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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98화 (98/255)

98화. 쾌속선 (7)

“해용이 형, 카프리한테 지도 받아 왔어요.”

“오! 정말?”

점심 무렵 이부성이 기쁜 소식을 들고 찾아왔다.

난 지도를 받아 가만히 살펴보았다.

“바닷가 쪽으로 쭉 나가면 되는 건가?”

“아직 우리말이 서툴러서 자세한 지형은 그리지 못했지만 일단 설명대로라면 정면으로 쭉 가면 섬이 하나 있는 것 같네요. 거리상으로 백 킬로미터 정도 되는 것 같고요. 근데…….”

“근데 뭐?”

“이대로 나가면 다 죽는대요.”

“엥? 왜?”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카프리가 죽는다고 했으면 바다나 혹은 가려 하는 곳에 우리를 위협할 만한 무언가가 존재하는 듯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왜 죽냐고 물어보니 무조건 아만티움 더 빨리 채취해서 가져오래요.”

“끙…… 카프리 지금 어디 있어?”

“선착장 건조 공사 현장에 있어요.”

“가 보자.”

“네.”

난 자리에서 일어나 이부성과 함께 선착장으로 걸어갔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서 얘기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이제 곧잘 한국말을 하긴 하지만 가끔 이렇게 의사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게 현대 과학의 힘인가?”

선착장으로 걸어가며 벽돌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도로를 보면서 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가 오면 땅이 질어지고 흙먼지가 날리는 길이었는데 기술자들과 인부들이 그새 차가 다녀도 될 만큼 훌륭하게 포장을 해 놓았다.

“현대 과학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죠? 벽돌은 로마 시대부터 사용했으니까.”

“오? 그래? 제법인데? 우리 부성이 그런 거에도 관심이 있었어?”

“헤헤. 아니요. 사실은 저도 공사하는 거 옆에서 지켜보다가 형처럼 얘기했더니 인부들이 가르쳐 주더라고요. 콜로세움과 같이 로마에 있는 건축물들도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건데 벽돌로 만들어졌다고.”

이부성이 날 보며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딴에는 한번 잘난 체해 보고 싶었던 모양인데 일 초도 가지 못하고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뭐 하고 있는 거지?”

“네가 어떻게 좀 해 봐라. 이러다 기계들이 남아나는 게 없겠어.”

선착장에 도착하자 이세훈이 달려와 툴툴거리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저건 증기 기관으로 작동되는 건가?”

“어. 인부들이 필요하다고 기껏 설치했더니 저놈이 와서 다 뜯어내고 있다. 어휴.”

“쯧쯧. 미안하다. 사람들한테 얘기해서 조금만 이해해 달라고 해. 저래 봐도 우리 영지에 없어서는 안 될 기술자야. 현대 문물을 보고 신기해서 그러나 본데 지금 힘든 만큼 곧 보답해 줄 거야.”

난 이세훈과 인부들의 등을 토닥거리며 카프리에게 다가갔다.

증기가 지닌 열에너지를 기계적 일로 변환시키는 증기 기관.

바람의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주는 풍력 발전기.

우리야 수박 겉핥기식이나마 학교에서도 배우고 일상에서도 너무 흔하게 쓰는 물건들이라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쓰고는 있지만, 카프리가 보기엔 하나하나가 다 새로운 모양이었다.

“카프리!”

“오! 성주 왔다. 맥주 잘 먹었다.”

“잘 먹었다니 다행이네요. 지윤미 마스터가 돌아오면 또 줄게요. 근데 그 전에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어요. 바다에 나가면 다 죽는다고 했다던데 그 이유를 말해 줄 수 있나요?”

“바다에 크라켄 있다. 크라켄 만나면 다 죽는다. 크라켄 아만티움 냄새 싫어한다.”

“크라켄이요?”

-저번에 봤던 대왕오징어 말하나 보네.

“아…….”

난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바다를 쳐다봤다.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대왕오징어를 깜빡하고 있었다.

‘고래도 잡아먹는다고 했지?’

-응. 맞아. 배고프면 고래는 물론이고 눈앞에 알짱거리면 다 입에 집어넣는 놈이야. 근데 그놈도 그놈이지만 심해에 가면 그놈 못지않은 놈들이 꽤 많아.

‘엥? 그런 얘기는 없었잖아?’

-물어본 적이 없었지?

‘그래도 그런 건 미리미리 알려줬어야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

-그래서 지금 알려 주잖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너한테 알려주면 넌 아마 최하 십 년은 내 얘기만 듣고 있어야 할걸? 어디 뭐부터 얘기해 줄까? 한 이억 년 전 내가 소환됐던 세상부터 얘기해줄까?

‘아니야. 됐어. 참아. 내가 잘못했어.’

난 운디네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놀란 마음에 한마디 했다가 되로 주고 말로 받을 뻔했다.

“카프리 혹시 아만티움으로 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 아니죠?”

“그럴 필요 없다. 겉에다가 만 바를 거다. 그럼 크라켄 안 온다.”

“흠…….”

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얘기를 듣자 하니 목선 주위에 아만티움으로 도금을 하겠다는 것 같은데 그것만 해도 양이 상당히 들어갈 것 같았다.

베트남 기술자와 인부들이 투입되고 동시에 목선 4척이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족히 수천 kg은 필요할 듯했다.

“아만티움이 얼마나 있지?”

“재고는 지금 1톤 정도 있고 하루에 100kg씩 생산되고 있어요.”

“그것밖에 안 돼?”

“그게 이제 표면에 나온 건 거의 다 채취했고 순수 아만티움이 아니라 다른 광물들도 섞여 있어서 그걸 녹여서 분리하는 과정도 제법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흠…….”

“형 근데 이렇게까지 해서 꼭 배를 직접 만들 필요가 있을까요? 아만티움 100kg만 해도 100억인데 수천 킬로그램이면 수천억 원이라는 얘기잖아요. 차라리 그 돈으로 배를 사는 게…….”

“어차피 사도 여기까지 나를 방법은 없어. 그럼 게이트 입구에서 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어차피 비싼 건 마찬가지야. 시간도 오래 걸리고. 게다가 카프리가 아만티움으로 만들어야 한다잖아. 그럼 만들어야지. 그깟 돈보다야 우리 영지민 한 사람의 생명이 더 중요하니까.”

“……네.”

이부성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밖에 있는 배처럼 모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깃을 달아 바람과 인력으로 다니는 배를 만드는데 아만티움까지 쓰려고 하니 많이 아까운 모양이었다.

헌데 어쩌면 우리로선 좋은 일일 수도 있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누군가 우릴 따라 배를 만들었다가 바다에 나갔다가 크라켄을 만나면 바로 요단강을 건너게 될 테니까.

특히 중국 놈들은 카피하는데 선수들이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없길 바라지만…….’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저 멀리 있는 영지민을 쳐다봤다.

짐작건대 저들 중엔 분명 스파이가 있을 것이다. 아니 스파이가 아니라 하더라도 돈을 받고 이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한국이나 중국 혹은 일본에 알려줄 가능성이 컸다.

감염자들을 치료하고 데스나이트를 처리한 일로 너무 많은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켰기에.

가진 것이 없을 땐 몸이 좀 불편해도 머리는 편했는데 막상 가진 것이 많아지니 머리가 피곤해졌다.

“광산에는 공사 장비가 안 들어갔지?”

“네. 일부 인원을 제외하고 아직 기존에 있던 사람들도 광산에 죄인들을 투입한 건 몰라요. 괜히 알면 동요를 할 것 같아서 눈을 피해서 투입 시켰어요.”

이부성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역시 사람을 잡아 와 가둬 놓고 일을 시키는 게 그리 편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웬만하면 마주치기 싫었는데 한번은 가봐야 할 듯했다.

“세훈아, 선생님이랑 미진이 좀 불러 줘. 같이 광산에 가 보자.”

“엥? 진짜? 너 그 사람들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보아하니 기술자들이랑 인부들이 김택진 선생님 지휘 아래 움직이는 것 같구만. 아만티움 채굴을 높이려면 거기에도 전기도 놓고 장비를 들여놓아야 할 것 같아서.”

“정말 그것뿐이야?”

“당연히 아니지. 선생님이랑 미진이한테 겸사겸사 알려주려고. 개수작을 부리다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끙…….”

이세훈이 날 보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뭐 대충 짐작은 하겠지만 미스릴, 아만티움, 마나석, 암염 광산은 기존에 있던 사람들을 제외하곤 현재 비밀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마 김택진과 김미진이 외부 사람으론 처음으로 보게 될 것이다.

“가자.”

“네.”

“……그래.”

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하늘다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 *

정치인, 재벌 3세, 연예인, 검찰 공무원, 경찰, 깡패…….

아만티움 광산에 도착하니 수백 명의 사람이 열심히 아만티움을 채취하고 성벽을 쌓으면 일을 하는 게 보였다.

사람이 좀 적은 걸 보니 4개의 광산에 나눠서 투입한 모양이었다.

“오셨습니까. 성주님.”

“네. 수고가 많으시네요.”

김병준.

용병으로 들어왔다가 태백산맥 길드에 가입한 헌터가 내게 군례를 취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저 사람이 어떻게…….”

“아시는 분이세요?”

끄덕끄덕.

“우리 당 의원이었던 분인데 왜 이런 꼴로 여기에…….”

리어카에 아만티움 광산을 싫고 나르는 죄인을 본 김택진 선생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날 쳐다봤다.

“버팔로 길드라고 들어보셨죠?”

끄덕끄덕.

“그 길드가 이래저래 나쁜 짓을 많이 했는데 그놈들한테 돈 받아먹고 무마해 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잡아 온 거예요. 아마 죽기 전까지 이곳에서 나가지 못할 테니 굳이 아시는 체할 필요 없을 거예요.”

“그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무슨 소문이요?”

“재난 관리 본부에서 예전 중정(중앙정보부) 시절 때처럼 사람들을 납치해 끌고 갔다고 하더니 거기가 여기였다니…….”

부들부들.

김택진이 몸까지 떨며 반쯤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선 멍을 때렸다.

“선생님도 혹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사람 있으면 세훈이한테 살짝 귀띔해 주세요. 그럼 저희가 조용히 납치해서 이리로 데리고 올게요.”

“…….”

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김택진을 쳐다봤다.

아주 재미있었다.

내게 했던 짓은 다 잊어버렸는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날 대하던 김택진의 얼굴에 이제야 두려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물 좀 주세요. 물 좀. 제발 물 한 모금만…….”

“……?!”

의원이라고 했던 양반이 김택진에게 달려와 바짓가랑이를 잡고 물을 달라고 애원했다.

그도 김택진을 알아본 모양이었다.

“병준 씨,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보아하니 김병준이 이곳의 경비 대장을 맡은 듯하여 난 코끝을 찡그리며 그를 노려봤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지금 잘못을 탓하자는 게 아닙니다. 왜 이 사람이 물을 달라고 애원하는지 묻고 있는 거예요.”

“그게 밥 먹을 때 주기는 하는데 그 외에는 인원이 부족해서…….”

김병준이 대답을 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힘든 건 아는데 그래도 물은 잘 챙겨 주세요. 아무리 죄인이라도 물까지 안 주는 건 너무하잖아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 씻기는 하는 겁니까? 보아하니 하루, 이틀 안 씻은 게 아닌 것 같은데?”

“그게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어휴. 씻기는 것까지 꼭 챙길 필요는 없잖아요. 가까운 계곡에 가서 씻는 시간을 갖게 해 주세요. 어차피 도망가 봤자 던전 안이니 혼자 빠져나갈 자신 있는 사람들은 도망가 보라고 하고요.”

“네, 알겠습니다.”

이렇게까지 괴롭힐 생각은 없었는데 인원이 부족하여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죄인들의 삶이 더 피곤한 듯했다.

2001년 5월 31일.

여름 군번이었던 난 물을 마시지 못하는 고통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훈련소 시절. 조교들은 식중독에 걸릴 것이 염려되어 삼백 명의 훈련병들에게 물을 끓여서 주느라 넉넉하게 배급되지 않았고 내 동기들은 조교들의 눈을 피해 화장실 세면대 그리고 샤워를 하면서 그 물을 받아 마셨었다.

“밥은 잘 주죠?”

“그게 인원이 부족하다 보니…….”

“설마 밥도 안 주나요?”

“아닙니다. 주먹밥이긴 하나 하루에 세 번씩 꼬박꼬박 챙겨 주고는 있습니다.”

김병준이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다행히 밥은 잘 챙겨 주고 있던 모양이었다.

“저 선생님.”

“네? 어?”

“보셔서 알겠지만, 이곳의 환경이 열악합니다. 당장 아만티움이 많이 필요해서 그러니 영지에서 했던 것처럼 여기도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난 진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김택진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아무래도 아만티움 채취량을 늘리려면 이곳에도 전기 시설과 공사 장비를 들여와 개발을 조금이나마 더 시켜 놓아야 할 듯했다.

겸사겸사 죄인들의 생활환경도 개선해 주고.

“밖에서 구청장직을 오래 한 거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말씀처럼 관공서를 짓고 완성이 되면 그곳의 수장으로 모시게 될 듯하니 그전까지만 힘들어도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그러세.”

김택진이 대답을 하지 않아 사탕 하나를 던져 주니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가 노려보면 어쩔 건데?’

그리고 함께 데리고 온 김미진은 똥이라도 씹은 사람처럼 코끝을 찡그리며 날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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