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쾌속선 (4)
“……선착장부터 만들어 줬으면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난 내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것을 기술자들에게 설명했고 다들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선 바로 공사를 시작했다.
항구도시 부산.
이곳을 부산 해운대처럼 변모시킬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이 찌릿해 왔다.
그런데 그때,
“해용이 형 잠깐 카프리한테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이부성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카프리? 왜?”
“그게 화장실 공사 현장에 와서 방해하고 있나 봐요.”
“그래?”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화장실 공사 현장으로 걸어갔다.
“카프리!”
“오! 성주. 덕분에 맥주 잘 마셨다. 맛있다. 굿이다.”
“맛있었다니 다행이네요. 근데 이른 아침부터 여긴 웬일이에요?”
“시끄러워서 나와 봤다. 근데 이거 뭐로 만든 거냐? 궁금하다.”
시멘트와 벽돌, 그리고 타일 등을 어루만지며 카프리가 눈빛을 빛냈다.
원체 만들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지구의 문물들이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나 보다.
이제 보니 저 멀리 경운기 한 대는 이미 박살이 나 있었다.
짐작건대 호기심을 못 이긴 카프리가 분해해 놓은 듯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부성에게 도움을 청한 거고.
“석회석이라고 저희 세계에 있는 광물이에요. 이렇게 가루로 빻았다가 물과 섞어주면 다시 단단하게 굳어요. 이건 석회석과 모래, 볏짚 같은 것을 섞어서 불에 구워서 만든 거고요.”
킁킁.
“흠…… 냠냠.”
“그거 먹으면 안 되는데…….”
내 설명을 들은 카프리가 시멘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 것도 모자라 손가락으로 찍어 입에 넣더니 맛까지 보았다.
“이거 내가 좀 가져간다.”
“네. 그러세요.”
난 카프리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힘으로라도 뺏어갈 기세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삽질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릴 보면서 멍청이라며 무시를 하다가 발전된 지구의 문물이 들어오자 그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멍청이 이것들 전부 챙겨.”
“네. 스승님.”
소형 발전기, 전기 드릴, 전기 톱날…….
내 허락이 떨어지자 카프리의 뒤에 서 있던 헬퍼 한 명이 장비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성민.
일전에 성벽 보수 공사를 하는 게 힘들어 마법진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헬퍼였다.
둘의 대화를 들어보니 어느새 카프리와 사제의 연을 맺은 듯했다.
“마법진 그리는 게 할 만한가 보네요?”
“네. 이제 간단한 버프 마법진은 직접 장비에 새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 축하해요.”
난 이성민의 등을 쓰다듬으며 정말 진심 어린 마음으로 축하를 해 주었다.
내 예상이 맞았다.
카프리에게 반강제적으로 마법진 그리는 걸 배웠던 태백산맥 헌터들과 달리 자신의 의지대로 마법진 그리는 걸 시작한 그는 스스로 노력과 재능으로 훌륭하게 적응한 듯했다.
그런데 그때,
킁킁!
“그건 진짜 먹으면 안 되는데…….”
카프리가 이번엔 석유가 든 통에 손가락을 찍어 맛을 보았다.
“카프리. 뱉어요. 그거 진짜 몸에 해로워요.”
“이게 경운기를 작동하는 원료?”
“네. 맞아요. 먹으면 안 되는 거예요. 얼른 뱉으세요.”
“인간들 대단하다. 그동안 무시해서 미안하다. 석회석, 석유 이곳에도 있다. 하지만 우린 그걸 이런 식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네? 뭐라고요?”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석회석, 석유 이곳에도 있다.”
“정말요? 어디에 있나요?”
“걸어서 못 간다. 바다 건너에 있다. 배 만들면 가르쳐 준다.”
“바다 건너요? 어느 쪽을 말하는 거죠? 혹시 지금 선착장을 만드는 방향…….”
“인간들 똑똑하다. 인정한다. 내가 진짜 멍청이였다. 난 이것들 연구하러 간다.”
“카프리…….”
터벅터벅.
난 들을 말이 많은데 카프리는 자신의 할 말만 해 놓고선 등을 돌리고 대장간으로 걸어갔다.
“해용이 형, 왜 그러세요?”
“석유, 석유가 있다고 하잖아.”
“저도 듣긴 했는데 카프리 말대로 설사 진짜 있다고 해도 그걸 퍼 올릴 수 있을까요? 제가 알기론 석유 퍼 올리려면 진짜 엄청나게 땅도 깊게 파고 장비도 장난 아니게 필요한 걸로 아는데?”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지은 나와 달리 이부성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길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추(試錐)하는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모양이다.
허나 그의 말은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현재 지구에서 쓰이는 석유들은 대부분 이부성이 말한 것처럼 땅이나 바다 깊은 곳에 있는 것을 퍼 올려 쓰는 것이지만 미스릴과 아만티움과 같이 눈에 보이는 표면에 자리 잡았던 석유들도 존재했다.
아마 카프리가 석유의 존재를 봤다면 땅에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을 봤을 가능성이 컸다.
아무리 땅을 잘 판다고 해도 바다 한가운데를 수영해서 들어가거나 공기조차 통하지 않는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서 보고 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예전에는 눈에 보이는데도 석유가 있었다고 하더라고.”
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이부성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정말요? 형이 예상한 대로 땅 가까이 있으면 진짜 대박이겠네요?”
“그렇지.”
난 이부성을 쳐다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스릴, 아만티움, 마나석까지.
지금 우리가 확보한 광석들은 모두 전쟁과 전투를 했을 때 그 값어치를 인정받는 것들이었다.
허나 석유는 달랐다.
보일러, 자동차…….
석유는 일상생활을 하는 데도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고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에너지 자원이었다.
“부성아. 이번에 맥주 가져온 거 있지?”
“네. 있어요.”
“그것들 전부 다 카프리한테 줘도 되니까 석유와 석회석이 있는 장소 지도를 받아 와.”
“네, 알겠어요.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받아 올게요.”
이부성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구의 과학 산물들과 카프리의 마법진이 결합하는 것도 기대가 되었지만, 그보단 당장 큰돈이 될 수 있는 석유가 순식간에 내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세훈아.”
“응. 알았어. 기술자들한테 얘기해서 최대한 빨리 만들어 볼게.”
“그래. 고맙다.”
후다다닥.
내가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이세훈은 선착장 공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직접 기술자들과 인부들을 섭외한 그는 자연스레 십장, 아니 소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배.
지금 우리에겐 가장 필요한 것도 배였고.
석유를 찾기 위해서도 배가 절실히 필요했다.
아무래도 인부들을 채근해서라도 서둘러야 할 듯했다.
* * *
“성주님, 점심 식사는 이아영 마스터와 함께 자리를 마련해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손님을 모셔 놓고 제가 소홀했네요.”
점심때가 되어 식당에 도착하자 지윤미, 이아영, 이슬비 그리고 플로라 길드원들이 자리해 있었다.
“밤새 편안하셨나요?”
“네. 덕분에 편안하게 잤어요.”
“다행이네요. 그럼 우리 밀린 얘기는 나중에 하고 일단 식사부터 할까요?”
“네, 알겠어요.”
이아영 마스터와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난 바로 젓가락을 들고 식사부터 시작했다.
블랙앵거스 안심 스테이크. (60분 동안 근력 +5 상승)
닭꼬치 구이. (60분 동안 민첩 +5 상승)
옐로아이 찜. (활력 +100 상승)
잔치국수. (120분 동안 마나 최대치 20% 상승)
그린 피쉬 찜. (60분 동안 속도 상승 50%)
바이올렛 피쉬 찜. (60분 동안 속도 상승 50%)
.
.
.
손님 대접을 한다고 요리 팀에서 신경을 썼는지 식탁 위에는 한 상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성주님 돌아오셔서 신경 좀 썼는데 드실만한가요?”
“맛있네요. 그동안 요리 연습을 열심히 했나 보네요.”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 볼 테니 더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얘기해 주세요.”
손정모.
식당을 차려 달라고 했던 헬퍼가 날 지그시 쳐다보다가 내가 만족스런 표정을 짓자 그때서야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이거 설마 일전에 데스나이트를 잡을 때 나눠 주었던 음식 아닌가요?”
“네. 맞아요.”
“그럼 혹시 다른 음식들도 이능이 깃들여 있는 건가요?”
“네. 맞아요.”
“헐…….”
음식을 맛본 이아영 마스터와 이슬비가 반쯤 넋이 나가 음식들을 쳐다봤다.
다들 이능이 깃든 것들이기에 입에 넣자마자 몸의 변화를 느낀 모양이다.
“이렇게 귀한 것들을 이렇게 그냥 배를 채우기 위해 먹어도 되는 거 맞나요?”
“그러게요? 그건 저도 궁금하네요?”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스테이크와 안심은 그렇다 치고 생선찜들까지 이렇게 같이 나올지는 나 역시 예상치 못했다.
우리에게도 이능이 깃든 생선들은 꽤 귀한 것이었다.
“물의 정령과 계약한 길드원들도 이제 옐로 아이, 그린 피쉬, 바이올렛 피쉬를 모두 잡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 여유가 있기도 하고 헌터 협회장님이 이렇게 직접 찾아왔는데 한 번 정도는 귀하게 대접을 해드리고 싶어서 제가 준비하라고 했어요.”
지윤미 마스터가 나와 이아영 마스터를 번갈아 쳐다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윤미야. 염치도 없이 이렇게 찾아왔는데 이렇게 환대를 해 주…….”
“반말하지 마세요.”
“응?”
“반말하지 마시라고요. 헌터 협회장이라도 해도 저한테 함부로 말을 놓을 위치는 아닌 것 같은데 아닌가요?”
“왜 그래? 윤미야. 우리 친…….”
“거기까지. 더 이상 말을 이어가면 넌 이 자리에서 죽어. 네가 진정 날 친구로 여겼다면 넌 어떡해서든 날 아니 내 동생들이라도 살리려고 왔었어야 했어.”
“끄응…….”
“내가 지금 이렇게 웃으면서 너랑 마주 앉아 있는 건 널 친구가 아니라 헌터 협회장으로서 대하기 때문이야.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그러니 함부로 반말하지 마세요. 매우 불쾌하니까요.”
“……네.”
이아영 마스터가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박민정도 그러더니 지윤미도 성격이 장난 아니었다. 아니 차라리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내는 박민정이 나은 것 같았다.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던데 저리 웃으면서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갈구니까 더 무섭게 느껴졌다.
‘A급 아니 그 이상인가?’
이아영을 노려보며 말을 할 때 잠시 잠깐 지윤미 마스터의 마나가 개방됐고 난 꽤 큰 힘과 살기를 느꼈다.
이아영 마스터가 국민을 위하는 것처럼 지윤미 마스터는 동생들을 그와 같이 아끼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죽어도 상관없지만, 친구의 외면으로 동생들까지 사지에 내몰렸던 것 때문에 화가 많이 나 있었던 모양이다.
-오호! S급 맞아. 두 단계나 성장을 한 모양이네.
내가 느낀 것이 맞는지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성주님.”
“네?”
“이제 성주님도 돌아오셨으니 헌터 협회장님과 플로라 길드원들도 바래다줄 겸, 저도 사람들을 데리고 2차로 지구에 다녀왔으면 합니다.”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1차 선발대가 돌아왔으니 그녀가 사람들을 이끌고 지구에 다녀오는 건 원래 계획에 있던 거였다.
헌데 이아영 마스터 플로라 길드원들을 그녀와 함께 보내는 건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에궁.”
얼음장 같은 지윤미의 기세에 긴장했는지 이아영 마스터가 젓가락으로 들고 있던 생선 살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협회장님.”
“네?”
“주워서 드세요. 당신이 버린 사람들이 살기 위해 죽자, 살자 노력해서 얻은 것들이에요. 땅에 떨어졌다고 함부로 버릴 음식이 아니에요.”
“아, 알겠어요.”
오물오물.
이아영 마스터가 잔뜩 주눅이 든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생선 살을 주워 먹었다.
버팔로 일로 나도 물론이고 박민정과 다른 사람들 역시 이아영 마스터와 나름 거리를 좁힌 것 같았는데 대마왕이 기다리고 있었다.
박민정과 최은빈에게는 엄포를 놓으면서 무례하게 굴지 말라고 하더니 친구였던 지윤미에게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아영 언니…….”
“난 괜찮아.”
부들부들.
자신의 마스터가 굴욕을 당해서인지 플로라 길드 헌터들이 주먹을 말아 쥐고 몸을 떠는 게 보였다.
다들 잔뜩 화가 난 모양인데 애써 참아 내는 듯했다.
허나,
“저 성주님.”
“네?”
“흙먼지가 묻어 있는데도 참 맛있네요. 혹시 가능하다면 이것들도 좀 사갈 수 있을까요?”
이아영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능이 담긴 요리를 지그시 쳐다봤다.