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쾌속선 (5)
“물론이죠. 여기까지 왔는데 미스릴만 달랑 쥐여 주고 가게 할 수야 있나요.”
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옐로 아이, 그린 피쉬, 바이올렛 피쉬 재고가 얼마나 있나요?”
“진짜 헌터 협회장에게 피쉬 판매를 하시게요?”
“네. 일본에도 판매했는데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대한민국의 방위를 위해 애쓰시는 분인데 못 팔 것도 없죠.”
“……130마리씩 있습니다.”
지윤미 마스터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피쉬의 재고를 알려주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판매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옐로 아이, 233마리.
그린 피쉬, 130마리.
바이올렛 피쉬, 130마리.
“재고가 넉넉하니 마리당 백만 원씩이면 적당할 것 같네요.”
“네?”
“비싼가요?”
“그게 아니라 지금 가격을 잘못 말한 것 같아서.”
“백만 원이라고 들으셨으면 정확히 들으신 거 맞아요.”
“헐…….”
“…….”
“…….”
내가 피쉬의 가격을 말하자 이아영은 물론이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 반쯤 넋이 나가 날 쳐다봤다.
“제가 알기론 일본에 마리당 천억씩 판 걸로 아는 데 아닌가요?”
“네. 맞아요. 천억을 불러도 살 것 같더라고요. 혹시 이아영 마스터님도 그 금액에 사갈 능력이 되는 거였습니까?”
“아니요. 저흰 그렇게 큰 금액에 사갈 능력은 되지 않아요.”
“거봐요. 그래서 싸게 드리는 겁니다. 원래 횟집에 가도 회는 시가로 팔거든요. 그때야 보유하고 있던 양도 얼마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본이 필요하다고 하니 비싸게 팔았지만, 지금이야 재고도 넉넉하고 같은 한국 사람들끼리 바가지를 씌울 수는 없잖아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전 성주님께서 저희를 이렇게 생각해 주실지는 몰랐어요. 제가 그동안 오해를 했나 보네요. 그럼 저희가 피쉬를 전부…….”
“사람 한 명당 한 마리씩.”
“네?”
“과유불급이라는 말 아시죠?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에요. 두당 한 마리씩만 판매한다고요. 열 분에서 오셨으니까 열 마리만 판매하죠.”
“끙…….”
이래서 사람의 마음을 참 간사하다고 하나 보다.
마리당 백만 원에 팔겠다고 하니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 것도 잠시 두당 한 마리씩만 판매하겠다고 하니 이아영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아쉬우신가 보네요. 그럼 이것도 좀 보실래요?”
“또 다른 게 있나요?”
“네. 저희 영지에는 꽤 재미있는 것들이 많답니다.”
난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무기 상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어서 오세요. 성주님.”
“해골 세트 좀 갖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무기 상점에 도착하자 마법진을 그리고 있던 이성민이 반갑게 날 맞이해 주었고 이내 창고로 들어갔다.
「드워프제 보급용 검
힘+1
민첩+1
일렉트릭 쇼크(랜덤)」
「드워프제 보급용 방패
힘+1
민첩+1
충격 흡수+1
회피+1
스턴(랜덤)」
「드워프제 보급용 투구
힘+1
민첩+1」
.
.
.
해골 방패, 해골 투구, 해골 갑옷, 해골 장갑, 해골 각반…….
“여기에 적혀 있는 옵션들이 모두 사실인가요?”
해골 세트는 각각 옵션이 달린 설명서가 부착되어 있었고 그걸 가만히 쳐다보던 이아영이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저흰 이런 아티팩트를 구매할 여력이…….”
“검과 방패는 천만 원씩. 나머지 방어구들은 개당 백만 원씩만 주세요.”
“정말이요? 정말 그 가격에 넘겨주시겠어요?”
“원래 백배는 더 받아야 하는데 싸게 드릴게요. 단 이것도 두당 한 세트씩만 판매할게요.”
“가,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아영이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대로 두면 절이라도 할 기세였다.
“알려드릴까요?”
“네?”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면서요? 모르시면 제가 알려드린다고요.”
“……경청하겠습니다.”
“밖으로 나가셔서 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헌터들에게 공문을 내려주세요. 스카이 영지에 가면 이능이 깃든 피쉬와 음식은 물론이고 아티팩트까지 저렴하게 구매를 할 수 있다고.”
“……?”
“공문을 보고 헌터들이 찾아오면 아이디 카드를 확인하고 같은 금액에 판매하죠. 물론 그들 역시 구매를 할 수 있는 양은 두당 한 세트씩뿐이고요.”
“흠…….”
이아영이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대답 안 하실 건가요?”
“생각할 시간을 조금만 주시면 안 될까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까요? 이아영 마스터가 거절해도 전 이 사실을 밖으로 알릴 방법이 너무나 많은데요?”
“끙…….”
이아영 마스터가 앓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일본에다 천억에 팔았던 피쉬를 백만 원에 판다고 알려 달라는 데도 그녀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알릴 방법은 많겠죠. 허나 성주님께선 저처럼 공신력 있는 사람이 헌터들에게 알려주길 원하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많은 헌터들이 이곳에 물 믿듯이 몰려올 테니까.”
“오!”
난 이아영 마스터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헌터 협회장을 가위, 바위, 보해서 오른 건 아닌 듯했다.
그녀는 내 노림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미끼 상품.
백화점 근무 시절 담당들은 한 달에 한 번씩 파격가 세일을 기획했다.
오늘 딱 하루! 삼백 명 한정.
삼겹살 100g 990원.
고등어 한 마리 990원.
계란 한 판 990원.
.
.
.
그리고 행사 날 아침이 되면 오픈을 하기도 전에 수백 명의 사람이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원가보다도 저렴한 금액에 상품을 살 수 있으니 평소 백화점에 잘 오지 않던 사람들까지 눈에 혈안이 되어 찾아오는 것이다.
헌데 이렇게 세일을 해도 백화점은 그리 큰 손해를 보지 않았다.
한정 상품을 구매한 사람들이 그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백화점 푸드 코트에 들려 밥을 사 먹는다거나 커피숍에서 커피를 사 먹기도 하고 이왕 온 김에 다른 필요한 것들도 사 갔기 때문이다.
내가 노린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피쉬와 해골 세트.
두 가지 아이템을 좀 싸게 팔더라도 스카이 캐슬에 많은 헌터들이 찾아오면 이곳의 안전성은 더 올라갈 것이고 그들이 머무는 동안 내 영지민은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할 수 있을 테니까.
다만, 그렇게 이곳에 헌터들이 몰리게 되면 지구의 안정성은 그만큼 더 떨어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아영 마스터가 망설이는 듯했다.
“엔트 주사도 개당 백만 원씩.”
“…….”
“회복 포션은 십만 원.”
“…….”
“이미 저희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의 효과는 좀비 웨이브와 데스나이트 레이드로 인해 충분히 증명됐어요. 이아영 마스터가 협조하지 않아도 헌터들은 결국 이곳을 찾아오게 될 겁니다.”
“만약 그걸 저나 재난 관리 본부장이 막는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아영 마스터가 두 주먹을 말아 쥐고 날 지그시 쳐다봤다.
참, 사람이 한결같았다.
당장 눈앞에서 큰 이익을 챙길 수 있는데도 그녀는 대한민국의 안위부터 생각하는 듯했다.
이아영 마스터는 우리 영지에 헌터들이 몰려오는 게 많이 불안한 모양이었다.
‘죽이는 건 좀 그렇고 광산에 보내야 하나?’
난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아영을 쳐다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아영을 이대로 두면 두고두고 화근이 될 것 같았다.
지금이야 나를 필요하고 원하는 게 있으니 따른다 해도 한국에 위협이 되면 언제든 우리한테 등을 돌릴 사람이었다.
안정적으로 영지를 발전시키기 위해선 한국이 혼란스러우면 혼란스러울수록 좋았다.
그래야 우리한테 관심을 쏟지 못할 테니까.
좀비 웨이브와 데스나이트로 인해 지금은 정국이 혼란해 가만히 있지만 계속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미스릴 광산.
아만티움 광산.
마나 광산.
알아보니 광산은 대부분 정부에서 관리하는 산업이었다.
이곳의 온전한 실체를 알게 된다면 이세훈이 예견한 것처럼 정부 차원에서 개입을 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헌터들을 이곳으로 모으려는 것이었다.
설사 김용규와 이아영이 나라를 위해 딴마음을 품게 돼도 쉽게 반목을 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
그녀가 나를 믿지 않는 것처럼 나 역시 그녀를 믿지 않았다.
“100km”
“네?”
“여기서 게이트까지 거리입니다. 지금이야 오크들이 길을 막고 있고 땅굴도 길이 좋지 않아 오래 걸리지만 앞으로 한 달 이내에 배가 만들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길어야 서너 시간. 짧으면 두 시간 이내로 게이트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대한민국에 등장하는 데스나이트는 물론이고 7티어 급 웨이브가 생겼을 시 조건 없이 도와드리죠.”
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이아영을 쳐다봤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배려는 여기까지였다.
만약 이번에도 거절의 뜻을 내비치면…….
“……돌아가면 바로 각 길드에 공문을 내려보낼게요.”
이아영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궁금해 허니!”
“궁금해 허니!”
석양이 지는 저녁.
영지 가득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 복귀를 하며 데리고 온 가수들의 공연이 시작된 듯했다.
“다들 즐거워 보이네.”
광장으로 나가니 수천 명의 영지민이 가수들의 노랫소리에 맞춰 환호했고 또 카메라를 든 수십 명의 사내들이 그걸 촬영하고 있었다.
“그치? 돈이 좀 들긴 했지만 하길 잘한 것 같지?”
“그래. 네 똥 굵다.”
난 이세훈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가수들을 데리고 오느라 돈이 이십억이나 들었지만 영지민이 즐거워하는 것을 보니 돈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 모습을 촬영해 바깥에 내보내면 이곳에 오길 망설이는 헌터들 역시 긍정적으로 결정을 하게 될 테니까.
“근데 너 퀸즈 안 보고 어디 보고 있는 거냐?”
“뭔 소리야. 나 지금 퀸즈 보고 있었는데?”
“웃기고 있네. 너 사팔이야? 무대는 저쪽인데 네 눈은 분명 저쪽을 보고 있었거든?”
분명 그는 무대가 아닌 관중들을 향해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난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이 쳐다보고 있던 방향을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뭐야? 저 싸가지가 여기 왜 있어?”
난 바로 낯이 익은 여자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미진.
내 첫사랑이자 이세훈의 첫사랑이기도 했던 여자가 손뼉을 치며 퀸즈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몰라 나도. 쟤가 여기 왜 있는지.”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히 얘기해라. 네가 인원 선별해서 데리고 온 거잖아. 근데 김미진이 따라오는 걸 네가 몰랐다는 게 말이 돼?”
고등학교 2학년 1998년.
한창 하두리와 싸이월드가 유행했던 시절 김미진은 인천 4대 얼짱으로 불릴 정도로 얼굴이 예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는 서른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음에도 수백 명의 관중 틈에 섞여 있는데도 단번에 내가 알아볼 만큼 여전히 뛰어난 외모를 뽐내고 있었다.
이세훈이 몰랐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세훈아, 아무리 여자가 궁해도 쟨 아니다.”
난 분노 어린 표정을 지으며 김미진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내가 알기론 그녀의 아버지는 학교를 정년퇴직하고 선거에 나가 구청장까지 역임을 했었고 그녀 역시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걸로 알고 있다.
그녀는 이곳에 올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밖에서도 얼마든지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부모와 직업을 갖고 있었으니까.
덥석.
“새끼야. 그런 거 아니야. 미진이도 그렇고 미진이 아버지도 그렇고 이곳을 개발하는데 필요한 인재들이라 그냥 모른 척한 거야. 그러니 너도 그냥 못 본 척해.”
“정말 그것뿐이야? 아직 미련이 남은 건 아니고?”
“언제 적 얘기를 하는 거야? 그리고 쟤 결혼했다가 이혼까지 했다더라. 내가 뭐가 아쉬워서…….”
“예쁘잖아.”
“…….”
“이제 흠까지 생겼겠다. 다시 대시해 볼 만하다 싶어서 모른 척한 건 아니고?”
“아니야. 새끼야.”
“믿어도 되지?”
“그래. 믿어도 돼. 그러니까 그냥 모른 척해.”
“알았다. 네가 그렇게까지 나오니 일단 모른척하겠지만 분란 일으키면 바로 내쫓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래.”
이세훈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표정을 보아하니 아직 김미진을 좋아하고 있는 듯했다.
헌데 설사 김미진이 이세훈의 마음을 받아 준다 해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두 사람이 잘되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