 쌓인 게 많은 모양이다.

하긴 이미 약속까지 해 놓고 뭉그적거렸으니 답답할 만하긴 했다.

자고로 기다리는 것만큼 지루하고 짜증 나는 것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장지원은 원체 성격도 급해서 카프리한테 말을 가르치라고 했더니 제일 먼저 알려준 게 ‘빨리빨리’ 일 정도였으니까.

허나 난 지금 이 순간 김용규는 그리 떠오르지 않았다.

바다.

장지원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제 이 넓은 바다는 내 것 아니 우리 것이었다.

그리고 바닷속에 있는 무궁무진한 어업 자원까지.

배는 단순히 교통수단뿐만이 아니라 우리를 이 바다의 주인으로 만들어 줄 매개체이다.

짐작건대 우리는 이 배로 인해 광산 못지않은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될 듯했다.

바다는 그런 곳이었다.

때론 거친 폭풍과 해일과 같은 것들로 위협을 할 때도 있지만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드나들 정도로 바다는 많은 것을 품고 있었다.

일본 놈들이 돌밖에 없는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하며 자기네 땅이라고 괜히 우기는 게 아니었다.

그놈들은 독도가 탐이 나는 게 아니라 동해, 대한민국의 바다를 탐내는 것이었다.

독도를 차지하게 되면 그만큼 더 넓은 바다를 자기 것이라고 우길 수 있을 테니까.

“트롤링낚시 하면 죽일 것 같은데 아쉽네.”

“뭐야, 너도 그 생각했냐? 나도 그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렇고 우리 자리 좀 잡으면 트롤링낚시 같이해 보자.”

“좋지!”

이세훈이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이 위대하고 거룩한 날 낚시 생각이 절로 떠오르는 것을 보니 그나 나나 천생 낚시꾼인가 보다.

트롤링낚시는 지금처럼 빨리 달리는 배 뒤에다 낚싯대를 걸어놓고 물고기를 유혹하는 것이었다.

그럼 참치나 청새치 같은 대형 어류들이 쫓아와 미끼를 무는데 손맛이 그렇게 좋다고 한다.

그동안은 그렇게 낚시를 좋아하면서도 돈이 없어서 트롤링은 해 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마음껏 할 수 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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